감정 조절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긍정적인 감정은 크게 키우고,
부정적인 감정은 작게 줄이면서
내 마음대로 감정을 쥐락펴락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환상에 있습니다.
감정은 비유하자면, 힘세고 제멋대로인 "나그네"와도 같습니다.
미친X는 상대할수록 손해라는 말처럼,
폭주하는 나그네(분노, 짜증, 불안, 우울 등)를 통제한답시고 직접 나서본다한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싶어하는 나그네에게 끌려다니면서 더 심한 꼴만 당하게 될 뿐입니다.
어차피 나그네는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사람입니다.
굳이 내가 붙잡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곧 떠나갈 존재라는 것이죠.
이처럼, 감정 역시 우리가 붙잡아두지 않는다면 곧 사라질 존재라고 심리학자들은 얘기합니다.
(감정의 일시성)
그래서,
감정과는 직접 부딪히면 안되는 겁니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감정이라는 나그네가 스스로 떠나가게 만들어야 해요.
이른바,
"감정이 내 집에 찾아오면 집을 비워주라." >
라는 전략입니다.
심리적 거리두기
폭주하는 나그네가 제 풀에 꺾여 떠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얽힐 일이 없도록 집주인이 잠시 집을 비워주면 됩니다.
다시 한 번 강조드리자면,
감정이란 나그네는 어떻게든 집주인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벼르고 있는 존재에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게 되면, 더욱더 그 감정에 과몰입하게되는 것이죠.
그것이 분노든, 짜증이든, 불안이든, 우울이든지간에,
이런 식으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결국에는 손님이 원래의 주인을 내쫒고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에 과몰입된 주객전도의 삶인 거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오면 집을 내주고 잠시 떠나있자.
이러한 "집 비워주기 전략"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방법이란
특정 대상과 심리적 거리를 멀리 떨어뜨리는 것으로 가능해집니다.
심리적 거리는 통상적으로 물리적 거리, 즉, 공간적&시간적 거리와 연동돼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대상과 심리적 거리두기를 원한다면,
말그대로 공간적으로 멀리 떠나있거나,
시간적으로는 아예 몇달후 몇년후로 초점을 고정시키면 됩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거시적 관점)
예를 들어봅시다.
연애와 결혼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는,
같이 살면서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자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극단적으로 좁아진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렇게 심리적 거리감이 극단적으로 좁아진 상황에서 불화를 겪는다는 건,
비유하자면, 난폭한 나그네와 한 집에서 부대껴야만 하는 상황과도 같습니다.
연애 때야, 서로에게 감정이 상하면 한동안 연락을 안하고 지낼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공간적 거리감, 시간적 거리감이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심리적 거리감도 멀어지게 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불편했던 감정도 자연스레 옅어지게 되요.
물리적 거리감과 심리적 거리감은 비례한다.
통상적으로 심리적 거리감은
나 본인에 대해서 가장 가깝고, 그 다음이 배우자 등의 가족이며, 완전한 타인에 가까울수록 가장 멀어집니다.
따라서, 나 자신의 감정 문제에 있어서는 과몰입하기 쉬운 반면,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죠.
이러한 연유로,
가족끼리 갈등이 있을 땐,
서로를 떠나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큰 도움이 되요.
관계 갈등이라는 나그네가 떠나갈 때까지 잠시 집을 비워주는 전략인 거죠.
※ 연구에 따르면, 서로 독립적인 부부일수록 건강한 관계를 지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되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강화되기도 하죠.
성격적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감을 가깝게 느끼길 좋아하는 성격일수록,
즉, 외향적이거나 우호적일수록,
관계 갈등에서 오는 피로감을 훨씬 더 크게 지각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아무리 외향적이라고 하더라도
최근 인간관계에서 감정 소모를 심하게 느꼈다면,
그 즉시, 주변 지인들과 일정부분 심리적 거리감을 떨어뜨려놔야만 해요.
혼자서 여행을 떠나거나 잠수를 타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감정이라는 나그네가 떠나고 난 후, 천천히 관계전선에 복귀하면 됩니다.
타인이야 물리적 거리감을 떨어뜨리는 게 가능하다지만,
(물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나 본인의 감정 문제에 대해서는 어떡해야 할까?
심리학에서는,
자신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바라봄으로써 심리적 거리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나를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무명자"라는 객체로서 대우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3인칭 조망을 활용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혼잣말을 하는 겁니다.
무명자야, 힘들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거야.
※ 이상해 보이죠? 바보같아 보이는 이 방법이 실제로는 굉장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
내 일이지만 마치 타인의 일처럼 지각시킴으로써 심리적 거리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명상 역시,
그 기본 원리는 "심리적 거리두기"로써
나와 내 감정으로부터 빠져나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객관적으로) 직시하게끔 돕는 것입니다.
마치 남 일을 보듯이 말이죠.
이렇게 3인칭으로 날 관조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게 되면,
내 일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일인 것처럼 초연해질 수 있습니다.
마치 득도한 수도승들처럼,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에 좀처럼 구애받지 않게 되는 것이죠.
명상을 쉽게 하려면 유체이탈을 떠올리면 된다.
심리적 거리두기의 생활화는 스트레스에 대한 필승 공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 게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남들 게임 훈수 둘 때는 잘 보이는 것처럼'
나라는 주체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게 되면,
감정에 대한 과몰입을 예방하고,
보다 더 현실적이며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지니 말이죠.
다만, 감정과의 거리두기는 부정적인 감정 뿐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과도 멀어진다는 단점이 있으므로,
행복보다는 불행하지 않은 게 훨씬 더 중요하다거나, 스트레스에 민감하신 분들 위주로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이러한 삶에 익숙해질수록 득도한 수도승처럼 변화하는 자신을 보게 될 테니까요.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