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신들이 쓴『연행록』등의 기록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소개해봄.
-정조때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이갑의 「聞見雜記」, 燕行記事 중-
원나라는 비록 중국에 들어와 임금 노릇을 하였으나 천하가 그래도 "머리는 깎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해가 모두 호복이다.
중화의 문물은 남은 것이 없고, 선왕의 법복은 지금 모두 광대들[戱子輩]의 구경거리와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제멋대로 고치고 바꾸니 황명의 예전 제도가 날로 멀어지고 날로 없어져서 장차 다시 얻어 보지 못하게 되었다.
“大抵元氏雖入帝中國, 天下猶未剃髮. 今則四海之內, 皆是胡服, 百年陸沈, 中華文物, 蕩然無餘, 先王㳒服, 今盡爲戲子輩玩笑之具, 隨意改易, 皇明古制, 日遠而日亡, 將不得復見.”
이갑: 야 원나라 때도 변발은 안했는데 청나라 너희는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유문의 『戊午燕行錄』중-
우리나라에서는 피인이 쓴 것을 ‘마래기(청나라 애들이 쓰는 관모)’라 하고 피인은 ‘모자’라 하니
피인은 머리에 쓴 것이다만 마래기뿐이라, 다른 명색이 없더라.
저들도 우리나라의 쓰는 바를 옛 복색이요, 저들이 쓰는 바는 오랑캐 복색임을 아는 고로,
혹 우리나라 사람의 망건ㆍ휘항과 갓을 달라하여 갖추어 쓰고 서로 체면이 좋다 일컬으니,
만일 저희 쓰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더러 써보라 하면 진실로 그리하는 일이 전부터 없다 하니, 저들도 또한 알음이 있는 연고더라.
서유문: ㅋㅋㅋ 니들이 입은 그게 옷이냐? ㅋㅋㅋ
너네도 우리 갓 달라고 하는거 보니까 부끄러운줄은 아냐?
(참고로 이 사람은 청나라의 발전된 기술이나 그런 것들은 받아들여야한다고 했는데, 옷에 관해서는 얄짤없었다.)
그리고 서호수라는 사람은 연경에서 베트남(안남국) 사신인 '반휘익'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당시 베트남 사신과의 대화가 아주 흥미로움.
일찍이 들으니, 안남 사신은 우리나라의 관복과 비슷한 데가 많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군신이 다 만주의 관복을 따르면서 머리털은 깎지 않았기에,
내가 괴이하게 여겨 반휘익에게,
“귀국의 관복은 본래 만주족과 같습니까?”
하니, 반휘익이,
“황상이 우리 임금이 친히 조회하러 온 것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수레와 관복을 하사하고, 또 배신들에게까지 주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상유를 받들어, 중국 서울에서 조회와 제사에 참예할 때는 이 관복을 사용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도로 본국 관복을 착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복식은 한때 임시로 입을 뿐입니다.”
하는데, 말이 상당히 어설프고 낯에는 부끄러워하는 빛이 있다.
서호수: 너희 베트남은 조선하고 관복이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지금 입은 꼴을 보니 원래 만주족하고 닮았나보네.
반휘익: ㄴㄴ 그냥 청나라 황제가 선물해줘서 입고 있는 거임. 고향에 돌아가면 벗을라구..ㅎㅎ
베트남 애들도 청나라 옷을 부끄러워 했다고 함.
조선 사신들은 중국에가서 '일부러' 옷 자랑을 하기도 했었음.
그 배경에는 청나라에 대한 반발감과 소중화사상 및 문명국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인데,
막상 당시 조선의 '관복'복식을 보면 토착화가 된지 오래되어서 명나라 관복하고는 좀 달라졌긴 함.
어쨌든 조선 사신들은 조선 관복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옷이랑 머리스타일로 중국인들을 깠던 것이 아주 흥미로운 부분임.
+ PS 설명 :고려시대 때 고려양, 조선시대 때 말총으로 만든 망간, 말총 치마로 원나라, 명나라 의복에 유행전파, 수출,
명나라제도에 근거해 수입해서 조선시대 관복 만듦
최은수 연구관은 "조선 시대 관복 및 흉배 제도는 명나라 제도에 근거하여 만들었으나, 우리나라 독자적인 양식을 형성하여 특유의 복식 미(美)를 완성한 조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관복의 흉배(胸背·관복의 가슴과 등에 장식한 표장)를 보면 학과 호랑이 같은 주(主)문양과 구름과 물결무늬 같은 부(副)문양의 패턴과 구도 등이 (명나라 것과) 확연히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