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좀 고쳐주세요
죽고 싶지 않은데 죽고 싶어요
자꾸 죽고 싶어요, 아직 죽고 싶지 않은데
/황인숙, 生의 찬미
나는 이 생을 두 번 살지 않을 거야
완전히 살고 단번에 죽을 거야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하느님, 우리를 힘들게 마옵소서
정 힘들게 해야 되겠거든
그 힘듦을 감당할
힘을 주옵소서
/황인숙, 기도
상처를 천 년 정도 문지르면 꽃이 필까
이 몸이 만 년을 견디는 나무가 될까
/강정, 선인장 입구
어머니, 전 혼자예요
오늘도 혼자이고 어제도 혼자였어요
공중을 혼자 떠드는 비눗방울처럼 무섭고 고독해요
나는 곧 터져버려 우주 곳곳에 흩어지겠지요
아무도 제 소멸을 슬퍼하지 않아요
/함성호,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눈물은 어떻게 슬픔이 지나가는 복잡한 길을 다 읽어두었다가
슬픔이 터지는 순간 정확하게 흘러내리는 것일까
/김기택, 우산을 잃어버리다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 있는 걸까
/김혜진, 딸에 대하여
삶이 너무 길어요
인생은 형벌같기만 하고
하루하루 불 속에서 불을 기다리는 기분
/백은선, 불가사의, 여름, 기도
감히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도 이 같은 밤에는 우시는지
/나선미, 신께
나는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다가도
한 음절만 들리는 절박하고 고요한 새벽에
감히 돌아갈 곳이 없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말았지
/나선미, 공허한 날
존재한다는 것이
비참함이, 비통함이 되지 않도록
/박정대, 삶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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