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408260600071
② ‘이번만 참자’ 했는데, 목숨을 잃었다
고3때 같은 동네 동급생 사귄 효정씨
상처나 멍에도 엄마에겐 “그냥 싸웠어”
경찰도 ‘연인 사이 흔한 일’ 치부 많아
누가 더 맞았나 등 폭행 맥락 파악 없어
“가해자 위험성 객관적 판단 기준 필요”
대한민국에선 만 17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주민으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존재와 자격을 증명하는 문서다. ‘효도 효’에 ‘곧을 정’, 효도하며 곧게 살라는 뜻을 담아 지은 이효정씨(20)의 이름, 그 이름이 쓰인 주민등록증은 발급된 지 겨우 2년도 되지 않아 폐기됐다. 지난 4월 10일 동갑내기 전 남자친구 A씨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면서다.
4월 1일, A씨는 헤어진 효정씨가 전화와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자 자신을 무시했다며 새벽에 경남 거제에 있는 효정씨 원룸에 무단침입했다. 그는 효정씨 몸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고 머리와 온몸을 무차별 폭행했다. 피해자는 외상성 경막하 출혈 등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고 치료받다가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열흘 만에 사망했다. 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 안쪽 뇌혈관이 터져 피가 고이고, 그 피가 썩어서 장기 기능이 상실되면서 생명을 잃었다는 뜻이다.
지난달 17일 거제에서 만난 효정씨의 어머니 손은진씨(47)는 그날 이후 아파도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딸은 죽도록 맞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조금 아픈 것 갖고 그러고 싶지 않다. 차라리 그냥 빨리 효정이를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화장한 뒤 바로 나온 유골함 만져보셨어요? 너무 뜨거워서 손이 불에 덴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걸 장갑도 안 끼고 옮겼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우리 딸은 훨씬 더 아프게 갔잖아요.”
지금 손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딸이 죽기 전 수많은 징후가 있었는데도 그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몸 곳곳에 난 상처와 멍 자국,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불안해하는 모습, 뭘 물어도 꾹 닫고 있던 입. 손씨는 “뉴스에서 교제 폭력이 어쩌고 떠들어도 그게 내 일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돌아보면 모든 게 위험신호였는데, 죽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게 너무 원통하고 후회된다”고 말했다.
효정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2022년 4월, 동급생 A씨와 사귀기 시작했다. 벚꽃 아래 서서 웃던 여자를 보고 한 남자가 반해서 고백했다는, 어쩌면 흔한 시작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징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욕설과 폭행으로 딸은 눈두덩이가 찢어지거나 시퍼렇게 멍들어 왔다. 처음 겪는 일에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딸에게 물으면 “그냥 싸웠다, 넘어졌다”고만 했다.
손씨는 딸이 남자친구라며 소개시켜 주길래 둘을 몇 번 학교에도 태워다 주기도 했다. 그는 “좁은 동네인데다 애도 부모도 서로 아는 사이였으니까, 효정이가 다쳐와도 그때는 그렇게 큰 문제라고 인식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해 12월, 파출소에서 ‘딸을 보호하고 있으니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효정이가 그놈이랑 다른 친구들이랑 놀다가 싸움이 벌어졌나봐요. 길거리에 나동그라질 정도로 맞았대요. 그런데 경찰이 정식으로 사건 접수를 할 거냐고 묻길래 안 한다고 했어요. 걔도 효정이도 졸업이 코앞이었고, 대학도 가야 하는데 애 앞길 망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