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에게는 LA에서 사귄 댄 이노산토라는 친구가 있었다. 바로 이소룡에게 쌍절곤을 소개한 인물이다.
댄 이노산토는 필리핀계 미국인인데, 이소룡만큼이나 무술에 미쳐 있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이 둘은 같이 운동도 하고, 영화에도 같이 출연하면서 친해진다
이노산토는 영화배우로 성공하기에는 외모가 조금...
하지만 무술은 진짜 잘했다
이노산토는 자신이 수련한 필리핀 무술(아르니스, 칼리, 에스크리마 등으로 불리는)을 이소룡에게 가르쳐 주고, 이소룡은 이걸 영화에서 잘 써먹는다
그렇다면 댄 이노산토는 누구에게 에스크리마를 배웠을까?
그의 에스크리마 스승의 이름은 "레오 기론"
댄 이노산토는 레오 기론이 도장을 연 후 첫번째로 "Graduation" 명단에 올린 제자다
무협식으로 말하자면 "대제자"
레오 기론은 1911년 필리핀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검술 훈련을 했다
그러나 식민지의 삶이라는게 별게 없어서 20대에 미국으로 가서 캘리포니아의 농장에서 야채 따는 일을 하며 청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30대가 되었을 때, 그의 조국 필리핀이 외적의 침공을 받는다
범인은 바로
이놈들이다
농장에서 야채 따던 필리피노 레오 기론은 미군에 입대해서 왜구들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필리피노들이 꽤 많아서 미군에는 필리피노 연대가 만들어진다
레오 기론의 보직은 정보장교
암호를 뚜들기는 정보장교가 아니라, 루손 섬에 상륙해서 정찰과 게릴라 작전을 담당한다
그는 임무 중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국지전을 벌이고 승리한다.
몇 차례의 전투는 나이프와 마체테를 사용한 백병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백병전의 결과
레오 기론은 브론즈 스타 메달, 퍼플하트 훈장, 필리핀 해방 리본, 그 외에도 여러 개의 훈장을 받고 전역한다.
일본군을 실제로 칼로 썰어버린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레오 기론은 한동안 PTSD에 시달렸다
그러다 그가 있는 필리피노 커뮤니티 근처에서 필리피노 간호학교 여학생 여러 명이 성범죄자 한명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는 레오 기론이 무술 교습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레오 기론은 도장에서 댄 이노산토를 비롯해 많은 제자를 길러낸다
에스크리마도르로서 그의 특징은 긴 검을 사용하고 원거리 전투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바깥쪽 각먹고 카운터가 그의 특기였다
도장이 점점 번창하고 지부가 늘어나자, 그는 자신의 문파에 "바할라 나" 라는 이름을 붙인다.
바할라 나는 따갈로그어로 "어떻게 되겠지"
필리핀에서 널리 쓰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필리피노들의 수동적인 태도와 무계획성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까내리고,
어떤 사람들은 필리피노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불확실성에 직면하는 결의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받아들인다.
레오 기론의 바할라 나는 어떤 뜻이었을까?
조국이 위험할 때는 전쟁터로 달려가고, PTSD에 시달릴 때는 꾸준히 무술 수련을 하는
"기론적 사고"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는 만년에 장검술을 연구한다
원래도 다른 에스크리마도르들보다 길었던 그의 칼은 나중에 인정사정없이 길어진다
기론 에스크리마는 FMA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도 베이 에어리어, 샌디에고, 밴쿠버 등등 여러 곳에 도장이 있다
그는 필리피노 커뮤니티에서 크게 존경받았다
2002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레오 기론 사후 바할라 나 협회는 제자 커크 매큔이 이어받았고, 아들 마이클 기론도 별도의 분파를 만들어서 이끌고 있다.
필리핀 무술은 실전 마케팅을 즐겨 하지만
사실 그들의 진짜 자산은 전통무술로서의 근본력이다
실전에서 일본제국군을 베어 죽인 검객
"레오 기론"
그리고 그처럼 체격도 작고 가진 것도 없는 식민지 사람들이 피를 봐야 할 때 쓰던 무술
"에스크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