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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려 했던 소녀들…‘열광·성장·망각’의 씁쓸한 도돌이표
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가 있었다. 아니 잠깐. 그레타 툰베리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2019년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로 시대를 대변하는 환경운동가가 됐다. 독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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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소녀’ 그레타 툰베리
성장하자 미디어 관심 썰물
‘평화 소녀’ 서맨사 스미스
소련도 미국도 정치적 이용만
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가 있었다. 아니 잠깐. 그레타 툰베리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2019년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로 시대를 대변하는 환경운동가가 됐다. 독자 여러분은 이미 지난 몇년간 그레타 툰베리라는 이름을 지겹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등교를 거부했다! 그레타 툰베리가 트럼프를 만나 인상을 썼다! 그레타 툰베리가 환경을 위해 범선을 타고 포르투갈로 갔다! 그레타 툰베리가 노벨평화상 유력한 후보다! 그리고 그레타 툰베리는! 그레타 툰베리는! 사라졌다. 그에 대한 마지막 기사는 반년 전이다. 네덜란드 정부 화석연료 보조금 지급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던 중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다.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빠르게 잊히는 인물들이 있다. 21세기는 그런 인물로 넘친다. 그레타 툰베리는 그럴 인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순간 그레타 툰베리라는 인물은 해외 주요 뉴스에서 슬금슬금 사라지기 시작했다. 거의 매달 그의 작은 행보까지 따라가던 미디어들은 갑자기 모든 관심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에서 기후 시위를 벌이던 중 팔레스타인 지지 선언을 했다. “우리는 환경운동가로서 억압받는 이들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국제적인 연대 없이는 기후 정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휴전하세요.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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툰베리에 대한 지지를 슬그머니 철회하는 이유가 그것뿐일까? 내가 보기에 갑작스러운 서구 정부와 환경단체들의 거리두기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그레타 툰베리는 이용하기 쉬운 아이콘이었다. 10대 소녀가 순결한 얼굴로 “감히 당신들이 내 꿈을 앗아가다니!”라고 외치는 장면은 대중적인 효과가 압도적이었다. 소녀의 순진하지만 솔직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라! 문제가 있다. 그레타 툰베리는 더는 소녀가 아니다. 21살 성인이다. ‘아이다움’은 사라졌다. 더는 ‘기후 정의를 위해 거대 정부에 맞서는 어린 소녀’라는 이미지를 활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예상하건대, 서구 환경단체들은 더는 그레타 툰베리를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얼굴로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내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다.
그레타 툰베리 이전에 세상을 바꾸려 했던 소녀가 또 있었다. 서맨사 스미스다. 1972년생인 이 미국 소녀는 1980년대 초 냉전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이 열광하는 아이콘이 된 이유는 편지 한장 덕분이다. 그는 1982년 11월 겨우 10살 나이에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서맨사 스미스입니다. 10살입니다. 취임을 축하드려요. 소련과 미국 사이에 핵전쟁이 날까 걱정입니다. 서기장님은 전쟁을 할 생각이신가요? 아니라면 전쟁을 막으실 생각인가요? 굳이 답하지 않으셔도 좋지만 답을 보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소련은 왜 미국을 정복하려 하나요? 하느님은 서로 돌보라고 세상을 만드셨잖아요. 서로 싸우거나 누구 하나가 세상을 정복하라고 만든 게 아니잖아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모두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답장 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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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맨사 스미스는 스타가 됐다. 셀레브리티가 됐다. 아이콘이 됐다. 소련이 그를 이용한 것처럼 미국도 그를 이용했다. 디즈니는 그를 ‘라임 스트리트’라는 티브이 시리즈 주연으로 기용했다.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5개월 뒤, 미국은 서맨사 스미스에게 ‘꼬마 친선대사’라는 직책을 주어 일본에 보냈다. 그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를 만나 “미국 소녀가 방문하는 나라에 미국은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연설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같은 일은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미국 정치인들도 서맨사를 만나 사진 한장이라도 남기려고 줄을 섰다.
그래서 서맨사 스미스라는 소녀 덕에 냉전이 녹아내렸는가? 그런 일은 당연히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상태였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사회주의 동구권 보이콧으로 반쪽짜리 축제가 됐다. 핵전쟁에 대한 공포는 세상을 여전히 지배했다. 1991년 소련이 갑작스레 붕괴하기 전까지 지구는 인류 역사상 핵 종말에 가장 가까운 상태까지 치달았다. 그나마 미국의 소녀에게 편지를 직접 보낼 만큼 개혁파로 알려졌던 안드로포프 서기장은 서맨사가 미국으로 돌아간 지 7개월 만에 병으로 급사했다. 서맨사 역시 불행히도 1985년 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겨우 13살이었다.
아니다. 나는 서맨사 스미스의 업적을 과소평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소녀의 편지는 어쨌거나 냉전의 공포를 겪던 당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소련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과 사람이 마주한다면 핵전쟁의 위기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말이다. 물론 희망과 현실은 다르다. 많은 사람은 서맨사 스미스가 소련·미국 양쪽의 프로파간다에 순진하게 이용당한 뒤 잠깐의 유명함을 얻었다 요절한 소녀로 기억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가 바꾼 것은 없었다. 정치적 어른들은 어떻게든 그를 이용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을 따름이다. 서맨사 스미스의 소녀적 순진함은 이용하기 쉬웠다. 이유는 하나다. 어린 소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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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마지막 질문은 이거다. 세상은 언제나 소녀들을 이용한다. 소년이 아니다. 소녀는 소년보다 이용하기 용이하다. 덜 공격적이고 더 순결하며 더 무해하다는, 오래된 젠더 감수성에서 발현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맨사 스미스가 그랬고 그레타 툰베리가 그렇다. 사람들은 그들이 순진한 소녀의 얼굴로 어른들을 향해 ‘지구를 살리자’라고 말하는 걸 열정적으로 소비한다.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 참가자들로 하여금 “저의 소원은 지구 평화입니다”라는 말을 하게 만든 다음, 박수를 치며 보석이 박힌 왕관을 씌워주는 행위처럼 말이다. 거기서 끝이다. 서맨사 스미스가 요절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효용은 금방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구체적인 정치적 의견을 가진 성인이 되는 순간, 어른들은 그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똑똑한 자기 의견을 가진 성인 여성은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레타 툰베리는 더는 소녀가 아니다. 확고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어른 여성이다. 어른들로 가득한 정치적 단체들은 그레타 툰베리를 점점 더 불편한 존재로 여길 것이다. 아이콘적 지위는 점점 지워질 것이다. 물론이다. 나는 내 예감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레타 툰베리가 계속해서 말하기를 바란다. 기후 정의를 위한 더 많은 일들을 해내기를 바란다. 소녀는 죽었다. 아니다. 소녀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고 어른이 됐다. 세상은 어른이 된 소녀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