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학교 수학선생님입니다.
재작년이었던가요, 사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워낙 굉장한 일이라 사진을 찍어놓았는데 어제 휴대폰을 바꾸려고 갤러리 정리하는 와중에 나온 사진을 한번 올려볼까해요.
근무하는 학교가 여중이었습니다. 바로 옆엔 여고가 있었구요.
전 몰랐는데 제가 담임을 맡은 반에 유명한 커플이 있더군요. 물론 여중이니까 여자여자커플, 즉 레즈죠.
전교생이 다 안다는 동성애 레즈 커플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교장선생님 귀까지 들어갔나봅니다.
(근데 전 왜 맨 마지막에 안건지.. 우리반인데)
암튼 그래서 교장선생님이 이 설문지를 돌리랍니다. 지금 저희반에서 이런 흉흉한 소문이 돌고있다고.
범인들을 잡아 교육을 단단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이 가십이 학교 밖까지 나가면 안된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전 저희반인데 그런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설문지를 가지고 종례를 하려 반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설문지를 가지고 반으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이걸 줘야하는가, 아이들이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하며 한참을 생각하다 결국 제 일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시끌시끌하던 반이 설문지 내용을 읽자마자 고요해졌고 눈을 힐끗이기 바빠보였습니다. 아마 그 커플들을 보는거겠죠
그렇게 5분이란 시간을 주고 설문지를 걷은 뒤 교장실로 가기 전 먼저 교무실에서 검토를 했습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보니 누구는 비밀을 지켜주고싶을 것이고 다른 누구는 친하지 않기때문에 공공연한 사실을 숨길필요 없다고 생각을 했나봅니다
거의 절반가량은 그 학생 2명의 이름을 써냈고 다른 절반은 모른다고 설문지에 응했습니다.
근데 그 설문지 사이에서 흥미로운 걸 발견했습니다.
이 아이는 우리반 실장입니다. 평소 공부만 해서 그런지 좀 까칠한 성격에 살짝 이기주의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5분이란 시간속에서 언제 질문들을 화이트로 긋고 저 대단한 내용들을 쓴지 모르겠으나 이걸 한참보고 갑자기 제 자신도 부끄러워지더라구요.
안보이시는 분들께 내용 추립니다.
4. 동성애 학생에 대하여 학교에서 취할 조치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없다. 동성애는 학교가 전혀 관여할 수 없는 그 학생의 개인적 성향이다.
이것을 처벌한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이 설문지조차 터무니없다.
내성적인 아이가 남들보다 대인관계를 맺는 데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깔끔한 사람이 남들보다 청소빈도가 높은 것처럼 그저 본인의 특정한 성향인거다.
학교의 건전한 생활풍토를 마련하기 이전에, 학생들의 배움터인 이 곳의 정신적 수준 향상에 힘쓰는게 어떨는지.
이 곳(학교)은 분명 진보되기를 희망하여 운동장에 새 잔디를 마련하고, 교실에 최첨단 칠판을 설치했다. 또, 백일장에선 차별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내용을 주된 제목으로 분류를 해놓는다.
그러나 지금 당장 쓰레기통에 쳐박아도 될 것 같은 이 설문지는
매우 구시대적 발상이며, 심하게 차별적이다.
정말, 이렇게 모순일 수가 없다.
이게 교장이 프린트해준 원본설문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