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테이스티 로드]의 박수진과 리지는 하루 권장 섭취 칼로리를 가볍게 뛰어넘을 것 같은 요리만 먹으러 다닌다. 하지만 이번 시즌 6회에서 벌칙으로 공개된 박수진의 키는 164cm, 체중은 47kg이었다. 체질량 지수(BMI)는 약 17.5로 당연히 저체중이다. 호리호리한 몸매로 기름진 음식을 복스럽게 먹는 이미지는 브라운관 밖에도 존재한다. 대충 봐도 1,000 칼로리는 훌쩍 넘을 음식 사진과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사진을 SNS에 나란히 올리는 풍경은 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여기에는 보통 이런 내용의 댓글이 달린다. “어쩜, 이렇게 많이 먹는데도 날씬할 수 있지?”
숭의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차윤환 교수는 단칼에 잘라 말한다. “고칼로리 음식 섭취가 일상화된 사람이 낮은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는 소화 흡수나 이동, 대사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입니다.” 혹은 내장지방이 축적돼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이른바 마른 비만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항상 많이 먹는데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장운동이 활발한 것은 말 그대로 다 쓰이고 남은 음식찌꺼기가 보깨지 않고 빠르게 배출된다는 의미일 뿐, 잉여 칼로리가 아무 이유 없이 공중 분해되지는 않는다. 고열량 음식을 마음껏 먹는 마른 여성의 이미지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허구이거나 충족되더라도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가깝다.
[테이스티 로드]의 박수진은 “촬영이 있는 매주 목요일만 올인해서 먹고 다른 날은 하루에 한 끼, 아니면 간단한 간식”만 먹는다. 고칼로리 음식을 하루에 몰아 먹음직스럽게 먹으면서 마른 몸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당연한 선택이고, 자신도 이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미디어는 박수진 같은 여성을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 굳이 몸무게를 공개하고, 매번 볼 때마다 살찌는 음식을 즐기고 있지만 저체중을 유지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온스타일 [제시카&크리스탈]에서 두 사람은 결코 많이 먹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막은 ‘먹방 자매’의 탄생을 요란스럽게 축하한다. 그리고, 이런 미디어의 왜곡된 시선은 한쪽 성에만 집중된다. Y-STAR [식신로드]의 여자 MC는 식탐이 강하지만 그만큼 살이 찌지는 않은 박지윤이다. 게스트의 경우도 여성은 유독 날씬하다는 얘기가 강조되고, 고정 멤버로 합류했던 김신영은 공교롭게도 25kg을 감량한 이후였다. 해외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벌어진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등장인물들은 기름진 스테이크를 마음껏 음미하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고칼로리의 맛있는 음식을 행복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 작품의 미덕이다. 그러나 우람한 덩치를 용납받는 것은 오직 남성 캐릭터들뿐이다. 남자 주인공의 전 부인은 고칼로리 음식을 즐기면서도 8등신 모델의 몸매를 자랑하고, 카메오로 등장하는 여배우는 스칼렛 요한슨이다. 심지어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엑스트라도 가슴과 엉덩이만 풍만할 뿐, 팔다리를 포함한 다른 부위는 가녀리다.
많이 먹지만 날씬할 수 있다는 미디어의 환상은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꾸준한 요가 같은 자기관리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이런 운동들은 먹방 ‘여신’이 성립할 수 있는 일종의 알리바이다. 근육을 늘리면 같은 양의 음식을 먹었을 때 더 많은 칼로리를 소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살이 덜 찐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매일 과식을 해도 마른 몸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저체중으로 가기 위해서는 식이 조절이 필수적이다.”(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 김연아처럼 운동량이 많은 사람도 야식을 먹지 않는다. 많이 먹고 운동도 많이 하면, 그냥 튼튼해질 뿐이다. 부지런히 자신을 가꾸면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은 허구의 신화다. 한편에서는 고칼로리 음식을 맛있게 먹는 여성을 매력적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많이 먹고 살이 찐 것은 운동 부족과 같은 자기관리 부족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음식과 운동의 관계만이 아니다. 밤샘 촬영에도 불구하고 일명 ‘꿀피부’를 자랑한다는 연예인 기사는 대체로 고가의 피부 관리와 전문가 메이크업이라는 중간 과정이 생략된 채 전달된다. 일반인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과 술자리에도 결점 하나 없는 피부를 만드는 것은 매일 2L의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1,000원짜리 마스크팩과 이른 새벽 스스로 바쁘게 해내는 화장으로도 극복이 안 된다. 즐길 것은 다 즐기되 철저한 자기관리로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라. 이것은 불가능한 환상이고, 남는 것은 그런 강박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러지 못했다는 불안함뿐이다. 그리고 그 불안함의 틈을 디톡스 음료를 마시면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 될 수 있다거나, 피곤해도 하얀 피부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비타민 주사 때문이라고 유혹하는 마케팅이 파고든다. 인간의 몸에는 거의 불가능하거나 몸을 망치는 것들을 노력이나 상품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판타지가 만들어지고, 성취되지 못한 책임은 개인에게 귀결된다. 남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이유조차 없었던 죄책감이다. 자기 일 관리하며 살기도 팍팍한 인생인데, 버겁다.
글. 임수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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