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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5일 11시 15분

최승호 기자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2023년에 발생한 미국의 한국 도청 논란을 취재해왔다. 지난해 4월 8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도청 사실을 처음 보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언론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보며 우리 언론에 대해 점점 깊은 회의를 갖게 됐다. 그 정점은 지난 13일 이 사건에 대한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을 때였다.

 

미국 '도청 문건'이 진본이라는 것을 확인한 판결

 

"미 법원 'SNS에 우크라전 기밀유출' 병사에 징역 15년형", 지난 13일 미군 병사에 대한 재판 결과에 대해 한국 언론이 보도한 가장 표준적인 제목이다. 연합뉴스가 이 제목으로 보도한 이후, 상당수 한국 언론들이 연합뉴스의 보도를 그대로 따라 썼다. 이 제목만 보면 이 사건은 한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군 병사 잭 테셰이라가 유출한 기밀 중에는 한국의 국가안보실장과 외교비서관이 민감한 안보 문제를 논의한 내용을 '도청해 얻은 정보'라고 표시한 문건들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테셰이라가 유출한 문건 상당수가 위조되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미 법원의 이번 재판 결과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재판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주장처럼 테셰이라가 문서를 위조했다는 증거가 드러났는지, 혹은 해당 문건들이 진짜 기밀 문건인지가 미국이 한국을 도청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은 테셰이라에게 '중요한 국가기밀을 불법적으로 소유하고 유출했다'는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했으며, 위조 혐의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이 한국을 도청했다는 기밀 문건이 진짜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한국을 실제로 도청했다는 뜻이다.

 

한국과의 연관성을 설명하지 않은 언론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대부분 이 뉴스를 보도하지 않았고, 보도한 경우에도 한국과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테셰이라의 재판 결과를 보도한 한국 언론은 11곳이었는데, 그중 6곳은 한국과의 연관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KBS, SBS, MBN, 한경TV, 문화일보가 여기에 속한다. 나머지 4곳은 테셰이라가 유출한 문건 중에 '한국 도청 문서가 포함됐다'고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쳤다. MBC만이 "정부는 조작된 문건이라고 했는데 미국 법원에서는 기밀유출이 맞다고 했다"고 판결의 의미를 전했다. 한겨레, 경향 등 진보 언론을 포함해 조선, 중앙, 동아, JTBC, TV조선 등 메이저 언론들은 이 뉴스를 외면했다.

 

이 사건은 2023년 4월 9일 뉴욕타임스가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을 도청했다"고 보도한 후 국내 언론들에 의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보도들을 살펴보며 내가 놀란 것은 기밀 문건 중 '한국을 도청해 얻은 정보'라고 명시된 문서들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거나, 아예 문건을 보여주지 않는 보도가 많았다는 점이다. 문건 제목만 보여준 뒤 나머지는 모두 모자이크하는 보도도 많았다. 문건에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시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언론은 답답할 정도로 사실을 가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 언론보다 더 미국의 기밀을 지키려는 모습이었거나, 혹은 문건을 보도했을 때 받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우려한 모습이었다고 할까?

 

한 가지 예외는 MBC가 한국의 탄약 창고에서 155mm 포탄을 싣고 진해항으로 가는 트럭을 추적하여 보도한 것이다. MBC는 포탄 운송 일정이 유출된 기밀 문건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고 보도했다. 뒤이어 뉴스타파는 두 달 동안의 추적 끝에 이 포탄이 독일 노르덴함 항에 도착한 것을 보도했다. 기밀 문건에 적힌 내용 그대로였다. 그러나 다른 언론들은 이 이슈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질문해야 할 때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

 

도청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것은 지난해 4월 26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NBC-TV가 윤석열 대통령을 인터뷰했을 때였다. 당시 레스터 홀트 앵커는 "친구가 친구를 도청하느냐?"고 직접적으로 질문했고, 윤 대통령은 "도청은 국가 간에는 금지된 일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이 정도 발언이 나왔으면 다음 날 한미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들이 도청 문제를 질문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과 윤석열 두 정상 모두에게 직접 질문할 기회를 얻고도 한국 기자들은 이 문제를 질문하지 않았다. 기자회견 말미에 미국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이 도청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했느냐?"고 질문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왜 한국 기자들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할 때 질문을 하지 못하는가?' 하는 오래된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한국 언론이 도청 논란의 본질을 확인할 절호의 기회는 지난해 6월 15일, 미국 검찰이 유출 용의자 잭 테셰이라를 기소했을 때였다. 대통령실 말대로라면 "문서의 상당수가 위조되었다"는 점이 공소장에서 확인됐어야 했지만, 미국 검찰은 그를 '국방정보의 유출과 배포' 혐의로만 기소했다. 위조 혐의는 공소장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기소 항목 중에는 한국을 도청해 작성된 문건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는 '도청' 문건이 위조가 아닌 진본임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언론들은 여전히 이 사건을 한국과 무관한 해외 뉴스처럼 다뤘고, 해당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한국 언론은 길을 잃었다. 국민들도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나 미국 법원은 잭 테셰이라에게 15년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들은 이 선고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 "결국 도청이 맞았잖아"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기사를 쓰는 기자들조차 사건의 맥락을 다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언론이 잊어도 될 사안이 아니다. 이 사건은 미국이 한국을 도청한 것이 기밀 문건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 사건이다. 박정희 시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도청 논란은 여러 번 있었지만, 기밀 문건에 한국 고위 공직자들의 발언이 속기록처럼 기록되고 '도청으로 얻은 정보'라는 표기까지 있는 것은 처음이다. 미국 정부가 초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미안한 기색을 보인 것도 명백한 증거를 부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미국 정보기관의 일상적인 도청 대상이라면 한국의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이하 생략)

 

미국의 도청을 '도청'이라 말하지 못하는 한국 언론 | 인스티즈

[현장에서] 미국의 도청을 ‘도청’이라 말하지 못하는 한국 언론

[현장에서] 미국의 도청을 ‘도청’이라 말하지 못하는 한국 언론

newstapa.org



미국의 도청을 '도청'이라 말하지 못하는 한국 언론 | 인스티즈
미국의 도청을 '도청'이라 말하지 못하는 한국 언론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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