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민은 경쟁이나 실패가 없어요. 중간에 멈춰도 걸은 만큼의 길에 꽃이 심어져 있어요. 현실과는 다르게, 못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위로가 돼요.”
7개월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채아무개(34)씨의 요즘 사는 낙은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고 ‘피크민 블룸’(피크민) 게임에 접속해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증강현실과 걷기를 결합한 피크민은 하루 동안 걸은 경로에 모종을 심고, 모종에서 피크민이라는 식물 캐릭터를 키워내는 게임이다. 채씨는 25일 한겨레에 “원래 일과를 마치고 인스타그램 게시물 등을 올렸는데 하루를 보내고 지친 상태에서 소셜미디어까지 신경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리가 아팠다”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마저 피로해졌는데, 피크민은 나를 자극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지친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자극을 추구하는 ‘도파민 사회’에서 무경쟁, 무자극 게임 피크민의 인기가 뜨겁다. 피크민은 2021년 출시됐지만 지난 9월부터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며 이용자 수가 급증했다. 이날 앱 분석업체 ‘모바일인덱스’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 피크민의 월간활성이용자(MAU) 수는 한달간 970% 증가했고 11월 들어 이용자 수는 40만명을 넘어섰다. 눈에 띄는 건 피크민에 열광하는 이유다. “경쟁과 과시에 지쳤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전문가들은 불안과 자극에서 해방된 ‘보통의 하루’를 지향하는 최근 청년 세대의 감정이 배어 있다고 분석했다.
피크민의 게임 방식은 단순하다. 많이 걸으면 걸을수록 다양한 모종에서 새로운 피크민을 얻을 수 있고, 걷는 동안 굳이 게임 화면을 보지 않아도 알아서 꽃이 피어난다. 최지원(25)씨는 “또 다른 걷기형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는 이용자들 간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고, 노력해도 포켓몬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반면 피크민은 그저 걷기만 해도 꽃을 피울 수 있어서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 실패에서 오는 허무함 등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라 인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불안의 완화와 더불어 바깥에 나가 걷는 것 자체를 재발견하는 분위기도 있다. 취업준비생 김상효(24)씨는 “집에서 종일 취업 공부를 하다 보면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게임 때문에라도 날마다 산책하러 나가고 있고, 새로운 피크민을 얻고 싶어 많이 걸은 날에는 1만5천보까지 걷기도 했다”고 했다. 박혜안(17)씨도 “피크민을 처음 시작한 날의 걸음 수가 하루 27보였는데 피크민을 하려고 1만8천보까지 걸었다”며 “밖에 나가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점점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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