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무협영화의 최후의 걸작 중 하나로 불리는 장예모 감독의 영웅
내용은 대충 진나라의 왕 영정, 훗날 진시황이 되는 인물을
암살하기 위한 자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장예모 감독 특유의 화면빨과, 이연걸, 견자단의 합
간지 그자체인 양조위까지, 영웅은 미국에서조차 흥행한 걸작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영웅은 사실 자객열전에 기록된 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대충 중국이 참 보기 좋았던 시대인 전국시대
진나라는 소양왕의 치세를 걸쳐 사실상 통일 수순을 밟게 되었고
진나라 왕 영정 때에 이르면, 위 짤에 보이는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가 멸망당한다
영정은 이제 칼 끝을 남방의 패자인 초나라에게 겨누는데
문제는 북방의 연나라였고, 영정은 동쪽의 제나라와 불가침 조약을 맺고
후방인 연나라를 먼저 정리하고자 했다.
이런 격동의 시대에 연나라 사람 형가가 있었다.
형가는 검술을 좋아했지만,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고
장기를 두다가 게임 같이 하자, 상대의 위협에 도망가기도 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시장에서 개백정인 아무개(이름이 전해지지 않음)과 악공 고점리와
띵가띵가하면서 놀기만 했다.
이 사람의 일화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방약무인이다
그러나 연나라의 대신 중 하나인 전광은
형가를 보고 비루하게 행동하지만 마음은 고결하고, 뜻을 가진 사람임을 꿰뚫어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나라는 초나라를 치기 위해
후방을 정리하고자 연나라를 공격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진나라의 위협이 목전에 오자, 연나라의 태자 단은 전광을 찾아온다.
그는 국가의 멸망을 막기 위해 자객을 파견해 영정을 죽여 판도를 뒤집으려 했다.
이에 전광은 형가를 추천하고, 국가의 기밀을 지키고자
자신의 목을 그어 자결한다.
단을 만난 형가는, 태자에게 암살에 성공하려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리마저 벤다는 명검에 독을 발라 스치기만 해도 죽는 상절
연나라의 곡창지대의 지도인 독항 지방의 지도
명장이지만 영정에게 미움을 받아 연나라로 투항한 번오기 장군의 목
즉 독항 지방의 지도는 그 땅을 진나라에 넘기겠다는 것이었고
번오기 장군의 목은 영정의 방심을
상절은 그의 목숨을 빼았는 도구였다.
지도와 상절이 준비되자, 형가는 번오기 장군의 집으로 가
그에게 대의를 위해 당신의 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번오기는
"놈을 죽이는데 필요하다면 가져가십시오"
하며 스스로 목을 베었다
그 뒤에 형가는 자신과 보조를 맞출 대담한 투사를 구했는데
13살에 길거리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진무양이라는 장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형가는 영정을 죽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역수라는 강을 건넌다.
그리고 이 때 그가 부른 노래는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風蕭蕭兮易水寒
바람 쓸쓸하고 역수 강물은 차구나!
壯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연나라의 태자와 신하들은 모두 흰색 의관을 입고, 그를 송별했다.
형가의 친구 고점리가 연주하는 노래에 맞춰 모두 울면서 노래를 불렀고
형가는 수레에 올라타고 진의 수도 함양을 향해 뒤돌라보지 않고 달린다
진의 수도 함양에 도착한 형가와 진무양은
연나라의 항복사절이라고 말했고, 진왕은 형가 일행의 알현을 허락한다.
형가는 이전의 비루한 행적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당당하게 진왕 앞에 섰고
아무 의심도 받지 않을 정도로 초연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이 온 진 무양이었는데,
진무양은 거사가 코앞이어서 그랬는지, 낮이 새파래지며 바들바들 떨었고 의심을 받게된다.
그러나 형가는 태연히 웃으면서 말했다.
北蕃蠻夷之鄙人,未嘗見天子,故振慴。願大王少假借之,使得畢使於前。
북번 오랑캐 시골뜨기가, 일찍이 천자를 뵈온 적 없으니, 떨며 두려워합니다.
대왕께서는 작은 잘못을 용서하시어, 어전에서 사자의 임무를 마치게 하소서.
그러나 영정은 역시 천하의 영웅 다웠다.
뭔가 이상하게 여긴 진왕 영정은 부사는 놔두고 형가에게 혼자 올라와서
진상물을 보이라고 했다.
형가는 가져온 독항의 지도를 펼친다.
그리고 그 지도 안에는 숨겨둔 비수 상절이 있었다.
형가는 일거에 그 검을 잡고 영정에게 휘둘렀는데
진왕이 재빠르게 일어나는 바람에 진왕의 옷소매만을 스쳤다.
이에 형가는 옷소매를 잡고 찌르기 위해 영정의 옷소매를 잡았지만
추운 기후의 연나라가 두꺼운 의복을 입는 것과 달리
진나라는 얇은 의복을 입었고, 이에 영정의 소매가 찣어지게 된다.
아마 형가는 이 이상 부터는 계산하지 못한 것 같다.
무협영화였으면 둘이 화려하게 싸웠겠지만, 이건 역사다
영정은 기둥 사이로 도망갔지만, 형가 역시 칼을 들고 영정을 쫓았다.
그야말로 기둥 사이에서 술래잡기가 펼쳐진것이다.
문제는 당시 진나라 국법에 따르면 대전에서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이는 국왕 뿐이었다.
근데 너무 상황이 급박해서 진왕 영정은 군사를 부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진왕이 가졌던 장검은 길이가 길었고, 또 영정이 마음이 급해서
자루에서 빠지질 않았다.
근데 사실은 장검은 안전상의 이유로 잘 빠지지 않게 만들었고
이런 기본 상식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나라의 충신들은 맨몸으로 형가에게 달려들었고
어의인 하무저는 약가방을 던져 형가를 방해한다.
그래도 형가가 진왕을 추격하자, 신하들은 외쳤다.
左右乃曰:「王負劍!」
좌우에서 외쳤다, 대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고 뽑으십시오!
신하의 말을 듣고 영정은 칼을 뽑을 수 있었다.
영정은 그 칼로 형가를 내려쳐 치명상을 입힌다.
그러나 형가는 쓰러진채로 남은 힘을 쥐어짜 비수를 던진다.
그러나 영정은 이를 피했고, 비수는 기둥에 꽂힌다.
영정은 형가를 여덟번 내리쳤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형가는 죽어가면서 영정에게 말한다.
事所以不成者,以欲生劫之,必得約契以報太子也。
일이 실패한 것은 너(진왕)를 사로잡아 약속을 받아내어 태자에게 보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는 진왕 영정을 붙잡아 협박해서 연나라와의 불가침 조약이나
빼앗긴 땅을 돌려받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영정은 이 말을 듣고 칼을 내리치는 것을 멈춘다.
그 순간 근위병들이 달려왔고, 형가는 그렇게 죽었다.
영정은 의기로운 형가는 높게 샀지만, 자신을 죽이려 한 연나라에 분노했다.
그는 왕전, 왕분, 이신에게 연나라 침공을 명했고
연나라의 왕 연희는 수도 계성이 함락당하자
영정 암살을 주도한 아들이자 태자인 단의 목을 잘라 보냈지만
진나라 군은 계속 공격했고, 연왕은 요동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려다가
수천기의 기마대를 이끌고 추격해 온 이신에게 잡혀 포로가 된다.
참고로 이 때 압록강 서쪽의 고조선이 진나라에게 칭신한다.
연나라가 멸망당한 뒤, 형가의 친구이자 악공인 고점리는, 잠적했지만
뛰어난 연주솜씨 때문에 발각되었고
연주 소리를 들은 영정은 그의 눈을 멀게하고 곁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그러나 고점리는 영정과 가까워지자 축에 납을 넣어
연주하는 도중에 영정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축을 날리나, 어깨죽지를 스쳤을 뿐이었다.
형가와 고점리에게 연달아 죽을 뻔 한 영정은
다시는 멸망당한 6국 사람들을 자신에게 들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했듯, 영정은 전국을 통일하고 진시황이 된다.
그러나 진시황의 치세 동안 이정도로 그의 목숨을 위협했던 것은
형가와 고점리 밖에 없었다.
몇 십년 후 이 사건을 들은 한나라 출신 사람인 장량과
창해는 영정, 즉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한 계략을 세운다.
진시황이 탄 수레를 창해가 거대한 추를 던져 박살내버린다는 것이었는데
결국 이는 실패한다.
그러나 이런 일화가 전해지듯, 형가의 암살시도는
곧 멸망 당한 6국 백성들의 진의 타도로 이어졌고
결국 암살을 시도한 장량은 유방과 손을 잡고 진나라를 멸망 시켜 버린다.
막 살던 망국 직전의 협객이 중국을 통일하는 진시황의 목숨을
가장 아슬아슬하게 노렸다는 이 실화는
중국 역사 대대로 칭송되었고, 일명 협객으로 불리게 되며
많은 호걸들이 그의 모습을 따라하고자 하였다.
또한 나라가 어려울 때 마다 형가의 일화를 내세우며
많은 민초들이 억압적인 권력에 맞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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