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글을 쓰는 이유
[단독]비상계엄날 출입 통제한 한예종…"문체부가 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정국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비상계엄 당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출입을 통제하고 학생들에게 귀가 조치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한예종 측은 문화체육관
n.news.naver.com
12월 3일 비상계엄(이라고 쓰고 내란, 친위쿠데타라고 읽음) 당시 한예종 출입통제 관련 기사가 뜸.
다른 국립대들과 달리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통제가 이루어졌다고 함.
문체부 지시 여부에 대한 입장차, 유인촌 등
자세한 내용은 기사 원문 확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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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안기부 건물 사진
그리고 한예종 입주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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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 등의 '국가폭력'을 경험한 분들의 기억을 탁본으로 남기기 위해 한예종 건물을 방문한 내용을 기록한 기사:
한예종 학생들은 알까, 여기서 사람 고문했다는 걸
기록에는 사진과 글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에 더해 사람의 기억을 '탁본'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 등의 '국가폭력'을 경험한 분들의 기억 말입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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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발췌
중정은 조선의 20대 왕 경종과 왕비 선의왕후의 능인 의릉에 연못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는 등 역사의 공간을 권력기관의 전유 공간으로 바꿨다. 이후 전두환의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 뒤 중정은 안기부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5년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새 청사를 지어 옮긴 뒤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했다.
중정 이문동 청사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미술원으로 바뀌었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에 의해 훼손된 능이 본래의 모습을 찾은 것도 그 이후였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예종 건물 중 중정 시절 지어졌던 건물은 몇 채 남지 않았다. 그 모습도 과거의 것과 많이 달라졌다. 내부 시설 역시 많이 바뀐 듯했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건물을 둘러보던 이사영은 중정 시절 본청으로 쓰인 오래된 건물 앞에 서서 45년 전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사실 바깥 모습은 전혀 몰라. 집에서부터 천을 뒤집어 쓰고 왔고, 와서도 밖을 못 보게 했으니까. 건물 안쪽만 봤지, 밖은 못 봤어. 그러니까 이문동 중정으로 끌려간 걸 알아도 정확히 내가 어디서 고문을 받은 건지 모르겠더라고. 여기서 한참 고문 받고 남산으로 갈 때도 아무것도 못 보고 갔네."
건물 내부는 여느 대학 건물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건물 안쪽이 뚫려 있고 내부에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그와 같은 건물이 유사시 폭격을 맞을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함께 있던 김순자는 "다른 의도로 쓰인다니 좋긴 한데, 그 현장 모습이 없어져서 아쉽네"라며 과거의 아픔과 기억은 그대로인데 공간은 사라져버린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적어도 이 공간을 쓰는 학생들이 그 사실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
… 특히 이사영은 수십일간 이 공간에 갇혀 고문을 받다가, 혹은 화장실을 가다가, 취조 중 치료를 받다가, 그 어떤 이유로든 1974년에 짚었을지 모를 벽에 다시 손을 대어본다.▲ 여기였을까. ⓒ 지금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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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일부의 글을 찾아봄. 정말 일부일 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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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범과 동조한 공범들은
어디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까?
https://naver.me/5D8s2Jgq
[단독]비상계엄날 출입 통제한 한예종…"문체부가 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정국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비상계엄 당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출입을 통제하고 학생들에게 귀가 조치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한예종 측은 문화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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