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사회의 급격한 변동에 영향을 받아 일어나는 ‘아노미적’ 자살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자살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인한 아노미적 자살의 급격한 증가가 한국을 자살률 1위의 나라로 끌어올린 것.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집단에 대한 개인의 융화나 적응이 일시에 갑자기 차단되거나 붕괴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갑작스러운 경제적 파산,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의 붕괴 등이 원인이다.
이런 사실은 본보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자살한 8만4048명의 직업과 나이, 교육 정도 등에 관한 자료를 통계청에서 받아 분석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자살률 증가는 우리 사회 어딘가에 치유되지 않은 중증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신호”라며 “정부는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살을 남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이 던지는 비명으로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동두천시 인구와 맞먹는 10년간의 자살자
10년간의 자살자에 대한 통계분석 결과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가 급등하는 두 번의 폭증기가 있었다.
‘1차 폭증기’는 1998년으로 전년도의 6022명보다 42.3%(2547명)나 급증했다. 1차 폭증기 이후 3년간 하향 곡선을 그리며 7000명 미만까지 떨어졌던 자살자는 2002년과 2003년 2년에 걸쳐 ‘2차 증폭기’를 맞았다. 첫해인 2002년에 전년 대비 24.5%(1698명)가 늘어난 데 이어 2003년에는 증가율이 더 높아져 2002년보다 26.7%(2301명)나 늘어났다.
2년에 걸친 폭증기는 2003년 자살자를 1만932명으로 늘리며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서게 하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24명으로 껑충 뛰게 했다.
이후 2004년과 2005년에도 전체 자살자는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해 하루 평균 자살자는 33명까지 치솟았다.
결국 지난 10년간 경기 동두천시(8만4601명)나 전남 고흥군(8만4023명)의 인구와 맞먹는 사람이 목숨을 버렸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사회학 박사) 교수는 “1998년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여파가, 2002년과 2003년은 경기 침체와 양극화라는 사회적 변동이 자살에 영향을 미쳐 전형적인 아노미적 자살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997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14.1명에 그치며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다 6년 만에 세계 최고의 ‘자살공화국’이 된 데에는 이처럼 두 차례의 큰 사회구조 변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대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며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던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아노미적 자살이 줄어들며 자살률이 1998년 이전 수준에 근접한 6000명대로 떨어졌다.
○ 사회적 약자들의 자살 급증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가 사회 구조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은 자살을 많이 하는 그룹의 변화에서도 나타났다.
1996년에는 30대, 농업·임업 및 어업 숙련 종사자가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1, 2차 폭증기를 거치며 60대 이상 노인, 40대, 자영업자들로 바뀌었다.
https://www.donga.com/news/amp/all/20070215/84077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