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어요 l 열기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헤에에이~ll조회 8153l 9




2009년 5월 서울예대 학보에 실린 신수진(요조)의 칼럼.


빛나는 오늘의 발견
빛나는 오늘의 나


하루는 내 동생과 한 이불속에서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당시 그녀는 고3 이었고 나는 스물일곱. 8살 터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나이차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수학 성적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수현이는 고3이 되었지만 한달인가 지나서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 속을 엄청 썩이고 결국 사진기를 손에 쥔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중앙대에 가고 싶어, 언니. 근데 사진과는 서울캠퍼스가 아니고 지방에 있어서 집에서 통학하기 쉽지 않을텐데 어쩌지?' '그럼 나랑 둘이 따로 나와서 살자. 언니가 얼른 앨범내고 돈 벌고 차 뽑아서 데려다줄게.' '내가 언니랑 따로 산다고 하면 엄마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걱정마, 너 사진 공부 하는 것도 내가 우겨서 허락받은건데... 어디쯤에 집을 구하면 니가 학교 다니기에도 내가 홍대 가기에도 편할까?'

다음날 동생은 청량리역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난 만원인가를 쥐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는 청량리역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계란 흰자를 좋아하고 그녀는 계란 노른자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나는 닭가슴살을, 그녀는 닭다리를 좋아해서 치킨을 한마리 시켜도 사이좋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엄마가 밥먹으래'라는 한마디가 하루 중 우리의 유일한 대화일 때도 많았고 내 옷을 말없이 가져가는 것에 미칠듯이 분노하며 엄마가 내 동생을 혼내는 날엔 나 역시 엄마편을 주로 들곤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내 동생 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사진을 찍던 동생은 이유없이 포크레인에 깔려 즉사했다. 병원에는 경찰도 오고, 포크레인 회사 사람, 철도청 사람, 방송국, 신문 기자들이 왔다. 3일이면 충분한 장례식장에 11일을 머물렀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거야. 밤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대에 갈 수 없고, 사당 근처에서 같이 살 수도 없고 내가 돈을 벌고 차를 뽑아도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밥을 지어야 했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나는 바로 제주도에서 공연이 생겨 웃는 얼굴로 를 불러야 했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계속 '내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내일은 뭐해?' 하고 물어오면 '내일? 내가 어떻게 알아.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고 이야기했다.

동생을 잃고 나서 얼마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쪼글쪼글 할매가 되어서야 맞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언제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도 않았고, 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그냥 다 써버렸고, 살찔까봐 조심스러워했던 식성도 과격해졌다. 술도 퍼마시고 담배도 피워댔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라는 것을. 동생뿐이었던 내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홀랑 데려가버렸던 신의 의도를. 죽기전에 우리가 보낸 새벽을. 그녀의 죽음을.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거라는 엄마의 절규를.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야했고 그걸로 내 삶이 변화해야 했다. 깨닫지 않고서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알아 내었다. 그 교훈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시시한 진실. 그것은 바로 '빛나는 오늘의 발견'이고 '빛나는 오늘의 나' 였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동생을 잃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오늘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여러분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바라고, 너무 입고 싶어 눈에 밟히는 그 옷을 꼭 사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늘 보고 싶지만 일상에 쫓겨 '다음에 보지 뭐' 하고 넘기곤 하는 그 사람을 바로 오늘 꼭 만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100만원을 벌면 80만원을 저금하지 않고 50만원만 저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고 싶은 옷을 참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음으로 미루는 당신의 오늘에 다 써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길 바라고, 당신이 무대위에서 대사를 읊조리고 동선을 고민할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사진이 사람들의 호응을 살지,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당신의 연기를 사람들이 좋게 봐줄지를 고려하기보다 그저 당신이 원해왔던 행위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더 우선했으면 한다.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오늘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오늘 수중에 돈이 없을때면 맛있는 라면을 먹고 돈이 많을 때 내가 좋아하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는게 행복하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고 다음날 눈을 떠 조금 창피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2009년 5월 22일 뮤지션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 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 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어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얼마전 차안에서 그냥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 모레 공연을 위해 오늘 합주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내일같은 건 관심도 없다.



*지금 2024년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글 같아서 다시 가져왔어




 
👏
4개월 전
글 읽는데 그냥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네요....
4개월 전
😢
4개월 전
너무 슬프고 공감되네요
4개월 전
담담한데 참 마음에 와닿네요
4개월 전
🫂
4개월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혹시 지금 한국이 아니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이슈·소식 현재 난리 난 롯데월드 19금 스킨십.JPG🔞330 우우아아05.16 09:19111275 4
이슈·소식 현재 일이 점점 커지는 중인 한국 고딩 몰카사건169 31110..05.16 20:0637694 9
이슈·소식 현재 𝙅𝙊𝙉𝙉𝘼 민망하다는 아이돌 소통앱 금지어.JPG191 우우아아05.16 10:0576755 11
이슈·소식 현재 카페 알바생 오열중인 수박주스 총정리.JPG266 우우아아05.16 11:5462219 15
유머·감동 김문수 신도림역 유세현장99 인어겅듀05.16 13:3353464 5
식사할 때 더러운 말 하는 8살 딸을 때렸어요.jpg14 He 04.17 21:05 9979 0
최근 인생 처음으로 층 많은 레이어드컷 해봤다는 츄191 Pikmi.. 04.17 20:57 75232 29
녹화 전에 이별통보 받고 온 것 같다는 무대 .jpg4 바나나레몬 04.17 20:43 12956 5
사찰에서 자란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날2 류준열 강다니엘 04.17 20:40 2343 1
남녀를 떠나서 은근 수요 많은 이상형 .jpg10 He 04.17 20:39 24635 0
주작하다가 딱걸린 챗지피티1 태래래래 04.17 20:38 807 0
보면 계급통 ㄹㅇ쎄게 오는 인터뷰...2 31109.. 04.17 19:56 2501 0
상대한테 노관심일때 T와 F의 반응 차이1 알케이 04.17 19:40 6698 0
나 차기 대통령 아들인디 너 좀 많이 실수한거 같아! (feat 한동훈 아들 길티)..2 위플래시 04.17 19:38 3788 0
플라잉요가로 죽음 직전 까지 경험하고 온 48세 데프콘.jpg4 lliii.. 04.17 19:32 6946 0
🐘 매년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 구해주러 달려가는 아기 코끼리.gif2 쇼콘!23 04.17 19:19 760 0
"가슴 안 만져봤으면 이거 사라, 촉감 똑같다"…3세 주물럭 장난감 '품절'134 호롤로롤롤 04.17 19:18 114117 1
총알같이 뽀족한 모양의 불릿 부라자를 다시 유행시키려는 미우미우29 두바이마라탕 04.17 19:07 25760 0
오늘의 귀여운 상식 - 아기 코끼리는 자기 코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gif 참고사항 04.17 19:05 466 0
남매가 보면 공감한다는 베란다 가두기.jpg1 언행일치 04.17 19:04 3033 0
아기 코끼리 모음1 베데스다 04.17 18:43 1485 2
처음 본 간식에 행동 프로세스 버그 발생한 고양이1 옹뇸뇸뇸 04.17 18:39 1495 0
알비노 카피바라2 디귿 04.17 18:38 3080 0
[haha ha] 집사한테 냥정색하는 무.gif1 멀리건 04.17 18:35 412 0
기혼벌벌체 나 개잘함1 성우야♡ 04.17 18:18 3200 0
추천 픽션 ✍️
.
by 한도윤
누구나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다. 마음에 감기처럼 찾아오는 무기력일 수도 있고 안 좋은 일들이 겹겹이 쌓여 오는 무기력일 수도 있다. 애초에 인간은 태어나기를 나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스쳐가는 감기 몸살에도, 겹겹이 쌓인 사건들에도 속수무..
thumbnail image
by 넉점반
  “………….”고기 다 익었다.정적 속에 정한이 웃으며 말했다. 따라 웃지도 못한 ##여주는 마저 식사를 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하루가 끝났으며 다음 날 공대 뒷뜰 벤치, 시은과 앉아있는 ##여주는 시은에게 자세한 얘기는 하지도..
by 집보내줘
우리는 서로를 인식한 그 순간부터 자연스레 같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처음은 그저 그런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서로의 존재가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느껴졌고, 그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어느 날부터인가 서로를 잊어가고 있었다.어느 순간,..
by 한도윤
(1) 편에서부터 이어집니다.부동산 가격에 피로감을 느껴 벌러덩 침대에 누워버렸다. 침대에 누워 올려본 핸드폰에는 3년 반을 사귄 애인 슬이의 장문의 카톡이 있었다. 슬이는 고되고 힘든 서울 생활에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
thumbnail image
by 네오시리
포스트 타입 동시 연재"그러니까 이제 찾아오지 마."가슴속까지 시려오는 추위였다. 그것이 옷깃을 뚫고 스며들어오는 겨울바람 때문인지, 정재현의 매정한 태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정재현은 날 싫어한다는 것..
이슈
일상
연예
드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