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호혜성(reciprocity)이란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정신을 뜻합니다.
그건 당연한 소리 아냐?라고 반문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살다 보면 의외로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죠.
내가 호의를 베풀었을 때,
마치 핑퐁 치듯이 (ping-pong = 탁구)
상대방도 내 호의를 받아서 퐁 하고 돌려줘야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 핑을 받기만 하고, 당최 돌려 줄 생각을 안 하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핑을 받자마자 강스매쉬로 냅다 퐁을 갈겨버리기도 합니다.
(ex. 호의를 베풀었더니, 바로 큼지막하게 보답해 오는 유형)
오늘은 이렇게 상호호혜성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겁니다.
바로 HSP죠.
왜 예민한 사람들은 빚지고 사는 걸 싫어하는가?
HSP만큼 온갖 감정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는 감각처리기관이 극도로 발달돼 있어서
그에 따른 여러가지 특징들이 발현되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만한 특성이 바로 "초감정"입니다.
초감정 : 감정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일반인의 몇 배 수준으로 월등함
이른바, "감정 천재"라는 건데,
만약 감정이란 과목으로 수능을 치룬다면, 상위 1%는 아마도 전부 다 HSP들로 채워질 정도일 겁니다.
HSP들은 그 누구보다도 감정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감정을 느끼는 수준 또한 일반인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훨씬 더 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초감정"이란 게 어떤 것이냐면,
HSP들은 어떤 상황이든지,
그냥 자동적으로 주변인들의 감정선이 일목요연하게 파악이 되고, 그들의 감정들을 마치 내 것처럼 생생히 느끼게 됩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더 강렬히 느끼게 되죠.
HSP들은 아마도 구석기 시대 때부터
포식자들로부터의 위협 또는 부족민들 간의 갈등 같은 위험 상황들을 인지하는데 스페셜리스트였을 겁니다.
그들의 강화된 감정 능력은 부족이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헤쳐 나가는데 특별한 도움을 줬을 것이고,
이러한 식으로 초예민성이란 성격이 현대인들까지 대물림되었을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그러한 감정을 더 deep하게 느낄 수 있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테면,
죄책감의 경우,
HSP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더 심하게 자책을 하고, 계속해서 그 잘못을 곱씹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책감도 감정이므로, 초감정 특성으로 인해 남들보다 훨씬 더 강렬히 느끼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식으로 감정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 보면서 각각의 감정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겠죠.
죄책감을 더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죄책감이 주는 불쾌감이 더 크기 때문에 애당초 죄 짓는 일을 꺼려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ex.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 그 죄책감이 계속 날 괴롭힐 것을 알기에,
애당초 사람들에게 싫은 말을 하지 않고 상냥하게 대함)
실제로, 시카고 경영대학원의 한 실험에서는,
"죄책감을 얼마나 잘 느끼는 여부(guilt-proneness)"가 사람들의 신뢰성을 가장 잘 예측해내는 성향 지표라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Cf. Levine, E. E., Bitterly, T. B., Cohen, T. R., & Schweitzer, M. E. (2018).
Who is trustworthy? Predicting trustworthy intentions and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5(3), 468-494.)
죄책감을 더 잘 느끼는 사람일 수록,
자신으로 인해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내가 느낄 죄책감이란 고통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고,
그 결과,
그러한 행동들을 안 하게 된다는 거죠.
HSP들은 내 잘못에 대한 고통(죄책감)을 더 심하게 느낀다. 심한 경우에는, 내가 도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방조 및 관망)에서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이러한 불편감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HSP들은 최대한 양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도덕적이기 때문에 양심적이라기보다는, 양심적이지 않으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양심적인 것이다. (자기방어적 양심)
HSP가 같이 지내기 좋은 사람인 이유는,
이러한 guilt-proneness로 인해 상당히 양심적이며, 또한 투철한 상호호혜정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받은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보답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호의를 받았으면,
그 감사함을 되갚지 못했을 때 느껴지는 빚진 마음이 굉장히 큰 불편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HSP들은 한시라도 빨리 보답을 하고 싶어 하며,
심지어는 이러한 빚진 마음과 보답에 대한 부담감이 불편해서
아예 호의 받는 일 자체를 꺼려하는 경향성까지 보이게 되죠.
(ex. 선물을 받게 되면, 기쁜 마음에 앞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 부담감부터 느껴짐)
당연히 부탁을 잘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나는 잘 못하지만, 다른 사람의 부탁은 또 굉장히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
이런 특징 역시, 바로 guilt-proneness에서 기인하는 것이죠.
내가 부탁을 하면 귀찮겠지?
(죄책감 발동)
내가 부탁을 거절하면 곤란해지겠지?
(죄책감 발동)
HSP들의 책임감이 투철한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책임지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HSP들은 굉장히 투철한 책임감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던가.
남의 감정 잘 헤아릴 줄 알고,
죄 짓는 일에 질색팔색하며,
양심적이고 책임감도 투철한
HSP 너란 사람
남들보다 심적인 고통을 몇 배는 더 받기에 아프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깨지기 쉬운 당신"
매우 예민하다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게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까지 전부 다 민감하다는 것을 뜻하므로,
예민하다라는 말이 지닌 부정적 뉘앙스와는 다르게 사실은 이들이 굉장한 "팀플레이어"임을
세상이 더 많이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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