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여의도 국회본청에서 열린 '저출생 현상, 2030 청년에게 듣는다' 토론회가 열렸다. ⓒ김세원 기자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 꼴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정부가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2030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저출생 현상, 2030 청년에게 듣는다' 토론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정부의 저출생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경제적인 어려움, 암울한 사회 분위기, 수도권 중심주의 등을 저출생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먼저 이날 토론회에서는 청년들이 결혼을 더 이상 필수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간 한국 사회는 이성애자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만이 정상가족이라는 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는 인식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 일부 여성들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취급하는 사회적 풍조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숭실대학교 금융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정택현씨는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성격과 가치관의 변화를 들 수 있다"며 "과거와 달리 결혼을 필수적인 삶의 목표로 보지 않고,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조연지씨는 "최근 친구가 '아이를 낳는 것은 애국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왜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인가', '애국을 빙자한 출산 강요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말을 했다"며 "또 친구가 자신이 비혼주의자라고 하면 어른들은 '대한민국이 망해간다'고 나무란다며 출산은 선택이지 의무가 아닌데 출산을 위한 기계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그러면서 "출산을 의무라 칭하며 여성 본인 신체에 대한 선택의 권리가 무시되는 사회적 풍조가 임신 출산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몇몇 청년들은 암울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청년 자살율, 노인 빈곤율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원창희 강동구의원은 청년들이 출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며 "2030 하위직 공무원과 이야기를 하면 공무원연금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없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2030의 솔직한 심경은 '지금 내 삶이 망했는데 왜 나라를 위해서 애를 낳으라는 것인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그러면서 "기성세대가 우리나라를 위해 애쓴 것은 맞지만 2030의 시선에서 냉정하게 (한국 사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태어난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데 태어날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저출생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수도권 중심주의를 선제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설 소셜벤처 스토우볼 대표는 "저는 남북갈등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남북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뜻한다"며 "비수도권 청년으로 수도권을 오가며 서울이 좋다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가지 못한 청년들은 학습된 무기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지방에 남은 청년의 99%는 중소기업을 다니거나 소상공인이 된다"며 "나라 구조를 봤을 때, 은퇴나 연금 측면에서 (노후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니, 지방의 청년들은 중소기업을 다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이 밖에도 이날 발제를 맡은 박진경 일과여가문화연구원 사무총장은 저출생의 해법 중 하나로 젠더폭력, 재생산권 등을 다루는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총장은 "성차별적인 성인식으로 젠더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며 "젠더폭력이 심하면 심할수록 당연히 인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세원 기자 saewkim@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