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 홍보 행사를 취재 중인 연예 기자들. 한겨레 박승화
[나들의 초상] 인터넷 연예매체들이 사는 법
“우와, 이렇게 큰 기자회견장과 열띤 취재진은 처음 봅니다.”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 영화 <잭 리처> 홍보차 한국을 처음 방문한 영국 여배우 로자먼드 파이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톰 크루즈도 동행한 이날 기자회견장은 수백 명에 이르는 기자들로 북적댔다.
기자회견장에 출동한 사진기자만 130~140명쯤 됐을까. 주최 쪽은 과열 경쟁을 우려해 사진기자 좌석에 1번부터 120번까지 번호표를 붙여놨다. 원래 기자회견은 오전 10시 30분이다. 하지만 촬영하기에 적합한 앞자리 번호표를 받으려면 이른 아침 행사장에 도착해야 한다.
한 연예 매체의 사진기자는 “선착순으로 번호표를 나눠주는 관행이 생기기 전엔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먼저 온 순서대로 줄 서서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은 번호표를 받으면 다른 데서 편히 쉬다 들어가도 된다. “카메라 가방만 세워두고 볼일 보러 간 적도 많았는데….”
오전 10시 40분. 공지된 시각보다 10분쯤 늦게 두 주연배우가 들어섰다.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졌다. 배우들이 촬영 포즈를 취해주고 인사말을 막 마쳤을 때, 그러니까 10분쯤 지나서부터, 사진 찍던 기자들의 자세가 바뀐다. 무릎에 노트북을 얹어놓고 사진 전송을 시작했다. 오전 11시,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는 이미 가자회견 현장 사진을 담은 첫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인기 검색어에 ‘톰 크루즈 내한’이 걸렸다. 순식간에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내용은 엇비슷했다. 같은 매체에서 같은 내용을 제목과 사진만 조금씩 달리 해서 새로운 기사로 올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톰 크루즈가 로자먼드 파이크의 허리에 손을 대고 있는 포즈에 여러 개 기사가 달리는 식이다. ‘헐리웃 매너? 톰 크루즈, 여배우 허리에 과감한 손길’이라는 기사를 올린 한 매체는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매너남 톰 크루즈, 여배우 허리에 다정한 손길’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를 전송하다가도 다른 상황이 벌어지면 다시 카메라를 바로 들어야 해요. 그래서 신입 기자는 못 해요. 감이 있어야 할 수 있거든요. 어리버리하다가 물 먹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좀전에 번호표 얘기를 해준 사진기자의 말이다. 이미 수십 장의 사진을 전송한 그는 “부산영화제같이 큰 행사에선 최소 100장 이상의 사진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오후 3시 30분까지 모니터링해본 결과, 그 시각까지 네이버에 올라온 톰 크루즈 내한 관련 기사는 530개에 달했다. 기자회견은 일찌감치 끝났건만 관련 기사는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과열 경쟁 내몰린 연예 매체들
국내 연예 매체의 ‘열혈 취재’에 놀란 건 로자먼드 파이크만이 아니다. 영화 홍보차 방한한 워쇼스키 남매는 지난 1월 3일 방영된 MBC TV 프로그램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글을 쓰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녹화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주친 기자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남매는 무한 경쟁에 시달리는 연예기자들의 일상을 꼬집는 말도 남겼다. “(기자들이) 절대 우리를 쳐다보지 않더라. 열심히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정작 인터뷰하는 사람은 보지 않다니. 소통의 단절을 느꼈다. 통신망은 최고인 나라인데….”
과거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생산·유통돼온 연예 뉴스가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범람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이다. 2004년 ‘파란닷컴’이 5개 스포츠신문의 콘텐츠를 독점 계약한 게 도화선이 됐다. 네이버와 다음 등 다른 포털 사이트에 연예·스포츠 뉴스를 제공하려는 인터넷 매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스타뉴스> <뉴스엔> <마이데일리> 등이 비교적 일찍 태동한 매체로 꼽힌다.
뉴스 소비가 점차 포털을 통해 이루어지고 인터넷 광고 수익의 비중이 커지면서 경쟁은 본격화됐다. 기존 종이신문 매체들도 닷컴사(신문사의 온라인 뉴스 조직)를 통해 연예 뉴스를 공급받거나 연예 뉴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매체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관련 뉴스를 확보해갔다.
한류 스타 전문 월간지 <톱스타뉴스>의 김명수 대표는 “인터넷 뉴스에서 조회 수가 가장 높은 분야는 스타 관련 내용”이라며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연예 뉴스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연예 매체 기자는 “가십성 기사에 대한 잠재된 욕구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포털을 통해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시장이 커진 것”이라며 “부모·자식 간에 대화 창구를 열기 위해서라도 연예 뉴스를 봐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경제지들은 한층 더 공세적으로 연예 뉴스를 늘려갔다. 딱딱한 경제 뉴스만으로 클릭 수를 높이기 어려운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란 신조어) 신생 인터넷 매체의 상당수도 연예 뉴스를 겨냥해 만들어졌다. 연예 뉴스를 공급하는 매체가 몇 개나 되는지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다.
다만, 대략 추정해볼 수는 있다. 네이버와 뉴스 검색 제휴를 맺고 있는 매체는 모두 190여 곳이다. 이 가운데 연예·스포츠 등 연성 뉴스를 공급하지 않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 연예 기획사 홍보 담당자는 “행사가 있을 때 보도자료를 보내는 이메일 주소가 120~130개 된다”고 말했다. 연예 뉴스를 직접 취재하는 매체 수로 짐작해볼 수 있다.
이른바 진보 매체에도 연예 뉴스는 생존 전략의 일환이 된 지 오래다. 2011년 6월, <민중의 소리>가 네이버 뉴스 검색창에서 퇴출된 일은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겼다. 연예 뉴스 등에서 동일 기사를 반복 전송한 게 퇴출 이유였다. 쉽게 말해 기사 조회 수를 늘리려고 같은 기사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내보냈다는 뜻이다.
당시 <민중의 소리> 쪽은 “종이신문과 달리 구독료가 없고 대기업과 정부 광고를 받지 않기 때문에 종량제 기반의 광고를 무시하기 어려웠다”며 “트래픽에 따라 광고료가 결정되는 이 시장에서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트래픽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연예·스포츠 등 연성 기사 제공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헐리우드 영화 홍보 행사를 취재 중인 연예 기자들. 한겨레 박승화
대중의 욕망은 내 삶의 토대
클릭 수를 높이는 연예 뉴스란 어떤 걸까. 연예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한 프리랜서 사진기자는 “(톰 크루즈 내한 기자회견에선) 건질 만한 장면이 없었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을 자극할 만한 재밌는 사진이 없었다는 뜻이다. 영화 쪽 행사가 대체로 그렇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이후 신문사 두 곳의 온라인뉴스부에서 연예 사진을 전담해왔다.
그가 최근 가장 ‘핫’한 장소로 꼽는 곳은 인천국제공항이다. 입·출국을 하기 위해 공항을 찾는 스타들이 어떤 옷을 입고 왔는지가 관심사다. 스타의 일상을 엿본다는 데 묘미가 있는 것이다. 옷뿐만이 아니다. 가방과 신발, 모자, 액세서리 등도 똑같이 조명받는다. 연예기자들끼리는 ‘공항 패션’ 아이템으로 통한다.
“얼마 전에 아이돌 그룹들이 연타로 인천공항에 오는 바람에 2박3일 동안 공항에 머무는 기자들도 있었어요. 데스크가 사우나에서 자라고 했대요. 안 좋은 일로 출국하는 스타가 있으면 경호원들이 심하게 가로막기 때문에 살벌하죠. 안경 날아가고, 옷 찢어지고, 장비 망가지고. 그래도 데스크들이 좋아하니까….” 일명 ‘대포순이’(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 팬 사이트 등에 올리는 학생)로 불리는 팬들까지 엉키면 공항은 금세 전쟁터로 변하고 만다.
여배우가 끼면 이른바 ‘잘 먹히는’ 기사가 된다. 2011년 서울문화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이다해의 노란색 드레스 사진은 눈요깃거리가 될 만한 기사가 어떤 구조에서 나오는지 잘 보여준다. 당시 레드카펫을 걷는 동안에 그가 입은 드레스 슬랫 사이에 덧댄 흰 천이 어느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 속 흰 천은 정체불명의 물체로 둔갑했고 화장실 휴지를 떠올리게 할 만한 제목을 달고 기사가 됐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한 닷컴사 사진기자는 “데스크가 판단해서 그런 기사는 올리지 말아야 했다”며 “그 기사를 쓴 기자가 아는 후배였는데, 그의 회사에서는 칭찬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뭐라고 해줄 말이 없더라”고 말했다. 이다해는 순식간에 ‘여배우의 휴지 굴욕’으로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가 됐다.
당사자는 조용히 울분을 삭여야 했다. 억울한 심경을 트위터에 토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운동장 한가운데 세워놓고 모든 친구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놀리고 이지매 당하는 심정이다. 차라리 바로 걷어차이고 두드려 맞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연예인의 죽음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들이 빈소 취재를 우르르 가요. 조문 오는 연예인들이 누군지 대중이 궁금해한다는 거죠. 일부 기자들은 자살한 친구의 빈소에 온 연예인한테 소감을 묻기도 하더군요. 나는 4년차 이후에는 발인만 취재하는 걸로 나름의 원칙을 세웠어요. 어느 날 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를 보는데 한 외국인이 “기자들이 어떻게 빈소에 가서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하는데 너무 창피했어요.” 종합 일간지 한 곳에 연예 뉴스를 공급하는 어느 8년차 연예기자의 고백이다.
빈소 취재에 대해선 한국온라인사진기자협회(KOPA) 차원에서 자정 노력에 나서고 있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조성민씨의 빈소에는 이전과는 달리 북적대던 사진기자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1~2명의 사진기자가 대표로 빈소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유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그 와중에도 일부 매체에선 취재기자에게 카메라를 들려 보내는 과욕을 부리기도 했지만 첫 시도로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이다.
제목 낚시, 기사 쪼개기, 동일 기사 반복 전송…
매체 간 경쟁이 심화될수록 연예 기사는 더욱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선정적 제목으로 누리꾼들의 관심을 낚으려거나 꼭지를 한 문장 단위로 쪼개는 기사가 많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기자들에 대한 포상도 그 기준에 맞춰 한다. 일부 매체들은 포털 뉴스의 메인 페이지에 기사가 걸리면 한 건당 5천 원씩 주는 포상 제도를 마련했다. 매달 말일이 되면 실적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한다. 포털 검색창에서 뉴스 검색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취재원들에게서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예컨대 방송사 시상식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검색 안 되는’ 매체에는 취재 불가 통보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취재 현장에서 기자들의 서열은 ‘매체 (네이버) 검색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매겨질 때가 적지 않다.
인터넷 신문은 창간에 따른 진입 장벽이 낮다. 누구든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취재 조직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연예 매체가 많아진 것도 뉴스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취재기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매체도 있더라고요. 사진기자와 편집팀만 두고 운영하는 거죠. 속보 경쟁에 나서느라 데스킹하지 않는 매체가 더 많은 것도 문제고. 데스킹을 통해 내용이 걸러지는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것이죠.” 취재하면서 만난 연예기자들의 공통된 우려였다.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겨냥한 일명 ‘우라까이’(베껴쓰기) 기사에서 자유로운 인터넷 매체들은 많지 않다. 우라까이가 가장 손쉽게 기사 수를 늘릴 수 있는 수단인데다 인터넷 트래픽을 올리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인턴기자를 채용해 6개월간 쓰고 내보내는 일이 관행이 되고 있어요. 별도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쓰는 거나 다름없는 거죠. 연예 매체는 공채 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자를 하고 싶은데 마땅한 통로를 찾지 못한 이들이 지망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이들을 싼 값에 데려다 쓰는 거예요.” 창간한 지 얼마 안 되는 한 신생 매체의 대표는 “연예기자들은 여러 매체를 전전하는 등 이직이 빈번하기 때문에 새로 직원을 뽑는 과정에서 이런 실태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들려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개 3인1조가 되어서 하루 100개 이상씩 ‘검색어 기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상파 TV 방송과 케이블 방송 등 영역을 세분화해 기사를 나눠 맡는다. 밤새 기사 공백을 줄이기 위해 야간 당직근무 체계도 만들었다. 매체별로 많게는 20명 정도가 이 일에 투입된다. 사무실에 앉아서 기사 쓰는 기자들의 비중이 직접 현장 취재 나가는 기자들에 비해 훨씬 많은 기형적 구조인 셈이다.
“근데 더 심각한 게 뭔지 아세요? 이런 환경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기자들이 많을 것 같잖아요?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아요. 많은 기자들이 무감각하게 이 일을 한다는 거예요. 그냥 익숙해지는 거죠. 아마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한 기자들은 이게 과중한 노동인 줄 모르는 경우도 많을 거고요.” 8년차 연예기자의 말이다.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연예기자들. 포털 사이트 내에서 클릭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자들의 노동강도도 극심해져 간다. 한겨레 박승화
유명인과 공인 사이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차별화된 연예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매체가 생겨났다. 지난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포털 사이트를 도배한 가수 비와 배우 김태희의 열애설을 맨 처음 보도한 곳은 <디스패치>다. 이 매체의 기자들은 두 달에 걸친 잠입 취재 끝에 비와 김태희의 데이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국의 대중지와 할리우드의 연예 매체를 동경한다”는 이들은 스스로를 “파파라치식 보도로 ‘팩트’를 추구하는 언론”이라고 소개한다. 연예 뉴스에 ‘탐사보도’ 정신을 접목하겠다는 것이다.
<디스패치> 뉴스부의 임근호 사회·연예팀장은 “하루 100만 클릭이 나오면 한 달에 1억 원씩 광고 수익이 나온다고 하더라”며 “그런 수익 구조에 연연해 낚시 기사를 쓰는 게 우리 보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보도들”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식 뉴스를 지양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강조한다.
<디스패치>는 2011년 3월 <스포츠서울닷컴> 출신 기자들이 창간했다. 이미 카라의 구하라와 비스트의 용준형, 원더걸스 소희와 2AM 임슬옹의 열애설 등을 특종 보도한 바 있다. 취재기자 5명과 사진기자 4명이 일한다. 비와 김태희의 열애설 같은 경우 측근들에게서 정보가 포착되면 취재·사진기자 한 명씩 2인1조를 구성해 움직인다. 인터넷 광고 수익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한 검색어 기사를 쓰지 않는 것이 다른 매체와 차별화된 특징이다. 한류 스타 관련 잡지 발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사업 등으로 별도의 수익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생활 침해 논란을 우려한 탓일까. 열애설을 ‘연예 기사의 꽃’으로 간주하면서도, 이들은 파파라치식 보도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선 톱스타만 취재한다.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스타급은 빼고, 보도가 나가도 타격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톱스타만 취재 대상에 넣는다. 사진은 길거리 등 공공장소에서만 찍고 미성년자 아이돌은 취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들만의 보도 준칙이다. 불륜은 옥소리-박철 커플을 취재한 후유증으로 역시 취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보도가 된 커플의 자녀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다. 김용덕 사진팀장은 “사진 한 장이 잘못된 사실을 전달할 수도 있다.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허그를 일상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술 한잔 걸치면 더 감성적인 상태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적어도 한 달 이상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예인은 공인인가, 유명인인가. 연예인의 사생활 취재는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 해묵은 논란은 파파라치식 보도로 인해 또 한번 점화되는 모양새다. “팬들의 사랑으로 수억 원을 버는 스타들이라면 그들의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도 감수해야 한다. 그들이 찍는 드라마나 영화에만 관심을 두라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연예 매체들이 지나치게 친연예인적 기사만 쏟아내고 있어요. 견제와 비판을 전혀 못 한다는 말이죠.” 임근호 팀장은 “공인의 범주를 포괄적으로 봐야 한다”며 “셀러브리티인 연예인들의 행동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대오 <오마이스타> 편집국장은 “뉴스는 팩트라고 앞세우고 있지만 과연 파파라치식 취재 방식이 옳으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거리가 있다”며 “가뜩이나 사생활이 노출될 소지가 많은 연예인들에 대해 무차별적 보도가 이루어진다면 연예인에 대한 인권 침해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적 관심사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을 때에만 파파라치식 보도가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는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며,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유명인일 뿐이라는 견해가 전제돼 있다.
정치인 혹은 기업인에 대해선 더 엄격하게 공인의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게 <디스패치>의 입장이다. 예컨대 연예인인 경우 불륜 보도를 자제하지만,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적극적으로 보도하겠다는 것이다. <디스패치>는 2011년 4월 결혼 전 양가 상견례에 참석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부부를 몰래 촬영해 보도한 일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정 부회장 쪽에선 사생활 침해라며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사적 대화 등을 엿듣고 데이트 현장 등을 몰래 촬영해 보도한 것은 사생활을 침해한 것으로 정당하지 않다. 다만 결혼에 관한 내용, 이혼 경력, 부인의 본명 등은 이미 알려진 내용으로 정 부회장의 지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일부 내용에 대해서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 끝 간 데 없이 과열된 연예 매체 간 경쟁, 그 속에서 과중 노동과 무의미한 가십성 보도에 지쳐가는 연예기자들. 전문가들은 연예 저널리즘의 바람직한 전형을 만드는 역할을 주류 언론 쪽에 주문한다. 남재일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연예를 포함하는 대중 문화는 현대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매개물인데도 주류 언론에서는 천박한 사안이라며 경시하고 방치한다”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질 낮은 연예 뉴스를 넘어서, 연예 뉴스를 비평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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