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예리 돌아왔어요..."
#김예리, 한국체대 무용과 2학년 전정국과는 고등학교 동창이며 예체능 입시 준비로 가까이 지내다 대학 결과가 발표되던 날 "너가 항상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뭐야~ 항상 너 옆에 있었고 지금도 같이 있잖아 " "아니, 그런거 말고... 너 좋아해 , 많이." "ㅍ..크흡..지금 이거 고백하는거야?" "내가 진짜 잘해줄게 예리야. 우리 여태 지내온 것처럼 항상 웃게해줄게, 내 옆에 있어주라." "ㅎㅎ 그래 ~ 진짜 잘해줘야된다~?!"
"헐. 대박. 이거 꿈 아니지?? 나진짜 김예리랑 오늘부터 1일인거지?!!!!" (정국 시점) 2018. 2月. 이렇게 "우리"가 되었다. 작년, 가장 힘든 입시를 준비하며 같이 울고 웃었던 예리에게 드디어 마음을 고백했다. 사실 처음 예리가 우리 고등학교로 전학을 왔을 때 관심은 없었다. 무용과 여학생들은 특히 더 예민하고 까칠하다는 편견때문이었는데, 예리는 내 편견을 깬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좋은 기회가 있어 학교 대표로 전국 시합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전국시합은 말 그대로 전국에 손꼽히는 몇 명만 겨우 나갈 수 있는 시합이기에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기회였다. 코치님들과 선생님들, 가족들 모두가 응원하고 도와주는 환경 속에서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매일을 아이스링크 위에서 보냈다. 본선 경기를 일주일 앞두고 예선 경기를 치렀다. 500m 단거리 개인전에서 신기록을 갱신하며 기분좋은 출발을 했다. 들뜬 마음을 추스르고 1000m 개인전을 준비하려고 링크에 들어서는 순간 ㄲ끼이익.....! "전정국...!" 순간 누군가와 세게 부딫히면서 몸이 옆으로 쓸려갔다. 링크 밖에 있던 코치님들이 뛰어들어오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괜찮으세요??! " "아... 네." 어쩐지 너무 빨리 달려온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나와 충돌한 사람은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다. 계속해서 미안하다며 걱정하는 선수에게 대충 괜찮다며 얼버무리고 빨리 링크장 밖으로 나갔다. 이 순간의 관심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정국아 ! 너 진짜 괜찮은거야? 어디봐 , 근육 놀란 곳 없어?" 코칭스태프님과 의무감독님이 구급상자를 가지고 따라오셨다. "아, 괜찮아요. 지금은 뭐 멀쩡해요..ㅎ" 경기를 앞둔 시점이라 코치님들이 많이 놀라셨는지 다급하게 나를 만지며 물어보는데 차마 왼쪽 발이 아프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만을 위해 시간과 온갖 노력을 쏟아부으신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이번 경기에서 꼭 좋은 성적을 내야했다. "하.. 일단 곧 있을 경기 준비하고, 예선전이니까 절대 무리하지 마라." "네. 잘할 수 있을거에요. 이거 뭐 접촉사고 정도죠 ㅎ" 그렇게 코치님들에게 씁쓸한 한마디를 남기고 경기장에 다시 들어갔다. 스타트 신호가 울렸다. 그런데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바퀴를 남겨둔 시점에서 왼쪽 발가락 한 부분에 힘이 빠진 것을 느꼈다. 마지막 코너를 돌 때 즈음엔 발을 딛기조차 힘들었고 스피드가 확 줄면서 뒤에 있던 두사람이 나를 지나쳤다. 경기가 끝나자 마자 나는 링크를 나와 짐을 챙겼다. 결과를 두 눈으로 보기가 싫어서, 코치님들을 어떤 눈으로 봐야할지도 모르겠어서 뛰어나왔다. 모두가 기대하던 시합이었는데 지금쯤 학교에선 난리가 났을거다. 핸드폰 화면 속 쏟아지는 알람들을 보면서 혼자 주저앉아 몇시간을 울었다. 다음날 퉁퉁 부은 눈으로 학교에 나갔다. 선생님들, 친구들은 수고했다며 멋진 경기였다며 괜찮다고 위로했지만 이런 위로들이 더 깊은 부담감이 되었고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인사도 못하고 링크 밖으로 뛰어나온 탓에 코치님들께 죄송했는데 감독실에 찾아가자 코치님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 몸을 걱정하셨다. 오후에 외출증을 끊고 학교 근처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내 왼쪽 새끼발가락이 골절되어 5주간의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5주.. 운동 선수들에게는 끔찍하게 길고 힘든 시간이다. '한달 뒤면 다시 스케이트를 신을 수 있겠지', '한달이면 감은 계속 갖고 있을거야.'라고 말하지만 매일 하는 운동 중 하루라도 스케이트를 타지 않으면 기록이 떨어지고 컨디션이 변한다. 게다가 여러 대표팀들의 스카우트 관심을 받고 있던 나로서 5주동안 스케이트를 탈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슬프고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도 나중을 위해서 지금 쉬어야한다는 코치님들의 결정에 따라 나는 지상 훈련과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스케이트를 타지 못한 한주동안은 너무 슬프고 미래가 캄캄해진 것 같은 불안감에 링크장 밖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서 혼자 울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링크장 벤치에 앉아 멍하니 링크장을 보고있었다. 전광판 시간이 11시 38분을 가리켰고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되었냐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저기, 잠깐!" 한 여자애가 급하게 나를 불러세웠다. "안녕... ㅎㅎ" "누..구..?" "아, 난 김예리라고 해. 무용과 2학년!" "아... 뭐 할 말 있어?" 오늘 하루가 엄청 길게 느껴졌고, 이미 충분히 지친 상태여서 내 앞에 누가 있던 별로 반갑지 않았고 여학생이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면 더 싫었다. 위로의 말은 나에게 그저 죄책감과 자책의 무게로 이어졌기 때문. "아직 링크장 닫으려면 시간 좀 남았지? 여기 앉아봐. 내가 뭐 좀 준비해왔어." "응?" 이 아이는 환히 웃는 얼굴로 다짜고짜 나를 다시 앉히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었다.
"여기 아이스팩. 그리고 이건 파스, 뭐가 맞을지 몰라서 일단 방에 있는거 여러개 가져왔는데 자기전에 붙여봐. 그리고 내 룸메이트가 뼈에 좋다고 맨날 먹는 요거트도 몰래 하나 빼왔는데 이거 골절 회복에도 좋댄다~? 이런거 먹는다고 뭐가 변할까 생각되겠지만 속는셈 치고 먹어봐 ㅎㅎ 나 이 학교 오기 전에도 너 알고 있었는데 생중계 보고 깜짝 놀라서 며칠을 찾아다녔네 후우... 나도 운동하는 사람이라 이런 상황 얼마나 힘든지 공감되는데 너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위해 너무 상심하지 말고 얼른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어! 긴말하면 오버한다고 생각할테니까 더이상 오글거리는 말 안할게.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년이니까 오며가며 종종 만나는거다? 이제 나 알지? 김예리. 인사하면 무시하기 없다~? 그럼 갈게!" 혼자 쫑알쫑알 할말을 하더니 긴말을 끝냈는지 앞으로 자기 보면 아는 척 하라면서 급하게 일어나 뛰어나간다. 아마 기숙사 통금이 12시여서겠지. 참.. 신기하면서도 새로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