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내게 무채색으로 새겨졌어요. 주위의 떠들썩한 사람들도, 해를 바라보며 자신의 색을 더욱 알리고 싶다는 듯 파장을 일으키는 바다조차도.
내게 세계란 어둡고, 미지근하며 희미했어요. 해가 거듭될수록 옷의 소매는 점차 길어졌고, 자잘하게 내비치는 붉고 푸른 색의 자국은 늘어갔었죠.
그에 비례하듯 당신이 내게 물어오는 질문 또한 늘어났고, 자연스레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났죠.
매번 되풀이되던 삶에서 당신이라는 반환점이 찍히고 난 이후부터 변화하는 것이 많았어요. 이상하게도 주변을 둘러보면 매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게 이렇게 많은 것들이 굳이 필요한 걸까, 진정으로 필요한 건 당신 하나뿐인데.
내 시선의 처음과 끝에 당신이 머물고, 당신의 시선에는 언제나 내가 머물기를 염원했어요.
나는 삶에 지쳐있었고, 언제나 끝나길 바라왔지만 모순적이게도 무언가를 갈망하며 나의 호수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죠.
난 당신과 같은 사람을 갈망하고 있던 걸 이제서야 알아챘어요. 내 발걸음과 행동은 언제나 느렸고 점차 당신의 숨결이 느려지는 것을 보니 드디어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것 같네요.
내가 갈망하던 것을 찾았으니 이제 그림자를 드리울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럼 이제 나를 위해 눈을 감아줘요. 서로의 마지막에 서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요.
그럼,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