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으로 가는지 모르니 가만히 있어야 했다.
우스운 줄은 알지만, 치를 떨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켄의 뒤를 따라 긴 복도를 걷는데 문득 군대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거다.
'이홍빈, 넌 죽만 끓이니까 그래도 편하겠네.'
'맞아, 근데 존나 못 끓이잖아. 얘.'
'오, 죽에 단백질 덩어리를 넣어야겠네.'
'그게 뭔데.'
'바퀴다 이 개새끼야.'
갑자기 웃음이 났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친구들과 나눈 대화는 한참 동안 여유롭게 내 머릿속을 헤엄쳤다.
돌아가고 싶어.
"구백이십구."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켄의 구두가 멈춰있다.
"... ."
"대답."
"네."
"외계인을 본 적이 없다고?"
"본 적 없습니다."
"음."
인정하기 싫어 부정할수록 잘생겨 보이는 짙은 이목구비를 쓸어내린 이재환이 턱을 잡더니 날 쓱 핥듯이 싹싹 훑어본다.
그 눈빛이 꼭 내 옷을 태워버릴 것 같기도 해서 나는 어금니로 욕지기를 씹었다.
"겁 좀 줬다고 순해졌네, 구백이십구."
"어...?"
"귀엽네."
기분 좋아야 할 칭찬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애들 말이 맞네, 얘 또라이네.
다시 움직이는 켄의 뒤를 따라 발을 옮겼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아무도 모르는 끝으로.
그렇게 똑같은 통로만 걷다 보니 긴장도 좀 풀리고 뭔가 지겹다는 여유까지 생길 만큼 익숙해진 거다.
그 틈새로 뜬금없이 상혁이의 말간 웃음이 고개를 내밀었다.
"상혁이는, 한상혁은."
뒤를 돈다.
"어떻게 했죠?"
온 얼굴이, 세상이 무너질 듯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그걸 왜 말해야 할까?"
"아직 어리니까... 그 애를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풀어주..."
"오, 예쁨 좀 받았나 보네 실험용 쥐."
"그렇게 부르지 마."
그렇게 또 뒤를 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듣지 않을 것만 같다.
"난 어딜 가는 거야."
"존댓말."
"어디에 쓰려고 하는데요?"
"외계인을 실험해야지."
또 다시 뒤를 돌아 씩.
미치광이처럼, 또다시 무너질 듯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외계인을 처음 봤던 건, 10년 전이지."
다시 뒤를 돈 켄이 등을 보이며 웃는다.
들어봐, 내가 어릴 때 그 놈들 손에 모두가 죽어났어.
외부인들은 몰랐겠지, 우리가 지키는 나라 안에서 평온히 지냈을 거니까.
그 중에서 딱 다섯명만 살아남았는데, 내가 그 중 하나였고.
날 지켰던 선배는 죽었어.
웃기지도 않겠지만, 이 이야기는 진짜야.
보통 이런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에서만 접해봤을 거라 믿는다.
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나는 할 수 있는 것에 맞춰 군에서 훈련을 받았다.
밤에 누워 동료들과 하늘을 보면 하늘은 높고, 짙었다.
짙은 밤의 하늘과, 짙은 푸른색의 하늘을 보며 우린 떠들었고, 같이 웃기도 했다.
그 하늘이 얼마 가지 못 했지만.
이재환.
군에 투입된 후로는 '켄'이라고 불리며 내 이름엔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아, 물론 좋은 의미로.
긴 얘기는 하기 싫고, 다른 별에서 지구를 덮쳤다.
하지만 그 땐 재빠른 대처로 사람들 모르게 나라에서 잘 대처했고, 물론 그 때의 난 너무 어리니 숨어서 소식만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는 6개월 전부터.
겉보기엔 사람하고 비슷한, 그래 그게 외계인인데.
급박한 상황이라 사격훈련을 많이 받지 못한 내 손에도 총이 쥐어졌다.
그 놈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게 있다면 그건 영화에서나 보던 알록달록한 피부라든지, 사람과 완전히 다르게 녹아버리고 축 처지거나 주름투성이인 모습이 아닌, 눈.
"무슨 말도 안 되는... ."
"못 봤으면 닥쳐, 그래 같잖고 웃기지. 그들의 눈은 말 그대로 밝아. 색이 밝다고, 그게 무슨 렌즈를 낀 것 같이 생기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
"... 무슨 말이야."
"내가 본 하늘처럼 깊고, 높고... 눈을 오래 마주치면 안 돼."
"왜... 마주치면 안 되는데요?"
"말 그대로 가루 박살 나버리니까."
푸흡.
잠시 막혔던 공기가 청량한 웃음에 깨진다.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는 홍빈을 내려보는 재환의 눈빛은 하늘과도 같았다.
텅 비어버린 높은 하늘.
웃음이 맘대로 멎는다.
"3초. 그뿐이야, 그들의 눈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
켄이 정말 미쳐버린 걸까.
"실험용 쥐는 걱정하지 마, 그래도 죽일 생각은 없어."
"대체 그 실험이라는 게 뭔데요."
"궁금해?"
뒤를 돈 켄이 다시 별을 채운 듯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본다.
"따라와, 궁금하면. 보여줄게."
매캐한 연기를 담은 듯한 목소리가 넓은 복도에 울렸다.
귀가 먹먹해졌다.
"다 왔다."
OFF LIMITS.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이 너머에 뭐가 있는 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두렵지 않았다.
"두 번째 실험체가 된 걸 축하한다."
"..."
"구백이십구."
환영해.
큰 문이 두 남자를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암흑.
불이 꺼진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7개월 지났나요... 흑 이 진도도 안 나가지는 똥글...
저를 매우 치세요 모두 떠나가셨겠지만 다시 쓰겠습니다 흑 많이 응원해주세요 보고싶었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