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사원, 나 좀 봅시다. 01
찬열 x 경수 x 종인
"응, 형. 오늘 첫 출근이야. 실수 안 해, 누구 동생인데. 응, 알겠다니까. 끊어."
첫 출근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다정한 형의 목소리에 경수는 울컥했지만 애써 눈물을 삼키며 전화를 끊었다. 잘해보자, 도경수. 드디어 취준생 탈출이다! 전화를 끊은 민석은 웃으며 우리 동생이라고 저장해둔 연락처를 눌러 경수의 사진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었다. 잘해라, 동생아.
경수는 혹시나 지각을 할까 30분이나 일찍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이른 시각, 버스를 타러 나온 경수는 수없이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5년 안에 나도 저렇게 출근을 할 것이라고. 버스에 올라탄 경수는 혹시나 졸아 내릴 곳을 놓칠까 손잡이를 잡고 자리에 섰다. 무덤덤하고 표현을 안 해 오해를 자주 사는 경수였지만, 오늘은 떨리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실수하지 말아야지. 수십 번을 되새기던 경수는 내릴 정거장에 맞춰 내려 출근 시간보다 10분 일찍 회사에 도착하였다.
" 아... 저, 신입사원인데요. 마케팅 부요."
따라오세요, 옅은 미소와 함께 안내를 하는 여직원에 경수도 보기 좋은 웃음을 보이며 그 뒤를 따랐다. 입이 떡 벌어지는 회사 내부에 경수는 두리번 거리기 바빴고, 마케팅 부에 도착한 듯 자리에 멈춰 그런 경수를 바라보던 여직원이 살가운 목소리로 여기가 마케팅 부예요 하고 소개했다.
"감사합니다."
경수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여직원은 손사래를 치며 곧 인사팀이랑 신입사원 한 분이 더 오실 거라며 설명을 한 뒤 인사를 했다. 경수도 그 인사에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마케팅 부라고 적힌 문 앞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케팅 부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와 경수의 앞에 섰다. 경수의 시야를 다 가릴 정도로 큰 키에 경수는 당황하며 고개를 들어 그의 존재를 확인했다.
팀장 박찬열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이 반짝하고 빛나는듯했다. 찬열은 경수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입사원? 하고 물었다. 경수는 네 하고 활기차게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참 따뜻하게 생긴 사람이다. 사실 경수의 주변엔 따뜻한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건 아마 경수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성질도 있고, 숫기가 있는 편도 아니라 그런 게 아닐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 같기도 하다.
" 아, 저는 팀장 박찬열입니다. 일찍 오셨네요. 8시 30분까지 오시는 걸로 알았는데."
생각보다 저음인 목소리에 경수는 흠칫했지만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아 어제 떨려서 잠을 조금 설쳤더니... 하고 말을 얼버무리자, 찬열이 소개팅도 아닌데 긴장 풀어요 하며 살짝 웃었다. 그 장난에 더 굳어버린 경수를 본 찬열이 악수를 하려는 듯 손을 뻗었다. 제 말이 더 긴장되게 만들었다면 미안해요, 이따 보죠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8시 25분이 되자, 눈에 익은 사람이 아까 그 여직원과 함께 경수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남자는 경수를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 밝은 모습으로 저 알죠? 하며 물었고, 경수는 면접 때맞죠? 하며 악수를 청했다. 남자는 그런 경수의 손을 잡으며 역시 붙을 줄 알았어요. 뭔가 그런 필이 막 오더라니깐? 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동기가 참 맑은 사람인 거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경수였다. 동기는 자신을 김종대라 소개했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자고 하더니 힘들면 서로 힘도 되고 좋은 동기 사이가 되자며 다시 한번 맑은 웃음을 보였다. 경수는 종대가 따뜻한 햇살 같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두 분 다 일찍 오셨네요? 저는 인사부 팀장 변백현입니다."
순한 느낌을 주는 강아지 상의 남자였다. 경수는 여기 사람들은 모두 인상이 좋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조금은 회사생활이 편하겠구나 생각을 한 경수가 백현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었다. 설명을 요약하자면 지금 부서에 들어가 짧게 소개와 인사를 한 뒤, 팀장실에 들어가 세부적인 설명과 업무에 대해서 들을 거라고 했다. 경수와 종대는 서로 한번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백현의 말에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모두들 좋은 아침. 오늘 우리 회사의 자랑 마케팅부에 파릇파릇한 신입사원 두 명이 있는 거 다들 아시죠?"
"여사원들이 되게 좋아하겠는데요? 두 분 다 꽤 훈남이세요, 장난이고 짧게 소개할게요. 저녁에 회식 때 서로 알아가시고 서로 도와가면서 오늘도 열일 아시죠?"
백현의 말이 끝나자 모두 짧게 대답을 했고,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으며 각각 김종대입니다, 도경수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고 모두 박수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한 사람만 빼고.
"김 대리는 지금 출근하십니까? 인사부 팀장 앞에 두고도 막 그렇게 당당하게 들어와요?"
"죄송합니다."
경수는 앞으로 회사생활이 평탄하고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하는 무뚝뚝한 말투가 부서 안을 가득 채우기 전까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