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B. 헝거게임]
- 김한빈의정석 -
* 암호닉 *
토끼이빨
쿠쿠
우현동자
코카콜라
두비두밥
세니
진지한팀비
하늘
햫기동동
옥수수
감자
파랑쨱짹이
꿀떡
소녀
조으디
페브리즈
라임
수박
백년가약
꽁빈냥
헤헷
bobb_y
갓바비
J
다이
냐미냐미
까만원두
들레
허니콤보
닐리리야
꿍디꿍디
밤비
유후후
햇님
오필리아
네티
메추리
찌푸
보리차
으컁컁
김밥이랑
뽑뽀
기맘빈과김밥
콘이
콩듀
꽁냥꽁냥
몰랑이
꿀갓빈
뜟
지나니
구릴라
아야오유
바비사랑
거북이
꽃게탕
매력넘치는
바뱌
헛둘헛둘
빈블리
닭다리
워후워
오늘의 글은 꼼꼼히 읽어주세요:)
브금은 필수입니다, 정말로.
"야."
"어."
"잘 부탁해."
"..."
"나 같은게 얼마나 의미있다고 차마 말을 할 순 없지만, 울게하지마."
"꼭 그래야해? 같이... 갈 방법은 없는거야?"
"없어."
"..."
"슬프게 하지만 않으면 돼. 이렇게, 내가..."
"그런 말하지마, 그만둬."
"..."
"그런 상황이 닥쳐올 가능성이 있을꺼 같아? 아무리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해도,"
"올꺼야."
"어째서지?"
"악독한 도시, 극박의 상황. 그리고 눈물짓게 만들기 좋은 재미를 위해서이지."
"미쳤군."
"알아, 사실 나만 스폰서가 없거든."
"자랑이다."
"차마 못 죽이겠어, 너도 알잖아."
"..."
"널 믿는다, 그동안 싫어했어."
"끝까지 멋있는 척 하지마, 존나 역겨워."
"..."
"잘 가."
"결국은..."
"..."
"..."
"세 명이서... 남았구나."
내 말이 마치자 김지원은 허탈하게 웃었다. 김한빈 또한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이마를 긁적였다. 바람은 차고, 땅 밑은 뜨겁다. 나는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었다.
24명으로 시작한 헝거게임. 처음부터 11명이 죽어나갔고, 점점 숫자가 줄어듦과 동시에 나도 곧 죽을거라는 생명줄을 조여오는 하나의 보이지않는 속박.
누군가는 이기면 된다고, 쉽사리 말하지만 이걸 실제로 겪어보면 나조차도 어떻게 살아남았더라- 가 기억이 안날 정도인데. 죽일때의 표정 하나하나가 날 타고있는데.
4구역의 이혜리를 총쏠때도, 이홍빈의 등을 칠 때도. 손승완과 오세훈을 구해주기 위해 총을 이용할 때도. 나는 이 총을 여기오기 전까지는 그런 목적으로 쓰지 않았다.
여러모로 배워가고 잃었다. 소중한 사람들이였는데, 그게 꼭 모두가 아니지만 정말 끌고가고 싶은 인연 중 하나였는데 보란듯이 인사하나 못하고 가버렸으니.
김지원도 착잡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있던 칼을 만지작 거렸다. 김한빈도 자신의 총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나와 김지원을 번갈아 쳐다봤다.
어두운 이야기는 안 할께. 우리, 좀 밝은 얘기하자. 내 말에 김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먼저 해도돼? 김지원과 내 눈은 김한빈에게로 향했다.
첫 만남 때 너가 너무 강렬해서 너에게 눈길이 갔었어. 미친놈 취급때문에 더 미친짓을 했지만... 아냐, 김한빈.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고 칠께.
김한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그러더니 눈을 접고 내게 웃었다. 고마워, 이해해줘서. 오랜만에 만난 전우들은 힘들고 지쳐있었다.
그거 알아? 첫 만남은 이게 아니야. 김지원은 갑자기 내게 저런 말을 하며 음, 하고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무슨 소리야? 나는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너와 나는 오래전부터 만났어. 혹시 너희 아버지는 광부이지 않았어? 김지원의 말에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랬어.
그러자 김지원의 얼굴이 또다시 웃어보였다. 역시 내가 본게 맞았구나. 그는 어떻게 나의 아버지를 안 걸까. 살짝 의문의 눈초리가 섥혀들어갔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 형이랑 같이 일했었어, 광산에서. 그의 말에 의구심이 살짝 풀려오는 듯 했다. 그랬어? 내 말에 김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형은 1년 전 그 날 시장에서 일하는 날이라 못 갔었지만... 1년 전 그 날이라고 하자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곧 뇌리를 박혀오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말하고 있는 것이였다. 너가 어떻게 알아? 김지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형에게 들었다고 대충 둘러대는 듯했다.
형이 말해줬거든. 그리고나서 그는 내 시선을 피했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못 물을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김지원, 대체 어디까지 숨기는 걸까.
김한빈을 쳐다봤다. 그는 왜? 하면서 살포시 웃었다.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다. 내가 어떻게 이러고 살아, 내가 얘네를 어떻게 죽여. 내가 얘네를 어떻게 외면해.
입가가 자꾸만 쓰디쓴 무언가가 쥐고 흔드는 듯 했다. 입꼬리는 절로 내려갔고, 나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못하겠다. 손을 못 잡아줄 것만 같았다.
"기억나?"
"..."
"우리 헝거게임 준비할 때, 나랑 김지원이랑 신경전 존나 벌인거."
김한빈은 김지원을 쳐다보며 웃었다. 김지원은 아, 그 때. 이러면서 박수를 짝 쳤다. 그때 김한빈 졸라 재수없었는데. 왜 너랑 하필 총도 겹쳐가지고!
김한빈은 하하, 웃으면서 삐딱한 자세를 취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어, 김지원. 처음으로 마음에 든 여자애한테 존나 찝쩍거리던게 너였다니...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여태껏 살아온 원동력이 너였어.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고싶었거든. 김한빈은 자신보다 키가 작은 내 어깨를 두르고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고마워. 김한빈은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 이게 너무 마지막 같아, 김한빈.
그는 무얼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김한빈은 잔잔하게 웃었다. 뭐가 또 이렇게 널 힘들게 만드는거야, 나 좀 봐봐.
나는 그에게 끝까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보면 참았던 게 터질까봐 겁이났다. 꿋꿋하게 얼굴을 보여주지않자 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나를 더 껴안았다.
"울어?"
"..."
"뭘 또 울어, 울긴. 맨날 울어?"
김지원은 에에- 하면서 몰랐다며, 울보라고 마구 놀리기 시작했다. 그게 마치 이 적막한 분위기를 띄우는 것만 같아서 나는 부정하지 않고 허탈하게 웃었다.
이렇게 살려고 노력해왔는데 내가 아끼던 두 명이랑 같이 남아서 그래... 살짝 작게 말했는데도 둘은 용케 알아들었다. 으응,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아.
김한빈은 내 등을 쓸어내렸다. 김지원은 이제 좀 떨어지라며 김한빈과 나 사이를 떨어뜨렸다. 김한빈은 군말없이 떨어져나갔고, 나는 버럭 소리쳤다.
좀 감동적인 장면좀 연출해보자! 그러자 김지원은 자신에게 안기라며 팔을 넙죽 벌렸다. 이건 또 뭔상황일까. 멍 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울상이 되버린 김지원이였다.
빨리 안겨, 지금 아니면 기회없어. 입꼬리가 쭉 뻗은 그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슬금슬금 다가가니 홱 낚아채서 자신의 품으로 던져버린다.
김지원의 체취가 또 다시 났다. 김지원은 내 머리에 턱을 대고 아, 좋다- 를 연발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울지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정말 너란 애는.
"울지마."
"..."
"울면 내가... 더 힘들거든?"
김지원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허밍으로 낮게 리듬을 탔다. 뭔 노래를 부르는건지 알 턱이 없었지만 그는 지금 이 상황이 극적으로 치닿는 것이라고 생각지않는 모양이다.
김지원이 말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저주하고싶지 않아. 오히려 이렇게 셋 밖에 안 남은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해. 만약, 우리 셋이 남지않고 있었더라면.
너가 가장 힘들었을꺼야. 기억나? 방송사고에서 나랑 김한빈이 동시에 사고쳐서 너 쓰러진거. 물론 윤, 윤형이가 있는 너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우리는,
진심이였어. 뭐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연극이 아닌 '진짜'를 원했던거지. 나는 고개를 들어서 김한빈을 쳐다봤다. 김한빈은 옅은 미소를 짓고있었다.
하지만 그걸 리얼로 옮기기에는 조금 무리가... 아니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어. 참 그동안 준비하느라고 힘들었고 헝거게임이라는 이 게임장에서 심장졸이면서,
사람 죽이는 건 처음이였고 죽임을 당해볼 극도의 상황까지 맛보는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였어. 평생 잊지못하고 뿌리끝까지 남을 하나의 오점이 되는 것이니까.
내 자식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일생일대의 부와 권력을 쥐고, 우승했다는 명예를 걸고서까지 자식들에게 큰 소리를 뻥뻥 치고싶진 않아.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그 사람들은 한편으로 날 뭐라고 생각할지 많은 고민을 해봤어. 뭐라고 생각할까? 헝거게임의 우승자? 최대의 부를 쥐어진 사람? 가장 행복한 사람?
아니, 난 할 수만 있다면 헝거게임을 시작하기 전으로 되돌아 가고싶어. 그 투표용지에 넣어야 할 그 때로. 아무것도 몰랐을 때로,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지원은 빠르게 말을 이어갔지만 하나하나 내 마음 한 켠을 찌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이 경기장에 있는 모두에게 말하는 것이였고,
이걸 보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였다. 여기저기에 널려있을 시체들에게 애도를 표하지도 못하고 재빨리 자신의 몸을 챙겨야했던 이기적인 자신을.
김지원은 나를 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갑갑해져왔지만 도무지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눈을 살짝 감고 김지원의 옷깃을 잡았다.
윤형이가 있었는데 우리랑 같이 있어서 많이 불편했지? 김지원은 씨익 웃으면서 목소리가 떨려왔다. 불규칙적으로 떨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숨소리마저 거칠다.
괴롭고, 자책감에 힘들었을 너가 상상이 가. 지금당장은 너에게 입도맞추고 손도잡고 당장 떠나버리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순 없고 지금 너가 보는 것이 현실이란 걸.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내 인생 18년 동안 가장 후회가 되지않았던 기간이 언제였는줄 알아? 김지원은 입술을 깨물고 나를 품에서 풀었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고마웠, 어.
그는 다시 웃어보였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울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고싶었지만 나 조차도 목소리가 떨려왔다. 김...지원.
그는 내 등을 돌려서 김한빈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김한빈은 아프게 웃고있었다. 이리와, 그는 조금씩 갈라지는 목소리로 날 불렀다.
김한빈한테... 가. 김지원은 쓱쓱,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있는 힘껏 김한빈에게 밀었다. 나 보지마. 김지원은 먹먹해진 목소리로 끝까지 내게 말했다.
김한빈은 내 얼굴을 붙잡고 천천히 눈동자를 움직여서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겠다는 듯이, 꼼꼼히 쳐다봤다. 내 눈동자 하나에도, 눈썹하나에도, 콧망울에도.
잔잔하게 떨러오는 그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치자 그는 웃었다. 정말, 예쁘다. 그는 그의 손바닥으로 내 볼을 감싸쥐었다. 키 차이가 나는 우리 사이에서,
그는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나를 응시했다. 눈가가 벌게져 오고있었다. 나는 그의 손목을 잡고 같이 웃었다. 메마른 웃음과 축축한 웃음이 공존하는 시간에.
그는 내 입술에 잠시 시선을 뒀다가 한번 입을 맞췄다. 입을 악무는 소리가 잠시 들려왔고 몇 초 있지않아 그는 다시 떼어냈다. 나도, 이렇게 너와 했어.
그는 마치 이 세상을 등져보이는 사람 같았다. 어둠속에서 나오지못하고 허우적대지만 나름 그 곳에서의 생활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듯한 그의 얼굴이,
김지원과 나는 시작도 다르고 끝도 다르겠지만, 너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난 11구역에서 왔고,"
"..."
"너와 김지원은 12구역에서 왔지."
"..."
"아무것도 모르잖아, 나를."
김한빈은 내 얼굴을 당겨서 자신의 이마와 맞닿게 했다. 약한 미열이 전해져왔고, 내 얼굴도 조금 붉어져왔다. 그는 눈을 감고 독백하듯 속삭였다.
첫 눈에 반한다는 느낌이 뭔지 몰랐던 철없는 18년 인생, 그걸 지금에서라도 깨닫게된 것에 대해 나는 늦은 감이 있지만 후회는 없어.
11구역에서 단체로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다른 구역에서는 알려지지않았던 폭동이였어. 열 몇살 밖에 되지않았던 나는 동생을 손에 잡고 있었어.
동생은 갓 태어나서 울고있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달래고 있었어. 그런데 어떤 여자가 와서 나와 동생을 데려갔어. 조금, 정신나가게 웃고있었는데.
어렸던 나는 의지할 사람도 없어서 무작정 따라갔던 거야. 그 여자는 나와 동생을 자신의 집에 가두고...
김한빈은 인상을 찡그렸다. 입안이 텁텁해져오는 그의 입이 내게도 느껴져서 나는 그의 입을 손으로 감쌌다. 김한빈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내 손을 떼어냈다.
가두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짓을 했어. 난 그 때 이후로부터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나갔고,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은 겨우 살아돌아온 동생을 챙기기에 급급했지.
"끔찍했어."
"..."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었고 그때의 기억이 잠자다가도 문득 튀어나오면..."
"..."
"잠을 못잤어."
김한빈은 얼굴을 떼어냈다. 약간 빛이 들어오는 격에 이번엔 내가 인상을 찌푸리니 미간을 문질문질거리면서 씨익 웃어보였다.
그랬던 와중에 신청했던 헝거게임에 당첨이 되고, 11구역을 대표해서 나갔을 때 차라리 잘됐다 싶었어. 그 여자가 있는 11구역에선 숨도 쉬고싶지 않았거든.
마지막으로 배웅을 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이더라, 누군가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그 여자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어.
"그만해."
"..."
"그만, 해... 한빈아."
살아남게 해줬던 너란 여자, 그리고 죽어가고 있었던 내 머릿속에 다시끔 무언가가 사로잡히게 되었고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버렸던 지난 짧은 기간을,
너는 비웃을 지도 몰라. 하지만 난 그게 누구만큼 길지도, 깊지도 않다고 부정할 순 없어. 사랑은 기간이 아닌 얼만큼에 치중을 두니까.
헝거게임이 시작되고나서 몇 일동안은 널 찾지 못해서 김지원처럼 찾아헤매다가 겨우 만났잖아. 피가 흘렸고 잔뜩 정신없었는데 그 배후세력에는 누가 있었을까.
질문이야? 아니, 설의법이야. 뜬금없이 날 보더니 마구 패더라. 육성재, 그 아이였어. 나보다 나이가 적었는데 눈에는 독기가 흘러넘쳤고.
마치 그게 그 날의 날 보는 것만 같아서 그저 맞아줬어. 손승완에 대한 적대심, 그리고 죽이고 싶어하는 그의 얼굴이 내 몸을 굳게 만들었어.
바보같이 맞아줬다고 질책하지마, 내 딴에서는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 아이도 어딘가 풀어야 했을꺼아냐... 정신병자인 내가 제일 만만했었겠지.
그러고나서 김한빈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내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하늘을 쳐다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건데, 그는 경기장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소리쳤다. 온통 모든것이 우리를 압박하는 것만 같아서 몸이 떨려왔다.
그와 내가 쥐고있었던 총이 떨어져나갔다. 약간의 찌릿함과 함께 손바닥에서 전류가 흘렀던 것같다. 움찔하고 손을 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떨어진 두 개의 총.
김한빈의 숨이 점차 가빠져 오고있었다. 하아, 하아 하고 가슴팍을 움켜쥐고 그는 괴로운 얼굴을 지었다. 손이 떨려오고 있었다.
한빈아, 한빈아. 나는 그를 껴안았다. 조금씩 수그러 드는 그의 떨림이 제발 멈춰지길 빌면서 등을 쓸어내렸다. 한빈아, 여기서 할 말 다해.
"..."
"들어줄께, 뭐든."
"..."
너무 괴롭다...지금.
이게 꿈이고 싶은데 더 이상 깨어나지가 않아...
피 냄새, 피 맛, 둔탁한 소리, 누군가를 습격하는 소리 모두 거짓이라고 칠 수 있는데도,
눈 앞에 너가 있는데 이거마저도 꿈이면 난 다시 그 길을 걸어나가야 해.
꿈이고 싶은데 꿈이고 싶지않아,
그는 내 손을 잡았다. 얽혀오는 그의 다섯 손가락과 함께 나는 같이 맞잡아 주었다.
"김한빈."
"어."
김지원이 김한빈을 불렀다. 다시 풀려오는 손가락에 내가 한번 꽉 쥐어주고는 놓았다. 우리 셋은 다시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삼각형 모양을 만들면서 서로를 보았다.
둘의 눈을 제대로 마주칠 자신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주먹만 쥐고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날 죽이겠다고 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승자가 가려지겠지. 곧 누군가 죽겠다는 의미고, 누군가는 살겠다는 의미일꺼야. 김지원은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리가 그토록 입닳도록 말했던 사랑은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보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영원하게 가져가고 싶은 것일 거야. 그는 어딘가를 쳐다봤다.
너가 말했던 달의 설화가 이해가 간다는 말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잖아. 그의 말에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김지원은 비니를 고쳐쓰면서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김한빈,"
"응."
"받아."
김지원은 김한빈에게 펄럭이면서 뭔가를 던졌다. 색깔은 보라색, 스프링 노트. 김한빈은 묵묵히 그걸 받아들고는 김지원을 쳐다봤다.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이니까 서로 교환이나 좀 하자. 조금 들뜬 목소리로 김지원이 말했다. 여기까지 가져온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거 서로 교환하자.
김한빈은 곧바로 자신의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부르고는 똑같이 뭔가를 던졌다. 비틀거리면서 받긴 했지만 손에 들어온, 김한빈이 준 것.
약. 이게 뭐냐고 묻자, 처음에 너의 손바닥이 다 까졌을때 발랐던 것이라며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약 일주일 전의 것인데 그는 갖고있었던 것이다.
김한빈, 왜 갖고있었던 거야? 내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충 대답했다. 그냥, 너가 발랐던 거라서 갖고있었어. 이젠 필요없어... 너가 가져가.
나는 그에게 받은 물건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어깨박이를 뜯어냈다. 듣기싫은 소음이 들려왔지만 아랑곳하지않고 오른쪽 어깨도 떼어냈다.
김지원, 이거 받아. 숨기려고 했지만 자꾸만 떨려오는 목소리였다. 마지막이라는 김지원의 말이 자꾸만 마음을 울려대서 나는 곧바로 그에게 던져주진 못했다.
그의 발 밑에 떨어진 내 어깨박이를 주워든 그는 멋있다며 웃었다. 웃지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은 떨어지지않았다. 요리조리 살펴보던 그는 감싸쥐었다.
처음이다, 너한테 이런거 받아본거는. 내가 너한테 줬던 것은 있었는데...
김지원의 말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위에서 내려찧는 느낌이 들어서 있는힘껏 내 머리를 감쌌다.
줬던거라고? 나는 재차 그에게 다시 물었다.
김지원은 그런 나를 그저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아직까지도. 푸른사과처럼 풋내음나게 웃는데, 그게 왜 꼭... 왜 그렇게 웃는거야?
"김, 김지원."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되돌아오지않는 대답. 나는 또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지원... 김지원.
"넌 몰랐겠지만."
"..."
"너도 김한빈도 있지만 나한테 없는ㄱ,"
[거기, 세 사람.]
갑자기 하늘에서 나레이션이 또 다시 울려퍼졌다. 지지직, 거리는 소음이 아까보다는 많이 줄어든 상태여서 확실히 뭐라고 하는지도 정확하게 들렸다.
잘못 들은거라고는 부정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나레이션은 잔뜩 화가난 목소리였다. 지금, 동정짓 하는건가? 여기서 그런 짓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을텐데!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그만 무릎에 힘이 풀려서 땅에 주저앉았다. 김지원과 김한빈은 동시에 움찔했지만, 김한빈만 내게 다가와서 나를 자신의 품으로 감싸안았다.
당장 누굴 죽여도 시원치않을판에 세 명이서 이렇게 중앙지로 모이라는 최대의 배려도 해주었건만, 지금 눈물만 짜내면서 서로의 동정심만 불러일으키고!
이게 대체 뭐하는 추태인건가! 나레이션은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 목소리였다. 김한빈은 내 눈을 자신의 어깨로 완전히 감싼 상태였다.
[그렇게까지 살리고 싶었나?]
"..."
[지금 장난하는건가?]
"...못 죽이겠습니다."
김지원은 나레이션에게 대답했다. 나레이션은 잠시 멈칫,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못 죽이겠다고? 지금, 못 죽이겠다고 한 것인가?]
"..."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나레이션의 불안한 저 말. 그리고 김지원의 대꾸, 김한빈의 토닥임. 마지막으로 저절로 머리가 쭈뼛 세워지는 느낌이 들고있는 내가,
나레이션은 지지직 거리는 소음을 다시 내면서 사라졌다. 김한빈은 소리쳤다. 미쳤어?! 지금 쟤네한테 대꾸하면 저 제멋대로인 애들이 뭐라고 생각할 것 같냐!!
하지만 김지원은 웃었다. 왜? 마지막이잖아, 마지막. 마지막이니까 이런 것도 해보고, 쟤네가 뭔 짓을 꾸미던 간에 우리 셋은... 모두 살아남을 순 없는거 알잖아.
김지원의 말에 김한빈은 멈칫하더니 나를 꽉 껴안았다. 한빈아, 한빈아... 미치겠다.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김지원이 대꾸한 이유도 모르겠어.
제멋에 사는 인간들의 심기를 건들이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 또라이새끼를 지칭하는 거야? 김지원도 무모하게 왜 그랬는지... 난 말야, 왜...왜.
"아무말도 하지마."
"..."
"지금은, 아무말도 하지말아."
김지원은 그렇게 말하고나서 부스럭거렸다. 불안해, 지금 진짜 불안해. 마음 한켠이 또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불안하다고, 지금 굉장히 불안하다고.
아무튼, 너가 썼던 어깨박이 잘 쓸께. 정말 너만큼... 예쁘다. 김지원은 짤랑,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어깨박이를 보고있는 듯했다.
지금 내 팔다리는 힘이 잔뜩 빠져있는 상태였다. 심리적인 것인지, 육체적인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은 없었으나 힘이 전혀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김한빈이 이렇게 잡고있는 것도 반항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의 팔을 잡고 떼어내려고 했으나 놓아주지않았다.
힘없이 그에게 잡혀버린 팔, 그리고 초점이 점점 잃어만 가는 듯한 느낌, 김한빈. 넌 대체 뭘 알고 있는거야?
[아, 아.]
나레이션이 또 다시 등장했다. 잔뜩 거만한 음성을 띄고, 이기적인 면모가 여기까지도 들려왔다. 나레이션은 두 세번 마이크 체크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못 죽이겠다고 해서, 스폰서들의 의견을 물어왔다.]
"..."
[가장 중요한 건 너희들의 실력이기도 하고, 스폰서들의 지원이기도 하니까.]
"..."
[스폰서들 사이에서 최종 결정이 났다. 지목된 사람은,]
"..."
[김지원, 너다.]
쿵, 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소리야? 스폰서들에게 물어봤다며, 근데 왜 지원이가... 지원이가 왜 지목된거야?
말도안돼는 개소리하지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나레이션은 한심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물론 너희 구역 남자애가 지목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만...
너희 셋 중 유일하게 스폰서 없는 사람이 누군인 줄 알고 그렇게 떽떽거리는 건가? 너와 김한빈은 스폰서가 있었고, 특히나 너에게는 스폰서들이 잔뜩 밀려있었고.
스폰서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장 가치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누구냐고 했더니 전자는 너였고, 후자는 김지원이였다. 거기에 더 불만있는가?
"좆까지마, 씨발..."
[...]
"김지원이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건데? 납득 시키고 지목하던가, 씨발!!!!"
"그만해, 그만 발악해."
김지원이 내게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힘이 잔뜩 빠졌지만 왜 웃어보이는 걸까, 끝까지 이해가 가지않는 너의 모습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김한빈의 곁에서 나를 떨어뜨려냈다. 멍 하니 있던 내 입술에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갖다대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쉿, 하고 웃었다.
나레이션은 마저 말을 이었다. 평가란도 있는데 읽어주려고 했지만 너희들끼리의 조우가 필요한 것같아서 이만. 되도록이면 빠른처리 부탁한다.
시간끌면 시청자들이 지루해하거든. 그는 끝까지 웃으며 사라졌다. 나는 김지원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지원아, 안돼. 제발... 제발.
김지원의 표정을 보려고했다. 하지만 김지원은 끝까지 나를 쳐다보지 않고 내 눈을 가렸다. 이거 치워, 김지원. 김지원, 나 좀봐. 이거 치우라고!
"못 치워."
"왜, 왜..."
"보면..."
김지원은 말을 늘어뜨리면서 점점 말을 잃어갔다. 김지원의 손을 잡았으나 금방 풀려나갔고, 그의 옷자락을 잡아도 애써 풀어냈다.
"내가... 못가잖아."
"..."
"가고싶은데... 못가잖아."
울먹이고 있었다. 그는 겨우 숨겨냈지만, 끝까지는 숨겨내지 못했다. 김지원, 그는 울고있었다.
눈가가 잔뜩 번진 채 그는 내 얼굴 위로 눈물을 흘렸다. 차가운 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김지원의 목소리도 점점 떨어져나가고 있었고,
내 눈을 가리던 그의 손도 점차 떨려오면서 결국 떼어냈다. 난 그제서야 김지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몸은 작아보였다. 내게 비해서 굉장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작아보였다. 지원아.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미동조차 하지않았다.
김한빈, 총 줘. 김지원은 김한빈에게 말했다. 안돼, 안돼. 지원아... 안돼, 안된다고. 지원아...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지원아!!!
"김지원!!!!"
"..."
"김한빈, 총 주지마. 김지원!!! 안돼, 내가 안돼!!! 내가 안된다고... 김지원..."
"또 울지."
그는 내 어깨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
"울지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래."
"..."
"빨리 줘, 또 너희를 죽일지도 몰라. 김한빈, 빨리 줘."
김한빈은 조금 늦게 총을 던졌다. 김지원은 총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피면서 탄피를 확인했다.
"완벽하게 다 차있네."
"아, 아, 안 돼..."
"울지마, 울지마."
"김지원, 안된다고 말했잖아...!"
"...미안해."
"12구역 살아돌아가기로 했으면서, 왜 그러는데... 내가 우스워?"
김지원은 내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옷을 걷어냈다. 배가 훤히 들어났고, 그는 관자놀이도, 이마도 아닌 배로 향하게 총구를 돌렸다.
안전장치를 풀어냈다. 김지원은 나를 쳐다봤다. 나 또한 김지원을 쳐다봤다. 말리고싶어, 말리고싶은데...
왜 몸은 굳어버린 걸까. 왜 나아가질 못하는 걸까. 극단의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몸이 저절로 굳어버린다는 말.
마치 트럭이 달려오면 피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멍청하다고 비웃던 내 자신이 도리어 다시 멍청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허공에서 얽히고 섥혔다.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너의 맑은 그 눈동자도 지금은 너무나 탁해서,
무슨생각을 하고있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않았다. 나는 미친듯이 너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목에 걸려왔지만 무시했다. 잡아오고 있었지만 대들었다. 김지원의 저 손만 멈출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가,
"고마웠어."
"..."
"2년 전의 널 만났고,"
"...뭐?"
"1년 전의 널 만났어도,"
"..."
"지금 너가 가장 생각날 것 같다."
"...김지원, 김지ㅇ,"
"살아줘서 고마워, 정말..."
"..."
"바라보면서, 행복했어."
탕,
여기에 세 사람이 있다.
한 여자와 두 남자가 있는데,
첫 번째 남자는 한 여자에게 첫 눈에 반했다.
두 번째 남자도 그 여자에게 첫 눈에 반했다.
첫 번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차가움과 뜨거움을 보여줬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고, 곁에 있는 시간이 적어도 그 여자를 위해서 미치광이 노릇도 했다.
두 번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자신의 헌신을 보여주었다. 배려와 눈물, 그리고 사과. 그 여자가 힘들어하는 꼴을 못 봐서 자신이 더 힘들어지게 했다.
그 여자는 두 남자의 애정공세에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으나 점점 눈에 들어왔고, 결국 여자는 두 남자의 손을 잡았다.
두 남자는 답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인데, 자신의 두 손 모두를 잡아달라며 당당하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그래서 두 남자는 의논했다.
같이 손을 내밀어보자고. 누구의 손을 완벽하게 잡나 내기하자고. 첫 번째 남자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하지만 두 번째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첫 번째 남자에게 지기 싫어서가 아니였다. 두 번째 남자는 머뭇거렸지만 결국 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남자는 그 여자 앞에 당당히 섰다.
자, 누구의 손을 잡을래?
여자는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 둘 중에 내게 가장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 사람만이 내 손을 잡을 수 있어.
여자는 끝내 한 남자의 손을 모두 잡았다.
그 남자는,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시간이 멈춘것만 같았다.
이게 현실이라는 차가움에 믿기가 싫어서,
나는 피가 터지는 그 순간까지도 내 눈을 의심했다.
곁에 두고 그동안의 정을 쌓아왔던 탓이였을지.
아니면 너가 유난히 날 챙겨줘서 가슴 한켠한켠이 도드라지는 것이였을지.
김지원, 너라는 사람이 내 심장을 순간적으로 멈추게 했을지.
너의 마음을 내가 부정해서 였을지.
피가 공중에 분산되고,
너의 희미한 웃음이 얼굴에 걸쳐지고,
메말라보였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게 되고,
천천히 너의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모습이 보였고,
꽉 쥐고있던 총을 손에서 놓아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너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김지원... 김지원...!"
미친 듯이 너의 이름을 불렀다. 렉이 걸렸을까 의심이 될 정도로 김지원 너의 이름을 불렀다.
너는 눈을 감고있었다. 새하얀 얼굴이 되고, 입가에는 미소가 띄어져 있었다. 너를 살짝 흔들었을 때 너는 그제서야 쿨럭, 거리면서 눈을 살짝 떴다.
지원아, 지원아... 눈 떴구나. 괜찮아? 정신이 좀 들어? 지원아, 라고 불렀을 때 김지원의 입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누가보면 잔뜩 빨갛게 만들어놓은 물감을 입에서 장난스럽게 내뱉는것만 같았다. 내 하얀색 수트에는 점점 벌겋게 변해가고 있었다.
지원아, 그의 이름을 부르자 김지원은 또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끝을 보이지않았다. 배 쪽을 쳐다보니 배쪽은 온통 피로 뒤덮혀있었다.
그가 한번 숨을 쉴 때 마다 피가 찔꺽거리면서 나왔다. 잔인함? 지금은 잔인하다라는 말 조차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신차려, 지원아... 나는 김지원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뿌옇게 변해오는 내 눈가를 거칠게 닦아냈다.
살아남아야지, 살아남아야 될거 아냐... 나랑 12구역당당하게 가야하잖아. 지원아, 지원아 제발... 정신 차려...
"하, 하하..."
"..."
"너...지금 얼굴이 되게 빨...개..."
너는 웃었다. 김지원, 너는 날 보고 웃었다.
"내 피가...널 묻게 만들었어..."
"지원아, 지원아아..."
그는 기침을 더 심하게 쿨럭거렸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넌...모를꺼야."
"..."
"총, 쏘기, 하윽, 전에...한, 말을..."
김지원은 자신의 배를 가리고 있던 손을 들어서 김한빈 쪽을 가르켰다.
"김한빈한테, 준, 거... 뭔지 알지?"
"응, 응응... 뭔지 알아...응..."
그는 또 다시 웃었다. 그의 하얀 치아가 피로 물들여있었다.
"김한빈한테, 읽어달라고 해."
"..."
"내가 하고싶은 말들, 못 담아뒀던 말들...모두,"
"..."
"정말... 그런다면...ㄴ, 내가..."
안돼, 안돼 김지원. 눈 감지마, 눈감지마... 손에 힘풀지마. 말 더 이어가, 이어가줘.
"김지원, 정신차려. 눈 감지말라고!!!!"
"..."
"제발... 제발... 눈 감지마..."
"..."
"눈, 감지마..."
김지원은 피를 한번 뱉고는 떨려오는 손을 애써 잠재우며 자신의 가슴팍에 기댄 내 머리에 손을 댔다.
아무리 핏갑칠이 되있는 손이였어도 나는 신경쓰지않았다. 그가 끈적끈적한 피로 뒤덮혀있던, 뭘 어쨌던 간에 나는 지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않았다.
자꾸 스르르 내려오는 그의 팔을 잡고 지탱했다. 김지원의 팔 힘이 점점 없어져가고있었다.
"내가 김한빈한, 한테 준 ㄱ, 거..."
"...응, 응..."
"...하윽, 하아, 하으윽, 으윽..."
김지원은 숨이 점차 가빠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이였다.
"지원아, 지원아!!!"
"하아, 하아윽, 으으, 끄으...ㅇ...윽..."
"지원아, 제발...제발!!!! 제발 정신차려, 제발 정신차려!!!! "
"흐으, 흐으윽,..크...ㅇ..악, 하아, ㄱ, 크ㅇ..."
"나 좀봐, 보란말이야!!!!"
김지원은 괴로운 얼굴을 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입에서 더이상 피는 토해내지 않았다.
김지원의 시선은 이미 나를 향하지않은지 오래였다. 초점은 어디로 갔을까,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애를 써서라도 시선을 마주치려고 했으나 그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면서 그동안 목에 고였던 피가 썩혀져서 핏내음을 진동하며 쏟아져나왔다. 김지원은 다시 숨을 애써 고르고 주먹을 있는 힘껏 쥐었다.
아마 그가 호흡곤란을 일으킨 것은 고여있던 피 때문이였던 것같았다. 김지원의 목소리가 다시 평온을... 아니, 나름의 평온을 되찾았다.
"이제,"
"..."
"...가야 될, 것 같아..."
"어딜, 어딜가는데에... 어딜가...어?"
김지원은 내 말에 웃음을 걸쳤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는 다시 피를 토해냈다.
내 수트는 이제 김지원의 피로 뒤덮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나는 아까전부터 고개를 들고 김지원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추장스럽게도 흘러내리는 눈물이 너무나 야속해서 벅벅 닦아냈지만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듬더듬 말하는 말을 겨우 줏어담아서 말을 이어보았다. 김한빈에게 건넸던 일기장을, 들춰보라는 말이였다.
거기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과 못 담아뒀던 말들이 모두 담겨있으니 보라는 말이였고, 내게 할말을 모두 적어놨다고 했다.
그 때의 너가 기억하지 못해서 조금, 슬프다. 김지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젖혔다.
"이렇게 널 봐서 너무,"
"응...응..."
"ㅎ,행복하다..."
"..."
"사ㄹ,랑,ㅎ, 해."
"ㅈ, 지원아...지원아..."
"못 볼 줄알았는데..."
"..."
"울지,ㅁ..마....."
"..."
그리고 김지원은, 더이상은 말을 잇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