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의 상담실. 꽤 훤칠한 키의 사내, 세훈은 하얀 가운을 입고선 상담용으로 비치해 둔 긴 의자 위에 누워 휴대폰을 틱틱댔다. 개업한지도,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지도 그다지 오래지 않은, 젊다못해 어리단 소리까지 들어도 좋을 그의 상담실에 손님이 오는건 몇시간에 한 번. 그는 심심한 표정으로 건너편 문쪽을 바라본다. 딸랑, 하고,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딱딱할 정도로 억양없는 인사였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휴대폰을 책상 위에 엎어놓는다. 소녀에게 다가선다. 소녀는 조금 경계하는 낯빛이지만 딱히 피하지는 않았다. "오세훈 상담사님 맞으시죠. 전 오늘부터 여기에 정기 내담을 하러왔습니다." 세훈의 눈에는 소녀가 지독히도 재미없어보였다. 저렇게나 말이 재미없는 여자애라니. 그래도 일단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녀를 의자로 안내했다. "무엇을 상담하고 싶으신거죠?" 소녀가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이다. 혹시 손님 궁하면 하나 보내준다던 선배가 보낸 손님일까. 세훈은 잠시만요, 하곤 메일을 뒤져본다. 역시 대학 선배로부터의 메일이 한 통 와있다. 대충 장기적인 상담이 필요한 여자애 하나를 보내니 알아서 치료해내라는 내용이었다. 소개비는 밥 한끼로 대신하라는 추신까지 읽고 세훈은 인상을 찌푸린다.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병. 꿈을 현실이라고 여기며 기억 속에 꿈과 엮인 실제의 기억이 혼재함.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믿고 위험 행동을 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 요망. 원인은 충격에 의한 것으로 보임. 마음을 열게 돕는 게 최선책. 이쯤되면 소개가 아니라 떠넘기기다. 밥 같은 거 사나봐라, 세훈은 짜증스럽게 창을 끄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주로 어떤 꿈을 꾸나요?" 세훈은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소녀에게 물었다. 소녀는 몇 번 눈을 깜빡인다.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눈을 마주쳤다. 조금 짙은 까만색 눈이 자신을 담고있다. 세훈은 소녀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꽤 예쁜 눈이라고 생각했다. 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에게 다가간다. 소녀와 눈높이를 맞춘다. 소녀의 지척에서는 아까는 느껴지지 않던 청결한 비누냄새가 났다. 옷이었다면 한참이나 끌어안고 킁킁댈 정도로 좋은 향기였다. "주로라는 건 없어요." 소녀는 꽤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거긴 어때요? 당신 세계." 소녀는 그제서야 웃는다. 동화예요, 동화. 더럽고 추잡한 현대의 추상이기도하고. 소녀의 말은 꽤나 냉소적이다. "앞으로 당신 얘기, 나한테 다 해줄 수 있어요?" 세훈이 물었다. 소녀는 그다지 내키진 않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끄덕였다. 세훈은 살풋 웃는다. "반가워요. 앞으로 잘해봐요." 소녀는 그저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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