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잠시 밖에 있다 보니 찢어질 듯한 두통은 어느새 가시고 잠시 해이해졌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됐다. 다시 연습실로 돌아가서 연습을 해야 한다. 난 아직 그들에 비해서 노래도 춤도 표현도 다방면에서 뒤처진다. 얼른 이 간격을 좁혀 인정을 받아야 한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나름대로의 춤선이 나오는 것 같아 시계를 봤다. 중간에 쉬려고 나간 시간이 3시 30분이었는데 어느새 시간은 6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고 밖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 조금은 잘 수 있겠다. 회의실로 들어가 의자를 빼고 엎드려 앉았다. 초침 소리가 들리다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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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오늘은 그럼 예전 노래 한 번씩만 추고 새 안무 나가는 거죠?"
"아. 응. 어제 여주 너네가 많이 도와줬지?"
"당연하죠. 미우나 고우나 우리 새 여멤버인데 저희가 챙겨야죠~"
"세훈이가 어려도 생각이 깊네. 근데 여주는 어디있어?"
안무실 어느 곳에도 여주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김여준 회의실에 있을걸요?""
"민석이 네가 어떻게 알아?"
"아. 그냥 오늘 아침에 운동하러 나왔다가 봤어요. 회의실로 들어가던데요."
"찬열아. 가서 여주 좀 데리고 와. 연습 빨리 시작해야 하니깐. 나머지는 스트레칭 하고 있어! 농땡이 좀 부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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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일어나."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끝없이 올라가다 보니 보이는 얼굴 하나. 박찬열이네.
"몇 시에요?"
"9시.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깐 빨리 와. 시간 좀 제대로 지켜라. 남아도냐?"
나의 계산 미스. 알람을 하고 잤어야 하는데 너무나 피곤해서 그런 사소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바보. 바보 우여주. 또 틈을 보였다.
박찬열의 뒤를 종종 따라가 안무실로 들어가 보니 이미 다들 몸을 풀고 나만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주 왔으니깐 자 대형 갖추고 한 번에 통과하자 한 번에."
음악이 틀어졌고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제 무리한 연습으로 인해서 몸이 무겁긴 했지만 그들과 비슷한 선을. 비슷한 대형을. 비슷한 느낌을 살린 것 같았다.
마마, 히스토리, 늑대와 미녀, 으르렁으로 연속 4곡을 추자 다들 기진맥진해서 연습실에 드러누웠다.
"여주! 연습 진짜 많이 했네. 민석이랑 세훈이가 잘 가르치긴 하나 보다."
잘 가르치긴요, 개뿔. 욕만 더럽게 먹고 혼자 연습했는데요 뭘.
"하하. 네. 꼼꼼히 알려주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해왔던 표정관리와 말투 덕분에 안무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했다.
"여주야. 많이 연습해서 티가 나서 좋은데 여자라 그런가 약간 몸이 가볍다. 남자 춤은 묵직한 느낌이랑 강한 느낌이 더 나야 하거든."
"네. 보완해서 올게요."
"여주랑 이야기하는 동안 다들 잘 쉬었지? 새 안무 나간다. m이랑 k랑 따로따로 모여. 여주는 m 쪽으로 가면 돼. 인원이 좀 부족해서..."
루한. 우이판. 그 둘 때문이겠지.
말이 끝나고 정신없이 안무의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어제의 치욕스러움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서 누구보다 이를 악물고 했다. 결과는
"다들 통과! 부족하다 싶으면 각자 연습해오고 내일모레 이 시간에 다시 모여서 연습한다. 이만 해산!"
통과.
안무 선생님이 있으실 때까지만 해도 좋았던 분위기는 문이 닫힘과 동시에 다시 싸늘해졌다.
"여주야. 매니저 형이 너 작업실 마련했다고 거기서 곡 작업 하래. 올라가봐."
"네. 수고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소리들.
"쟤 스폰서 있는 거 아냐? 그렇지 않으면 누가 벌써 개인 작업실을 회사에서 마련해줘?"
"종대야. 입 조심. 말 조심."
"준면이 형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아니 웃긴 계집애잖아요, 찬열이도 개인 작업실 아직 없는데, 누군 작업실 욕심 없는 줄 아나,"
아주 신명 나게 까는구나. 까라. 열심히.
작업실로 올라가 보니 전에 내가 쓰던 장비와 스튜디오 등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문을 닫고 의자에 앉았다.
적막하다. 또 혼자구나. 역시 혼자구나, 우울해지려던 참에 걸려오는 전화.
"여보세요?"
[야.]
"왜"
[오빠라 안 하냐?]
"알빠야. 용건이 뭐야."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고 전화했다 기집애야.]
"그러던지. 나 씻고 나가야 하는데 기다릴 수 있어?"
[어차피 출발 아직 안 했어. 씻고 1시까지 주차장으로 나와있어.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
"지랄, 오빠는 무슨. 오버하지 마.'
[끊는다]
끊긴 전화. 울적하려던 참에 좋네. 오래간만에 만나는 오빠라 그런지 말은 험하게 나왔어도 기분은 좋다. 옷가지를 가지고 샤워실로 가는 순간 마주친 멤버. 이름이 레..이 였나?
"안녕하세요."
"안녕. 쌰워하러 카나 봐?"
"아..네"
"아 저키! 애들 나브지 않아! 크냥 저긍을 못 항거야. 난 너 괜찮하. 나중에 작콕 같이 하자!"
"네. 들어가세요"
나쁘지 않은 사람. 아니 착한 사람. 눈이 너무나 맑은 사람. 저런 사람은 나랑 친해지면 안 된다. 나랑 가까워지면 안 된다. 내 근처에 있으면 분명 나처럼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저번에 오세훈한테 말했 듯이 엑소 내에서 나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해야 한다. 절대로. 친해져서는 안 된다. 그 누구와도, 그게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끝까지 나는 외로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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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ㅜㅜ 너무 늦었죠 ㅜㅜㅜㅜㅜㅜㅠㅠㅠ
시험이랑 여러 일들이 조금 겹쳐서 늦게 왔어요 ㅠㅠㅠ 그 대신 분량은 조금 빵빵하게!
내일이나 내일 모래 쯤 한 편 더 올릴께요. 날씨가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