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밟을 때마다 사박사박 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소리를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조금 더 걸음을 빨리 했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였다. 이번만큼은 이 일을 오랫동안 해야된다. 저 멀리 사치스럽고 웅장한 저택이 보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긴장이 됐다. 나는 내 흉측한 얼굴을 더 깊숙히 숨기고 더욱 더 빨리 걸었다.
저택의 문을 쾅쾅 두드리자 안에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저택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하녀도, 집사도 아니였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날 고용한 부인 같았다. 부인은 내 모습을 대강 훑어 보더니 누구냐는 듯 한 눈빛을 보냈다.
" 저, 000이라고 하는데요. "
나의 말은 짧고 간결했다.
" 준회야, 준회야? "
부인이 이끄는대로 따라 왔다. 부인은 흰색으로 칠해진 방문을 두드렸다. 아마 방 주인의 이름이 '준회'인 듯 했다. '준회'는 아무 말도 없었다. 부인은 조심스럽게 방 문을 열었다.
어둠. 그 방은 어두웠다. 커튼은 다 쳐져 있었다. 부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둠 속에서 소리쳤다.
" 엄마가 너에게 소개해줄 사람이 있단다. 잠깐만 만나보자, 준회야. "
부인의 말투는 상냥했고 조심스러웠다.
" 이 분은 씻기러 온 게 아니야. 씻지 않아도 돼. "
부인은 날 슬쩍 보고 다시 어둠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 00은 책을 읽어 줄 거야. "
부인은 이 말을 마치더니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 갔다. 나도 부인을 따라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눈을 깜박였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보이는 것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였다. 저 아이가 준회구나. 내가 온 것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아이의 표정은 화가 난 것 같았다. 부인이 날 툭 쳤다. 아마도 아이에게 소개를 하라는 것 같았다. 바싹 마른 입에 침을 바르고 입을 떼었다.
" 저... "
내가 말을 하자마자 아이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부인은 침착하게 아이를 타일렀다.
" 준회야. 무례하게 굴지 마라. "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침대 옆 탁상에 놓인 컵을 집어 던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아마도 아이는 유리 깨지는 소리와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그런 것일 거다. 아이는 다시 접시를 던졌다. 이번에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이 쪽으로 걸어가 아이가 던진 컵과 접시를 다시 탁상 위에 놓았다. 나는 초첨이 맞지 않는 아이의 눈을 쳐다 보았다.
그 눈은...
너무나 맑고 깊었다. 속이 쓰렸다. 나는 재빨리 아이의 방에서 빠져 나왔다.
" 사례금은 미리 주겠어요. 한 달만 견뎌 봐요. "
부인은 나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은 표정이였다. 부인은 나에게 사례금을 건냈다.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의 방을 쳐다 보았다. 아이는 우리의 대화를 엿 듣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부인에게로 옮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서재는... 어디죠? "
*
부인이 골라준 책을 들고 아이의 방으로 갔다. 역시나 어두웠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찾으려 두리번 거리다가 거울을 보았다. 거울 안에는 흉측한 모습의 한 여자가 보였다. 더럽고, 역겨워. 끔찍한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온다. 아까 먹었던 음식이 역류할 것 같았다. 나는 빨리 거울을 가렸다. 아무래도 이 어둠 속에서 계속 있다 보면 미쳐버릴 것 같아 커튼을 치러 창문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창문 안에서도 흉측한 모습을 한 여자가 있었다. 아, 역겨워.
" 냄새가 좋아요. "
부드러운 손길과 함께 아직은 미성인 목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재빨리 뒤를 돌아 아직은 여린 아이의 팔목을 잡아챘다.
" 난 책 읽어주러 온 거야. 내 몸에 손대지 마. "
아이가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 가만히 있어! 그럼 놔 줄테니깐 움직이지 마. "
아이는 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다. 천천히 손에서 힘을 뺐다. 아이는 내게 벗어나자마자 욕을 했다.
" 나쁜 년! "
나는 아이의 얼굴을 꽉 잡고 다시 경고했다.
" 한 번만 더 그 따위로 말했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야. "
아이를 놔 준 나는 커튼을 쳤다. 밝은 빛이 들어오니 한결 진정된 느낌이 들었다. 가버려! 아이는 나에게 버럭 소리쳤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외침을 뒤로 하고 나는 책을 펴 첫 문장을 읽었다.
"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
아이는 내가 말하자마자 발악을 했다. 아이는 내가 입을 열 때마다 소리를 질러 책 읽는 것을 방해했다. 그런 아이를 쳐다보다 결국 난 혼자 책을 읽어 나갔다. 펄럭, 펄럭. 조용한 방 안에는 책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한 6페이지를 읽었을 때 쯤, 퍽.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책이 날라갔다. 아이가 책을 던져버린 것이다. 방 안에서는 씩씩 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 다시 한 번 경고하는데 "
" ...... "
" 책 함부로 던지지 마. "
이 말을 마친 뒤 책을 줍고 아이의 방을 나섰다. 어때요? 얌전하던가요.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부인이 말을 걸었다. 참 웃기지도 않은 소리였다. 오늘은 책도 제대로 못 읽어주고 화만 내고 끝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였다.
" ... 네. "
하지만 내 입은 제멋대로였다.
아이의 반항은 날이갈 수록 심해졌다. 지치지도 않는 지 아이는 항상 악에 바친 고함을 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아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내가 꽤 매서웠는지 그 이후로는 이불을 뒤집어 쓰는정도로 반항을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날 맞이 했다. 의자에 앉고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지금부터 잘 들어 보세요. "
" ...... "
" 이 이야기를 읽게 되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겁니다. "
" ...... "
8번 째 줄을 읽었을 때 쯤 도무지 미동도 하지 않는 아이를 쳐다 보았다. 다른 책 갖고 올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거울 조각이 심장에 박히면 심장이 얼어붙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말한 문장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책의 다음 문장과 일치했다. 읽은 책이잖아. 내가 반문했다.
" 잔말 말고 내가 읽으라면 읽어요! "
아이는 내게 소리쳤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계속해서 그 책을 읽었다. 왜 웃는 거니? 카이가 투덜댔습니다. 정말 못생겼군, 게르다. 못생겼어, 흉측해, 미워, 괴물 같아.
못생겼어, 흉측해, 미워, 괴물 같아.
못생겼어, 흉측해, 미워, 괴물 같아.
못생겼어, 흉측해, 미워, 괴물 같아.
... 정말 보기 싫어, 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