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일은 모두 잊고
새 아침을 함께하자.
학연은 까마득히 잊었다.
어젯밤 자신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알지못한다
막내 상혁이
뭘 알아버렸는지.
상혁은 생각했다.
그런 학연을 보며.
형.
그렇게 다 잊어버려요.
이젠 내가할께요.
*
학연은 침대에 앉아 제 사람들의
행동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져 앉아서 눈을 감고 앉아있는 원식의 얼굴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상혁과 재환도
자기 침대에 누워 등을 보이고 하루종일 일어나지 않는 홍빈도
그리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택운도.
테이블 위에 놓여진 유리잔을 잡는 손이 어색하다.
허공을 가로지르다 손잡이를 찾아낸다.
물을 마시고 제 침대쪽으로 걸어가는 택운이 이상하다.
마치 잘 보이지 않는듯.
잘 가는듯 싶더니 옆에 놓여진 서랍장에 부딪힌다.
더듬거리는듯한 행동.
평소와는 다르게 불안한 모습.
어느순간부터 앞머리로 가리기 시작한,
택운의 왼쪽 눈.
풀썩이며 택운이 침대에 드러눕는다.
그순간 살짝 올라간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왼쪽눈을
재빠르게 쫓는 학연.
아무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는다.
외마디 비명이 새어나오려해서 학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속 깊은곳부터 울음이 울컥 쏟아져 나오지만
입술에 피가날만큼 꽉 깨물고.
절대 소리를 내지 않는다.
택운의 왼쪽눈이.
초점을 잃은것을.
학연은 보았다.
그 맑던 눈이 빛을 잃은 그 모습을.
그리고 안다.
왜 택운이 말 하지 않았는지.
제 가슴을 내리친다.
참아야 해.
울지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테니.
다시 돌려주면 된다.
택운의 세상을.
*
홍빈은 저에게 접촉해오는 사람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제가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사람들이 더 고통받을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
"홍빈군"
그때 같이 밖으로 나갔던 남자는
이제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고.
그는 나에게 오늘
넌지시 물어왔다.
"돌려주고 싶죠."
무엇을.
내 사람들에게 자유를?
그렇다면 더 바랄게없어.
무엇이든 한다.
"무엇을요"
"정택운의 세상을."
택운이 형.
형이 첫번째인가봐요.
내가 모든걸 알고난뒤로.
그토록 빌고 빌던 그대들의 자유.
첫번째가 바로 형인가봐요.
"당연히."
남자는 웃는다.
"홍빈군은 본인이 왜 여기서 이렇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곳에서 내 형제들을 만났고.
이젠 이곳으로부터 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는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인것을.
난,
알고있다.
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선.
나 하나를 희생해도 부족할것임을.
그래서 난,
더 이를 악물고 나를 버리겠다.
"무엇이든 합니다."
단,
이건 알아둬요.
내 사람들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되돌려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못살아.
"돌려줘요. 택운이형의 세상을."
*
상혁은 조용해진 틈을 타
두꺼운 문을 열고
끝없이 긴 복도로 나온다.
문에 붙어있는 팻말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그렇게 복도의 끝쯤에 다 달했을때.
"박해진…"
문에 붙어진 이름 석자를 손으로 쓸어보며
상혁은 심호흡을 한다.
도와주세요.
우리를.
가여운 우리들을.
지난 밤.
정신없는 그 사이에 학연이 뱉은 말.
[해진이 형. 형. 제발 우리 좀 도와줘요.
형. 제발. 이제 아프기도 싫고.
우리애들 다치는것도 보기 싫어요.
형. 제발. 제발 도와줘요.]
당신은.
우리의 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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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