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밀러/욤타] 내겐 너무 특별한 당신
1.
신기한 광경을 봤다. 피씨방에서 논문을 쓰고있는 아주 신기한 광경. ‘피씨방에서 논문을 쓰고있는게 뭐 어때서?’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아, 피씨방에서 '외국인'이 논문을 쓰고있는 아주 신기한 광경. 이라고 설명을 바꾸어야 겠다. 논문에 써 있는 글을 읽어보면 그는 서울대학교에 현제 재학죽인 석사 ‘타일러 라쉬’ - 즉 외국인인 것 같고. 또한 그는 한국어 타자를 또박또박 쳐가며 여러 한국어로 된 백과사전들을 옆에 들여놓은 채 논문을 써갔었는데. 그래 이게 신기한 광경이 아니고 뭐겠나. 피씨방에서 논문을 쓰고있는 외국인의 신기한 광경. 물론 자신도 외국인이긴 했지만 자신은 어느 사람처럼 게임을 즐기는 - 그런 외국인이었단말이야.
그는 하루하루, 신기하게도 항상 내 옆에 앉아서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서로 말은 한마디도 섞어본적이 없었으면서. 그가 먼저온 날이면 내가 그의 옆에 앉아 게임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내가 앉으면 피씨방 의자가 거의 다 가려졌지만, 그가 앉으면 마냥 왕의 의자에 조그마한 왕자님이 앉은것마냥 빈 틈이 잔뜩 보였어서. 뒤에서 다가올 때, 그가 앉은 자리를 찾기란 의외로 쉬웠다. 몰래 귀엽네. 라고 조금 변태같지만 감상도 하긴 했었는데. 서로 그렇게 앉기만하고 이야기도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채, 눈치만 본 지가. 아마 한달동안 계속 그랬었나. 그랬을 것이다.
한달이 지나고, 나는 그에게 쪽지라도 보내기를 작정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논문을 작성하고있는 그에게. 저 논문은 도대체 언제까지 쓰는거야 물어보고 싶기도 했고, 또 같은 외국인끼리 친해지고 싶어서 이기도 했다. 대충 메모장과 볼펜을 얻은 후에, 예쁜 글씨는 아니였지만 최대한 예쁘게 쪽지를 쓰고. 옆에서 열심히 타자를 치고있었던 그에게 보냈을까, 으으. 괜시리 떨리는 마음이 들어. 느낌이 이상했지만. 우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가 쪽지를 확인하는듯한 종이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내 쓱쓱, 무엇을 적는듯한 소리까지. 꺼져요. 관심같지 말아요. 게이세요?. 이런말이려나, 손톱을 까득이곤 애써 고개를 저어보았는데. 이내 종이가 접혀지고 누군가가 툭,툭. 찔러오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더니 방금전에 제가 한 것마냥 책상에 쪽지만 쏙 놓곤 얼굴을 칸막이 사이로 숨긴다. - 마냥 논문작성하는 것을 보고 딱딱한 사람인줄만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나보다.
[저는 캐나다에서 온 기욤패트리 라고 합니다~^^ 사실 몇 달전부터 봤었는데 친해지고 싶어서 쪽찌 드립니다. 사실 아직 한국어 많이 모르고 맛춤범 많이 모르는데. 그래도 친해져요 ]
[전 미국에서 온 타일러 라쉬에요^^ 편하게 영어로 대화해도 되요. 쪽지 감사하고요, 제가 그럼 번호라도 적어야하나요? 이런식의 접근은 처음이라 히히 8-) ]
본의아니게 얼굴에 미소가 가득히 지어졌다. 겨우 입가를 억누른채, 볼펜으로 급히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아 예!예! 제가 먼저 알려드릴게요. 제 번호는 - ]
그리고 한창 숫자들을 써 내려 갔을까, 옆에서 또다시. 익숙한 느낌의 쿡쿡, 찌르는듯한 기분이 들어. 옆을 바라보니 다름아닌 타일러가 칸막이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어 번호를 보다가, 제 휴대전화를 내민다. 직접 찍어주세요. 하고 그 내민 손은 어찌나 작았던지. 귀엽고. 공손함 사이의 귀여움이 어찌 저렇게 들어날까. 잠시 그만을 멍, 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곤 번호를 찍을수 있었다지. 그러니까, 번호가 -
그가 번호를 찍는사이에 쪽지를 가져갔는지. 번호를 찍은 그의 핸드폰을 타일러 - 그에게 내밀자 타일러는 내게 쪽지를 내밀었다. 그리곤 급히 파일들을 저장하더니, 오늘은 이만 갈게요. 하고 베시시 미소. 유유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번, 그리고 또다시 쪽지를 한번. 이렇게 번갈아보며 바라보다가, 이내 쪽지를 펴 그 안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솔직히. 솔직히 너무 귀여워서, 딱히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아니 아닐텐데. 웃음이 절로 그려지더라.
[기욤씨 제 번호는 여기에 적고 갈게요! 그냥 기억에 박힐수 있게, 여기에 쓰고 갈게요]
그래. 기억에 콱 박혔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채 기욤은, 휴대폰을 들어 쪽지에 적혀진 숫자들을 제 휴대폰에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