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Together 01
“종인아 이거 좀 봐.”
“또, 뭔데”
아씨. 라며 종인은 준면에게 다가갔다. 소파에 누워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종인은 짜증을 냈다. 지금 젤 재밌는데. 투덜거리던 종인이 준면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준면은 겉으론 인자한척 웃고 있었다. 종인은 제 형이 이런 표정으로 웃고 있을 때는 엄청 화가 난 상태란 걸 알 수 있었다. 약간 겁을 먹고 준면을 보았는데, 준면이 식탁위에 올려져있던 종이를 종인의 눈앞에 보여준다. 종이 옆에 놓인 봉투를 보아 뭔가 온 거 같은데. 종인이 종이를 쥐었다. 찬찬히 훑어보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종인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다 읽은 순간 종인은 무릎을 꿇었다.
“형, 잘못했어.”
“얘가 왜 이래.”
“형님, 아우가 아직 어려 물정도 모르고 일을 저질렀으니 용서를…”
“같은 소리하네. 빨리 일어나. 이런다고 해결 될 거 같아?”
카드 내역 서였다. 300만원을 썼다는 내용이었다. 클럽 및 술집, 식당 등 다양한 곳에서 썼다. 이번엔 이때까지 중에서 가장 많이 썼다. 드디어 앞자리 3을 찍었다. 종인은 술이 세지 않았다. 하지만 술자리를 좋아했다. 클럽도 좋아했다. 남자친구가 있긴 했지만, 여자랑 더 많이 잤다. 남자친구도 그걸 알긴 했지만 그냥 나두었다. 종인의 주사는 돈을 쓰는 것이었다. 기분에 취해 내가 쏜다. 내가 낸다. 라는 등의 말을 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카드 값이 100만원이 넘어갔다. 이번 달에는 유난히 술자리가 많았다. 왜냐하면 종인의 직업은 발레리노인데 이번 작품이 대박을 쳤기 때문에 그만큼 술자리도 많아졌다. 역시 이번에도 종인은 내가 다 산다는 헛소리를 했고 결과는 이거였다.
“짐 싸.”
“형, 제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게 형 인거 알지?”
“일어나.”
준면이 체념하듯이 말했다. 종인은 준면이 자신을 용서하는 줄 알고 기뻐하며 일어났다. 준면은 가관이라는 표정으로 종인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 항상 종인의 카드는 준면이 냈다. 아마 벌어들이는 수입 중에서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건 종인의 카드일 것이다. 종인이 오늘 약속이 있다며 나가려했다. 굳이 준면이 잡지 않아도 종인이 알아서 멈췄다.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형? 하며 종인이 뒤돌았다. 준면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종인이 한 번 더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종인이 먼저 선수를 치려했다.
“앞으론 클럽도 안가고, 절대로 안취할게. 그리고… 또 뭐있지?”
비굴하게 부탁하는데도 준면은 표정변화가 없었다. 종인은 한 번 더 무릎을 꿇었다. 준면은 그 모습을 보고 약간 흔들리는 듯 했다. 그걸 발견한 종인이 제발, 형. 살려줘. 라며 동정심 유발을 일으켰다. 지금 이 약속도 취소할게. 그러니까. 준면이 식탁위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혹시 막 절이나 이상한 사이비 같은데 보내려는 게 아닐지 걱정 되었다. 신호음 소리가 종인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고 준면이 여보세요. 라고 했다.
“아, 선배. 찬열선배 어디 사는지 알죠?”
선배라는 말이 나오자 종인은 안심했다. 예전에도 몇 번 준면의 아는 대학선배들 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철들고 오라고 한 준면의 말을 무시하고 그 선배들과 신나게 준면을 씹었다. 어차피 다 장난이긴 하지만. 아, 네, 네, 그럼 선배가 데리고 갈거죠? 네, 알겠어요. 통화가 끝나고 종인이 눈을 반짝반짝 거리면서 준면을 보았다.
“지금 당장 짐 싸.”
“네, 알겠습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종인이 신이 나며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준면의 전화통화를 엿들으니 몇 번 만난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종인은 안심을 하고 옷부터 챙기려 했다. 준면이 그런 종인을 한심하게 보더니 뒤돌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생각하는 것이 있는지 다시 뒤돌아보았다.
“아, 거기 시골이다.”
“에?”
“목장이야. 거기서 젖소 젖이나 짜면서 정신수행을 하렴.”
그러고 준면은 들어간다. 종인은 자신이 잘못 들었거나 준면이 잘못 말했다고 믿고 싶었다. 뭐? 목장? 미쳤어? 괜히 겁주려고 그러는 거라 믿고 싶었다. 그러니까 믿고 싶었다고.
종인은 조수석에 앉아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아련하게 보았다. 운전을 해주기로 한 준면의 친구 종대는 그런 종인을 보고 혀를 찼다. 파릇파릇한 스물다섯에 저렇게 죽을상이니. 애를 어떻게 한 거야. 분명 준면의 친구지만 종인의 편을 더 들어주고 있는 종대였다. 출발을 했는데도 종인은 그저 멍하니 건물이 지나가는 풍경만 감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짓을 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는가. 독한사람. 속으로 생각했다. 종대가 그런 종인의 분위기를 살피며 조심스레 오디오를 켰다. 잔잔한 팝송이 나오고 있었다. 종인이 반쯤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전 차라리 형이 내 진짜 형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하는 소리가 이런 말이다. 종대는 종인이 차에 타고 나서 계속 이런 생각만 한 게 아닌지 걱정 되었다. 만약 형이 바뀐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또 호적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등. 상상력은 참 풍부하단 말이야. 종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종대는 마음대로 생각했다. 일단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한 종대가 말했다.
“준면이 들으면 넌 그대로 죽는다. 걔가 생긴 거하고 다르게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데.”
“그러니까 그래요. 형이랑 나랑 이름도 비슷하잖아요? 이참에 바꿔요.”
그러고 보니 이름도 비슷하다. 만약 종인이 진짜 동생이었으면 어땠을까. 인내심이 강한편인 준면이 이렇게 까지 하는 걸 보면 장난이 아닐 거다. 들어보니 클럽 죽돌이에 돈을 펑펑 쓰고 다닌다던데. 만약 뒤처리를 다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내 동생이라면 절대로 가만히 안둘 거다. 목장에 조용히 쳐 박혀있는 것도 양반이라 생각한 종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을 확인한 종인이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그거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나온 대사냐?”
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아마 최다니엘이랑 신세경이랑 죽기직전에 한 대사였나? 그렇게 생각한 종대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드라마에서와 비슷하게 지금 비도 내리고 있었다. 진짜 무슨 일 일어나는 거 아냐. 종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생은 생각하는 데로 된다는데 불길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그런 말 하지마라. 불안해.”
“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난 죽고 싶지 않다고!”
종인이 갑자기 운전석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리고 운전대를 마음대로 돌리려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종대가 절대로 운전대를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니 차가 지그재그로 마음대로 달렸다. 중앙선 침범은 기본이고 차가 인도에 올라가려고도 했다. 이대로 안 되겠다고 생각한 종대가 브레이크를 밟는 다는 것이 그만 가속페달을 밟았다. 이번엔 종인도 무서운지 운전대를 붙잡아 자기 쪽으로 끌었다. 맞은편에서 트럭이 오고 있었다.
“악!!!!!!”
둘 다 동시에 비명을 외쳤다. 운전대 놓으라고! 종대에 외침에 종인은 더 세게 잡았다. 고의가 아니었다. 지금 종인은 자신이 잡고 있는 것이 운전대라는 것도 몰랐다. 그만큼 정신이 나가있었다. 트럭과 부딪치기 직전 종대는 기도를 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그리스로마신화 12신 그리고 또……. 무슨 신이 있었더라? 아무튼 살려주세요. 종인은 준면님 준멘! 이라며 준면의 친구들이 부르던 별명을 부르며 기도했다. 그때는 비웃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간절했다. 형… 난 이렇게 가나봐. 트럭과 충돌하기 1초전 본능적으로 종대가 이상한 괴성과 함께 발을 옮겨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가 멈췄다. 종인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앞에 트럭이 있었다.
“살았다…….”
종대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리고 종인을 노려보았다. 종인은 허허 하고 웃었다.
“빨리 손 떼.”
종인은 쥐고 있던 운전대에서 손을 떼었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결국 예정시간 보다 빨리 도착했다. 트럭에서 기사가 뒷목을 잡으며 내리는데 종대가 바로 페달을 밟았다. 멀리서 트럭기사가 날뛰는 것이 보였지만 종대는 신경 쓰지 않고 밟았다. 웬만한 놀이기구를 타도 멀미가 나지 않는 종인인데 차의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살면서 120이 넘는 속도의 차는 처음 타봤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종대는 잘 있어라. 라는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돌아갔다. 종인은 멍하니 넓은 초원을 보았다. 우리나라에도 몽골 같은 곳이 있었어. 마치 말이 뛰어다닐 것 같은 곳에 음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 종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멀리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 번 더 음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 옆을 돌아보자 젖소가 두 마리 있었다. 가까운데 있었는데 괜히 멀리 살펴봐서 민망해진 종인이 주위를 살폈다.
“어?”
약간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종인이 그 쪽으로 돌아봤다. 어떤 소년이 종인을 보고 의아한 듯이 보고 있었다. 소년이 어? 라고 한 뒤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누구든 말을 해야 할 텐데. 소년이 누구세요? 라고 하던가. 종인이 넌 누구니? 라는 등의 말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 종인은 분명 소년에게 넌 누구냐고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냥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종인은 이게 날 놀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눈싸움을 하듯 노려보았다. 그러자 소년도 경계를 가지며 노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는데 누군가 저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형! 왜 여기 있어?”
“세훈아, 여기 이상한 아저씨 있어.”
아저씨 아니거든. 대꾸해 주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아마 눈싸움을 하던 소년의 이름이 경수고 지금 막 여기로 온 소년의 이름이 세훈일 것이다. 경수의 손가락을 따라 세훈이 종인을 보았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보이더니 박수를 탁! 하고 친다.
“저희 삼촌 친구 동생 분이세요?”
“너희 삼촌이 누군데?”
“이름이 박찬열인데요.”
종대가 목장 주인의 이름이 박찬열이라고 했었다. 준면과 같은 대학의 선배라고 들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해서 그림을 그리려고 여기사나. 라는 생각이 든 종인이 멍하니 들판을 보았다. 저기요? 세훈이 종인의 어깨를 치자 그제야 종인이 정신을 차린다. 종인은 이렇게 자주 멍을 때렸다. 경수는 세훈의 뒤에 숨어 잔뜩 종인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딱 봐도 고등학생인데 다 알겠지.
“그럼 집에 들어가실래요?”
“어, 그래야지. 그런데 집이 어디야?”
“저 따라오세요.”
경수와는 다르게 세훈은 침착하게 종인을 대했다. 만약 경수하고만 있었다면 종인은 원래 성격이 나와 난동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세훈을 따라 걸으니 점점 집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목장이라서 오두막집에서 살줄 알았는데 의외로 양옥집이고 거기다가 2층집이다. 딱 보아도 자신이 살던 집보다 훨씬 넓어보였다. 세훈이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라는 말을 하자 종인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옆에 캐리어를 놓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경수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아빠~”
그리고 부엌에서 경수를 안고 나오는 남자가 보였다. 종인은 본능적으로 저 남자가 찬열이란 걸 알았다. 아마 여기에 사람이 더 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 넓은 집에 세 명만 살아? 처음 봤지만 새삼 찬열이 다르게 보였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아니지. 또 딴 생각으로 멍 때리던 종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저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며 달려갔는데 설마 속도위반?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30대 초반인데, 그리고 저 애는 고등학생정도로 보이고 그러면 나이가… 잠깐 형의 1년 선배라고 했는데? 이게 뭐 어떻게 되는 거야. 찬열이 종인을 보고 앉으라는 듯이 의자를 가리켰다.
“준면이 동생 맞지? 반가워. 그런데 진짜 안 닮았다.”
“네…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얘 이름은 경수, 도경수고, 내 아들이야.”
직접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놀라웠다.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았다. 지금 29살 이라는 소린데 몇 살 때 대체 사고를 친 거야. 또 멍을 때리는 종인을 보고도 찬열은 그냥 세훈을 가리키면서 소개했다. 내 조카야. 이름은 오세훈이고. 계속 찬열과 경수의 관계에 대해서 이상함을 느끼던 종인의 정신의 제자리로 만들어 놓은 말을 찬열이 했다.
“아, 내 친구들이 내 성격이 준면이랑 닮았데.”
살려주세요. 순간 무릎을 꿇을 뻔한 종인이 간신히 참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김준면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고난의 시작이겠군. 찬열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붙어있는 경수는 종인을 향해 혀를 쭉 내밀었다. 마음 같아선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 참았다. 찬열을 향해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웃지 마요. 무서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