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Together 03
“준면이가 너한테 바꿔달라는데?”
종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찬열에게서 휴대전화를 받았다. 혹시 드디어 다시 돌아가게 해주려고 그런 건가. 하긴 평소보다 오래 있긴 했다. 종인은 기대하며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갔다.
“백현이가 유학 간데.”
“뭐?”
종인은 자신이 잘못들은 거라 믿고 싶었다. 뭐라고 형? 다시 물어봤자 준면은 똑같이 유학을 간다는 말만 할 뿐이다. 나랑 상의도 없이 혼자 결정한 거야? 종인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과 만났을 때는 그런 말을 한 번 도 한 적이 없었으면서 갑자기 유학을 간다고 하니 그것도 준면을 통해서 들이니 기분이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헤어지자고 전해달래.”
종인은 잘못하면 수화기를 놓칠 뻔하였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분명 헤어지자고 말하는 백현의 모습이 그려졌다. 준면에게 말하면서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백현이 내일 간데. 공항 갈래?”
“어.”
이런 식으로 끝을 맺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사귈 때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않았다고 해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고 싶진 않았다.
종인과 백현이 처음 만난 건 신입생 MT 때였다. 별로 그렇게 특별하게 만난 건 아니었다. 종인은 그 때부터 여자를 끼고 놀았다. 사람이 그리워서, 손길이 그리워서 그랬다. 자신의 형은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싫었다. 항상 잔소리만 하고 돈에 집착하고 독한 형이 싫었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자신을 위한 거란 걸 알아도 형이 좋아지진 않았다. 자신의 앞길만 보는 형이 싫었다. 그래서 더 삐뚤어 졌다. 나 좀 봐달라는 듯. 그럴 때 마다 형은 혀를 내두르면서 다른 곳으로 쫓아냈다. 자신이 바라는 건 이런 전개가 아닌데. 어디에 말할 데도 없었다. 그래서 종인은 걷잡을 수 없이 삐뚤어졌다. 여자 동기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종인은 답답해져 방을 나왔다. 그 때 거의 동시에 옆방 문도 열렸다. 거기에는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의 백현이 서있었다.
“뭐야.”
한참동안 대치하자 먼저 지겨워진 종인이 말을 했다. 백현은 골 때린다는 듯 머리를 잡았다. 종인은 기분이 나빠졌다. 저 행동은 종인이 사고를 쳤을 때 준면이 하던 행동 중에 하나였다. 종인은 짜증이 났지만 처음보는 사람이니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물고 빨던 뭘 하던지 상관은 없는데. 소리는 좀 낮춰라.”
“뭐?”
“여기 방음 안 되는 거 알지?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네.”
백현은 다시 자신의 방에 들어가려 했다. 종인은 무슨 생각인지 자신도 모른 채 들어가려는 백현의 팔을 잡았다. 그저 약간의 장난을 치고 싶었다. 힘없이 끌려온 백현이 뭐야. 라는 눈빛으로 종인을 보았다.
“왜? 질투나?”
“뭐가.”
“너도 해줘?”
그제야 종인이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낸 백현이 인상을 썼다. 지금 같은 남자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백현이 신경질 적으로 종인이 잡고 있던 팔을 빼냈다. 종인은 지금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놀림을 당하는 걸 싫어하는 백현은 종인의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다.
“지랄. 난 너 같은 거 관심 없거든.”
“그럼 남자한텐 관심 있어?”
“할 말이 없다.”
백현이 종인을 뒤로 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진짜야? 진짜로 남자 좋아해? 백현은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방에 들어갔다. 백현이 들어간 자리를 멍하니 보던 종인이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허, 참. 농담도 못 받아 주냐.”
자신과 잤던 여자가 깨어난 것 같은 느낌에 종인은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특별할 수도 있는 만남일지도.
그리고 또 둘은 같은 동아리가 되었다. 맞지 않게 사회봉사라는 타이틀이 걸려있었다. 같은 동아리가 되어도 둘은 한참동안 서로를 몰랐다. 그 날일을 잊어버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관심이 없으면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도 비슷했다. 그러니까 그 날 그렇게 잠시 만났던 건,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잠깐의 만남 이후 종인은 다시 방에 들어가 여자와 잤고, 백현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둘은 서로를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고의적이 아니라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까. 우연히 봉사를 하러온 고아원에서 다시 만났다. 종인이 힘들어 하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테이블을 두고 맞은편엔 백현이 앉아 있었다. 종인이 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뭔가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러니까… 엠티?”
먼저 알아 챈 건 종인이었다. 아니다, 백현은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 했을지도.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같은 동아리였어?”
“그러게.”
“근데 너 진짜로 남자 좋아해?”
백현이 인상을 잠시 썼다 풀었다. 그리곤 앞에 있는 음료를 마셨다. 상대를 해주기 싫다는 뜻이었다. 종인은 그 짧은 시간에 백현을 관찰했다. 사실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백현을 보고 있었다. 종인은 사람 파악을 빨리 그리고 잘했다. 백현과 마주하고 일부로 기억이 날 듯 말 듯 그런 척을 했다. 종인이 내린 결론은 백현은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과 안 그런척해도 외로운 점을 종인은 빨리 보았다. 그래서 일부로 농담을 하며 백현에게 다가가려 했다. 뭐 때문에? 동질감?
“나랑 만나볼 생각 없어?”
“지랄.”
백현은 코웃음을 쳤다. 남자 좋아하면 나 같은 타입 좋아하지 않아? 종인이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갔다. 백현은 의외로 피하지 않고 종인의 눈을 보았다. 눈치가 빠르다는 점도 비슷할지도. 어쩌면 백현이 먼저 종인을 관찰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번엔 백현이 다가갔다. 종인이 당황하며 약간 뒤로 물러섰다.
“그래, 너 같은 타입 괜찮네. 만나자.”
그렇게 시작했다. 연애라고 할 수도 없는 연애가.
종인은 백현과 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클럽을 다니며 여자를 만났다. 그렇게 해도 백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했다. 종인과 만난 여자를 찾아가 유치한 신파극도 하지 않았다. 의외로 둘은 사소한 스킨십도 하지 않았다. 키스는 물론 그 흔한 손잡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연애라고 칭할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준면에게 애인이라고 소개한 것 정도. 그 외에는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증거를 댈 수 없었다.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본인들도 몰랐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시간에 맡길 뿐. 보통 종인이 자신이 짜증났던 일을 만나면 백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주는 것 뿐. 만나면 그런 것 밖에 하지 않았다. 그래도 두 사람은 오랫동안 헤어지지 않았다. 뭔가 끊을 수 없는 끈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끈이 이젠 끊어졌다.
오늘 따라 집이 조용했다. 원래라면 경수와 되도 않은 시답잖은 이유로 싸우고 있어야 할 종인이 그저 멍을 때리고 있었다. 세훈이 눈치를 보고 있었고, 경수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종인을 놀리려는 걸 막았다. 대충 준면에게 얘기를 들은 찬열이 종인을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연인 사이에서 이별은 가장 아픈 일이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새벽에 떠난다고 했으니 지금 공항에 간다면 충분히 만날지도 모른다. 시계를 잠시 보던 찬열이 종인에게 다가갔다. 종인이 인기척에 찬열을 보았다.
“갈래?”
“어디를요?”
“공항으로”
종인이 한숨을 쉬었다. 사랑했나. 생각을 해보았다. 연애라고 하기에도 뭐한 연애였다. 그 흔한 손도 한 번 못 잡아봤다. 그저 백현과 있을 때는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행동하기 싫었다. 편안함 때문에 그 긴 시간 동안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때까지 아무에게도 느끼지 못한 그 편안함 때문에. 그래서 결국 사랑이 아닌 편안함이었나. 종인이 눈을 감았다 떴다.
“공항으로 가요.”
그래서 결론은…….
의외로 찬열은 비싸 보이는 차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차도 가지고 있었어요? 라며 물어볼 종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수석에 탔다. 아직 결정 내리지 못했다. 5년의 시간동안 백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사실 종인은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저 만나는 여자들은 원나잇 상대들일 뿐이었다. 한 사람과 오랜 시간동안 만나는 걸 싫어했다. 그러니까 연애는 백현과 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흔한 사랑해 란 말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찬열이 노래를 틀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종인은 달렸다. 혹시나 이미 갔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평소에 달리는 것 보다 빠르게 달렸다. 의자에 앉아 있는 백현이 보였다. 종인이 안도하며 백현에게 다가갔다. 백현이 놀란 눈으로 종인을 보았다. 결국엔 말해줬나 보네. 준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종인이 백현을 안았다. 이것이 처음 하는 스킨십이다. 손은 물론이고 팔짱, 포옹도 하지 않았다. 연인 사이가 맞는지 의심을 해 볼만도 했지만 하지 않았다. 백현이 숨이 막혀왔다. 그러자 종인이 백현을 놓았다.
“왔네.”
“갑자기 이게 뭐야. 유학은 또 무슨 소리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막상 보자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따지게 되는 말투가 되었다.
“독일에서 제의가 왔어. 놓치면 아깝잖아.”
백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종인이 어이없다는 듯 백현을 보았다. 백현은 음악으로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스카우트 제의가 올만도 했다. 유학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 유학은 그렇다 쳐. 그런데 왜 헤어져? 멀리 있어도 계속…”
“우리가 사랑을 한 거니?”
대답하지 못했다. 이별 통보를 받고 계속 그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백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비웃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는 듯, 종인이 대답하지 못할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웃었다.
“우린 사랑을 한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동질감이었어.”
백현이 그 말을 하자 종인은 마음속에 있던 돌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결론은 동질감이었다. 어쩌면 종인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지하지 못했을 뿐. 안내방송이 나왔다. 백현의 비행기였다. 백현이 짐을 들곤 뒤돌았다.
“너를 만나서 좋았어. 그러니까 다신 만나지 말자.”
이 말에는 우린 친구 사이도 연인 사이도 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종인이 손을 흔들었다. 백현도 따라 흔들었다. 방금 전에 했던 포옹은 이젠 아무 사이도 아니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무 사이도 아닌 채로 만나길. 그건 종인도 바라는 바였다. 그래, 다신 만나지 않도록 노력하자. 종인은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었다.
다시 목장으로 돌아왔다. 찬열이 잠시 차를 주차하고 오겠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종인이 집의 문을 여니 조용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경수도 세훈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괜히 깨우긴 싫어서 불을 켜지 않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곤 방에 가려고 하는데 뭔가 발에 걸렸다. 뭔가 싶어 확인하려 해도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종인이 할 수 없이 불을 켰다.
“경수야!”
경수가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할 수 없었다. 축 늘어져 있는 경수를 안았다. 식은땀을 흘리고 숨이 뜨거운 게 아픈 것 같았다. 경수의 이마에 한 번 손을 올리고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리니 상황이 꽤나 심각 한 걸 알았다. 그리곤 경수의 방에 눕혔다. 지금 종인의 행동이 의외라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종인은 경수가 심한 장난을 칠 때만 유치하게 싸웠지 평소에는 귀여워하는 편이었다. 그래봤자 꼬맹이인걸. 본인은 모르겠지만 여기에 와서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약이라도 먹여야 하나.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사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찬열일 것이다. 종인이 급하게 달려 나갔다.
“무슨 일 있어?”
“경수가… 경수가 아픈 것 같아요”
뭐? 찬열이 경수의 방에 단걸음에 갔다. 그러니 침대에 누워 땀을 뻘뻘 흘리고 얼굴이 붉게 변한 경수가 보였다. 찬열이 침대 옆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거기엔 온갖 종류의 약이 있었다. 종인아, 물 좀 가져다줘. 종인이 부엌에서 미지근한 물을 가져왔다. 찬열이 가루약을 물에 타더니 경수를 안곤 입에 넣었다. 입 밖으로 흐르는 물을 휴지로 닦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니 경수의 얼굴 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경수가 눈에 눈물이 가득 찬 채로 일어났다.
“아빠…”
“그래 아빠 여기 있어.”
경수가 찬열을 와락 끌어안았다. 경수가 울먹이는 소리가 문가에 있는 종인에게 까지 들렸다.
“또 악마가 나타났어…”
“괜찮아.”
꿈에서 악마가 나타났다며 우는 경수를 찬열이 계속 괜찮아, 괜찮아 하며 토닥거렸다. 종인은 왠지 자신이 이 방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