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미안해, 진짜……. 준면오빠가 갑자기 일이 생겼다잖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아! 진짜 너랑 딱!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괜찮다니까? 근데 그거 말해주러 우리 집까지 온 거야? 걍 전화로 하지?"
"아~ 어, 근데 소개팅은 있어."
"무슨 소리야 그건?"
"준면오빠 말고, 다른 오빠가 나온대."
"엥? 뭐?"
"그러니까 빨리 씻고 나와? 알았지?"
저 말을 끝으로 나를 화장실로 밀어 넣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문 부서져 정수정…….
***
"와…….대박……."
"헐…….대박……."
"미친...정수정 신의손이다."
"솔직히 이정도로 기대하진 않았는데..와...진심 화장 잘됨."
"야, 이래서 화장을 하는구나. 대박이다..."
"사진 사진!!! 이런 건 기록으로 남겨야해!!!!"
수정이의 엄청난 변장술 덕분에 예뻐진 얼굴로 신나게 셀카를 찍어댔다.
존나 이건 다시없는 기회야... 기록으로 남겨야해...
그렇게 신나게 셀카를 찍다가 30분이 훌쩍 넘어가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와야 했다.
세륜 택시비.....아까워.....
'눈꽃카페로 가면됨. 사진 보내줄게.'
대박. 존나 잘생김!!!!
***
아메리카노와 홍차를 사이에 두고 그 분은 말이 없다.
인사를 하고, 서로 이름을 묻고는 자연스럽게 침묵이 찾아왔다.
불쾌한 티를 내는 건 아니었지만 아마 상황을 봐서는 억지로 끌려온 게 아닌가 싶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슬쩍 눈빛이 스치면, 경련인지 눈웃음인지 모를 그런 어색한 웃음을 서로 내비추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진심 눈 호강 하는 건 좋은데.... 불편해 죽을거같다....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가, 찻잔도 만지다가 결국엔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참 많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아주 작고 귀여운 생물체 한 마리가 지나간다.
어, 잠깐 강아지?
“강아지다!!!”
“풉!”
그 분이 커피를 한 모금 넘기려는 찰나, 내 소리에 넘기던 커피가 아주 약간...다시 밖으로 나오면서 사래가 걸린 듯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아.죄송해요. 괜찮으세요?”
“..아..네...”
급히 건네준 휴지로 입가를 닦으며 터져 나오는 기침을 삼키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미안하다. 굉장히 미안하다.
“아..강아지가 있어서...”
“네. 그런것 같았어요.”
“하하....”
나는 진도 9의 동공지진과 함께 썪은미소로 사과의 진정성을 표현했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다행이 기침은 멎었는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시발 나 존나 욕먹을 것 같아.
“강아지 좋아 하시나 봐요?”
“네? 아, 네.”
“작고 귀여운?”
“다 좋아하는데..전 큰 것 좋아해요!”
“허스키나, 상근이요?”
“네! 근데 사실 다 좋아요! 요즘은 큰 초코푸들이 예쁘더라고요.”
“아- 초코푸들.”
쌍꺼풀 없이 큰 눈을 살짝 내리 깔며 혼자 작은 소리로 뭔갈 중얼거린다.
뭐라는 거야...
“저.....기....그...나이가...어떻게 되세요?”
“스물다섯이에요.”
“아...”
“스물네살이죠?”
“네.”
“그럼 저기가 아니라 오빠네요. 민석오빠.”
저기가 아닌 그 분은 끝에 ‘민.석.오.빠’를 3살 아가 가르치듯 또박또박 발음하며 마지막엔 눈웃음까지 내 동공으로 때려 넣었다.
엄마..나 폭행당했어...심장폭행....
그렇게 내 심장을 폭행한 민석오빠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살짝 살짝 웃어가며 잘 먹는 음식이라던가, 책, 영화 같은걸 물어보고는 내 대답에 아주 정직하고 충실하게 맞장구를 쳐줬다.
(아-, 그렇구나-, 나도 거의 이 세 가지가 끝이었다.)
말하다보니 훨씬 좀 편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생긴 얼굴로 웃어주니 내 정신건강에 아주 좋다. 매우.
“배 안 고파요? 파스타 먹으러 갈래요?”
“네! 좋아요.”
“내가 자주 가는 집 있어요. 거기 가도 괜찮죠?”
“네-”
“여기서 걸어서 얼마 안 걸려요. 가요. 거기 진짜 맛있어.”
암호닉
워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