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랴일러 아고물
있죠, 나 아저씨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알아?
넌 아직 어린 아이잖아. 일리야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타일러에게 의문을 던졌다. 그리곤 읽고 있던 의료기구와 관련된 자료를 덮은 뒤, 제 턱을 괴고 타일러를 바라봤다. 천진난만한 눈동자가 자신을 담고 있었다. 저 아이를 알게 된지 벌써 3년이다. 타일러 조셉 라쉬, 한참 뉴스에서 핫하던 인물이다. 아마 그에게 걸린 헤드라인이 ‘신은 공평하셨다.’ 였던가. 타일러는 지나치게 똑똑했다. 개중에 언어능력이 가장 출중하여 5살 때는 이미 8개의 언어를 할 줄 알았고 19살인 지금은 각 나라 지역 사투리들도 포함하여 거의 서른 개의 언어를 구사하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어려운 단어가 난무하는 이쪽에 투입 되어 저랑 같이 통역 일을 하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허나 불행하게도 그의 지능은 고작 7살에서 멈추고 말았으니. 사람들의 입에서 안타까움이 섞인, 신은 왜 공평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튀어나올 만도 했다. 아직은 순수한 아이의 감성을 지녀서일까 타일러는 가끔 제 조카와 비슷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일리야가 머릿속으로 ‘사랑은 항상 키스를 하는 거예요!!’라고 외치는 조카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을 때, 타일러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요, 알 수 있어요. 타일러는 배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아저씨를 보면, 배가 따뜻해져요.
.....
그리고 그 따뜻함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에요.
타일러.
그러면 나는 한 없이 행복해져요.
타일러 라쉬.
난 아저씨를 사랑해요.
키스해도 돼? 느닷없이 튀어나간 문장에 일리야는 순간 딸꾹, 하고 웃긴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망할. 일리야의 얼굴이 빨개지자 타일러는 꺄르르 웃으며 넓게 팔을 벌려 주었다.
그럼요.
일리야 품에 있던 종이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곧 타일러의 입술은 낯선 이의 온기를 품었다.
2. 마크일러대니
그러니까, 타일러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 싸구려 기타는 뭡니까.
제 기타 싸구려라고 운운하실 클래스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럴리가요, 제 딴에서는 충분히...
사람이 싸구려인데 어떻게 제 기타보다 레벨이 높다고 볼 수 있죠?
고고한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이래서 고래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거구만. 제가 이런 걱정을 하는지 모르는 지 저 두 남자는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며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타일러, 손톱.
묵직하게 저를 불러오는 목소리에 타일러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고 손톱을 깨작깨작 물어뜯고 있었음을. 대니는 손을 뻗어 타일러의 손을 어루만져주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많이 혼냈는데도 고치지 못한 거야? 나쁜 어린이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잠시나마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으나 바로 옆에서 아니꼬운 눈길로 쳐다보는 마크로 인해 곧 깨지고 말았다. 아마 대니의 눈에 어른거리는 승리의 환희를 읽었기 때문이었겠지. 타일러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크에게 물 한 잔을 내밀 뿐이었다. 마크는 입꼬리를 올리며 우아한 상류층 발음으로 고마움을 표했고 그것이 2차전의 시작점. 아니 시,발스러운 시,발점이었다.
3. 줄일러
야!! 키는 159에 공부 잘하고 내가 요정이라고 부르는 애 중에 나랑 밥 먹으러 갈사람??!!
......줄리, 그냥 나랑 가고 싶다고 해.
티 났어? 강의가 끝난 후 방긋방긋 웃으며 다가오는 줄리안에 타일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저놈을 어떻게 해야 진정시킬 수 있을까. 이런 타일러의 마음을 전혀 모를 줄리안은 그저 타일러를 뒤에서 껴안으며 빨리 밥을 먹으러 가자며 재촉하고 있었다. 줄리안을 등에 업은 채(사실상 줄리안 품에 거의 파묻힌 상태였지만) 강의실에서 나오며 타일러는 진지하게 인생을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은 서양의 언어가 아닌 새롭고 낯선 언어를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한국을 택했고 교환학생까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만난, 정말 생또라이 같은 룸메이트를 제외하고 말이다. 또한 제가 그 룸메이트와 연인관계까지 갈 줄 알았다면 당장에 한국행 티켓을 취소했을 것이다. 타일러는 가끔 줄리안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이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썸’을 탈 때였다. 대표적인 케이스를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case 1.
줄리안, 너 중국어 교양 책 있어?
오! 있어. 빌려 줄까?
빌려 줄 수 있으면 빌려줘. 수업만 듣고 줄게.
느긋하게 줘도 돼! 나 중국어 수업 안 들어.
.....뭐? 그럼 왜 샀어, 돈 아깝게.
너 빌려주려고!!
.........
case 2.
감기에 된통 걸려서 한 번 빠진 뒤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였다.
줄리안
왜왜?
책 몇 쪽부터 몇 쪽까지 나갔었어?
쪽쪽.
......
뽀뽀 쪽쪽 만큼!
.....
안 해줄 거야?
case 3.
교양 잘 봤어?
아니! 대신 딴 걸 잘 봤어!!
오, 전공을 괜찮게 봤나봐? 너 좀 공부하더ㄴ....
지금 너 잘보고 있잖아!!!!
........
저절로 튀어나오는 한숨. 남자와의 연애는 이렇게 힘든 것인가...타일러는 줄리안과 밥을 먹으면서도, 줄리안이 춥다고 손을 잡아 코트 안에 넣어주는 도중에도, 그대로 어둑한 골목을 지나 기숙사에 들어갈 때까지도 빙빙 돌아가는 요상한 생각들에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리안의 고백을 받아들인 건.
타일러!! 이제 뭐할 거야?
내 침대 가서 잘 거야.
너 나 없으면 못 자잖아.
.......
같이 누워 줄까?
....응.
이런 긍정적인 가변성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타일러는 침대에 누워 저를 껴안아 오는 제 애인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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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을 쓰기에는 제가 마이너 합작에 참여를 하게 되어서....★ 조금 무리 일 듯 싶어 단편들을 가져왔습니다ㅋㅋㅋㅋ
이전 글들에는 항상 떡들이 들어가다 보니 저도 좀 순수하고 귀여운 걸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요렇게 탈총으로 세 커플을 가져왔네요 ㅋㅋㅋ
제가 정말 언젠가 꼭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커플들을 소개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