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잖아, 변했잖아.."
"왜 그런 생각을 해."
"너 나한테 화낸 적 없었는데.."
이 쯤 되니 내가 조금 쭈구러들었어. 김종대의 말이 머리에 계속 맴돌고 내가 정말 백현이한테 힘이 되지는 못할 망정 짐덩이만 되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그래도 너는 나의 그런 모든 걸 떠안아 왔으니 지금도 나를 이해해달라고 나는 백현이한테 요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왜 내가 화냈던 걸 기억 못해, 내가 화냈던 적이 없어?"
확실하게 백현이 목소리가 누그러졌어. 나는 조금 안심을 했어.
"나는 네가 아프면 항상 화가 났어."
"..."
"그래서 나는 너 아플 때마다 화를 냈는데, 기억 안나?"
응, 안나는데..과거를 되짚어 생각해봐도 백현이가 나한테 화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엉망진창인 상황 속에서 백현이는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조곤조곤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어. 자기가 화를 냈었다고 설명하는 꼴이라니, 누가 보면 웃겠구나 싶었지.
"너 요 이마 찢어먹은 거 처음 아니지."
"아.."
"이제 기억나?"
백현이가 손으로 내 이마를 쓸어만지며 입을 열었고 나는 그제야 기억이 났어. 백현이가 아마 그날 처음으로 화를 냈을거야. 내가 아이스크림이 녹는다며 계단을 뛰어올라가다가 엎어져서 이마가 찢어졌던 날 변백현은 나한테 화를 냈고, 나는 눈치를 봤던 걸로 기억해.
그거 말고도 백현이가 화를 냈던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죄다 내가 다쳤을 때의 일이었어.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가 죄인이 된 것 마냥 고개가 푹 숙여졌어.
"안 변했어, 똑같아. 네가 많이 다쳐서 나도 화가 많이 났나봐."
다시 울먹거리는 나와는 달리 백현이는 웃었어.
"앞으로도 너 아플 때마다 나는 화가 날거야."
"..."
"그러니까 아프지마."
백현이는 부드럽게 손을 감싸잡으며 못된 다짐을 했어. 나는 거기에 또 고개를 끄덕이며 지키지못할 약속을 했지. 그리곤 아까 내뱉었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백현이의 울고싶다는 말이 계속 맴돌아 토하듯 사과의 말을 건넸어. 앞 뒤가 안 맞고 하고 싶었던 말은 머릿속에만 맴돌아서 정작 괴상한 사과를 건넸지만 백현이는 다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어.
"..미안해, 내가..아까..미안해."
"나도 화내서 미안해. 늦게 와서 미안해."
원래 나는 백현이가 병원일때문에 생긴 사건에 대해서 미안해하는 걸 굉장히 싫어했는데 이번은 그냥 사과를 받기로 마음먹었어. 머리로는 백현이가 일이 바빠 내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걸 받아들여도 속으로는 섭섭한게 쌓이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예전 같았으면 또 미안하다고 한다며 불같이 날뛰었을 일을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어.
ㅡ
"뜨거, 뜨거워!"
"뜨거워?"
"..아, 됐다. 적당해."
쏴아아하고 닿는 머리의 물이 뜨거워 손을 내저으며 난리를 쳤더니 바로 온도를 차가운 쪽으로 돌려. 야밤에 오바이트를 한 나 때문에 샤워실에서 세수를 하다가 머리도 감겨주겠다는 백현이 덕에 불편한 샤워실 의자위에 앉아서 입만 벙긋거리는 중이었지. 어차피 수액줄도 다 뽑혔겠다, 이 참에 머리나 감고 다시 연결하자 싶었어.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나서 백현이가 머리에 수건을 둘둘 말아서 올려줬어. 내가 항상 집에서 씻으면 머리에 수건을 감은 채로 화장품을 바르곤 했었거든. 그러고 보니 화장품도 죄다 수면실에 있네, 귀찮아. 이마를 피해 요리조리 얼굴을 씻겨 낸 백현이가 휠체어에 나를 다시 앉히고 천천히 병실로 향했어. 아, 오랜만에 머리 감았더니 개운해서 날아갈 것 같아.하는 내 말에 뿌듯한 듯 바람빠지며 웃는 소리가 들려.
"화장품 안 발라도 돼? 안 바르면 당긴다며."
"귀찮아. 그냥 잘래."
"가져다 줘?"
"수면실에 있어, 너 거기 못 들어가잖아."
내 말에 백현이는 하는 수 없이 수긍을 했지. 뭐 어쩌겠어, 여자 수면실에는 남자가 절대 못들어가는 걸. 나는 백현이 당직실을 수 없이 드나들곤 했지만..
병실에 도착해서 찬열이가 깰까 싶어 백현이와 나는 목소리를 죽였어. 휠체어를 침대 앞에 세워둔 백현이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 새 이불과 커버를 들고 왔어. 그냥 간호사를 시켜도 될 일인데 백현이도 내가 간호사인지라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다 자기가 하는 편이야. 무튼 그렇게 커버도 이불도 손수 갈아 다시 세탁실에 가져다 놓은 백현이는 그제야 뽀송뽀송한 침대에 나를 올려줬어.
"아, 수액세트 안 가져왔네. 조금만 기다,"
"그냥 자면 안돼?"
"어, 음..."
"오늘 밤만.. 어차피 조금 있으면 해뜨잖아."
"그럼 오늘만 빼고 잘까?"
변틀러님이 인심을 써주신 덕에 나는 오랜만에 수액줄을 안 매달고 편히 잘 수 있었어. 내일 출근하기 전에 해주고 가야해, 나 자고 있을때. 라는 내 요구에 알았다고 대답한 백현이가 이불을 또 목 끝까지 덮어줬어. 쟤 습관이야, 난 이게 답답한데. 나도 습관처럼 이불을 슬쩍 내리고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잠들었어.
ㅡ
"미친!!!!변백현!!!!!!"
"..아, 누나. 할머니 퇴원하셨다고 너무하네.."
"변백현!!!!내가, 화장품....변백현 어디있어, 어?"
"누나..병실 같이 쓰는 환자 생각 좀요..아침부터 웬 난리야.."
나는 아침에 일어나 후끈거리는 얼굴에 찬열이를 마구 불러댔어. 병실 같이 쓰시던 할머니는 퇴원하셨다했고, 이 병실에는 어차피 찬열이랑 나 밖에 없으니 대놓고 마구 이름을 불러댔지. 잠이 덜 깬 채로 대답을 하는 찬열이에게 거울을 가져오라 시켰고 자기 거울을 들고 내 침대로 건너온 찬열이는 내가 지르는 괴성에 또 다시 경악을 했어.
"어, 뭐야..누나 얼굴 왜 그래요?"
"너도 보여!? 보이지!! 이게 다 변백현..하.. 변백현 빨리 데려와. 이 자식을 아주 그냥.."
"또 쌤 탓 한다. 그건 그렇고, 나 누나한테 할 말 있어요."
"나중에 해. 어떡해..이거 어떡해.."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붉게 발진이 올라오듯 여기저기 빨간 반점이 생겨있었고 나는 이게 뭔지 바로 알아챘지. 어제 화장품을 바르기 귀찮다고 그냥 잠든 내 옆에서 변백현이 얼굴에 뭘 발라주는 걸 잠결에 느꼈는데, 나는 그게 꿈인 줄 알고 깰 생각을 못했어. 그런데 그건 현실이었고 변백현이 내 얼굴에 바른 정체 불명의 물질 탓에 내 얼굴이 이렇게 뒤집힌거야. 원래 피부가 초초예민해서 친구 로션 한 번 얻어썼다가 알러지처럼 붉게 올라온 적이 있었고 그 뒤로 나는 절대 내 화장품이 아닌 걸 쓰지 않았는데.
"괜찮아요. 볼만해요."
"하.."
"밤에 싸우지 좀 마요."
정말로 피곤해 보이는 듯한 찬열이가 갑자기 거울을 보던 나를 향해 웃음기 가득한 말을 던졌어. 갑자기 허를 찔린 느낌에 거울까지 떨구고 찬열이를 쳐다봤어, 다..들었어?
"뭐, 뭐가.."
"둘이 싸우는 거 보니 누나도 그 쌤 백퍼 좋아하던데, 뭘."
"그게 아니라..밤에 좀 아파서.."
"쌤은 누나가 걱정된다고 그런건데-, 누나는 거기다 화를 내고.. 이건 뭐 오래된 연인들 싸움 같던데요? 자기, 변했어! 하는 그런 싸움 있잖아요. 한 십년 사귄 커플들이나 하는 대사 아니에요?"
십년이라는 말에 괜히 뜨끔해서 다시 거울을 주워들었어. 아니, 뭐..십년을 사귄 건 아닌데. 십년 즈음 봐 왔던 건 맞으니..
그렇게 찬열이의 훈계아닌 훈계를 듣고 있는데 벌써 회진 돌 시간이 된 건지 백현이가 들어왔어. 차트를 한 팔에 끼고 앞머리를 뒤적거리는 백현이는 간 밤에 내가 들들 볶았던 게 미안해질 만큼 피곤한 모습이었어.
"찬열아, 아침부터 다른 사람 침대 넘어가서는. 응? 얼른 와."
나한테 눈인사를 보낸 백현이는 조금만 기다려, 하고 말한 뒤 찬열이 침대로 걸어가 침대를 탁탁 쳤어. 재빠른 찬열이는 바로 자기 침대로 넘어갔지. 피곤해보이는 모습에 미안해진 나는 순간적으로 내 얼굴을 이 따위로 만든 백현이의 죄를 잠시 집어넣었어. 그래, 이건 약먹으면 하루만에 들어가는 알러지인데.
백현이는 피곤하면 눈이 침침해진다고 그랬는데, 오늘도 피곤해서인지 내 얼굴에 붉게 발진이 올라와있는 걸 알아채지 못했어. 나는 커텐을 열고 앞침대의 찬열이를 봐주는 백현이를 구경했어. 남자는 일할 때 가장 멋있다는 게 정말 맞나봐.
"밤에 아프진 않았고?"
"저는 안 아팠죠."
말에 씨가 있는 것 같은 찬열이의 대답에 백현이가 푸스스 웃었어.
"어디 한 번 보자, 하도 돌아다녀서 폐가 힘들어하겠다."
"쌤이 운동해야 좋다면서요!"
"뭐든 과하면 안 좋아. 똑바로 누워봐."
순순히 누운 찬열이의 옆구리 부근을 이리저리 살핀 백현이가 차트를 들고 또 뭐라뭐라 적었어. 정갈한 백현이 글씨가 또 차트 위에 적히겠지. 백현이는 차트에도 간호사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깔끔하고 정확하게 쓰는 버릇이 있어서 스테이션에서도 백현이 차트를 입력하는 날에는 훨씬 수월하다고 하곤 했었어. 이게 다 김간 덕이냐며 우스갯소리로 나를 띄워주기도 했었고 지나가면서 그 말을 들은 백현이는 맞다고 맞장구도 치곤 했지.
"쌤 근데요, 여자친구 없어요? 잘생겨서 여자 엄청 꼬일 것 같은데."
찬열이가 나를 쳐다보며 두고보라는 듯 백현이에게 말을 걸었어. 나는 또 우스워져서 고개를 퍽 숙였지. 찬열이는 백현이를 떠 볼 심산인 것 같았어.
"여자친구?"
"네! 막 여자 환자들이 쌤 좋다고 그러지 않아요?"
"나 결혼했는데."
백현이가 무덤덤하게 결혼사실을 밝혔고 나는 또 백현이의 그 말에 이상하게 심장충격을 받아서 마음 속으로 심장을 부여잡았어. 굽혔던 허리를 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결혼했다고 하는 모습이 나한테는 왜그리 설렘으로 다가왔는지 모를 일이야. 그냥, 뭔가 정말로 우리가 결혼했다는 게 자연스럽게 일상에 파고든 느낌, 그리고 백현이가 예전에 했던 말이지만 정말로 얘가 내 것이 된 느낌. 그런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어.
"..결혼?"
"응."
"..언제요?"
"내일이면 세 달 짼데, 왜? 찬열이가 내가 마음에 드나보네."
"와, 뭐야..."
능글능글 웃는 백현이는 그 틈을 타 찬열이를 놀려먹었고 찬열이는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했어.
"그럼, 둘이.."
"사내커플 처음 봐, 찬열이?"
"아니 그게 아니라.."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찬열이를 보고 백현이는 나를 쳐다봤어. 원망스럽다는 눈길이었지. 내가 어색하게 웃어보였더니 찬열이 머리를 한 번 꽁 쥐어박고 내 침대로 넘어와.
"찬열이 많이 놀란 것 같은데."
"하하..그러네.."
"왜 얘기 안 했어? 결혼한 거 숨기고 그러면 아예 못 숨기게 확.."
"뭐, 뭐래.."
"어? 얼굴 왜 그래?"
그제야 내 얼굴에 올라온 발진을 본 건지 백현이가 얼굴을 잡아 올려 이리저리 돌려보았고 나는 볼멘소리를 내뱉었어.
"어제 내 얼굴에 뭐 발랐어? 나 이상한 거 바르면 뭐 난단 말이야.."
"어제?"
"너 나 잘 때 얼굴에 뭐 발랐잖아, 그 때 일어나서 말렸어야 했는데.."
"어제..아, 크림. 그거 보습크림인데?"
"병원 보습크림을 나한테 바르니까 이렇게 되지!! 이게 뭐야. 엄청 못생겨졌잖아.."
"너 평소에 피부 건조하다고 해서, 그냥 자면 건조할까봐.."
내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백현이는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작은 웃음을 흘렸어. 너, 웃음이 나와!? 내가 한 대 칠 기세로 몰아붙이니 그게 아니라, 하면서 여전히 싱글싱글 웃어.
"모찌에 장식 올려 놓은 것 같아."
"뭐?"
"빨간 장식. 리본 같은 거."
또 이런 개소리를 하는 변백현 덕에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고 앞 침대에서 찬열이가 박수를 짝짝 쳤어.
"변백현 쌤의 콩깍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찬열아, 이상해? 나는 귀여운데. 아닌가."
"쌤 답정너죠? 웃지나 말고 물어보든지."
"그래, 나한테만 귀여워야지. 그렇게 인상쓰니까 화난 모찌같다."
내 양 볼을 정말 떡처럼 조물딱거리는 백현이의 손을 탁 쳐내고 잔뜩 토라져서 쳐다보지도 않았어. 여자들은 얼굴에 뭐 나면 얼마나 예민해지는데. 그것도 모르고..
"기분 풀어. 얼른 피부과 가서 약 타올게."
"..웃지마."
"아니,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
"웃음을 참는 노력이라도 해."
"알았어, 알았어. 미간에 주름 생겨요, 인상 쓰지마."
백현이가 내 미간을 살살 누르면서 주름 생긴다고 하길래, 또 속으로는 주름이 신경쓰여서 슬그머니 인상을 풀었어. 이제 나이도 나인데, 주름이 생길 때도 됐지..
"나 오늘 환자 엄청 늘었다? 병실 한 개 풀인 것 같아."
"..수고해."
"수고해야겠지, 그치?"
뭘 바라는 듯한 백현이 말투에 나는 끝까지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짜증나, 왜 애를 쉬지도 못하게 해. 밥은 먹었어?"
"밥 말구.."
"해줄거야. 그러니까 밥도 먹어. 응?"
매일같이 밥 못먹었어, 그러니까 뽀뽀해줘.하고 볼따구를 들이밀던 백현이었기에 얘가 지금 뭘 바라고 이러는지 뻔히 알 수 있었지만 속상한 마음에 투정부터 먼저 나와버렸어. 살이 또 빠지는 것 같아. 백현이 볼에 잡을 거 없으면 안되는데.
"찬열이 보는데 괜찮겠,"
결국 백현이 말도 끊어먹고 백현이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당겨 쪽쪽 입을 맞췄어. 또, 또 올라간다. 변백현 입꼬리. 오늘은 세번이야. 단호하게 떨어지는 내 입술에 변백현은 아쉬운지.
"세번은 아쉽지, 오늘 열심히 일 해야하는데."
제 멋대로 열번도 넘게 입을 맞춘 백현이가 그제서야 떨어져 나갔어.
"밥 먹어, 응?"
"으응, 모찌야."
"또 대답만 잘하지."
"자기야, 진짜 사진 한 번만 찍으면.."
싱글싱글 웃으며 망언을 내뱉던 변백현은 내 표정을 살피곤 응, 알았어. 당연히 안되지, 암..하곤 아쉬운 소리를 내뱉었어. 싫다고 할 거 뻔히 알면서 그래. 피부과를 다녀오겠다는 말에 얼른 다녀오라며 재촉 한 번 하곤 다시 거울을 집어들었어. 변백현이 나가자마자 멍하게 앉아서 우리를 쳐다보던 찬열이는 빛과 같은 속도로 내 침대로 넘어왔어.
"누나!!"
"뭐, 조용히해. 병원에서 소리지르지 말라니까."
"아침에 누나가 소리지른 건 되고 난 안돼요!? 이게 더 충격적인 일인데!?"
"내가 변백현이랑 결혼 안 했다곤 안 했다."
"했다고도 안 했잖아요!"
"이제 알았으니 됐네, 뭐. 니 말대로 우리 둘이 잘 되고 좋은 거 아냐?"
"잘 된게! 벌써 삼개월이나 된 거잖아! 아니, 결혼한 지 삼개월이니까 둘이 행쇼한지는 더 오래됐다는 거 아냐!?"
행쇼는 또 뭐야, 요즘 애들 쓰는 말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어서 원..
"어쩐지, 어쩐지...둘이 싸우는 거 들으면서 너무 깊이 싸운다 했어..저게 썸타는 사이에 나올 대사들이 아닌데.."
"십년을 봤으니 깊이 있을만도 하지?"
"..십년?"
"고등학교 친구야."
"와, 쩔어. 누나가 먼저 좋아했어요?"
아니 걔가 먼저 좋아했는데. 라고 이야기하기는 왠지 나이 어린애 앞에서 민망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조용히 웃었어. 찬열이는 뭐냐고, 알려달라고 난리를 쳐댔지만 나는 그냥 고개만 까딱까딱거리며 입을 열지 않았어. 그 와중에 피부과를 쏜살같이 다녀온 변백현이 병실에 다시 등장했고 찬열이는 백현이가 오자마자 질문을 던졌어.
"쌤! 누가 먼저 좋아했어요!?"
"응? 내가."
"와, 대박."
뭔데, 쟤 왜 저리 거침없이 대답하는데.. 백현이의 당당함에 당황한 내가 두 손을 벌려 약을 받았어. 자연스럽게 탁자에 물을 내려놓고 내 손에 있는 약봉투를 들어다 뜯은 다음 제 손바닥에 알약들을 올린 변백현은 내게 물컵을 내밀었어.
"그럼 쌤이 쫓아다녔어요? 이 누나 성격에 한 번에 받아줬을리가 없는데."
"엄청 튕겼지."
"역시, 그럴 것 같아."
백현이가 들이민 컵에 입만 대고 물을 꼴깍꼴깍 머금은 다음 입을 뻐끔 벌렸더니 입 안으로 알약이 하나가 쏙 들어와.
"물 더 줘?"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물컵을 다시 가져다 대 주곤 입에 알약 하나를 더 넣어줘. 몇 개가 남았다 싶어 백현이 손을 톡톡 쳤더니 손바닥을 보여주는데 하나밖에 안남았어. 그래서 다시 입을 뻐끔 벌리면 바로 쏙 들어오는 알약을 꿀떡 삼켰지.
"물?"
"응."
"조금 있으면 밥 오겠다. 오늘은 미음 아닐거야."
"그래도 병원밥은 맛없어."
"뭐 먹고싶은 거 있어? 사다줄까?"
백현이 말에 뭘 사다달라할지 곰곰이 생각하는데, 찬열이가 볼멘소리를 툭 내던져.
"누나는 진짜 복받았어."
"나도 알아."
"와, 진짜 재수없다."
찬열이 말에 백현이가 찬열이 입을 톡톡 때려.
"어디서 남의 애인한테."
"뭐야, 쌤도 재수없어요!!"
완전 둘 다 밥맛이야!하고 또 입을 이만큼 내민 찬열이는 휴대폰을 확인했어. 아까부터 연락 올 사람이 있는 것 마냥 휴대폰을 자꾸 보길래 아무 생각없이 물어봤어.
"누구 기다려?"
"원래 아침 약 주러 여덟시 쯤 오지 않아요?"
"바쁘면 조금 늦을 수도 있지, 왜? 어디 아파?"
아파보이진 않는데. 게다가 약을 찾는 환자는 또 처음이라..아, 그러고보니.
"너 혹시.. 초롱이 기다려?"
"네. 어? 아니! 아니요!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초롱이 원래 아침에는 좀 늦어."
애가 빠릿빠릿한 편은 아니라. 유독 아침 일을 더 힘들어하곤 하던데. 그래서 아마 늦을거야. 내 말에 찬열이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어. 쟤 초롱이 진짜 좋아하나봐.
"초롱이? 너희 학교 후배아니야? 신규로 들어온."
"응, 걔."
"걔 종인이랑.."
"야, 야. 회진. 안 가?"
아무것도 모르는 백현이가 초롱이?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종인이 얘기를 꺼내길래 얼른 막아버렸어. 몰라, 난 찬열이 편인가봐. 종인이랑 이러쿵 저러쿵 뭐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니 사실 종인이가 초롱이를 살짝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긴 했는데 초롱이는 어떤지 모르는 거잖아. 뭐..막말로 종인이랑 초롱이랑 이미 만나고 있는 사이가 아니라면 찬열이도 꽤 괜찮은 짝이라고 생각했거든. 애가 성격도 좋고, 친구들 오는 거 보니 사교성도 괜찮은 것 같고. 무엇보다 종인이는 의사고 찬열이는 아니잖아.
"뭐야, 쌤 초롱이 알아요?"
언제봤다고 초롱이래, 쟨 또.. 그러고보니 둘이 동갑인가.
"아, 아니. 같은 병동이니까 알지. 백현아, 안 가봐도 돼?"
"어? 응.. 가야지."
백현이가 살짝 떨떠름한 듯 표정을 구겼어. 아마 눈치가 빨라서 찬열이가 초롱이 마음에 두고 있는 걸 알아챘을 거야. 거기다 백현이는 종인이가 초롱이를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으니, 살짝 걸리는 걸까. 그래도 초롱이한테 의사 애인을 만들어주기는 싫었어. 무엇보다 종인이가 백현이만큼 다정한 지도 모르겠고..인턴을 사귀는 건 정말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니면서 말리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내 마음에는 찬열이가 더 적합했던 거지.
ㅡ
59 오구오구편!
아니, 뭐..너무 순조롭게 가면 좀 글차나여..?저는 서브남을 별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사실 복잡해져서 쓰기 싫음)
그치만..뭐..서브커플에는 서브남 하나정도 나와줘도..괜찮자나여..?
이게 문제가 아니라..죠응대를 얼른...종대야..미안하다!!!!!!!!!!!!
쫌만 더 돈벌고 있어바...8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