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는 멤버들이 대충 벗어던지고 들어간 신발들을 정리하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진우도 지금 충분히 피곤하고 졸렸지만 이리저리 신발들이 널브러진 현관을 두고 자기엔 좀 찜찜했다. 진우가 어두운 거실을 지나 현관으로 갔다. 센서 등이 진우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환하게 켜졌다. 멀리까지도 날라 갔네…. 진우가 혼잣말을 하며 차례로 정리를 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발까지 정리를 마친 진우가 방으로 돌아오기 위해 승윤과 태현의 방을 지나다 멈칫했다. 닫혀있는 방문 너머에 무슨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 "형…. 하으, 아 형아.."
- "엉덩이 좀 더 들어봐 태현아. …아, 존나 좋아."
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쟤넨 피곤하지도 않나, 오늘도 하네…. 중얼거리던 진우는 두 손으로 자신의 볼을 부비며 얼굴에 오른 열들을 식히려 노력한다. 자신이 아까 닫고 나온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진우의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만이 불빛을 내며, 방 안을 그나마 밝히고 있다. 자신과 승훈의 침대 사이에 놓인 민호의 침대에는 민호가 누워 팔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다. 진우가 저의 침대로 가려다가 방향을 틀어 민호의 침대로 올라간다. 승훈은 이미 오래전에 잠이 든 것을 안다.
"민호야."
"……."
"민호야 자?"
민호는 대답 없이 숨만 쉰다. 진우가 팔로 민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다시 한번 작게 속삭였다.
"…안자는 거 다 알아."
진우가 민호의 허리를 감싸 안은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민호가 눈 위에 올려둔 팔을 스르륵 내린다. 진우가 눈만 올려 빼꼼 민호를 쳐다보지만 민호는 피곤한지 실눈조차 뜨지 않고서 대답을 한다.
"..왜요-"
민호의 목소리는 졸음 투성이다.
"민호 많이 졸려?"
"…형은 안 졸려요?"
민호는 그제야 눈을 살짝 뜬다. 동그란 눈으로 저를 보고 있는 진우가 보여 온다. 금방 눈이 따가워져서 다시 눈을 감아버렸지만.
"별로…."
"심심해요? 이렇게 자요, 그냥.."
민호는 진우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자신의 기다란 팔로 진우를 안았다. 진우의 작은 체구는 민호의 품으로 쏙 들어왔다. 민호의 콧김이 진우의 정수리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진우의 눈은 아직까지도 말똥말똥하다. 졸음이 승윤과 태현의 방 앞에 멈추어 섰을 때 모두 달아나 버린 것이다. 진우가 검지를 세워 흘러내린 티 사이로 보이는 민호의 쇄골을 매만졌다. 그래도 민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민호야…."
"……."
"…나 오늘 외로워."
돌려 말한 것이다. 내가 오늘 외로우니 나를 안아 달라. 밤을 함께 지세워보자. 하는 뜻이 담겨있는, 진우의 '용기'였다. 그러나 민호는 그 소리를 진우의 단순한 투정으로 들은 것인지, 아니면 흘러가는 말로 들은 것인지. 진우의 머리를 당겨 안아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눈치도 지지리 없는 민호는 진우 말의 속뜻을 하나도 모르는 듯하다.
"이렇게 안아줄게요. 빨리 자요. 옆에 내가 있는데 왜 외로워…."
"……."
그게 아닌데. 자신이 외롭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닌데…. 금방 또 잠이 든 민호를 보며 몰래 한숨을 쉰 진우는 저를 안고 있는 민호의 팔을 풀고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약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하긴, 딱 봐도 피곤해 보이는데.. 내 욕심이 큰 거지. 그렇지만….
예전엔 아무리 고된 스케줄에 체력이 바닥났어도, 자신이 이렇게 먼저 표현하기도 전에 달려들었던 민호였는데. 예전 생각이 난 진우는 씁쓸한 느낌에 입맛을 다셨다. 변했다. 민호는. 하지만 그 변함이 밤일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포함하는 것 같아 진우는 기분이 조금 울적해지는 것 같다. 진우는 다시 한숨을 쉬며 자신의 침대로 올라갔다. 켜진 스탠드를 껐다. 쫓아진 잠은 다시 찾아오고 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렇게나 피곤한데 왜 잠은 들지 않는 건지. 진우는 한참이나 뒤척이고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 * *
형 일어나요, 아침이에요. 누군가가 진우의 몸을 흔들며 깨운다. 진우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눈을 부비며 겨우 눈을 뜬다. 좁게 열린 시야에 들어오는 얼굴은, 씻었는지 물기에 젖어있는 머리칼을 수건으로 닦고 있는 승훈이었다. 진우는 고개를 돌려 민호의 침대를 보았다. 민호는 없었다. 먼저 일어난 모양이다.
"승윤이랑 태현이는?"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민호의 앞에 앉으며 진우가 물었다. 입 안에 김치를 넣은 민호가 천천히 씹으며 대답한다. 진우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승윤이는 자고, 태현이는 씻어요."
진우는 자신의 밥공기에 밥을 퍼 민호의 앞에 다시 앉았다. 부엌엔 둘의 음식 씹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린다. 뭔가 어색하다. 그래서 진우는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런 대화가 없어도 제일 편안했던 사람이 민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된 건지 진우는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말이 많았던 민호의 말수도 줄었음을 진우는 안다. 민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식지 않았는데, 민호는 저에게 식어버린 것일까.
민호가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했다. 진우는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다. 텅 비어버린 공간에 저 혼자 밥을 먹고 있다. 뭔가 처량하다고 느껴졌다.
몇 숟갈 남지 않은 밥을 보며 남길까, 생각을 하던 진우의 뒤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고개를 돌렸다.
"…허리 아파 죽겠어."
"밥 먹자, 태현아-."
"형 진짜 너무한 거 알지?"
"그치, 하긴 어제 스케줄이 너무하긴 했어. 살인적이었지. 그래서 나도 허리가 아픈가. 하하."
장난스럽게 웃는 승윤의 어깨를 찰싹 때리는 태현은 눈을 살짝 흘기고서 진우가 있는 식탁에 와 앉는다. 연신 허리를 두드리며 승윤이 밥을 떠다줄 때까지 기다린다. 진우는 반찬 없이 맨밥을 입에 넣었다. 어젯밤 방문 너머 소리를 들은 진우는 둘의 작은 다툼의 이유를 안다. 진우 옆으로 승윤이 와 앉는다.
"아 허리 아파."
"좋았잖아-."
"뭐래, 조용히 해라."
"스케줄 많으면 돈 많이 벌고 좋지 않아? 난 좋았는데-."
크큭 거리는 승윤. 진우의 눈치를 보는 태현의 속도 모르는지 능글맞은 표현들을 한다. 침과 섞여 죽이 된 밥을 삼켰다. 부럽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 진우는 깜짝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양치를 마친 진우는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은 민호는 휴대폰을 하고 있다. 진우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민호에게 가고 싶은데, 민호가 귀찮아할까 싶은 걱정 때문이었다. 연인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걱정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진우는 아까 느낀 그 감정을 다시 느꼈다. …처량하다.
진우는 민호의 침대 끝에 엉덩이만 걸쳐 앉았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 액정만 보던 민호가 고개를 들고 진우를 본다. 진우는 저의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밝게 웃어 보인다. 민호가 한쪽 이어폰을 뺀다.
"할 말 있어요?"
"아, 아니! 그냥 뭐하나 해서."
"으음, 그래요."
민호는 다시 휴대폰 액정을 본다. 진우는 궁금해져서 민호에게 더 다가간다. 민호는 예능 프로그램 편집본을 보고 있었다. 잠깐 함께 들여다보던 진우는 이내 지루함을 느끼고 민호의 어깨에 기대었다. 손을 들어 민호의 볼을 찌른다. 턱 선을 따라 목까지 손가락으로 쓸어도 보고 민호의 어깨에 턱을 대고 딱 딱 이빨을 부딪혀도 본다. 그래도 저를 보지 않는 민호다. 진우는 눈썹을 축 늘어뜨린다.
"그거 안 보면 안 돼?"
"응?"
"휴대폰 보지 말고 나 봐.."
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보다 좀 더 위에 위치한 민호의 얼굴을 쳐다본다. 민호는 진우의 눈빛을 못 느끼는 것인지 무시하는 건지 눈은 계속 액정에 고정된 체 입을 연다.
"이것만 마저 보구요."
"나중에 봐도 되잖아.."
"조금 남았어요. 5분만 기다려요."
진우는 서운했다. 고작 저 바보 같은 네모난 물건이 저보다 먼저라니. 진우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볼에 살짝 바람을 넣었다가 뺀다.
"뽀뽀해줘."
미동도 하지 않는 민호의 고개를 진우가 잡아 돌렸다. 뽀뽀해줘. 동그랗게 눈을 뜨고, 다시 그렇게 말하였다. 살짝 웃은 민호가 진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댄다. 짧은 쪽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민호의 눈은 다시 액정으로 돌아갔다.
뽀뽀 후에 진우는 가만히 민호의 옆모습만 주시한다. 잠깐이지만 그 사이에 본 민호의 표정에서 귀찮음이 읽혀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눈빛은 진우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진우의 입술이 한 일(一)자로 닫힌다.
"……."
태현과 승윤은 그 피곤한 새벽에도 그랬는데, 자신은 이렇게 민호의 눈치나 보고 있다니…. 좋다고 먼저 매달릴 땐 언제고. 민호가 영상을 보고 있는 이 짧은 시간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점점 치밀어 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동정심. 불쌍함. 진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변했다. 민호가 변했다고. 속궁합도 잘 맞았고, 대화코드도 잘 맞았던 둘인데 언제부터 민호가 변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너무 튕겨서 일까. 밀당에서 밀기만 했던 것일까. 부끄러워서 싸 보일까봐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문제였고, 그래서 민호는 저에게 질린 것인가. 너무나 표현을 하지 않아서 민호가 이렇게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민호가 변하지 않았던 순간까지도 자신은 좋으면서도 좋다고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표현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민호가….
진우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든 말든 무신경한 민호이다. 진우는 다시 침대 끝에 앉았다. 입술을 꾸욱 물다가 결심한 듯 몸을 굽힌다.
"…형?"
진우는 민호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브리프 위로 그의 물건을 쓰다듬어주었다. 놀란 민호가 휴대폰을 놓아버리곤 진우를 본다. 눈썹이 팔(八) 자 모양이 된 진우가 민호를 본다. 그의 손은 민호의 물건을 더욱 농염하게 적나라하게 만진다. 진우의 물건이 슬슬 발기하기 시작했다. 켜져 있던 유튜브 동영상은 종료된 지 오래다.
"내가 빨아줄게."
민호의 브리프 속으로 진우의 손이 들어간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민호가 강렬한 자극에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손을 뻗어 진우의 손목을 잡아 제지했다. 애무를 당한 건 민호인데 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인 진우가 민호를 보며 입꼬리를 애써 올린다. 민호의 표정엔 갑자기 왜 이러냐는 물음이 가득하다.
"…나 먹어줘."
네가 변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면 너는 예전처럼 날 안아주겠지.
“나 하고 싶어..”
진우의 마지막 소리 없는 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