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빈이 무겁게 감겨있던 눈을 떴다. 아릿한 아래를 뒤로 하고, 낯선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조금 몸을 움직이려 하는데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한빈은 잠시 주춤했다. 아, 뭐지. 무게감의 근원을 찾기도 잠시 혼자 사는 자신의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질리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한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홱 돌리자 자신이 내친 팔을 제 몸 위에 올리고는 평소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곤히 잠든 지원이 제 옆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지원에게서 시선을 뗀 한빈이 고개를 한 바퀴 돌려 방 내부를 훑기 시작했다. 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통 무채색의 배치가 꼭 지원의 집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무의식적으로 호텔이 아닐까 생각한 한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호텔이라고 단정 짓기엔 지나치게 사람 사는 곳 같다, 여긴. Marry? You? 1.5 [14일] Written By. YGxb 한빈은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는 생각보다 가벼운 몸에 밑에 가지런히 놓여진 옷가지들을 집어 입고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히트싸이클 기간에 관계를 맺어서인지 몸은 정말 홀가분 했지만 마음은 전혀 편치 못했다. 알파인 지원 역시 앞뒤 없이 흥분한 상태에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뒷처리를 제대로 했을지 안에 지원의 정액이 들어가진 않았는지 정확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원이 깨지 않도록 현관문을 조용히 열고 나온 한빈이 어스푸름한 하늘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 괜찮을거야, 팀장님이 알아서 잘하셨겠지. 애써 저 자신을 안심 시킨 한빈이 집으로 가는 버스로 달리듯 걸어갔다. 버스에 급하게 승차한 후 제 시계를 본 한빈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지금 가서 빨리 준비해도 늦을텐데. 몸을 좌석 시트에 기댄 한빈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몇주 째 몸이 붕 떠있는 것 같았다. 한빈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음식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별로 입을 대지도 않았는데 냄새만으로도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 속을 게워내기 일쑤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한빈은 병원을 찾아야겠다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오메가를 전문적으로 치료해주고 관리해주겠다고 나서는 병원은 몇 없었으나 한빈은 제가 꼬박꼬박 찾았던 병원으로 곧 다가올 점심타임을 이용해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까. 한빈은 옆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윤형 때문에 쉽사리 정신을 찾기가 힘들었다. 사무실 안을 휘감은 커피 향을 꽤나 좋아하던 한빈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가장 피하고 싶은 향이기 때문이다.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는 고개를 푹 숙인 한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전에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 게울 것도 없는 속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잠깐 엎드려있어볼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팔을 겹쳐 괴려던 한빈이 무심코 지원의 자리인 중앙을 쳐다봤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다 본 것이였는데 지원도 저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이 상황에서 한빈이 간과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상태가 남이 보기에도 심각하게 아파 보인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지원이 한빈이 아프기 시작한 시점부터 정상적인 업무를 하지 못했다는 것. 멍하니 지원을 바라보던 한빈에게로 지원이 걸어왔다. 옆자리에 앉은 윤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지원이 제게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적막한 사무실 내에 지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다들 식사하러 가시죠." 제 앞자리에서 시계만을 쳐다보던 막내가 능청스레 일어나 지원을 향해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점심 먹으러 가야겠네요! 도망치듯 사원들을 이끈 찬우가 가장 먼저 사무실 밖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나가려던 윤형이 한빈과 애매한 위치에 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은 지원을 향해 말을 건냈다. "팀장님은 안가세요?" "전 입맛이 없어서." "...아, 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윤형마저 빠져나가자 사무실은 더 조용해졌다. 한빈의 가쁜 숨소리만이 큰 사무실의 한자리를 겨우 메꾸고 있을 뿐 이였다. 지원이 한빈의 자리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맘 같아선 지원의 손을 내치고 싶었으나 몸 상태가 말이 아닌지라 행동으로 옮기기가 너무나도 벅찼다. 지원이 한빈의 이마에 손을 댔다. 큰 손이 작은 한빈의 얼굴의 반을 덮었다. 땀으로 젖은 한빈의 머리카락을 지원이 가만 가만 쓰다듬었다. 내칠 새도 없이 그 손길을 한빈의 지친 몸이 받아냈다. "병원은." "지금 가게요." "가요, 내가 데려다 줄테니까." "됐어요. 혼자 갈 수," 일어서려던 한빈의 몸이 휘청했다. 지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한빈을 쳐다봤다. "그 몸으로 퍽이나 혼자 가겠네요." "갈 거에요, 그리고 둘이 가면." "둘이 가면?" "사람들이 오해해요." '무엇을?' 이라고 반문하려던 지원의 입이 누가 테이프라도 붙혀놓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한빈이 가는 병원은 오메가들만 가는 병원일테고 그 병원에 알파인 제가 함께 동행한다면 모두 한빈에게 의문스러운 시선들을 던질 것 이다. 알파, 오메가가 한데 섞여있을 때라면 모를까. 저 혼자 알파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걸 구분해내지 못할 리 없으니. 지원이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한빈이 휘청대는 제 몸을 이끌고는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아, 씨발. 사무실 밖을 나오기 전 지원의 표정이 마치 모든 걸 놓은 사람 처럼 보여서 안 그래도 답답한 속이 더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 2편 예고 : 2주 입니다. 뭔지 다들 감이 오시죠? 그 전에 오랫동안 글을 방치해둬서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릴게요 ㅠㅠ 댓글 보니까 일주일 전에도 제 글을 보신 분이 계시더라구요. 앞으로는 글 완성 되는데로 바로 바로 업데이트 할게요!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에피소드 형식이고, 다른 단편들과 함께 간간히 연재 될 예정입니다 :) 이번 편은 2편으로 가기 위해서 짧게 연결해놓은 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짧아서 포인트 많이 내렸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피드백/암호닉 모두 감사히 받을게요. 오타/맞춤법은 컴티 접속할 때 수정할게요! 굿나잇 ^-^~♡ 이전에 신청하신 암호닉도 다음편에 정리해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