짹짹. 버드나무의 가지에 앉은 참새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지저귀는 아침이다. 사계가 모두 공존하는 네버랜드에서 가을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집은 항상 조금 쌀쌀하다. 환히 방을 비추는 아침 햇살에 침대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기지개를 피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밤새 내린 이슬이 아직까지도 촉촉하다.
작은 거울 앞에서 밤새 자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빗고 다시 높게 올려 묶었다. 주름진 드레스도 손으로 팡팡 두들겨 제 모양을 되찾게 하고 창문 밖 잎사귀에 내려앉은 이슬로 세수도 한 뒤 방을 나왔다.
“좋은 아침!”
딸랑딸랑 종소리를 내며 식탁에 앉은 네 아이들의 앞으로 날아가자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경수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팅키, 잘 잤어?”
“응. 경수도?”
“응. 피터는 주방에.”
가벼운 아침인사를 주고받자 경수의 맞은편에 앉은 민석이와 종대도 아침인사를 건넨다. 좋은 아침! 아직 잡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물거리는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타오의 볼을 살짝 꼬집고 고소한 베이컨 냄새가 나는 주방으로 날아갔다.
“세훈아 잘 잤어?”
“응. 팅키 이것 좀 식탁에 옮겨줘.”
“알겠어.”
내 몸집보다 조금 더 큰 접시들은 내 날개에서 뿌려진 요정 가루로 두둥실 떠올라 식탁까지 안전히 갔다. 총 다섯 개의 접시를 모두 시각에 옮기자 세훈이가 내 머리를 토닥이며 칭찬해준다. 잘했어 팅키. 비록 내 작은 몸집 탓에 검지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긴 거지만 그 작은 손길이 너무 설레서 기분이 좋다. 나는 세훈이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
컵과 물통을 들고 사람 수 대로 식탁에 세팅을 끝낸 세훈이가 식탁의 한 끝에 앉고, 나는 식탁의 정 중앙에 앉았다. 식탁 중앙에는 내가 먹을 과일들이 한 그릇 가득 있다. 포도, 딸기, 귤, 배, 사과, 복숭아, 메론, 바나나. 네버랜드에선 사계절이 전부 있다 보니까 구하기 힘든 과일이 없어서 정말 좋다.
“잘 먹겠습니다!”
종대의 우렁찬 목소리가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모두들 달그락거리며 아침 식사를 시작했고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사과를 골라 맛있게 아삭아삭 배어먹는다.
“아 타오, 그건 내 달걀이잖아!”
“경수는 달걀 안 조아 하잔나!”
“아 김종대 더러워! 니 입에 있는 걸 왜 보여주는데에!”
“흐헿 으아아아아아 봐라, 봐라! 밥맛 떨어지지이~”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정말이지 조용할 날이 없다. 세훈이는 왁자지껄한 아이들을 항상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네버랜드에서 유일한 어른, 피터팬. 그게 세훈이다.
사실 세훈이 역시 어린아이었다. 나는 세훈이가 태어날 때 그의 웃음소리에서 같이 태어났다. 세훈이가 여섯 살 때였던가? 그의 부모는 자신의 아들을 가차없이 버렸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세훈이는 내 도움으로 네버랜드에 오게 되었고, 여기에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꾸준히 성장을 했다. 평범한 이십대 초반의 겉모습을 한 세훈이는 자연스레 아이들만 사는 네버랜드의 수호자, 피터팬이 된 거다.
“팅키. 좋은 꿈 꿨어?”
“응! 어젯밤 꿈에는 제시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호박을 주더라구. 그래서 그 호박으로 호박죽을 해먹었더니 그게 너무 맛있었어!”
단지 그 호박이 너무 커서 우리 집을 다 부쉈다는게 문제였지만 말이야. 뒷말은 굳이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세훈이는 항상 아침마다 내 꿈을 물어본다. 내 꿈이 하루의 일정을 짤 수 있게 해준다나. 그래서 꿈을 꾸지 않거나 악몽을 꿨어도 항상 좋은 꿈을 꿨다고 거짓을 말할 때도 있다. 하루 일정은 항상 행복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 그럼 오늘 시장가서 호박 사서 죽 쑬까?”
“어, 애들 호박죽 먹나?”
“어!! 종대 호박죽 귀신이야!!”
“타어는 닭죽이 더 조아…”
닭죽이 더 좋다며 칭얼대는 타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호박죽을 좋아라 한다. 시무룩한 타오에게 내일은 닭죽을 해 먹자고 타이른 뒤 아침을 먹은 뒤에 시장에 가기로 결정이 났다. 오랜만에 가는 시장이니만큼 아예 살 것들을 몽땅 다 사와야겠다. 어제 보니까 우유도 없었고, 양파도 거의 다 먹은 거 같던데. 머릿속으로 사야할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해가며 사과의 마지막 한 입을 배어먹었다.몸에 잔뜩 묻은 사과즙이 끈적하다.
* * *
“팅키, 우리 가게에서 옷 보고가. 이번에 언니가 새로 만든 옷인데, 무지개 모래를 섞어서 만들었더니 진짜 예뻐!”
“피터, 이 신발 어때? 바깥세상에서 구해온 가죽으로 만든 거야! 멋지지 않아?”
“팅키! 새로 딴 감 사가지 않을래? 정말 달아!”
북적대는 시장에는 어린 아이들이 꾸린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질 좋은 상품들이 가득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탐스러워 보이는 과일들과 어디 도망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동물들, 휘황찬란한 옷들과 보석들까지 바깥세상의 어른들이 만든 시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이 시장에서는 화폐의 개념이 없었고, 모두가 필요한 만큼만 만들고 가져가며 시장이 이어졌다.
네버랜드의 아이들에게 있어 나와 세훈이는 특별한 존재다. 아니, 사실 세훈이가 특별해서 그의 요정인 나도 특별한 거다. 그래서인지 시장에 가면 항상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 아이들이 우리 주위를 빙 둘러싸며 조잘댄다. 정말 사랑스러운 광경이다. 우리가 차마 아이들을 밀어내고 앞으로 갈 수 없어 쩔쩔매면, 서로의 손을 꼭 잡은 타오나 종대가 그 큰 목소리로 아이들을 물리곤 했다.
“아아아! 저리가 우린 오늘 호박을 사러 온 거라구우!”
“피터 호박 저기!”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모두 세훈이를 피터라고 부른다. 종대와 민석이, 타오와 경수도 항상 그를 피터라고 부른다. 가끔가다 세훈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만 그렇게 불렀다. 세훈이는 자신이 피터라고 불리는 게 가끔은 부담스럽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꽤나 뿌듯하기도 한 것 같았다.
“제시, 혹시 여기 호박 있어?”
“호박? 어쩌지, 호박은 아까 요정할머니가 다 가져갔는데….”
아 이런. 우리가 한 발 늦었나 보다. 내가 시무룩해지자 덩달아 시무룩해진 제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점포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과 세훈이에게 가서 말했다.
“호박은 없대.”
“왜! 타어 호박죽 먹고 싶단 마리야!”
“타오, 아까는 호박죽 싫다며.”
“민석 바보햐? 그건 아까구! 지금은 호박죽 먹고 싶다구!”
호박죽이 먹고 싶다며 찡얼대는 타오를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꿈에 닭죽을 해 먹었다고 할 걸. 난처함에 날개를 푸득이자 딸랑딸랑 종소리가 났다. 토라진 타오를 달래주기 위해 타오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나름대로 애교를 부려보았지만 상심한 타오의 마음은 풀릴 줄을 몰랐다.
“호박죽은 다음에 먹자. 내일 네가 먹고 싶다던 닭죽 팅키가 쑤어줄 거야.”
“히잉, 호박죽… 먹고 싶었는데…….”
세훈이의 말에도 여간 아쉬운 게 가시질 않는지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우물거리는 타오가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날개를 한 번 크게 퍼덕이고 요정가루를 우수수 떨어뜨리자 내 몸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바깥세상의 여느 작은 여자의 몸만 한 크기로 커졌다. 그러니까 아이들보다는 크고 세훈이보다는 작은 그런 몸집으로 변한 거다. 가끔가다 요정가루를 이용해 이렇게 몸집을 키우고는 했는데, 네 아이들과 살면서부터 자주 이렇게 변하니까 처음엔 깜짝깜짝 놀라던 아이들도 이제는 별로 놀라진 않는다.
“으이구, 이리와 안아줄게 우리 내일은 꼭 타오 먹고 싶어 했던 거 먹자.”
몸집이 커지니 나보다 작아진 타오를 익숙하게 안아들고 등을 토닥이자, 타오가 바르작대며 내 품에 더 안겨왔다. 목 근처에 느껴지는 타오의 숨소리가 간지럽다. 한 팔로는 타오를 안고 나머지 한 쪽 손은 민석이의 손을 꼭 잡았다.
“온 김에 시장 구경이나 하자. 오늘 뭐 사야 한다고?”
“양파랑 우유랑 파프리카!”
“다진 돼지고기랑 장미향초도!”
경수가 먼저 크게 말하자 뒤이어 종대도 질수 없단 듯이 사야 할 목록을 외친다. 세훈이가 야무지게 대답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이들은 칭찬받아서 기쁜지 헤헤 웃는다.끙. 제법 무게가 나가는 타오를 다시 고쳐 안자 세훈이가 팔을 뻗더니 내 품에 있던 타오를 데려간다.
“응? 왜, 내가 안을 수 있어!”
“팅커벨, 너 혹시 바보야? 네 손이 자유로워야지 물건을 고르지. 가자.”
에베베. 말은 저렇게 해도 내가 힘들어 할 까봐 타오를 대신 안아주는 거다. 내가 저랑 일이년 같이 산 줄 아나? 어휴 하여간 오세훈. 말 한 번 참~ 예쁘게도 못 한다.
“빨리 안 와?”
“아, 간다, 가!”
타오와 경수를 데리고 벌써 저 만큼이나 가버린 세훈이를 양 손에 민석이와 종대의 손을 꼭 잡고 급하게 따라갔다. 그러니까 오늘 사야할 게 파프리카랑 양파랑 우유랑. 아, 또 뭐였더라.
※너=팅커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