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첫만남 한 12살때 쯤이었나? 난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운동장에 나가서 피구를 하고 있었어. 근데 친구가 던진 공에 그만, 그대로 얼굴을 얻어맞은거야. 퍽. 소리는 엄청 컸는데 생각보다 하나도 안 아팠다? 그래서 그냥 난 괜찮아 애들아. 이렇게 말해줄 심산으로 고개를 들어올렸어. 그런데, "여주야 너 코피나 코피!!" 이런. 그만 코피가 터져버린거야. 근데 이 코피가, 멈출 생각을 안하는거 있지. 내 턱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피에 아이들이 하나 둘씩 겁을 먹고 도망가기 시작했어. 이대론 안되겠다. 보건실에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발을 옮긴 것 까진 기억이 나는데... 눈 떠보니까 병원이더라고. 하하. 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이 지긋지긋한 병원 생활의 시작이 이름: 김여주 나이: 17세 병명: 백혈병 그때 이후로 밝혀진 내 병명은 백혈병이었어. 코피가 안 멈춘 것도 백혈병 때문이래. 앞으로 계속 여기서 지내야 한다고, 간호사 언니가 내 팔이 링겔을 꽂으면서 말해줬어. 처음에는 병원이 너무 신기해서 뭣도 모르고 빨빨거리면서 막 돌아다녔는데 밤이 되니까 글쎄, 너무 무서운거야. 항상 일에 빠져사시는 부모님은 딸을 병실에 혼자 두고 사라져 버렸거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가지는 창문을 툭툭 건드려대고, 내 옆 침대에 계시는 할머니는 어디가 아픈 모양인지 계속 앓는 소리를 내셨어. 한 치 앞도 안보이는 병실 안에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 몸을 말아봐도, 어딘지 모르게 파고드는 한기가 너무 차가워서 그날 밤은 한숨도 자지 못했어. 음,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다 익숙해지더라. 그래도 딱하나, 적응이 안되는건, "아 선생니임.... 아, 아, 제발...." "환자분 이 약 오늘 저녁까지 다 드셔야되요. 이건 항생제고 이건 위장장애 약이고 또 이건...." 바로 약먹기. 으으으 너무 싫다. 진짜 싫어... 나는 간호사 언니한테 건네받은 열몇개의 알약을 째려봤어. 어떻게 된게 이놈의 약은 5년이 지나도 적응이 안돼냐고! 특히 저 주황색 저거, 먹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게.... 아, 안되겠다.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난 이 주황색 약만 주머니에 넣어서 감췄어. 몸 아픈건, 나중에 생각할래. 저녁을 다 먹고 나는 이 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 휴지통에 버리면 나중에 들킬 것 같고, 그대로 옷 안에 두면 나중에 보겠지? 저번에 변기에 한번 버렸다가 변기에 약이 붙어버려서....그것도 안되겠다. 무서운 간호사 언니의 표정을 나도 몰래 따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그래, 나가자. 나가서 몰래 떨구고 오는거야! 아 너무 똑똑한 김여주. 어쩜 좋니. 이렇게 자화자찬을 하면서 슬리퍼를 구겨신었어. 밖을 나와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 바람이라도 쐬려는 마음으로 병원 쉼터로 향했어. 가는길에 간호사 언니들 눈길 피하느냐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조심히 조심히 쉼터에 도착하니까 바람이 제법 매서워서 입고 입던 가디건 단추를 채웠어. 알약을 대충 화단 사이에 버리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쉼터 끝쪽에 다가가 병원 야경을 내려다봤어. 지긋지긋한 풍경인데도 밤에 보니까 반짝반짝 너무 예쁘더라고. 그렇게 몸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도 모른 채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저쪽 벤치에 뭐가 있는 것 같은거야. 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어. 서..설마 노숙자는 아니겠지....하는 생각으로 조심조심 벤치 쪽으로 발을 옮겼어.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귓가에서 심장이 쿵쿵 뛰는게 느껴지더라. 응? 근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까, 나랑 똑같이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아이였어. 다행이다. 안도감도 잠시, 저기서 자면 입 돌아가는건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깨우기로 마음 먹고 한발짝 더 다가갔어. 근데 있잖아. 아니 무슨, 내가 다가간 그 순간에, 마치 미리 짜 놓은거 마냥 그 아이한테서 달빛이 쫙 비추는데! 달빛에 환자복이 하얗게 반사되는데! "..ㅊ...천사..?" 이번엔 다른의미로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어. 와- 너무 예쁘다. 새까만 머리에, 오똑한 코에, 하얀피부까지, 깨울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니깐. 우리 병원에 이런 애가 있었나? 새로온 앤가? 머리속에 드는 의구심을 꾹꾹 억누르고 그 아이를 감상하고 있었어. 근데 보면 볼수록 가슴 한켠이 아리는게.... 아까 약을 안먹어서 이러나.... 나도 모르게 가슴께를 꾹 누르고 있었어. 근데 그 순간 그 아이의 눈이 스르르 떠지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어. "....." "....." "...ㄴ..." "....." "...너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간다." 왜 많고 많은 인사말들이 생각이 안나는건지, 내가 대뜸 던진 말은 입 돌아간다는 말이었어. "진짜야! 가디건 입고 있는 나도 지금 추운데, 너 환자복 밖에 안 입었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는...게" "신경꺼." 내 걱정을 단칼에 잘라낸 그 아이는 머리를 툭툭 털며 일어나더니 바로 쉼터밖으로 나갔어. 순간 그 자리에 계속 쪼그려 앉아있던 나는,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어. 허- 뭐야 저 싸가지는? 기껏 걱정해줬더니! 괜히 애꿎은 바닥만 퍽퍽 차대다가,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양볼을 감쌌어. 아 정말... 이름이라도 물어볼껄.... . . . . 본격 아픈 여주와 아픈 정국이의 만남. 저는 이런 문체가 편해서 쓴건데 혹시 보기 거북하신가요?ㅠㅠ 처음 쓰는 글이라 많이 부족하네요... 엉엉 그래도 예쁘게 봐주세요♡ 댓글이랑 추천, 눌러주시면 감동받아서 바로 다시 올지도 몰라요. 히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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