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천사를 만나다. 그 날 내가 무슨 정신으로 침대까지 돌아왔는지 모르겠어. 내가 나갔다 온걸 안 간호사 언니가 살벌하게 혼낼때도, 머리속에는 그 남자애 밖에 없었지. 애꿎은 이불만 퍽퍽.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이불킥이구나...그냥 모르는척 하고 나올껄! 아으! 근데 그 일이 있고난 뒤에, 난 이상한 습관이 생겨버렸어. 평소에는 발길도 안했던 병원 쉼터에 매일 매일 출석체크를 하는거. 겉으로는 심심해서 가는거다, 속이 안 좋아서 바람 쐬러 가는거다, 이렇게 나를 합리화 시켰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 그 아이를 다시 보고싶은 거다.라고. 벌써 일주일째야. 그리고 지금도, 오랜만에 햇살이 비추는 병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어. 혹시 그애가 오지 않을까 책 한번 봤다가 밖에 한번 봤다가, 아 설마 벌써 퇴원한건가... 갑자기 드는 우울한 마음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어. 우울할때는 체조가 짱이지! "하나..끙...두울...세엣...아으, 시원하다." 쉼터에 사람이 얼마 없어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굳어진 관절을 열심히 풀어줬지.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팔을 위로 쭉 뻗고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여줬어. 아니 근데 왜, 왜 하필 그 순간, 막 쉼터로 들어오고 있는 남자애와 마추쳐 버린건지. 왜 난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건지. 그 아이의 얼굴에 당혹스럽다는 표정이 떠올랐고, "....." "....." "....." "아..안녕! 우리 또 보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안 나올 수가 없더라고. 음, 너도 그렇지?" "....." "...너..너도... 같이 할..래..?" 와 김여주 병신 인증? 왜 거기서 그런말이 나오는데! 아오. 진짜 그대로 병원 옥상으로 다이빙 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어. 쥐구멍이 어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 남자애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어. 얼른 팔을 풀고 머쓱하게 가발을 빗어내리면서, 어정쩡하게 씩- 웃어줬지. 그랬더니 글쎄 그 애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는거야. 영문을 모르겠어서 멀뚱멀뚱 그냥 서있었는데, 갑자기 그애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어. 헐 설마, "...울어..?" "...푸흡...."
푸하하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애가 막 웃기 시작했어. 아 진짜 존나 웃겨. 눈가에 눈물까지 훔치면서 웃던 그애를 보니까, 내 얼굴은 급속도로 빨개지기 시작했어. 아 쪽팔려.... 그렇게 한참을 웃기만 하던 그 애가 입가에 손을 올리더니 큼큼. 헛기침을 하곤 나에게 다가왔어. "야." "으응..?" "너 이름이 뭐냐." "...김여주...인데.." 내 이름을 들은 그 애가 다시 환하게 웃어줬어. 뭐야 웃으니까 진짜 예쁘네... 키도 크고, 좋은 냄새 난다... 다시금 내 혼자만에 생각 속에 빠지려는 나를, 구해주기도 하듯 그 애가 말했어. "나는 전정국." "....." "만나서 반가워." "....." "여기서 오래 있었어? 난 너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 저번에 한번 봤구나. 미안. 그때는 기분이 안 좋아서,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애가, 아니 정국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어. "아냐 괜찮아! 나 그때 기억도 안나! 다 잊었어!" 사실 다 기억나지만, "그래? 다행이다." 라며 다시금 방긋, 웃어보이는 정국이를 보니까 거짓말 하길 백번은 잘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 그래서 같이 마주보고 헤헤, 바보같이 웃어준 뒤에 말했어. "나는 여기 온지 5년 됬어. 백혈병이거든. 너는?" "나는 온지 1년 밖에 안됬어. 암 때문에 왔고." "아 그렇구나.." "근데 왜 널 한번도 못봤지? 나 여기 엄청 자주오는데, 아 요즘엔 못 왔지만..." "아, 나 여기 잘 안와서 그런가보다! 여기서 내 병실까지 진짜 멀거든." "그래? 근데 오늘은 왜 왔어?" 순간 할 말이 턱- 막혔어. 너 보러 왔어. 오늘만 온게 아니라 매일 널 기다렸어. 이럴 순 없잖아. 그래서 그냥 오랜만에 산책하러 나온거라고 둘러댔지. 내 서툰 거짓말에 정국이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앞으론 자주와. 그 동안 많이 심심했는데, 너 보니까 좋네. 웃기기도 하고." 라고 말했어. 아 결국 웃긴애로 찍혀버렸구나... 씁쓸했지만, 좋다라는 말에 또 웃음이 나왔어. 그래, 매일매일 올게! 오지말래도 올게! 딱 기다리고 있어! "흠, 뭐 나도 심심하니까... 알았어! 그럼 나중에 보자." "벌써 가게?" 아..그게.. 나는 약이 다 떨어져가는 링겔을 가르키며 말했어. "링겔 갈아주러 가야되거든. 그럼 안녕!" "그래 여주야, 안녕." 애써 시큰둥한 말투로 말을 마치고 빙글- 뒤를 돌았어. 조금 아쉬웠지만, 내일 다시보면 되니까. 내일은 뭘 물어볼까? 아 일단 몇 살인지 물어봐야겠다. 생긴걸로 봐선 나랑 비슷하겠지 뭐. 음, 또, 그리고.... "여주야!" "....." "김여주!" "...어? 왜?" "너, 그, 바지..." "내 바지? 내 바지가 왜?" "아까 체조 하면서, 바지가 좀 무리한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게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격하게 안했는데. 아닐꺼야. 아니야. 아니여야 돼... "..핑크색 좋아해?" "악!!!!!!" 그날 밤, 난 구멍난 병원복 바지를 기우면서 또 다시 이불킥을 해야만 했어. 안뇽하세요. 벌써 두번째 글이네요. 부쨩한 여주, 정국이 앞에서 망신짓은 다하네ㅎㅎㅎ 과연 이 글이 세드앤딩으로 끝날지 해피앤딩으로 끝날지 끝까지 지켜봐주세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