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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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했다. 다른 말로는 설명할게 되질 않았다. 그러니까 요 근방에서 '김종인'하면, 우유 쪽쪽 빨던 얼간이들도 하나같이, 아 그 김종인? 이럴거란말이다.
교칙 엄하기로 소문난 우리 학교지만, 김종인은 제외였다. 아침이면 김종인은 늘 삐딱하니 교문에 서있었다. 입엔 가방끈을 물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체. 야 임마 엎드려 뻗쳐! 학주의 말은 귓등으로 쳐내는 것 같았다. 그냥 말없이 시선만 바닥에 둘뿐이었다.
그런 김종인에 대한 시선은 물론이요, 소문도 그다지 좋지않았다. 무슨 조직에서 데려간다구 벌써부터 총질 연습시킨다더라, 가라오케에서 주정뱅이 손님 뒷치닥거리한다더라, 아가씨촌에서 심부름꾼한다더라. 그 말도 되질않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계속 반복됐다.
어떤 날은 조폭 지망생. 어떤 날은 가라오케 시다바리. 어떤 날은 아가씨촌 심부름꾼.
그 말도 되지않는 소문들 가운데서 김종인은 침묵뿐이었다. 헐렁하니 불량스럽게도 나온 제 셔츠자락 같은 아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항상 가쉽거리가 되곤하는 김종인과 접촉되는 일이 없었다. 그냥 그 무수한 소문만 들었을 뿐이지, 눈 하나 마주친적이 없었다. 아 가끔 남자애들 축구할때 보긴했다. 물론 나만. 난 그 평범한 생활에 그러려니했고, 별탈없는 내 학교생활에 만족해하고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만족하고있었는데.
징. 징징.
".....여보세요............."
ㅡㅇㅇㅇ 너 몇반이냐?
"어? 나............."
새 반이 발표된 3월 2일의 꼭두 새벽. 잘만 자고있는데, 열심히 몸을 떨어대는 핸드폰을 받아들자면, 잔뜩도 잠긴 박찬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ㅇㅇㅇ, 너 몇반이냐? 그 말과 함께 마우스 클릭질도 들리는 듯 싶었다. 그제서야 난 깨달아버린다. 맞다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한다고했지..............
"몰라. 아직 확인 안해봤는데..............."
ㅡ어이구 ㅇㅇㅇ, 이 잠탱이년아. 이 오빠가 전화 안했으면 어떡할라했냐?
"오빠라니 미쳤어? 넌?"
ㅡ어? 난.............10반.
"그래? 삼층이네. 야 이왕 본 김에 내 것도 좀 봐주면 안돼?"
수화기 건너편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ㅡ싫은데?
"..........치사한 새끼. 그냥 봐줘라, 내 이름 치면 되잖아."
ㅡ네 이름치기 좆나 힘들어.
"아 됐어. 짜증나니까 끊어."
ㅡ아아아아, 알겠어 알겠어. 대신 오늘 아침 우유 콜?
"끊어."
ㅡ아아아아, 야야야 끊지마! 야! 야 ㅇㅇㅇ!
난 영양가 하나 없는 전화를 끊고 눈곱을 떼내었다. 어렴풋 확인한 시간은 일곱시 반. 에이씨 늦었네...........대충 교복만 입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새학기 첫날부터 목욕재개는 개뿔, 안늦어야 다행이라니. 정말 첫날부터 내 맘대로 굴러가는 구석하나 없구나. 기지개를 펴내며 교복 셔츠를 집어드는데 다시 울리는 핸드폰. 이번엔 문자다.
ㅡ[ㅅㅂ냉정한년아 우유 하나 사주기가 그렇게 아깝냐]
박찬열. 난 그 시덥잖은 문자에 대충 답장을 보내었다. 그럼 아깝고말고. 얼~마나 아까운데.
답장은 바로 왔다. 아침부터 참 바쁜 놈이다.
ㅡ[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래. 지각이나 하지말고와ㅡㅡ너도 10반]
***
야 나 또 박찬열이랑 같은반. 헐 좆나 짜증나겠다! 이제 고삼인데 걔 좆나 시끄럽잖아 비글 새끼. 그러니까..........망했어.
시내버스는 만원이었다. 우리학교 학생 반, 출근하시는 어른 반, 단체 등산이라도 가시는지 형형색색 등산복을 입으신 아주머니들 반. 그 삼분의 일씩 차곡차곡 찬 버스는 만원이었다. 다행히도 일찍타는 덕에 난 앉아갈수있었고, 조는 여유까지 부릴수있었다.
새학기 첫날. 기분 탓인지 모두 들떠보였다. 손은 여전히 친구와 박찬열 뒷담화를 하고있지만도, 설레는 맘은 어쩔수 없는가 보다.
불행중 다행인지, 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몇도 10반이라했다. 나와 같은 반이라는 첫번째 소식에 어머 잘됐다, 우리 일년 힘내서 빡세게 해보자 호호 거리다가, 박찬열도 같은 반이래. 이 말에 온갖 욕이 다튀어나온다. 씨발, 대학 가라는거야 말라는거야!? 박찬열?! 미쳤어?!?!
난 쿡쿡 웃으며 카톡을 계속했다. 으이구 귀여운 년들. 한참을 킥킥거리며 핸드폰만 붙잡고있는데, 옆의 아저씨가 내린다. 그리고 바로 타는 누군가. 낮은 욕설과 함께 가방을 벗어 제 무릎께로 올려놓는 것을 힐끔 보자면 우리학교 교복이다. 까만색 차이나 카라 마이. 아침부터 왠 욕질이람. 자리 잡았으면 땡잡은거지..................난 그 모를 아이의 부정성에 혀를 차가며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두었다. 아 박찬열 좆나 짜증나 복날에 박찬열잡자.
비글탕.
그때 난 터져버린거다. 와 진짜 웃긴 기집애. 비글탕이래 비글탕...............순식간에 육성으로 터진 웃음 덕에 입을 틀어막자면, 내게로 꽂힌 시선들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난 빠르게 카톡을 쳐냈다. 야 나 너때문에 버스에서 터졌어.................그때였다. 내 옆으로 가방을 뒤적거리나 싶던 그 모를 아이의 말이 들린건.
"개 시끄럽네."
"..................."
"미친년."
난 순간 굳음을 느껴버린다.
뭐? 지금 나한테 한 소린가? 난 조금 소심하다. 난 후다닥 핸드폰을 잠금하고 침을 삼켜내었다. 옆의 모를 아이는 계속 입을 놀려댔다.
"병신 같은 년이 쫄아선..."
"................"
"...찌질하다 찌질해."
그리고 버스가 멈췄다. 이번 정류장은 산일고 후문. 산일고 후문입니다. 그 말과 함께 일어선다. 난 눈만 껌뻑이며 그 아이의 뒤를 좇았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가방을 매는가 싶더니, 카드를 찍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김종인.
난 다시 얼어버림을 느껴버린다. 산일고 가쉽거리. 난 얼빠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김종인이다. 그러거나말거나, '학생입니다.' 그 안내말과 함께 김종인은 마지막으로 내게 한방 더 날리고만다. 그 표정하나 없는 얼굴로.
"씨발년이 꼬라봐서 뭐 어쩔껀데."
....................세상에.
난 내리는 것도 잊었다. 그냥 저 아이의 기가찬 행동에 잔뜩 겁이 먹어버린 것이다. 소문으로 듣던 김종인.
그 김종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