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 돌아온 찬열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찬열을 부르기 위해 암자를 나오려 한 건지 문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곳엔 백현이 아래에서 하혈을 해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고 엄청난 고통에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기절해 있었다. "변...백현..." 찬열은 당황하여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하혈에 위험하다고 느껴 옆에 있는 허름한 담요로 백현을 꽁꽁 싸매고 급하게 산을 내려갔다. 꽤 가파른 길을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찬열은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저번에도 같은 일이 있었는데 이번엔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아서 급했다. 백현의 나체는 점점 체온을 잃어 가고 있었고 아이를 가진 것인지 의심이 드는 백현의 무게와 파리한 안색은 찬열으로 하여금 초조함을 가중시켰다. 일단 백현을 관아의 자신의 방에 눕히고 노비에게 당장 마을의 의원을 불러오라고 명했다. "정신차려... 변백현... 정신차리라고..." 방안의 온도를 높이라 이르고 침상위에 눕힌 백현을 오도카니 바라보고만 있는 찬열에게 비친 백현의 나체는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해 미숙함이 느껴졌다. 한편 배는 만삭임을 드러내듯 이질적으로 불러있었고 자그마한 몸이 견디지 못한 듯 다른 곳은 모두 말라서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체온이 내려가는 백현의 몸 이곳저곳을 주무르며 정신차리라고 일어나라고 중얼거리는 찬열을 멈추게 한 것은 헐레벌떡 뛰어온 마을의 의원이었다. "아니... 이것이..." "사람이 쓰러졌네... 얼른 보시게." 의원은 시체가 누워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 뒷걸음쳤지만 살아있다며 진찰을 하라는 새로 온 감찰관의 말에 다가가 진맥을 짚어보았다. 맥이 불안했고 험한 일을 당한 듯한 아래에선 피가 멈추지 않았다. 의원은 급하게 하혈을 막았고 옆에서 불안하게 앉아 있는 찬열을 향해 백현의 상태를 고했다. "큰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근데... " "무엇이냐. 얼른 말하거라." "산모의 몸이 많이 어려서 주의하라고 일렀습니다만... 영양이 불균형하고 아직 출산기관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아이의 생사를 확신하기가 힘듭니다." 찬열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고 허망했다. 아이를 극진히 아끼는 듯 했던 백현이었다. 근데 아이의 생사를 모른다니... 찬열이 복잡한 심경에 마른세수를 하고 있을 때 백현에게 탕약을 먹이던 의원에게서 비명같은 소리가 들렸다. "양수가 터진 듯 합니다...! 지금 당장 출산 준비를 해야하니 서둘러 주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은 출산을 위해 꾸며졌고 백현은 의식이 없었다. 더이상 이 관경을 지켜볼 수 없던 찬열은 방을 나왔고 그 이후에도 한참이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아직 멀었다고 하더냐?" "그것이... 산모가 어리다 보니 아직 산도가 너무 좁아 억지로 아이를 빼내기가 힘든가 봅니다. 산모가 의식이 있어야 힘을 줄텐데.. 아직 의식마저 없으니..." 찬열은 목이 타는 듯 했다. 저 어린사람이 아기를 낳는다니... 아직 출산 기관도 완성되지 않은 어린 사람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찬열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때, 의원이 방에서 나와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뭔가 가져와 줄 것을 부탁했다. "무슨일인가?" "더이상 시간을 지체하단 출혈이 많아 산모도 아기도 위험합니다. 침으로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하여 출산을 해야합니다." 찬열은 밖에서 두고만 볼 순 없어 백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아직 파리한 안색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백현이 누워있었다. 찬열은 다가가 식은땀을 닦아주고 손을 만져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 뿐이었다. 의원이 도착한 침을 백현의 여기저기에 놓았고 약 십분뒤에 점점 의식을 차린 백현은 한숨 돌리새도 없이 닥쳐오는 산고에 몸을 뒤틀었다. "으윽...하아... 아악!"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체되자 영양상태가 안 좋은 백현은 정신을 잃으려고 했다. 그때마다 찬열은 이렇게 죽는 것은 아닌지 초조하여 백현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아직 어린 백현에게 출산의 고통은 감당할 수 없었다. 의식을 잃고도 찾아오는 고통에 백현이 인사을 찌푸리자 찬열은 어떻게 해보라며 의원을 닥달했지만 별 수 없었다. "변백현... 백현아... 정신차려봐." 찬열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희미하게 정신을 차린 백현이 힘을 줘보았지만 이미 한계까지 간 체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 아기가 나옵니다. 힘 주세요." 꽤 시간이 흘러 백현은 아기가 나온다는 소리에 마지막으로 힘을 주었고 방안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가득찬 순간 백현은 정신을 잃었다. 찬열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진 백현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일어나라고 정신차리라고 소리쳤지만 백현은 아무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아이는 아들이었고 한눈에 보아도 찬열 자신을 꼭 빼닮아 있었다. 백현이 자신의 아이를 낳은 것을 알게 된 찬열은 백현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백현은 일주일 동안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백현의 몸은 임신기간동안 나빠질대로 나빠져있었고 아이를 낳으며 겪은 충격이 더해져 위험한 상황이었다. 앙상하게 마른 몸은 작은 몸을 더 작아보이게 했고 고생의 흔적이 역력한 고사리같은 손은 엉망이 되어서 그동안 고생을 들어내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안전하게 아이를 낳았을 백현의 생각에 찬열은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일을 백현의 곁에 머물렀다. "백현아... 얼른 일어나서 니가 낳아 준 우리 아기 얼굴도 보고... 이름도 지어줘야지... 내가 니 앞에 염치없이 얼굴 보이는 거 나도 알지만... 용서할 기회를 줘..." "..." "아기는 건강해. 그건 날 닮았나봐. 그래서 엄마를 더 고생시킨건가? 넌... 내 아이를 가졌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그때 마침 찬열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평소 백현은 돌봐줬다는 마을 아낙네였다. 자신의 집무실에 가서 마주 본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말이 없었다. "그래... 평소 내 부인을 돌봐줬다고?" "아들같은 사람이 아이를 가졌다고 끙끙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일자리랑 밥을 좀 줬을 뿐입니다." "평소에... 생활은 어떠했나? 그 산에 있는 암자는 사람살만한 곳이 못되었네. 많이 힘들어 하던가?" "묵묵하게 자기 일만 하던 사람이라 힘든 내색도 없었습니다. 근데 배가 불러올수록 한눈에 봐도 말라가기에 밥을 더 챙겨주어도 통 삼키지 못해 걱정했습죠." "그런..." 찬열은 백현의 힘들었던 모습이 눈에 그려지자 안타까움에 인상을 펼 수가 없었다. 저 가여운 사람에게 자신은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 마을에 왔을 땐 어멈이란 자와 함께 였습니다. 워낙 친아들처럼 살뜰하기에 부녀지간인가 했는데 나중에 어멈이란 자와 친분을 쌓고 듣고 보니 모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근데 마을에 변복을 한 사내들이 그들의 집을 들이닥치고 어멈이란 자가 끌려간 것인지 아님 죽은 것인지 사라져버리고 새댁이 홀로 남았기에 안쓰러워서 일을 주었습죠. 들리는 소문으론 그 사내들이 새댁을 겁탈하였다는데 절름발이인 사람이 어찌어찌 잘 몸을 숨겼나 봅니다." "하... 다리는 마을에서 부터 불편하던가?" "이 마을에 들어올 때 부터 절름발이 였습니다. 작은 몸에 아이를 배고 걸음걸이도 온전치 못한 새댁이 가여워 마을사람들이 신경썼습니다." 찬열은 홀로 집무실에 남아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백현을 덮쳤을 때 고통에 질려 몸을 떨며 중얼대던 것이 옛기억 때문인 듯했다. 고통스런 기억을 상기시키고 두려움에 떠는 백현을 무시하고 똑같은 짓을 했다. 그 자들을 찾아내어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한 찬열은 자신이 쓰레기 같아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백현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간 찬열은 눈을 뜨고 앉아있는 백현을 발견했다. 백현은 찬열을 보자마자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이부터 찾았다. "아이는요...? 내 아이... 어딨어요?" "건강해. 아들이고 너랑 날 꼭 닮았어. 지금은 아이가 배를 곪아서 마을에 아이엄마가 와서 젖을 먹고 있어." "아... 데려와 주세요." 찬열은 백현이 아이를 찾는다며 관아의 사람에게 아이를 데려오라고 일렀다. 옆방에서 만족스럽게 젖을 빨던 아이는 갑자기 사라진 온기에 마구 울어댔다. 백현은 그런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더니 자연스레 자신의 젖을 물렸다. 아이는 자신의 어미를 알아본 것인지 편안한 표정으로 금세 안정을 찾고 젖을 빨았다. "근데... 몸은 괜찮은건가?" 찬열은 금방 사라질 듯한 백현이 아슬했다. 안좋은 몸으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도 걱정이었다. "괜찮아요. 아이가... 서방님을 닮았네요." "모유를 먹이면 몸이 힘들거야. 아직 먹은 것도 없잖아. 아이는 이리네." 백현은 찬열의 손길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모유를 먹였다. 찬찬히 바라본 아이의 얼굴은 부정할 수 없이 찬열의 아들이었다. 백현은 괜한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배가 부른지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었고 아이를 누이려고 해도 힘이 부족하자 백현은 찬열을 바라보았다. 찬열은 모유를 먹이기 위해 풀어 헤친 저고리 사이로 보이는 백현의 몸이 뼈 밖에 없어서 안절부절할 때 아이의 무게가 버거웠던 건지 자신을 쳐다보는 백현의 시선을 느끼고 조심히 아이를 들어 눕혔다. "왜... 아무 말하지 않았어... 내 아이였잖아... 내가 너에게 심한 말을 해도 왜... 묵묵히 듣기만 했냐고." "서방님께서 저같이 비천한 어미에게서 씨를 보기 싫다 하셨잖아요... 싫어하실거라고 생각했어요. 알리면... 아기가 위험해 질 것 같아서... 그래서..." 찬열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 말이고 백현에게 상처를 주며 신뢰받지 못한 부군을 자처한 것도 자신이었다. "쉬어... 밥을 챙리라 할테니 꼭 먹고. 아이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말라서야 되겠어?" 내일은 아무래도 무리데스...지만 씽크빅을 짜서 오도록 하겠습니당 찬열이한테 진심으로 욕하시는 독자님들이 계신데 됴다...ㅎㅎ 그리고 저의 암호닉분들은 답댓은 못달아드려도 너무너무 반가워 하고 있어요! 다 기억하고 있답니다ㅎㅎ 다른 모든 독자분들도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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