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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신이시여 전체글ll조회 352l
11화 계속, 살아가겠어.






어르신들이 대강 놈들을 정리하고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말씀드렸어. 아버님은 먼저 인질이었던 사람들을 피신시킬 것을 당부했지. 

“이것을 쓰게.”

아버님이 준 건 신호용 소이탄이었어. 

“근처에 해군이 대기하고 있을 거야. 위험하니까 일단은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하고 인질들 구출했다는 신호를 보내려고 이걸 받아왔지. 그 핵융합로는 어떻게든 찾아서 수습해볼 테니까, 자네와 수영이는 얼른 피하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르신들은 핵융합로를 찾기 시작했어. 바로 수영이와 부장님을 데리고 함께 입구 쪽으로 나왔을 때. 내 팔을 수영이가 붙잡았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차렸지. 

“여긴 위험해!”

“알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라도 힘을 보태야 돼.”

“우리가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 잊은 거야?”

“알고 있어. 알고 있기 때문에,”

수영이는 내 몸을 와락 껴안았어. 그 작은 몸이 마구 떨리고 있었지. 

“그래도 할 수밖에 없어.”

“수영아!”

미처 붙잡아 말릴 새도 없이 수영이가 다시 입구 안쪽으로 잽싸게 사라져 버렸고, 나는 망연자실하게 입구 안쪽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밖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과 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 사이에서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할 것인지 시간이 너무 없었어. 

당장 폭발이 일어난다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것에 대비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 건지, 정말 알 수 없었어. 

그러다 갑작스런 느낌에 깜짝 놀랐어. 

그런 나를 바라보던 부장님이 내 손에 들려있던 소이탄을 갑자기 빼앗아 간 거야. 

“뭐하시는 겁니까? 이리 주세요.”

“아니, 지후군은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

소이탄을 품안에 꼭 껴안으면서 부장님은 나를 바라본 채로 말했어. 

“솔직히, 조금 분해.”

부장의 머리가 비바람으로 엉망이 되고 있었고, 옷은 젖어서 들러붙어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었어. 그리고 그녀의 표정도 그 몰골을 따라가고 있었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건지 어떤 건지 비바람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가 울고 있다고 느꼈어.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 그녀를 지켜줘.”

나는 부장님의 어깨를 한 번 꽉 쥐어주었어. 그리고는 몸을 돌려 입구 안으로 뛰어 들어갔어. 그리고 그런 내 등 뒤로, 

“살아 돌아와야 돼!”

라고 소리치는 부장님의 외마디 외침이 울리는 걸 들었어. 



동력이 점점 나가기 시작했는지, 사위가 어두워져 있어서 나는 더듬더듬 찾아 들어가다가, 가지고 있던 m4a1에 붙어있는 플래쉬 옵션을 기억하고는 그것을 켜서 길을 찾아 들어갔지. 

완전히 적막해져 드라켄 야거 놈들의 시체만 널린 공간. 거기에 기계를 설치해 놓았던 벽 쪽이 완전히 뚫려 있었고, 그 뒤쪽으로 통하는 동굴이 새로 생겨 있었어. 그 동굴 안으로 전선들이 즐비한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그 전선들을 안내 삼아서 파고 들어간 것 같았어. 

장비들을 다시 확인하고 조준상태를 유지하면서,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지. 

백여 걸음 쯤 걸었을까. 그 플레쉬 옵션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비쳐오고 있었어. 나는 플래쉬 옵션을 끄고 잽싸게 그림자가 지는 벽 쪽으로 몸을 숨겨서 상황을 보았지. 

규모는 작았지만, 그래도 큰 집 하나 크기만큼은 될법한 정도의 핵융합로가 크게 파여진 바닥 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어르신들이 그 앞에 있었어. 그리고, 

변신한 채로 공중에 떠있는 프란데르트 놈이 눈에 들어왔어. 

수영이를 한 팔로 껴안고 있는 채의 모습으로. 
수영이는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프란데르트의 손아귀 안에서는 속수무책이었어. 

그 광경을 본 순간 난 정말 머리에서 피가 증기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 속을 헤맸지. 

“수영아!”

어르신들은 수영이만 부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짧게 생각해보다가, 아마도 수영이가 어르신들 따라서 몰래 들어왔다가 프란데르트에게 습격을 당한 모양일거라 짐작했어. 아니었다면 프란데르트가 어르신들의 손에서 수영이를 저렇게 멀쩡한 꼴로 빼앗아 올 수는 없었겠지. 

“서툰 짓 하지 마라.”

프란데르트 놈의 그 이중으로 겹쳐있는 듯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려왔어. 

“이 아이의 목숨이 중요하다면 말이지.”

나는 분노로 손이 떨리는 것을 애써 참아내면서 m4a1용 탄창을 두 개 꺼냈어. 그건 5.56mm탄 중에서도 탄두가 빨간 페인트로 칠해져있는 놈들, 즉 예광탄만 골라서 채워 넣은 것이었어. 총기 가지고 연습하면서 만들어뒀던 탄창인데, 프란데르트가 섬광탄의 빛을 눈에 쏘이고 괴로워하던 걸 참고해서 만들어놓은 거였지. 그 정도의 효과까지는 아니겠지만, 조금은 기대할만하지 않을까 싶었어. 

이것으로 일단 눈속임을 한 후, 바렛 저격총 들고 응사하면서 목숨 거는 방법밖에 없지. 이미 이것을 쏜 시점부터 내 위치는 바로 들통 나는 거니까. 프란데르트의 힘에 12.7mm 탄환이 과연 쓸 만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해보는 수밖에 없잖아. 그런 때에는. 

그래서 타이밍을 노려보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놈이 이런 말을 꺼내네. 

“이렇게도 운이 따라주니 고마울 뿐이군. 이 아이는 내가 잘 데리고 가겠다. 네놈들은 거기서 핵융합로나 매만져 보라고. 푸하하하핫!”

그리고는 슬금슬금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는 거야. 어르신들이 어떤 짓도 하지 못하도록 수영이의 목을 쥐고 천천히. 

수영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본 순간 열이 확 받은 나머지 난 앞뒤를 재지 않고 덤볐어. 조정간 연발, 놈의 얼굴을 조준, 발사. 

60발의 예광탄들이 계속 프란데르트의 얼굴을 향해서 날아갔고, 프란데르트는 당연히도 그걸 팔을 휘둘러 막았어. 사실 난 그런 상황을 바랬고. 

예광탄 탄두의 발광제들이 안 그래도 연소하느라 빛을 내고 있는데 그녀석이 탄두를 쳐대는 바람에 그 납탄두가 조각나 흩뿌려지면서 얼굴 언저리로 빛의 입자를 뿌려댔고, 놈의 민감한 시각신경이 그 빛의 입자를 빨아 들인 거야. 섬광탄만큼의 효과는 아니더라도 그 녀석의 주의를 충분히 흩뜨려놓았지.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넓은 곳으로 걸어나오면서 바렛 저격총을 계속 쏘아댔어. 눈을 가리느라 팔로 얼굴을 가린 놈에게 12.7mm 탄환의 연속공격은 순간 견디기가 버거웠던지 비틀대기 시작했고. 

거기서 멈추면 엿되지. 한 손으로 방아쇠를 계속 당겨 쏘아제끼면서 큼지막한 탄창을 꺼내 바로 탄창을 교환하고 다시 쏘았어. 쾅쾅쾅쾅쾅쾅!

확실히 연속공격은 먹혀들고 있었고, 놈은 완전히 수영이를 놓친 채로 반탄력을 이기지 못한 채 저 쪽 벽에 쳐박혔어. 그런 수영이를 어르신들이 잽싸게 받아들었지. 
어르신들이 서 있는 곳으로 가니, 당연히 질책이 쏟아지지.

“도대체 자넨 뭐하는 사람인가! 수영이랑 같이 피하랬더니!”

“죄송합니다. 말릴 새도 없이 수영이가 가버리는 바람에.....”

“여보, 그만 둬요. 지금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니에요!”

어머님의 만류가 이어졌어. 그 말이 맞기도 했고. 
프란데르트 놈이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듯 주변의 벽을 박살내면서 솟아올랐거든. 

“오늘, 전부 다 여기서 죽여주마!"


프란데르트의 겉모습이 전보다 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어. 올백으로 넘겼던 머리가 갑자기 뻗쳐 일어나면서 바늘처럼 삐죽삐죽 서기 시작한 것? 그건 약과고, 얼굴 자체도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지.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혈관이 터져 갈라지더니 비늘같은 것들이 솟기 시작하고 온 몸은 옷이 완전히 찢겨나가 끔찍한 형상의 신체가 드러났어. 

진짜 용들의 비늘이 윤기 있고 부드러운 느낌의 것이라면 그놈의 온 몸은 마치 돌덩어리를 쪼갠 금이 온몸에 난 것처럼 되어 있었어. 그런 무늬의 고르지 않은 비늘은 전부 다 질척함이 느껴지는 검정색. 마치 불투명한 피부처럼 살이 붙어있는 징그러운 느낌의 날개 뼈대들도 전부 검은 색이었어. 

그런 모습의 프란데르트를 보는 순간, 어르신들이 갑자기 숨이 멎은 듯 되어버리더니 한 입처럼 말씀하셨어. 

“블랙 드래곤!”

놀라움과 긴장과 두려움이 뒤섞인 어르신들의 표정을 보면서도 난 왜 그렇게 놀라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어찌되었든 일단은 기싸움에서 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느닷없이 내가 먼저 바렛 저격총을 쏘았고, 탄환이 정확히 가슴께를 맞았는데, 

이번엔 전혀 충격도 없는 것 같네? 몸이 미동도 없는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놈의 갈라진 목소리가 동굴 안을 울렸어. 

“너희는 모두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러더니 앞에서 녀석이 사라져 있더라. 

난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고, 벌써 이모님이 저만치 날아가 벽에 쳐박히고 있었어. 그 놈이 이모님이 계시던 자리에서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고. 

뒤로 돌아본 그놈의 표정을 읽고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어. 그놈은 비웃고 있는 거야. 
젠장.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저런 놈을 약올린답시고 입을 놀리고 있었다니. 

“진짜 용들의 힘은 이것밖에 안되나?”

이모님이 돌벽에서 떨어져 내려 각혈을 한 번 토했고, 그걸 본 어머님이 갑자기 이성을 잃어버리셨지.

“너 이 나쁜 자식!”

겉모습이 순간 용의 모습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어머님의 주먹이 그녀석의 안면을 쳤어. 난 동시에 뛰기 시작했고. 그 녀석은 어머님의 주먹에도 끄덕 없이 서 있었거든. 

“간지럽지도 않군.”

녀석의 팔이 어머님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아버님이 대노하시면서 녀석의 옆구리를 발로 차버렸고, 그제서야 녀석이 조금 날아가는 듯 싶었어. 아버님의 힘은 통하는구나 싶었지만, 그런 안도도 잠시. 녀석은 날아가자마자 허공에 멈춰서 있었지.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이번의 그 갈라진 목소리는 즐겁다는 투.
녀석은 아버님을 향해 날아갔고, 그 뒤로 사투가 벌어졌어. 
나는 수영이와 함께 어머님과 이모님을 챙겼지. 이모님도 한 번 숨을 끊어쉬더니 갑자기 공간을 일그러뜨리셨어. 어머님도 마찬가지셨고. 이제는 힘에 제한을 두지 않으시려는 거야. 
어머님과 이모님은 우리를 쳐다보시면서 말씀하셨어.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어. 빨리 바깥의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가!”

그리고는 아버님과 프란데르트의 사투의 현장에 끼어들어 같이 싸우셨어. 

정신이 없었지. 이쪽에서 모습이 보였는가 싶으면 저 쪽에서 모습이 보이고, 돌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돌이 우리에게 튀는 걸 겨우 피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네 명의 모습이 서로 뒤엉키기 시작하고. 핵융합로 쪽의 부품들을 부수거나 하면서 난리를 치고. 

그런데 더 위험한 건 그 부품들이 터져나가면 나갈 수록 핵융합로 쪽의 소리가 더더욱 심상치 않은 소리가 되어 갔다는 거지. 

그렇게 어르신들이 덤비고 있는데도 프란데르트의 움직임은 아직 여유로운 면까지 보였어. 세 분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놈은 단번에 모두를 쳐날려 멀리 떨어뜨렸어. 

“왜 용으로 변신하지 않지? 그럼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있을텐데. 아, 이놈의 동굴이 방해라서? 후후후.”

놈이 한 팔을 치켜들더니 단 한 방의 충격파로 동굴 지붕을 마치 뚜껑 열어 제끼듯 박살을 내버렸어. 흙이 완전히 위로 휘이이익 튀어나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구멍과 함께 위로 반탄력을 받고 떠올랐던 흙모래들이 비와 함께 추적추적 떨어지기 시작하더라고. 암벽이라든가 큰 덩어리들은 이미 다 옆으로 제껴져 날아간 채고.

“자, 공간을 좀 넓혔다. 내가 좀 신사라서. 어차피 그래봐야 여기서 많이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세 분이 기회가 왔다는 듯 우리에게 눈짓을 했어. 그건 우리를 위한 혈로를 열어주겠다는 뜻임을 내가 모를 리 없었지만, 수영이는 두려움에 질린 채 아무 것도 신경쓰질 못하고 있었어. 하기사 수영이만 그렇겠나. 나까지 다리가 후달리려고 하는데. 

사실은 대강 여기서 눈치를 챘어야 했지만. 내 상태에 대해서 말이야.


어쨌든 난 그런 수영이의 어깨를 감싸고 말했어.

“여기서 나가야 해! 지금 당장!”

그제야 수영이도 정신이 퍼뜩 든 듯 용으로 바로 변신했어. 

“호오, 먹음직스럽게 생겼구만!”

프란데르트 놈의 눈빛이 마치 욕정에 물든 수컷의 그것처럼 변하는 것을 보고 격분해서 세 어르신이 이제는 주위 이목도 신경 쓰지 않고 강한 빛 속에서 용으로 변신해 놈에게 짓쳐 올라갔어. 
그리고 그 틈에 우리도 빠르게 날아올랐어. 정확히 지붕 바로 밖까지 다다를 정도까지. 

“멀리 못 간다고 했을 텐데!”

역시 뱉은 말은 지켜주는 프란데르트놈. 놈의 모습이 우리 앞에 나타나더니 우릴 땅바닥으로 쳐갈긴 거야. 우린 자유낙하를 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수영이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긴 했어도 통증과 충격에서 완전히 몸을 사리기란 어려웠던 법. 나 역시 온 사방이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도 수영이의 몸을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렸고. 

아슬아슬하게 내가 올라타자마자 수영이도 짧은 순간 힘을 다해 날개를 펼쳤지만, 때가 조금 늦어 우리는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듯이 착륙해버렸어. 

아무리 몸이 변했다고는 해도 그 정도의 충격이면 온몸의 뼈와 신경들이 다구리 맞은 느낌인거야 당연하고, 난 그런 와중에도 벌떡 일어나서 수영이를 신경 썼어. 수영이가 변신이 풀어진 채로 전투복마저 들춰져서 *을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지. 

달려가서 매무새를 다듬어 주면서 겨우 수영이가 큰 상처 없이 충격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모습을 보던 난,

이번엔 완전히 빡이 돌았어. 

“그래, 죽어보자, 한 번!”

마구 달려가서 저쪽에 팽개쳐져 있던 바렛 저격총을 들고 허공을 조준. 가까이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멀리서 싸우는 형상의 움직임들이 잡히기 시작했고, 아직도 상당히 빠른 그 움직임들을 보면서 난 예측사격을 시도해야만 했어. 그건 한 번도 안 해봤던 상당히 위험한 짓이었지만, 내 능력을 믿고 해 볼 수밖에 없었지. 

자꾸 흔들리는 놈의 모습을 총신으로 따라가다, 믿을만한 지점들을 골라서 쏴 제꼈어. 총알은 정확히 멈추는 프란데르트놈의 머리가 있을 만한 곳으로 날아갔고, 놈은 번번히 그것을 막아냈어. 

아무리 튼튼한 몸이라도 일단은 머리가 충격을 받지 않아야 하는 건 놈도 마찬가지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반응이었지. 한 탄창을 다 비우고 마지막 한 탄창을 갈아 끼워 갈기려고 했을 때. 

그 때 느낌이 왔어. 다리가 휘청거리면서 꺾이는 느낌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키스만으로는 내 몸의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거야. 일시적으로 변할 수는 있겠지만 효과는 오래 가지 못하지. 의외로 관계를 긴 시간과 뇌파의 교접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는데, 키스 따위로야 당연히 시험 직전 초치기로 공부하는 꼴 정도. 

그렇게 몸의 힘이 떨어지고 있는 거였어. 

이 때의 심정은 진짜 말로 다 하지 못해. 왜 힘이 떨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총은 점점 무거워져만 가고, 충격을 흡수하던 몸이 피로물질을 쉽게 해결할 수 없게 되자 근육에 순식간에 젖산이 쌓여가면서 바렛 저격총을 쏘느라 축적되어 있던 피로도가 거의 배수의 느낌으로 덮쳐와서 힘이 떨어져 가는 그 느낌이란. 

팔은 이미 총을 들고 있을 수가 없고, 이제 고작해야 개머리판을 땅에 고정해서 마치 박격포처럼 악으로 깡으로 겨우 쏘고 있는 그런 꼬라지. 

왜, 좀 더러운 이야기지만, 급똥을 참으면 그 다음의 신호가 거의 제곱수가 되어서 고통스럽게 오잖아. 그런 느낌이었다니까. 


게다가 하필이면 또 그 때. 

내가 녀석의 주의를 꽤나 어지럽힌 게 화가 났는지, 프란데르트 놈도 내 앞으로 떨어져 내렸어.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모습이 내 눈 바로 앞에 보이는 순간, 난 어느새 목덜미를 잡힌 채 허공에 떠있었지. 

“모기 같은 새끼라서 내버려뒀는데, 꽤나 신경 쓰게 하는 군. 확실히 입만 산 놈은 아닌데 그래. 일단은 너부터 처리해볼까. 저놈들 오기 전에?”




어르신들이 빠르게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모습,

수영이가 몸을 겨우 일으켜 내 쪽으로 팔을 뻗으며 울부짖는 모습. 

온 몸에서 빠져나가는 근력과 힘. 

프란데르트 놈의, 살의로 가득차 타오르는 듯한 눈빛. 그와 함께 놈의 온 몸에서 비늘들이 마치 극도의 분노라도 느낀다는 듯 활짝 열리던 찰나.

그 모든 것들이 초고속 촬영으로 찍은 느린 동영상처럼 한데 겹쳐지기 시작한 그 때. 



힘없이 감기려던 눈을 번쩍 떴어. 내 한 손은 급하게 움직여 택티컬 베스트에서 12.7mm 탄환과 5.56mm 탄환을 동시에 찾았지. 프란데르트 놈이 그런 내 움직임에 뭔가 의아하다는 듯 조금 틈을 보인 그 때. 아직은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때.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완전히 내 몸을 지배했어. 

드디어 손가락에 탄환이 쥐어지는 순간, 나는 입을 열어 마지막 도발을 했어. 

“죽.....어.....”

“뭐라고?”

“씨.....발.....죽어!!!”

놈의 표정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프란데르트 놈의 가슴께를 덮고 있는 비늘이 닫히려는 순간보다 내 손은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어. 그 손에 쥐고 있던 12.7mm 탄환. 그 탄피 몸뚱이가 놈의 열려 있다가 닫히려는 비늘 사이로 껴들어갔지. 그 때문에 비늘이 온전히 닫히지를 못했어. 

다시 뒤로 향해 주먹을 쥔 손, 주먹을 쥔 손가락 사이에 끼어있는 5.56mm 탄환. 놈의 일그러진 표정. 황급하게 비늘 사이의 탄환을 빼려는 놈의 움직임. 그리고 온 힘을 짜낸 내 고함소리. 

“으아아아아아아아악!!!!!!!!!!!!!!!!!!!!!!!!!!!!!”



5.56mm 탄환의 뾰족한 끝에 마지막으로 힘을 실어 12.7mm 탄환의 격발부를 쳐날렸고, 탄환은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어. 

전에 수영이를 껴안으면서 비늘을 자세히 봤을 때 비늘 사이로 연약한 살들이 떨고 있던 걸 보면서 신기하다고 느꼈던 걸 요행히도 기억했던 게 이렇게나 쓸모 있을 줄이야. 

놈의 비늘 사이로 12.7mm의 큼지막한 탄환이 마구잡이로 놈의 몸 속에서 던져진 막대기처럼 위아래로 회전, 뒤쪽으로 비늘 수십 개를 밀고 나오면서 관통해버렸고, 놈의 눈이 고통과 당혹으로 일그러졌어. 당연히 내 목을 쥐고 있던 손의 힘도 떨어졌지. 
그 놈과 나는 동시에 허물어졌고, 나는 그 없는 힘의 와중에서도 놓쳤던 총을 들어, 개머리판으로 녀석의 머리를 찍어댔어. 반쯤은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죽어! 개.새.끼.야! 죽어!”

뭐, 이랬던 것도 같고. 

놈의 머리를 계속 내리치는 걸 아버님이 겨우 뜯어말렸어. 

“그만 하게!”

그렇게 내리쳤는데도, 녀석의 머리는 멀쩡했어. 그게 더 얄미울 지경이었지. 나는 화가 다 풀리지 않아서 소리를 질러댔어. 그와 동시에 남아있던 힘도 모두 빠져나갔고. 

그런데도 나는 마치 광기에 들린 듯이 계속 소릴 질러댔어. 죽기 일보직전의 그 위태로웠던 느낌이 아직 몸에서 다 빠져나가지 않고 벌레처럼 스멀거리며 날 좀먹는 것 같아서,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두려워서. 

그런 나를 수영이가 껴안았어. 

“오빠.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제서야 난 겨우 소리 지르는 걸 멈출 수 있었어. 실낱같이 찾은 평안, 하지만 그것도 정말 아주 잠깐이었어. 

핵융합로가 드디어 완전히 이상해지기 시작한 거야. 

곳곳에서 폭발과 높은 소음이 일어나고 있었고, 뭔가가 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온 사방의 벽에서 돌들이 조금씩 부서져 떨어지고 있었고. 강한 진동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땅을 타고 울려와 뱃속을 휘저어 놓는 듯 했지. 

어르신들도, 나와 수영이도, 이 사태를 바라보며 방법을 찾고 있는데, 갈라진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어. 

“이젠 멈출 수 없어.”

난 그 목소리의 주인공, 프란데르트에게 달려가서 목을 움켜쥐고 일으켰어. 이미 그놈은 변신이 풀려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어. 

옷이야 당연히 없으니 몸은 벗은 채였지만, 이전 그녀석의 체격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고, 내 탄환이 만든 구멍도 여전했음에도 그놈의 생명력은 상당히 질겼어. 아마도 용의 피가 영향을 준 탓이려니 했지. 

“뭐가 말이냐?”

“이미......쿠훕......열 제어장치가 모두 파괴되어 버렸어. 수소들이 결합하기 시작하면서 광대한 에너지를 낼 거야......미국도 무서워서 단 한 번밖에 커헉......실험하지 못하고 금기시한 그 힘이다.”

“그래서, 너도 지금 같이 죽겠다는 거야?”

“그래. 나로서는.....쿨럭!.....커헉!.......영광이지. 그 분의 말씀을 실천했으니.”

진동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고, 점점 온 사방이 더워지고 있었어. 열 제어장치가 제어하고 있던 기계부분이 녹아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열과 수증기가 온 사방에서 아지랑이를 만들기 시작했어. 
어떤 방법이 없을까, 초조하게 생각하던 차에 아버님이 아이디어를 냈어. 

“모두 공중으로 대피시킨 후 핵융합로에 드래곤 브레쓰를 날리면 어떨까?”

“그래도 마찬가지에요. 또 만에 하나 잘못되어서 폭발력이 더 커질 경우엔 서해뿐만 아니라 이 바다를 중심으로 온 사방에 완전한 재앙이 될 거구요.”

이모님의 힘 빠진 목소리가 더더욱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어. 나로서도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에 실망이었지. 

“그래도, 아직 해 볼 수 있는 건 있어요!”

어머님이 그런 와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이셨어. 

“우리 힘으로 역장(力障)을 만들어요. 폭발력을 가두는 거에요.”

“하지만 우리 힘으로 수소폭탄을 막는 것까지는 부족해.”

“그래도 폭발력을 최소한으로 가둬서 소실시켜 본다면, 그 다음의 문제는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역장 안에서 드래곤 브레쓰를 써서 어떻게든 반탄력을 줄여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버님은 잠시 생각 끝에 말씀하셨지. 

“지금은 뭐든 해봐야 될 때니까, 할 수 없지.”

이모님도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자리를 잡았고, 아버님과 어머님도 자리를 잡으셨어. 세 분이서 삼각형을 만드신 거야. 그리고는 자신들의 힘을 펼치기 시작했어. 

돌들이 되려 떠오르는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둥그런 구체 모양의 형상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어. 아까보다 진동은 더욱 심해졌고. 그런데 어느 순간 진동이 딱 멈추었어. 세 분의 역장이 핵융합로를 중심으로 일대 공간을 역장으로 차단하기 시작하신 거야. 

나는 프란데르트 놈을 한 번 더 쳐다봤어. 놈도 완전히 힘이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광경을 보면서 여전히 비웃음을 잊지 않고 있었지. 

“그래봐야....소용없다.....마지막 발버둥일 뿐.....”

그 마지막 발버둥조차 칠 수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모든 것이 허사가 되려 하는 이 순간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나는 도대체 어떤 짓을 하고 있어야 하나. 

수영이를 지킨다고 했으면서, 모두를 구하려고 했으면서, 마지막에 와서는 존재감조차 희미해져 버린 내 자신을 지금 당장 나는 어떻게 구원해야 하나. 

절망으로 주저앉은 채 어르신들이 힘을 쓰는 광경을 바라보던 내게 수영이가 다가왔어. 

“아마도, 우린 죽겠지?”

가만히, 내 옆에 주저앉아서, 수영이는 읊조렸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수영이는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어. 

“오빠를 만났으니까.”

모든 것이 단숨에 떠올라서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어. 그날 밤의 모습, 집에서 막 일어난 채인 부스스한 머릿결. 다시는 꼴보기 싫다고 내뱉던 때의 람보르기니 운전석. 이모님의 집에서 수줍게 몸을 안겨오던 모습. 나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던 모습, 내 품에 안겨서 어린 아이처럼 울던 모습. 

모든 수영이의 모습만이 내 머릿 속에 아로새겨졌어. 

수영이 역시 나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죽음이란 것을 앞두고, 그 짧은 생애동안 가졌던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나처럼 그 모든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수영이를 와락 껴안았어. 둘의 몸은 떨려오고 있었고, 수영이의 흐느끼느라 조금씩 흔들리는 몸이 내 몸 역시 흔들리게 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 순간, 수영이의 생각이 내 속으로 밀려들어왔어. 

그 모든 것들의 속에서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이 나라는 사실을,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어. 나는 그 슬픈 와중에도 * 사람처럼 기뻐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맘 속에, 온전히 내 모든 것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같이 느낄 수 있었던 거야. 

내가 수영이를 껴안은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지막히 읊조린 것과, 핵융합로가 수소폭탄의 힘처럼 터지면서 역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거의 동시였어. 



“나는.”



온 사방으로 눈부신 빛이 밀려드는 것과, 어르신들이 그 빛에 가려 사라지려 하는 찰나. 



“계속, 살아가겠어! 너와 함께!”



수영이를 와락 껴안은 채로, 우리는 그 빛을 고스란히 다 받았어. 

모든 소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영원을 보장받은 것 같은 정적과 지독하게도 뜨거운 힘이 우리에게로 몰려오는 순간,



내 진짜 운명의 힘이 발동되었어. 



선사시대부터, 작은 dna 줄기의 연결을 타고 이어져 온, 마치 이 우주가 생겨난 순간부터 함께 해왔던 그런 느낌. 수많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농축되어 있고 수많은 진실과 의미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듯한 이 광대한 힘의 진짜 기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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