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번호 2013102927 번, 본 공판에서는 피고의 사기혐의가... 경수는 자신의 구식 엠피쓰리에서 나오는 말들에 집중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법학과 입학 후 줄곧 경수는 사법고시에만 매달렸다. 지긋지긋한 가난. 타인은 상상 할 수 없는 가난,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법고시는 경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이 지나고 버스 입구에서는 익숙한 머리가 들어섰다. 며칠 전 부터 이 버스에 함께 타게된 남자였다. 같은 남자가 봐도 저 사람 참 잘생겼다 생각 할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렸했고, 키도 180은 훌쩍 넘어 보였다. 버스안에서 엠피쓰리에 담긴 사건공판 내용을 들으며 책에 코만 박고 있던 경수는 그 남자가 버스에 올라탄 이후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버스에 올라탄 사내는 자리 많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경수의 옆자리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연유로 내 옆자리에만 앉는 것인다. 옆에 앉은 사내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경수는 어느순간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경수의 얼굴에는 머쓱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 사이에은 아무런 말소리가 새어나지 않았고 경수의 귀에 울리는 것은 공판의 끝을 알리는 판사의 판결문 낭독이었다.
며칠 후 사건번호 2013102933번, 본 공판에서는... 경수는 통 엠피쓰리 속 내용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다음 날 부터 그 사내가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말을 튼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가 며칠째 보이지 않자 내심 서운했던 경수였다. 오늘도 그가 타지 않으려나, 그가 매일 타던 정류장에 다다르자 경수는 긴장한듯 손톱을 잘근 씹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타고 두 사람이 타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보였다. 경수는 이내 책에 얼굴을 묻고는 살풋 지어지는 미소를 참아내려 애를 썼다. 그 남자는 오늘도 경수 옆을 지켰다. 버스에 탑승한 이후 평소와는 달리 경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사내는 경수의 어깨를살짝 두드렸다. 어깨에서느껴지는 타인의 손길에 살짝 놀란듯 경수는 눈을 크게 뜨고사내를 쳐다봤다. 며칠 아파서 앓아 누운듯 자주 보던 얼굴과는 달리 피곤을 얼굴에 주렁주렁단 사내는 경수에게 처음 말을 걸었다.
" 저 며칠동안 안탔는데 걱정도 안했어요?"
".... 네?"
그를 쳐다보면 경수의 눈매가 굳어가기 시작했다. 경수의 마음을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듯 그 남자는 직설적으로 경수에게 물었다. 그가 말을 걸꺼라고 생각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까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줄 몰랐던 경수는 당황스러움을 얼굴에서 숨길 수 가 없었다.
" 저 매일 그쪽 옆자리에 앉잖아요. 자리도 많은데. 그쪽은 공부하느라 모르셨나? 아닐텐데?"
"아... 네... 안타셔서 걱정하기..는...했는데.. "
그럴줄 알았다는 듯 경수가 귀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사내는 경수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차가워만 보이던 그의 인상이 웃을 때는 더 빛이 나는것 같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또,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진솔한 이야기에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미쳤네 도경수 판사는 냉철해야하는데 감정도 못숨기고.
" 나는 박찬열이에요. S대 체육교육과 너는 법학과 도경수 ? "
경수는 그 사내가 자신의 학교와 같다는 것에 한 번, 그가 자신의 이름과 학과를 알고있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경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찬열은 경수의 대답은 생략한 채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 맨날 보고 생각했는데, 너는 맨날 공부만 하더라? 아 참. 너랑 나이가 같으니까 말 놓는다? 너도 놔
" 잠깐만..날 어떻게 알아? "
그 전에 이어폰부터 빼고 멍청아 찬열을 경수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빼고는경수에 목에 걸었다.
"너 우리학교에서 유명한데, 아 나한테만 유명한가? 법학과 공부벌레 도경수 모르는 사람 없을껄? 사시 졸업하기 전에 붙을 기세라던데 "
이내 찬열은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 했다. 걱정마 나쁜 소문은 아니야. 너 나랑 친구할래? 혼자서 계속 조잘거리던 찬열을 휴대폰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경수가 건낸 구식 폴더폰을 받아들고는 놀란 눈으로 이야기했다.너 아직도 이 폰이야? 야 이거 골동품가게에 팔면 백만원은 나오겠다 백만원은 자신을 놀려대는 찬열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경수는 휴대폰을 뺏으려 들며 이야기 했다.
" 아 그럼 내놔 왜 달래 "
" 잠깐만 있어봐 번호는 저장해야지. 야 이름 바꾸지마 알았지 "
찬열이 돌려준 휴대폰에는 찬열이♥라는 깜찍한 이름이 찍혀있었다. 아 유치하게 이게 뭐야. 경수가 찬열에게 타박을 하자 찬열은 그게 뭐 어떻냐며 자신의 휴대폰에 찍힌 우리경수♡를 보여줬다. 경수는 학창시절 내내 공부만 하느라 진정한 친구라고는 없었다. 그나마 하나있다는 친구는 7살부터 고아원에서 우정을 쌓은 백현밖에 없었다. 그러나 백현은 원채 무뚝뚝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런 낯뜨거운 표현은 하지 않았다. 찬열과 이야기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오랜시간 동안 알고지낸 친구만큼 편했다. 경수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띵동- 이번역은 S대 정문역입니다. 다음정류장은 SK아파트입니다. 경수와 찬열이 다니는 학교에 다다랐고 그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학교를 걸었다. 경수의 귀에는 다시 이어폰이 끼워져 있었다.이 사건에서 원고는 돈을 빌려.... 경수는 엠피쓰리에서 나오는 판례를 곱씹으며 걸었다. 그 옆의 찬열은 그런 경수를 쳐다보며 걸었다.
지이잉
경수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발신인은 찬열이었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 무슨 문자야 하며 경수는 찬열을 흘겼다. 찬열을 고개를 으쓱하며 문자를 보라는 시늉을 했다. 경수의 심장은 문자를 보자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해댔다. 경수의 귀는 더이상 판례 내용을 받아드릴 수없었다.
[ 매일 그 버스에서 널 봤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