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GET 08
- SHADOW OF TARGET-
감귤 에센스,패랭이 꽃잎, 로즈마리, 샐비어
비슷한 향기들을 죄다 모아 블렌딩 했다 흰 손수건을 꺼내 펼쳤고 코르크 마개를 비틀어 병을 열었다. 숨을 참고 향기가 공기에 퍼질때 쯤 탑노트를 느꼈다.
빌어먹게도 좋았다. 그 여자의 향기를 분석해 만든 향이 진저리 날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제조를 멈출 수 없었다. 그 여자 향기가 아니야. 바닥에 던져두었던 손수건들은 이미 층을 쌓아 더미를 만들었고 방 안은 온갖 향기들로 꽉 채워졌다. 코는 이미 방향 성분의 마취되어 삼십분 전 부터 무의미한 행동들만 반복했다. 이미 새 제품 리스트에 올릴만한 향기들을 수없이 발견했지만. 점점 무기력해져만 갔다. 이토록 따분한 일이었나. 코의 피로가 온몸으로 퍼질 쯤 정신을 놔버렸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맞은편 침대에 젖은 솜처럼 걸어가 걸터 앉으니 침대 옆 작은 탁자에 조금 덜어둔 가루가 보였다.
"아. 피곤해"
몸을 이끌어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늦은 오후 해가 지기 시작하고 하늘은 빨간색으로 물들었고 탁자 위에 놓인 하얀가루들이 불그스름하게 보여졌다.
그냥 씻고 자야겠다. 속옷을 챙기고 욕실로 들어가기 전에 핸드폰을 들었다. 이미 외워버린 그 여자 번호를 눌렀다.
약보단, 그 여자 향기가 더 중독적이다.
"나 자는 것 좀 구경하러 와."
"왔네."
영화관도 식당도 길거리도 아니고 호텔 방이었다. 자는 걸 구경하라니. 미친놈이 다 있다.
"정말 내가 좋은가봐. 잘때까지 불러내?"
방 안에는 향수를 만들었던건지 시약병 꽃잎 손수건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져있었다. 방의 주인이 조향사라는 걸 너무나도 정확히 보여주었다.
항상 잘 세팅된 머리와 깔끔한 모습의 오세훈이었다면 피곤한 표정으로 반쯤감긴 눈으로 침대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오세훈은 무방비해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의 티셔츠라니.
"어떡할꺼야."
잠의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는 세훈이었다.
"뭐가."
'"내 조향사 인생 최고의 난관이야. 당신이"
"뿌듯한데?"
나의 농담의 오세훈이 피식 웃더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나를 침대 옆 의자로 이끌었다. 순간 열어진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와 머리를 흩날렸다. 갑자기 느껴진 한기에 몸을 살짝 떠니 오세훈이 창문 앞으로 다가가 창을 닫고는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왔다. 걸음걸이며 행동들이 하나같이 쳐지고 느렸다.
"나 그쪽이랑 살림 차릴건데. 그쪽 생각은 어때."
"별론 것 같아."
"아쉽네. 그래도 난 상관 없어. 내가 이기주의자라 남은 생각 안해."
나를 보며 웃으며 대답하고는 작정하고 잠을 청하려는 건지 몸을 뒤척이더니 두 눈을 감았다. 해는 이제 높은 빌딩에 가려졌고 밤의 어두움이 조금씩 걸쳐져갔다. 눈을 감고 오분 쯤 지났을까 잠이든건지 그의 가슴팍은 일정하게 오르락 내리락 움직였다. 정말 자기 자는걸 보여주려 했구나. 여기까지 오기 위해 사용한 기름과 내 발걸음이 아까워지는 순간이었지만 호텔 창에 박힌 야경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조용히 의자에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가지 마."
"아직 안잤네."
뒤에서 들려오는 오세훈의 목소리에 다시 뒤를 돌아 뚜벅뚜벅 걸어올 수 밖에 없었다. 이래서 갑과 을이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
"애새끼 마냥 가지 말라고 떼 쓰는거 짜증나는데. 가지 마"
"보답은."
"당연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맘 편하게 자는건 포기하건지 오세훈은 몸을 내쪽으로 틀어 턱에 고개를 괴었다. 나도 의자에 편히 기대 팔짱을 끼고 오세훈을 바라보았다.
"당신 향기를 만들려고 별 짓 다해봤는데. 실패야."
"뭐, 위로라도 해줄까."
"응. 나랑 잘래?"
"아니."
고개까지 절레 절레 흔들며 대답하자 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어이 없어 하는 나의 표정이 세훈도 웃긴건지 이내 힘없이 웃어버리고는 괴고있던 팔을 풀고 편하게 배게에 머리를 눕혔다.
"내가 그 쪽 향수를 만들어 내고 이 짓을 그만하면. 그땐?"
"당신은 사람을 죽였잖아. 달라지는 건 없어."
"난 너 안 죽여, 맹세 해"
맹세 한다. 그런말을 저렇게도 쉽게 내뱉나.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니 대답을 들을 생각은 진작에 포기한건지 눈동자를 굴리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깎고 절이라도 들어가야하나."
"뭐, 그땐 생각해 볼게."
난 빡빡이도 멋있을걸. 혼자 중얼거리더니 나를 바라보다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안 가 이거 풀고 자."
"못 믿어. 넌 금방 사라질 것 같거든."
그렇게 그는 내 손목을 붙잡고 잠이 들었다. 진짜 잠들었다. 일정하게 움직이는 그의 가슴팍과 감겨버린 날카로운 눈매가 평온해 보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사이에서 잔 숨이 빠져나왔다. 왜 오세훈과 같이 있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들까. 그는 나를 만지지도 탐하지도 않는데. 나를 다 가져가버린 느낌이 든다.
오세훈이 가져간거라곤 나의 향기 뿐인데.
그리고 아침이었다. 그의 호텔 방에서.
오세훈이 자고 있던 침대 위에서 눈을 뜨자 햇살 가득히 들어오는 창문 그리고 그 앞 테이블에 조식을 시켜놓고 나를 바라보는 오세훈이었다.
"좋은 아침."
요즘 내가 너무 피곤했었구나. 하긴, 낮엔 관할 사건 관리 밤엔 마약거래 조직 잠복근무로 매일을 지내왔는데 이렇게 뻗을만 하지. 뭉친 어깨를 풀고 나름 상쾌한 느낌의 하품을 하자 커피 한잔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이제 편해졌나봐."
"나 안 건드렸지."
"강간은 내 취향이 아니라. 섹스는 일방적이면 재미가 없거든."
그는 어제와 다르게 깔끔히 정돈된 모습이었다. 가지런히 넘긴 머리와 슬랙스에 화이트 셔츠. 그리고 시약병들로 지저분하던 테이블도 싹 청소되어 있었다.
"그런거에는 정신머리 바르게 박혀있네."
"근데 너 좀 까분다. 내가 오빠지 않나."
잠이 덜 깨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오세훈이 커피를 내 손에 쥐어주곤 내 머리통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거 박찬열이 항상 하는 짓인데.
"오빠 소리가 듣고 싶어?"
"어. 오빠 소리 존나 좋아. 할아버지들도 좋아할걸."
"안 해줄건데."
세훈은 내 말에 입을 꾹 다물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것도 박찬열이 하는 짓인데.
"난 거래 있어서 먼저 가. 씻고가던지."
그 말을 하곤 한동안 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안가냐며 내가 물어보자 그제서야 뒤를 돌아 호텔 방을 나섰다. 그리고 혼자서 읊조리는거였는지 아님 정말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한마디를 하고 나가버렸다.
키스하고 싶어 뒤질 것 같네.
"전화 왜 안받냐."
그의 호텔 방에서 조식도 먹고 샤워까지 하고 바로 사무실로 왔다. 날 첫번째로 맞이해준건 박찬열이었다.
"집에서 좀 잤어."
오세훈 호텔방에서 자고 왔어. 라고 말하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거짓말을 뱉었고 그런 나의 거짓말의 찬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와, 도경수 나 완전 싫어하겠어 나 거짓말 이렇게 잘하는 거 보면.
"오랜만에 집에서 자는거였겠네."
"응. 뭐 그렇지."
정말 양심에 찔리기 그지 없었다. 찬열은 어제도 밤을 샌거였는지 그의 책상엔 다 마신 커피잔이 두 세개 쯤 놓여있었다. 안 그래도 큰눈은 빨갛게 충혈되있어서 남들보다 두배는 더 피곤해 보였다. 그를 마주보고 말할 자신이 없어 슬금슬금 쇼파에 앉았더니 찬열이 스트레칭 하는 척 따라와 냉큼 내 무릎에 누웠다.
"으아- 좋다!"
잔뜩 헝클어진 찬열의 머리를 한가닥씩 정리해주니 기분이 좋은지 눈 감은 체 씩 웃었다. 감겨진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접혀진 주름을 살짝 손가락으로 매만지니까 눈을 확 뜨곤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 늙었나봐. 주름 있지."
"이건 삼년 전에도 있었거든."
"드라마찍냐."
찬열의 얼굴을 조물딱 거리며 만지고 있을까 사무실 문을 누가 벌컥 열고 들어왔다. 역시 박찬열과 똑같이 까치집을 짓고는 가슴팍을 벅벅 긁으며 들어온 변백현이었다.
"아침부터 못볼 꼴 봤네."
"백현아 거울부터 보고 와."
박찬열의 단호한 말에 옆에 있던 거울로 다가가 보더니 머리를 매만졌다.
"이정도면 훌륭하네. 어때 이런 남자랑 아침을 맞이해야지 저런 도비 새끼 말고."
"회의 준비하자. 삼십분에 경수오빠 온다고 했어."
자기의 말을 씹은 내가 못마땅한건지 입을 삐죽 내민 백현은 회의실이 아니라 화장실로 가버렸다. 하여튼, 결벽증 자기 몸 더러운건 못 참아요.
넌 안 씻어? 나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와 선들을 연결하는 찬열에게 묻자 찬열이 눈가로 내려온 앞 머리를 뒤로 넘기며 물었다. 회의 준비 혼자 할래?
"아니."
"거 봐."
"계좌는 가상계좌였어. 거래 직후 소멸 된 것 같아. 데이터도 완전히 아작났고."
"가상계좌 쓰는 애들은 천만개는 넘게 가지고 있을텐데."
"근데 너 이거 어떻게 구했어?"
내가 준 번호들로 조사해온 내용들을 말하던 경수 오빠의 말을 듣던 박찬열이 끼어들었다. 재빨리 눈으로 도경수를 쳐다보았더니 경수 오빠와 눈이 마주쳤다.
제발. 말하지마라. 온 맘을 다해 눈빛을 보냈더니 나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입을 열었다.
"컴퓨터로."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읽는 박찬열과 변백현 몰래 도경수는 나에게 윙크를 했다.
"내가 뒤져볼땐 이런거 안나오던데."
"고등학교때부터 내가 너보다 전문가 였거든."
도경수의 말에 변백현이 새침하게 도경수를 쳐다보더니 에이, 거리며 서류를 책상에 내팽겨쳤다.
그 둘은 고등학교 친구였다. 한명은 대한기업 막내 아들 그리고 한명은 미친 천재. 그런 타이틀을 가진 둘은 붙어다니기만 해도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지금도 큰키라고는 못하지만 더 작았던 학창시절 우락부락한 남자애들을 이끌고 다니던 또라이들.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한명은 경찰로 한명은 해커로 한 사무실에서 농담 따먹기나 하고있을지.
"그럼, 핸드폰은"
"마지막 수신위치는 파악됐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골프장"
나의 말에 경수는 인쇄된지 얼마안된건지 따뜻한 종이 한장을 던져주었다. 지식인?
"그건 아직 잘 모르겠는데, 좌표가 같은 곳이야 대포폰 마지막 수신위치랑 그 글 IP 추적결과가. 그것도 동시간. "
영어번역 부탁드립니다.단순한 제목의 질문인 글은 누가봐도 미심쩍었다. 문법도 없이 뚝뚝 끊기는 문장들의 주어 동사도 보이지 않고. 삼십줄 가량의 영어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궁금한 위치 경기도 고양시를 태그한 웹 지도.
"더 이상한건 이거야. 질문자 채택 답변인데. 번역 요청한 글이랑 완전 다른 글이야."
답변의 문장을 해석해 보아도 역시나 의미없는 단어들의 되풀이었다.
hosp stonewall theater missile defense sprinkles gonogenesis degas
돌담 전역 미사일 방어는 생식 세포 형성 드가 를 뿌린다
무슨 개소리야. 보고있던 종이를 변백현에게 보여주니 금방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는 팀장에게 넘겼다. 변백현 무슨일 생겼나. 아님 이게 흥미가 없나. 엄청 지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축 늘어진 변백현의 다리를 툭툭 건들이니 손을 절레 절레 흔들었다. 흥미가 없어졌네. 가끔 변백현은 이랬다. 흥미가 없는 사건이나 아니 흥미 있던 사건이어도 한순간에 관심이 사그라들 때면 두 손에서 놓아버렸다. 백현에게 경찰은 캐릭터였고. 사건은 게임이었다. 부잣집 자식의 본성은 어쩔 수없는 노릇.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유사한 글들이 이 사이트에 엄청 많이 올라오고 있어."
경수가 화면에 지식인 창들을 띄었다. 똑같은 패턴의 글들이었다.
"조선족이나 북한 그쪽 냄새가 나는데."
"나도 그런 것 같긴해."
갑자기 나타난 쌩뚱맞은 글 때문인지 사무실 안은 기계 소리만이 낮게 퍼지고 있었다. 작정하고 해석하는 건지 팀장은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나와 변백현은 화면에 올라온 글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일 이분쯤 지났을까 침묵을 유지하던 팀장이 입을 열었다.
"C G C I D G - A F"
갑자기 알파벳을 말하는 팀장에게 우리의 이목이 쏠렸다. 그러다 경수가 다시 화면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어버렸다.
"좌표구나."
" 응. 북위 37 39. 47016 거기가 어디야."
모든 줄 첫 알파벳의 숫자. 신박하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 여긴 무덤인데."
"너 이걸 어떻게 알아."
이 글의 비밀을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있는 것 처럼 보이는 팀장의 모습이 의아함이 들어 물어보니 팀장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다시 화면에 시선을 멈추었다.
"아직, 안끝났어. 오빠 이 글 올라온 좌표 좀 불러줘."
"북위 37 39.241137 동경 126 51.1669"
좌표를 부르는 경수의 말을 듣자마자 팀장은 대뜸 일어나더니 마카를 잡고는 화면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nonproliferation, essential oils chemist, Girl, center, investment, paradise, alteration, incomplete
*암호닉*
[비염]
[시동]
[옷쟝]
[요구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