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로빈의 작은 머리에는 걱정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지난번 그렇게 헤어진 후 정말로 친구가 될 것이라고 결심했는지 줄리안에게서 연락폭탄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꾸 연락을 기다리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지만 연락을 하는 줄리안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니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안 그래도 줄리안이 집에 데려다 준 후에 샤워를 하고 물기도 말리지 않은 채 창문을 열어놓고 술을 마셔서인지 감기기운까지 있던 찰나였다.
본인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꼬박꼬박 답장을 하는 모습이 로빈으로서는 꽤나 우스웠다.
그러다 오늘 아침, 일이 터졌다. 제대로 몸살감기에 걸린 것이다. 아이들에게 옮길 수 없는지라 유치원 출근은 당연히 안 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어이가 없었던 것은 오늘 출근을 하지 않으면 줄리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서운해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평소였으면 그저 전화로 오늘은 감기몸살 때문에 출근이 어려우니 다른 반 선생님께 지도를 부탁드리고 자신은 그저 한숨 자면 되는 건데.
아픈 것 보다도 중요한 게 생기다니, 정말 자신이 그를 좋아하기는 하는구나 생각이 든 로빈이다.
정신을 차리려 물 한 잔을 마시고 침대에 풀썩 누워 익숙한 유치원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로빈 데이아나 입니다."
[어머, 로빈쌤! 어디 아프세요?]
"네..그게 감기 몸살이 온 것 같아서..아이들에게 옮기면 안 되니까 오늘 하루 몸 좀 축이고 내일 출근해도 될까요?"
[그럼요, 몸 조리 잘 하시고 내일 늦으셔도 되니까 천천히 오세요.]
"감사합니다. 네, 끊을게요."
한숨을 한껏 내쉰 로빈이 전화를 무사히 끝마쳐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긴장이 풀려 그대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팠다. 지끈거리는 와중에 휴대전화의 알림음이 울렸다. 줄리안이다.
「로빈, 출근 했어요? 나는 출근 중입니다. 주디는 아침에 유치원 차를 타고 갔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기력이 없었다. 답장 없으면 서운해 할 텐데..
로빈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줄리안은 아침마다 짧게나마 '네, 줄리안도!'하며 보내는 로빈의 답이 없자 조금 서운해졌다.
하지만 이내 바쁘겠지, 라는 생각으로 서운함을 없애버리고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따가 주디를 데리러 가면 로빈에게 오늘 바빴냐고 서운함을 조금 드러내볼까 생각하는 줄리안이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오셨어요?"
"어, 블레어 머리 바뀌었네?"
"아, 네. 어때요?"
항상 왁스로 고정시켰던 앞머리를 살짝 내린 것이지만 안 그래도 어린 외모가 더 어려보였다.
블레어가 수줍게 웃으며 앞머리를 매만지자 줄리안이 잘 어울린다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다행이네요 어울린다니."
"근데 왜 갑자기 바꾼거야? 뭐, 한결 귀엽긴 하지만"
"누가 내려보는 게 어떻냐고 해서요. 괜찮은 것 같아서 나름 만족해요."
"오오, 여자친구?"
"여자친구는 아니고, 애인이요."
그거나 그거나 아닌가? 블레어가 게이였던가. 그런가보지! 생각을 마친 줄리안이 응, 그래 오늘도 화이팅!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 애인이 팀 내의 최고, 팀장 일리야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내 업무를 시작한 줄리안이 지난 5월에 출시한 샴푸인 로망에 대한 소비자의견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로빈과 주디가 함께 있었던 기획 당시에 로빈이 예쁘다고 했던 장미 일러스트, 그리고 도도함에 아이디어를 얻어 장미향 샴푸 '로망'을 출시했었다.
다행히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출시 한 달 반만에 회사 내 매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샴푸 뿐 아니라 바디제품까지 로망 라인을 출시하려는 회사의 의도에 맞게 기획을 해야했기에 줄리안은 하루종일 업무에 매달려야 했다.
워낙 인기가 좋은 제품이 된 지라 로망 라인을 기대하는 소비자들이 많았기에 더욱 그랬다.
"줄과장! 이리로 좀 와봐!"
"예, 팀장님"
"로망 라인 말이야. 샴푸는 도도함이 컨셉이었으니까 사랑스러움, 아름다움, 매혹적 이렇게 세 가지로 다른 제품 컨셉을 잡았어.
이거 기초 디자인 좀 받아올 수 있을까? 바디워시는 샴푸랑 비슷하게 매혹적으로 하고 바디로션은 아름다움, 색조는 사랑스러움으로."
"네, 메일 보내놓겠습니다."
기획 2팀 팀장 일리야 벨랴코프는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일 하나라도 흐트러짐 없이 하는 것으로 회사에서 유명했다.
줄리안의 자유분방함을 잘 잡아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기에 줄리안은 팀장님의 말을 허투루 듣는 법이 없었다.
컨셉이 잡혀졌으니 디자인 기획팀에 메일을 보내놓고 기다리면 업무의 반은 거의 끝낸 셈이었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소비자 의견을 좀 더 분석해보니 다들 잔향이 많이 남아 향수 대신 써도 좋아서 쓴다는 의견이 많았다.
본래 BIDAM : 비담(줄리안의 회사)은 향수를 쓰지 않고도 좋은 냄새가 나도록 하는 것이 회사의 모토였기에 그에 부합하는 의견이었다.
다만 색조라인은 로망의 인기로 인해 처음으로 출시하는 라인이기에 성분이라던지 디자인에 조금 치중해야 할 것 같았다.
업무를 끝내고 주디를 데리러 가기까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빨리 일을 끝내고 싶었다.
오늘따라 열심인 줄리안을 보고 흐뭇해 하는 것은 팀장인 일리야 뿐이었다.
*
오후 4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아침에 잠들었던 로빈이 깨어났다.
아직도 몸살기는 가시질 않고 있었다. 혼자 산다는 게 이럴 때는 참 서럽다.
로빈은 구급약 상자에 마침 뚝 떨어진 감기약이 너무나도 야속했다.
로빈은 빈 속인지라 뭐라도 좀 먹고 약을 먹어야 했기에 집에 있는 걸로 대충 끼니를 때우려고 일어났다.
하지만 요리조차도 못 할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워 지갑을 열어 돈이 얼마나 있는지 보고 시켜먹기로 결정했다.
나쁜 일은 한번에 온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설상가상 그 자체였다.
지갑에 현금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무언가 시켜먹으려면 책자가 있어야 하는데 책자마저도 지난 주말 건강히 살자! 하며 다 갖다버렸던 로빈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 한 채로 다시 누웠다. 아, 서러워.. 근데 또 화가 나는 건. 이 순간마저도 줄리안이 보고싶었다.
바람일 뿐이지만. 나를 위해 누군가 와 줄 수 있다면, 그게 줄리안이었으면 좋겠다고. 로빈은 생각했다.
*
퇴근시간이 다가와 줄리안은 주디를 데리러 갈 채비를 하고 팀장님과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정시퇴근을 했다.
유치원에 도착한 줄리안이 자신을 맞이할 로빈과 주디를 기대하고 유치원에 들어섰다.
그러나 줄리안을 맞이한 것은 주임선생님이라던 분과 주디였다.
로빈이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줄리안이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주디에게 로빈의 안부를 물었다.
"주, 오늘 로빈 선생님 어디 가셨어?"
"응, 선생님 감기가 심해서 오늘은 못 왔대"
"...그래? 많이 아픈가봐."
"엄청 아파서 막막 목소리도 이상했대. 주디가 선생님 얼른 나으라고 기도했어!"
"우리 주, 착하다. 얼른 집에가자. 오늘은 유치원에서 밥 먹었지?"
"응!"
집에 도착해 주디를 씻기고 동화책까지 읽어준 후에 주디에게 양해를 구하고 업무를 시작한 줄리안은 못내 로빈이 걱정되었다.
아침에 보낸 문자에도 답이 없고, 아파서 그런 걸 알았다면 서운해하지 않았을텐데.
혼자 사는 로빈이 간호는 고사하고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자 친구가 그렇게 아플 때는 가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줄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주, 오빠가 잠깐 어디 다녀와야할 것 같은데. 친구네 집에 잠깐 갈.."
어린아이이긴 한건지, 동화책을 읽다가 타자치는 소리에 잠이들어버린 주디가 오늘만큼은 정말 감사했다.
주디를 잘 뉘여놓고 줄리안은 차를 타고 로빈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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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사담! |
오늘도 글 정렬 가운데로! 참, 변경사항이 ㅇ있습니다 이전에 서브커플로 넣으려 했던 게 좀 바뀌었어여....ㅎ.. 서브커플은 일레어입니다! 일레어 얘기 나중에 좀 나올거예여ㅎㅎ! 내일 또 봐요 안녕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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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마늘 연줄 네시반 일곱시 남순욱 구루구루 로벨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