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2. 이런 날 by 종인 + 경수BGM) 이런 날(vocal by 이진우): 캐스커유리문 앞에 쪼그리고 앉은 작은 등이 눈에 들어온 것은 한차례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간 점심시간 끝 무렵이었다.대학에 들어온 후 종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커피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랑해 마지않는 것도 아닌 그가 카페 알바를 꿈꿨던 이유는 단 하나.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은 조용한 카페 매장 안을 자신이 원하는 음악들로 가득 채워보고 싶었다.햇살이 따사로운 카페 안으로 커피향과 함께 흐르는 제 취향의 음악에 빠져있노라면 서로 오가는 대화가 없어도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듯한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조용하고 따스한 공기 속에서 무언가 속살거리는 듯한 카페 안은 제가 고른 음악들에 따라 어느 순간은 초원의 내음이 가득했고,또 어느 순간은 시원한 바다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다.동네 카페라 손님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근처 작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점심 시간에 우르르 몰려들어와 한참 테이크아웃을 준비하다보면 찬 에어컨바람이 부는 매장 안에서도 등허리로 땀이 흥건하게 베어났지만, 그 시간만 지나고 난다면야 종인에게 이 곳이 제 친구들이 여행을 다녀왔다는 제주도니동해바다니 외국의 유명 휴양지니 하는 곳들 못지 않았다.오늘도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점심시간을 보내고 텅 빈 카페의 이곳저곳을 정리하던 종인이 옅은 한숨을 폭 내쉬다 이내 즐거운 마음으로 어젯밤 새로 챙겨온음악 목록을 뒤적였다.「처음 날 설레게 했던 선명한 그때 그날의 기억뜬 구름 같던 맘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오후무심한 사람들 사이 조용히 반짝거리던 너를몰래 바라봤어 빛이 흘러내리던 너의 얼굴」시간마저 나른하게 흐르는 듯 평화롭고 조용한 작은 카페에 달큰한 목소리가 퍼져나간다.어느 날인가 공강시간, 중앙광장 작은 나무 밑 벤치에 앉아있던 종인의 뒤로 소리소문 없이 다가와 이어폰을 빼앗아 귀에 꽂은 찬열이종인의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이 조근조근한 목소리에 '졸라 감성 돋는 새끼, 생긴 건 사바나 표범새끼 같은 게 취향은 존내 소녀돋네-'라며비웃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코가 찡긋거린다.생긴 건 얄개 피노키오 같이 생겨서는 목소리만 삭은 새끼.평화로운 오후 시간을 방해하는 달갑지 않은 기억에 일부러 더 카운터 위를 마른 수건으로 싹싹 문지르다보니 문뜩 카운터 밑에 놓여진 초록색 우산이발 끝에 채인다.온갖 허세를 다 부리며 자신은 건강체라고 했던 것이 부끄럽게 정말 독한 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쉬었다.진심, 종인은 자신이 태어난 이래 그렇게 아파본 것이 진심 처음이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정말 타고난 건강체였던 것이다.그러나 이번 감기는 정말 이러다가 사람이 죽나 싶을 정도로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열이 내리질 않아 오죽하면 사내자식이라면 좀 아프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크는 거라고 늘 말씀하시던 부모님이 입원을 하자고 팔을 잡아끄실 정도였다.결국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웠다가 가게에 출근하기 시작한 후로 또 일주일.그렇게 2주가 지나는 동안, 우산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혹시나 제가 없는 동안 다녀갈까 싶어 목이 쉬어 말도 나오지 않을 때에도 준면에게 누가 저를 찾거나 가디건을 가지고 오면 꼭! 꼭!! 이름과 전화번호를받아두도록 신신당부를 했었다.다른 뜻은 아니고, 우산을 돌려줘야 하니까- 라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종인은 스스로에게 답을 했다.그러나 매일매일 준면에게 문자를 보내 누가 왔었냐고 물어도, 출근 후에는 유리문이 딸랑거릴 때마다 주인 기다리는 똥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쳐다봤지만 기다리던 우산 주인은 오지 않았다.동네 중학교에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여중생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종알종알 '잘생긴 오빠 안녕', '오빠 여자친구 아직도 안 생겼죠? 아직도 난 별로예요?'라며 코웃음만 나오는 실없는 소리를 하고 갈 뿐.하도 기다리다보니 이제는 '쪼꼬만노무 시키가 내 가디건을 떼먹고 튀었어'라며 혼자 꿍시렁거리기도 했지만,또 한편으로는 그 마르고 쪼꼬만 녀석이 자신처럼 감기라도 심하게 앓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자신이야 원체 건강체니까 이렇게 나았어도, 그 녀석은 워낙 약하고 어려서 그날 밤 당장 열이 막 펄펄 끓고 쓰러지고 이래서 병원에 입원했을지도 모른다.여기까지 온갖 망상의 나래를 펼치다보면 하루 해가 지고, 또 다음 날 아침이 와서 똥강아지처럼 우산 주인을 기다리고...그렇게 반복의 연속이었다.오죽하면 준면이 기다리는 애가 여자애냐, 이뻤냐, 니 타입이냐- 하고 물어와 형은 생각의 퀄리티가 너무 저렴하다며 종인의 째림을 당하기도 했다.오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혼자 끙끙대다 가끔씩 '뭐하냐' '야, 형님이 존내 심심하시다.'하는 식의 실없는 소리나 날려대는 찬열과별 의미없는 카톡질을 하다가 점심손님 맞이를 끝내고 이렇게 넋을 놓고 있는 중이었다.그러다가 종인의 시선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유리문 밖으로 머문 것은 아마 초여름의 햇볕이 유리문에 반사되어 너무 반짝였기 때문일 것이다.유리문으로 비치는 빛이 유난히 희게 눈이 부셔 눈을 찡긋한 종인의 시야에 카페 문 밖으로 나있는 나무계단에 쪼그리고 앉은 작고 마른 등이 들어왔다.흰 반팔 와이셔츠 상의가 쏟아지는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하얗게 빛났다.딸랑-클래식한 종소리를 내며 유리문을 열고 나서자 등을 돌리고 앉은 작은 체구의 사람이 한 눈에 들어왔다.동글동글한 머리꼭지를 따라 내려온 밤톨처럼 보송보송한 머리카락 사이로 설핏 보이는 목덜미가 뽀얗다. 계단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팔을 따라가니까딱까딱 흔들리고 있는 뽀얀 손은 아직 덜 자란 소년의 것이었다.문뜩 제 옆에서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는 소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종인은 태양이 부쩍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어 눈이 시려왔다.까만 알사탕 같은 눈동자가 소년이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도로록 도로록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너...."우산 주인이었다....비를 잔뜩 맞고 집에 돌아간 그 날 밤, 늦은 시간 늘 그렇듯 불이 다 꺼진 고요한 집의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간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경수는 처음으로그 어둡고 조용한 집안의 공기가 그저 포근하고 따뜻하게만 느껴졌다.축축하게 젖은 교복이 다리를 휘감았지만, 어깨에 둘러진 온기 때문에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빈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람의 온기라곤 없는 그 서늘하고 어두운 고요가 두려워 늘 독서실이니 학교 도서관에서 가능하면늦게까지 지내다 들어오곤 했었는데...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만, 카페 형이 준 가디건이 다 젖어있어서 내일 잘 세탁해서 돌려주자- 하는 마음으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며 옷걸이에잘 걸어 방에서 제일 잘 마를만한 자리에 두었다.그렇게 몇 달만에 처음으로 경수는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목이 조금 칼칼한 느낌이고 몸이 조금 찌뿌둥하긴 했지만 특별히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았다.어제 비를 맞으며 펑펑 울었던 두 눈이 조금 부어있었지만 많이 티가 나지도 않았다.비도 그쳐 하늘이 새파랗게 맑은 아침, 가디건을 손빨래를 해야 하나 세탁기에 돌려야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일찍 집을 나서동네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고서야 만족한 얼굴로 등교길에 올랐다.학교가 끝난 후에는 늘 독서실로 향하던 평소와 다르게 빠른 발걸음으로 세탁소에 들러 가디건을 찾아나왔다. 기억을 더듬어 카페로 찾아갔을 때,경수의 기대와 달리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카운터에는 어제의 카페 형이 없었다. 대신 서글서글한 인상의 잘 생긴 남자가 주문을 받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있던 경수의 어깨가 추르르 처졌다."더 늦게 나오나...? 아니면 오늘은 일하는 날이 아닌가..."뽀송뽀송하게 세탁된 가디건이 종이가방에 잘 들어있는지 한번 더 확인한 경수가 혹시나 그가 올까 해가 떨어질 때까지 가게 앞을 서성거리며 기다렸지만,띄엄띄엄이긴 해도 끊이지 않고 가게를 찾는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 사이에 경수가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나름 고3인데, 더 이상 이 곳에서 막무가내로 기다리는 건 좀 그런가...들어가서 카운터의 다른 사람에게 그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고, 가디건을 맡기고 갈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우산도 받아야 하니까... 라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경수는 스스로에게 답을 했다.그렇게 돌아간 경수가 다음 날은 조금 더 늦은 시간에 와봤지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일주일쯤 카페 앞을 서성이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와 더 이상은 카페에 가지 못했다.매번 시험기간마다 스터디를 만들자 어쩌자 종알대던 세훈이 이번에야말로 절대 빠지지 말라며 수업이 끝나자마자 경수를 끌고 제 집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다른 아이들과 달리 저를 대하는 태도에 늘 변함이 없으면서도 꼭 엄마처럼 자신을 챙기고 드는 세훈을 거절하기도 영 힘들었다.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시험이 끝난 덕분에 수업이 없어 학교가 일찍 끝났다. 세훈이 그렇게 우겨댄 스터디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성적도 나름 잘 나왔다.어디 가서 자랑할 사람이 있는 것도, 칭찬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조금은 시무룩해졌지만, 오늘 다시 카페에 가볼 생각에발걸음이 가벼웠다.벌써 그날로부터 거의 2주일이 지났다.세탁된 채로 종이가방에 조심스럽게 넣어진 채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진 가디건에서는 아직도 뽀송뽀송한 새 빨래 냄새가 났다.딸랑-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 뒤로 카운터를 들여다봤는데, 오늘은 카운터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마 잠시 다른 곳에 가있는 듯 싶었다.설마 오늘도 그 잘생긴 형인가... 싶은 마음에 오는 내내 들떠있던 마음이 조금 착 가라앉는다.마음이 가라앉자 내리쬐는 여름 태양 아래 온 몸의 기운도 착 가라앉는 것 같아 경수는 카페 앞 나무계단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그렇게 많이 두근거린 적이 예전에도 있었나 생각했어나의 맘은 벌써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가네」카페 앞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이제 막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한적한 오후의 골목에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이 곳에서 음악을 고르는 사람이 누군지 참 신기하게 제 맘에 드는 곡들을 골라낸다 싶었다....이것도 그 형이 고른걸까. 아니, 다른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그 잘생긴 형이 고르는건가... 그 잘생긴 형이 지난 번에 말하던 그 사장인가..?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긴 경수가 쪼그리고 앉은 무릎 위에 팔을 얹고 조용히 손을 까딱이며 박자를 맞췄다.평화로운 골목 가득 보송보송하게 마른 햇볕내음이 가득했다.내리쬐는 태양이 조금 눈이 부신듯해 경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아...좋다.그 날..그렇게 오랜만에 펑펑 울면서 조금은 가슴에 가득 차있던 갑갑한 눈물들이 빠져나간 것인지- 숨쉬기가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그 자리를 기분 좋은 햇볕 내음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 사이사이 유리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듯한 커피향까지도-딸랑-또 한 번 카페의 유리문이 열렸지만, 경수는 지금 이 순간에 녹아든 것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몽롱한 기분이었다.그러고보니 어제 시험 때문에 세훈이네 집에서 밤을 새긴 했다... 나 지금 좀 졸린건가...?가물가물 감기는 눈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느끼며 손을 까딱이던 경수가 문뜩 제 옆에서 움직이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나 때문에 못 지나가고 있는 사람인가..? 싶어 위를 올려다보는데-짙게 쌍꺼풀이 진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긴 속눈썹이 몇 번을 깜빡깜빡.반듯한 이마 위로 흐트러진 까만 머리카락들이 숨결처럼 옅은 여름바람을 타고 흔들렸다.아... 그 형이다....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잠시동안, 카페 앞의 고요한 골목에 침묵이 흘렀다.얘랑 마주치면 왜 이렇게 할 말을 못 찾겠지...? 큰 눈을 꿈뻑이며 아이를 내려다보던 종인은 생각했다.한창 뜨거운 여름 한낮의 태양에 아이의 얼굴이 반짝이는 듯했다.자신을 올려다보던 소년이 눈이 부신 듯 한쪽 눈을 찡긋하는 모습을 본 후에야 퍼뜩 종인은 정신이 들었다."너... 이름이 뭐야?"그랬다.아이를 기다리던 그 기간 동안 내내 가장 후회했던 것은,노란 우산을 쓰고 골목길을 돌아 사라지던 그 아이를 뭐라고 불러야할지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마냥 '우산 주인'이라고 지칭하기는 했지만, 혹시나,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 아이가 정말 제 가디건을 떼먹고 튄거라면 평생 그 아이를 '우산 주인'이라는이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 같아서... 그건 왠지 조금- 조금은 아니고 쫌 더 많이 싫었다.그래서 다시 만나면 까먹지 않고 꼭 이름을 물어보겠다 다짐했다....다짐한 건 좋았다 이거야.그런데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내가 지금 뭐라고 하는거?!!!!!경수의 눈에는 종인이 무표정하고 어딘가 나른해 보였지만, 사실 종인의 영혼은 이미 바닥에 엎드려 좌절하고 있었다.이상하다.얘만 보면 내가 정말 어디 모자란 빙구 같은 짓을 해.내가 정말 어디가 모자란걸까? 아닌데.. 나 이런 사람 아닌데..."도... 도경수...요"도경수.가뜩이나 귀여운 놈이 성은 또 왜 도씨야.괜한 핀잔을 속으로 꿍얼거리며 도르륵 도르륵 경수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동글동글한 이름이 데구르르 구르는 듯한 기분에 종인은 왠지 헤실헤실 올라갈 것 같은 입꼬리를 다잡았다.물론, 겉에서 보기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표정이 그 표정이다.왠지 자신에게 화가 난 듯한 종인 때문에 기가 죽은 경수가 더듬거리며 눈치를 본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챈 종인이 괜히 애를 놀래킨 것 같은 마음에제가 더 놀라 벌컥 손을 내밀었다."그.. 그래!! 나, 난 김종인이다!!"제게 내밀어진 손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려다보던 경수가 조심스럽게 종인의 눈치를 보았다....뭐지, 이건. 뭘... 달라고 하시는건가?아... 가디건?그제서야 얼른 바닥에 놓여진 종이가방을 집어들어 조심스럽게 종인의 내민 손에 쥐어주었다.표정없던 종인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린다.악수...를 하기엔 좀 뜬금없긴 했나...?내가 설마 삐..삥을 뜯게 생겼던가??"이게...뭐?""그... 전에... 감사했습니다."가볍게 손에 들려진 종이가방 안을 흘끗 들여다보니 제 가디건이 착착 곱게 접혀 들어있었다.역시... 떼먹고 튄 건 아니었어! 종인의 기분이 급 좋아졌다."어, 그래- 별 것도 아닌데..."그리고 또 침묵.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종인 저도 어디가면 시크한 차도남 취급 좀 받았건만 얘 앞에만 서면 스스로가 보기에도 답이 없다.머쓱하게 뒷목만 뽁뽁 긁고 서 있는 종인 앞에서 경수는 또 경수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그간 종인에게 가디건을 전해주겠다는 생각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막상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경수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아, 생각하지 못했던 수확이 하나 있긴 했다.늘 '카페 형'이라고 지칭하던 그의 이름을 생각지도 못하게 알아냈다.김종인.김종인... ...종인이 형...왠지 이유도 없이 웃고 싶어지는 제 마음을 꾹꾹 다잡았다. 여기서 그냥 웃어버리면 괜히 실없는 애로 각인될 것 같다....그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 이게 그와의 마지막 인연이라고 해도 말이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경수는 아주 조금 우울해졌다."...""..."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 사이로 여름볕을 담은 바람이 불었다.어색한 분위기에 어쩔 줄 모르게 된 두 사람은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서로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종인은 괜히 카페 앞 난간의 갯수를 세고 있었고, 경수는 멀뚱히 종인의 손을 바라보며 '손이 예쁘다...'라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었다.'어색해서 토할 것 같아...'속으론 멘탈이 붕괴되고 있던 종인은 제 앞에서 머뭇거리던 경수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옆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조심스레 고쳐맨 경수가 꾸벅 인사를 하려던 참에 갑자기 종인이 경수의 손목을 턱 잡았다.
"너 우산!!!"
"...네?""고..고마웠다, 우산!! 덕분에 비 안맞고 집에 잘 갔어-"비 안 맞고 잘 갔는데 감기에 걸린 건 쪽팔리니까 패스-"아, 네... 별 것도 아닌데요...""아냐, 고마웠다. 그- 우산..."이쯤 되니 또 할 말이 없어진 종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제 자신이 왜 이러는지는 나중에 확인할 문제고, 일단은 경수를 좀 더 잡아둬야할 것 같았다.며칠째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방울소리만 나면 귀를 쫑긋쫑긋 세우고 문을 확인했는데,그 장본인이 막상 앞에 서니 우산 주는 것 외엔 사실 딱히 할 말이 없다.내가 정말 저 우산 하나 주는 것 때문에 그 동안 그렇게 얘를 기다렸던 건... 아닌 것 같단 말이지."우, 우산 줄게!!"종인은 무작정 손에 쥔 경수의 손목을 끌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둘이 들어오는 동안 카페 안에 있던 유일한 손님이 가방을 싸서 밖으로 나섰다.'안녕히가세요~' 어딘지 한 템포가 올라간 목소리로 크게 인사한 종인이 지난 번 경수를 앉혔던 그 자리에 다시 앉혀두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섰다.멋모르고 끌려들어와 자리까지 차지하고 앉게 된 경수는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을 도로록 도로록 굴리며 카페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지난 번에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고, 지금까지는 매일 카페 앞을 서성거리다 갔을 뿐 한번도 들어와본 적이 없었던 터라 이렇게 자세히카페 내부를 본 것이 처음이었다.카페 내부는 작았지만 원목가구들로 깔끔하게 꾸며져있었다.자칫 단조롭고 흔한, 그저 그런 곳으로 보일 수 있는 카페 안은 곳곳에 놓인 화분들 때문에 작은 온실에 들어와있는 것처럼 싱그러운 느낌이 들었다.우산을 준다고 해놓고선 제 우산은 어디다 치웠는지,카운터 안에서 또 뭔가 바쁘게 하고 있는 종인이 두른 검은 앞치마 가운데에도 작은 연두빛 새싹이 그려져 있었다."풋..."근육이 드러나는 몸 좋은 체격은 아니지만 훤칠한 키에 균형잡힌 몸을 가진, 무표정하게 자신을 쳐다보면 조금은 무섭...기보다는 어딘가 다가가기어려워보이는 사람.그런 사람의 앞치마에 뾰록 돋아난 새싹이 안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그답다는 생각이 들어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흘렸다.순간 뭐라도 하나 쥐어주고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생각에 바삐 움직이던 종인의 손이 멈칫 하는 것이 보였다.나이도 어린 제가 혹여나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을까봐 얼른 표정을 굳힌 경수가 슬쩍 종인의 눈치를 보았다.뭔가... 화가 난 표정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저 형의 표정은 암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은 잘 모르겠다.나쁜 뜻으로 웃은 건 아니었는데..."너..."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내려놓은 종인이 성큼성큼 경수 앞에 다가와서 섰다.카운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의 시선이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쳤다."...?"「내 맘을- 오, 내 맘을뭐라고 하면 좋아, 이런 나를」반짝반짝 빛나는 알사탕 같은 눈동자를 마주보자 종인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그 날 이후 2주일동안, 이 아이를 생각하면 온통 초록빛 우산을 쓰고 울고 있는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그 노란 우산을 쓰고 집에 가서도 또 울었을까.그 다음날도 그렇게 울었을까.왜...? 이런 어린 아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을까.궁금하고, 신경쓰였다.막상 2주만에 만난 아이의 얼굴은 생각보다 담담해보였고, 여전히 조심스럽고 낯을 가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편안해보였다.그런데, 심지어 웃기까지 했다.한 번만 더 웃어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말하는 그 순간 이 아이를 대할 때마다 자신답지 않게 어버버거리는 자신이 더더욱 세상에 다시 없는머저리처럼 보일 것이 자명했다.아주 순간이었지만, 예쁘게 말려올라가는 입꼬리를 분명히 봤다.한번만 제대로 본다면, 더 이상 녀석을 떠올릴 때 울고 있던 그 얼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까만 눈동자가 물음표를 가득 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종인은 자신이 경수의 입, 정확히는 다시 얌전히 내려앉은 입꼬리를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척추부터 뒷목을 지나 정수리까지 화르르륵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은 부끄러움에 얼른 뒤로 돌아선 종인의 귀에 삐이이익- 김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같았다.왠지 뭐라도 자꾸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주려고 꺼내놓은 얼음이 저들끼리 부딪혀 찰그랑, 맑은 소리가 났다."그... 레, 레모네이드 좋아해? 날도 더운데 한 잔 마시고 가!! 우산 빌려준 보답이야!"표정없는 얼굴로 제 입술을 빤히 들여다보던 종인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해 있던 경수 역시 어깨를 조금 웅크리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뒷목까지 발갛게 달아올라 뒤로 돌아선 채 이리저리 쿵쿵 부딪히며 소란스럽게 손을 움직이는 종인의 모습에 왠지- 입가가 간질간질해졌다.무표정하고 나른한 눈빛이 처음에는 조금 경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무섭거나 나쁜 형은 아닌 것 같았다.아니, 좋은 사람이다.조금.. 귀엽기도..?컵도 한 번 엎지르고 멀쩡한 바닥에서 발도 한 번 헛딛을 뻔 하며 요란하게 움직이던 종인이 드디어 경수에게 상큼한 향이 담긴 잔을 건냈을 때-경수는 저도 모르게 종인과 시선을 마주하고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멈칫한 종인과 경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내 종인도 제 뒷목을 뽁뽁 긁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영 제 페이스를 못 찾는 제 모습에 어색한 볼을 쓱 문지르자 미소를 머금은 제 입가가 손 끝에 걸렸다."...감사합니다."환하게 웃으며 이슬이 송송 맺힌 잔을 받아드는 경수의 뒤로 쏟아지는 오후의 여름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이었다....「내 맘을- 오, 내 맘을뭐라고 하면 좋아, 이런 나를」-------------------------------------------------------------------------------------------------------------------------------------------
+ 주저리주저리 글 다 써놓고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요 부분- 제 주저리주저리 부분을 다 날려버렸네요.길게 쓰지 말라는 계시인 것 같습니다^^;;거북이 기어가듯 진도를 빼는 이 답답한 커플(...아직은 커플도 아니지... 커플이 되긴 될거니, 너희...?;;) 이야기를 꾹 참고 봐주신 여러분의 인내와 끈기에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사실 제 MP3 목록을 마구 뒤지며 제 맘에 드는 브금을 찾아 거기에 맞춰 글을 쓰다보니 어딘가 좀- 억지로 끼워맞추고 있나-?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그래도 브금을 마음에 들어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 노래도 아닌데 왠지 제가 다 흐뭇합니다..ㅠㅠ보잘 것 없는 글에 댓글 달아주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감사드립니다.글의 힘이라는 것이, 말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셨어요-다시 한 번 제게 용기를 주신 친절하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주말이라 제 한계를 넘어서서 한 편을 무작정 더 올리지만, 평일에는 아무래도 저 깊은 곳으로 잠수해있지 않을까 싶네요...ㅠㅠ대신 그 동안 더 더 달달한 무언가를 찾아-(저는 사실 달달물을 좋아는 하지만 정말 진심 제 손으로는 쓰질 못하는 체질이라 말입니다... 정말 필사적으로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도 보고- 생각도 해보고- 그렇게 영감을 얻고 오겠습니다.그래도... "바로 그 순간, 경수 앞에 번쩍!! 하고 불빛이 비추고 경수는 정신을 잃고 마는데... 쩜쩜쩜.. 투 비 컨티뉴..." 요런 식으로는 끝나지 않으니조금 다음 편을 기다리시기에 좀 낫지 않나요.....? .....이러고 있다;; 죄송합니다;;디테일한 건 슥-슥- ...아시죠?-ㅅ< 제가 고3 시절을 지난지가 쪼꼼 좀 된터라... 그렇습니다;;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모두모두 그 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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