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내내 지호가 백미러를 통해 본 태일은 좋아보이지 못했다.
태일은 지훈의 눈빛이 잊혀지질 않았다.
뭔가 익숙하고 무서운 그런 눈빛.
잊으려고 하면 떠오르고, 떠오르면 숨이 가빠오고,
태일은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멀미와 두통이 동시에 찾아왔다.
지훈의 공포스런 눈빛은 익숙했다.
마치 자신이 어렸을떄 본 그 눈빛과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노리고 자신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준 그 사람들의 눈빛과.
태일은 어지러운 생각들때문에 자신이 숨을 쉴때마다 쌕쌕 소리가 나는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태일이 숨을 가쁘게 쉬며 가죽시트를 세게 쥐자 지호가 차를 멈췄다.
지호가 자신의 가방에서 흡입기를 꺼내고 능숙하게 안전벨트를 푸른뒤
뒷자석으로 몸을 틀어 태일의 손에 흡입기를 쥐어준뒤 직접 태일의 손을 잡고 약을 들아마시게했다.
하아하아-
태일이 눈을 꼬옥 감고 숨을 천천히 쉬기 시작했다.
"도련님."
"미안해요. 멀미가 나서 정신이 없었어요.."
태일의 변명에 지호는 아무말 없이 다시 몸을 틀어 안전벨트를 당겼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다시 차를 출발 시켰다.
"시발, 이 새끼가, 골 깨질뻔 했네."
뒤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에 일단 팔로 막고보니 누군가 휘두른 각목이 반으로 갈라져있었다.
지훈은 자신에게 각목을 휘두른 남자의 배를 발로 찬뒤 거침없이 총으로 남자의 머리를 뚫었다.
지훈이 얼굴에 튄 피를 엄지로 살짝 닦아냈고 다시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남자들을 향해 똑같이 총을 겨눴다.
"계약서는?"
"케이스가 찌그러졌지만 계약서는 멀쩡한것같습니다."
긴 싸움이 끝났고 장소에는 심장이 멈춘 시체들과 타미그룹 조직사람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지훈은 케이스를 총으로 세게 두번 내려친뒤 열어 계약서를 꺼내들었고
안주머니에서 꺼낸 라이터로 계약서를 불태웠다.
"개새끼들이 계약서를 발로 만드나."
지훈은 입에 담배를 물고 타들어가는 계약서 가까이 가 담배에 불을 붙혔다.
"누굴 상대로 장난질이야."
지훈은 오랜만에 한 싸움이라 몸이 뻐근했지만
다행히 어려운 상대들은 아니라 자잘한 상처들 빼고는 크게 다친곳은 없었다.
지훈은 샤워부스 바닥으로 쓸려 내려가는 핏물을 보며 낮에 일을 생각했다.
27세치고는 많이 어린 외모.
힘없이 딸려오던 작은 체구.
험한일은 안해본것같은 깨끗한 손.
그리고 한없이 떨리고있던 크고 투명한 눈동자.
자신이 몇년간 봐왔던 세화그룹 회장하고는 영 딴판인 남자였다.
'엄마를 닮았나'
똑똑-
지훈이 더이상 핏물이 아닌 맑은 수돗물이 내려가는것을 보며 생각할때
욕실의 문이 두들겨졌다.
"보스, 회장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래."
지훈은 대충 물기를 닦고 태일의 생각을 접은뒤 문을 나섰다.
수건으로 하체를 대충 가린 지훈이 익숙한듯 검은 정장의 남자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보스께서 새로 맡아야하는 일에 대해 상의하고 싶으시다고 하십니다."
지훈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나가도 된다는 손짓을 해보였다.
남자는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훈은 옷장을 열고 수십개의 슬랙스중 하나와
수십개의 검은 와이셔츠중 하나를 입고 양말도 신지 않은채로 구두의 발을 밀어넣고 방을 나섰다.
지훈은 복도를 걸으며 젖은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고 잠구지 못한 셔츠의 단추를 잠궜다.
지훈이 어느 방문앞에 다다르자 앞에 서있던 남자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뒤 문을 열어주었다.
방에는 흰머리가 가득한 남자가 신문을 들고 앉아있었다.
남자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않고 턱으로 앞에있는 가죽의자를 가리켰다.
지훈이 남자가 가리킨 의자에 앉자 그제서야 남자가 고개를 들어 지훈의 눈을 마주쳤다.
"이태준네 권력자가 바뀐다네?"
"예, 그렇습니다."
지훈은 또 다시 태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녀석에 대해 알아와.
이태준의 핏줄이면 회사를 더 키울수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핏줄이라고 다 제 부모같은건 아니지."
남자가 탁자에 올려져있는 커피잔을 들었다.
"일단은 어떤놈인지 뒷조사부터 한 뒤 어떻게할지 정한다."
"예, 알겠습니다."
"가 봐."
지훈은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남자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세화그룹은 정말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온것같았다.
태일이 지금까지 본명으로 생활을 했지만 회사도, 태일 본인도 세화그룹얘기는 입에 담지도 않았는지라
아무도 태일이 세화그룹의 후계자인것을 모르고 있었고 그에대한 정보도 별로 없었다.
오히려 문제아라는 둘째아들 이태형에 대한 얘기가 더 많았다.
지훈은 다른 조직 멤버들과 다르게 머리도 좋았다.
대학도 나왔고 박사 학위도 따려 했지만 타미그룹 조직쪽에서 쓸데없다며 지원을 그만 해주는 바람에 멈춰야했다.
일분만에 태일을 대충 스캔한 지훈은 대충 감이 잠혔다.
태일을 태형으로 둔갑시킨뒤 재산 하나 남기지 않을거란 말로 다른 조직들에게 미리 알린것이었다.
태형은 건드려봤자 단돈 백원도 나오지 않을거란것을.
태일이를 안전하게 지키려는 수였다.
하지만 이태형이란 인물이 실존인물인지 허구의인물인지는 아직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단서를 캐낸것이니까.
"그나저나 내일 아버지 수술이네요."
태일이 어색한 정적을 깨려 추자장에서 내리자마자 입을 열었다.
"병문안, 가시겠습니까?"
"아니예요, 내일 기자들도 몰릴거같고 제 얼굴을 모른다 해도
아들 둘인데 하나만 오는거 이상할거같아요. 태일이가오면 얼굴 다 밝혀질거고 태형이가 가면 태일이 입장이 이상해질거고.."
태일이 하하 하고 웃었다.
지호는 그런 태일을 쳐다보다 고개를 휙 돌리며 멈춰섰다.
그런 지호의 행동에 태일은 같이 멈춰섰고
지호가 핸드폰을 열고 누군가에게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주차장 이곳저곳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튀어나왔다.
지호는 재빠르게 총을 꺼내들고 익숙하게 남자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고
태일도 마찬가지로 작은 소총을 꺼내들었다.
"도련님, 먼저 올라가세요 입구는 제가 막고있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불러놨습니다. 도련님을 지키는게 제 임무입니다."
태일은 지호의 말에 긴장한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선 계단을 향해 뛰쳐갔다.
지호의 능력은 누구나 알아줬지만 숫자앞에서는 약자가 될수밖에 없었다.
지호가 여러명을 상대할때 두명은 태일을 쫓았고
태일은 쫓기면서도 제발 자신이 총을 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탕-
총 소음기에서 총쏘는 소리가 나자마자 태일이 총을 들고있는 손을 맞췄고
태일은 날카롭게 스쳐가는 고통에 총을 떨어트렸지만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반대쪽손으로 총을 집어들고는 떨리는 손으로 앞에있는 남자를 겨눴다.
"태형도련님!"
뒤에서 지호의 외침이 들리자 남자들은 겨눴던 총구를 거두고 양옆으로 흩어졌다.
태일은 쫓아오는 지호때문인지 자신이 태형이라는 이유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아무일 없었다는듯
도망치는 남자들의 등을 쳐다보며 총을 떨궜다.
"다친곳은..."
지호는 자신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감지 못한듯
태일의 손을 잡아들었고 태일은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는듯 입을 열었다.
"지호씨."
"도련님, 어서 치료를.."
"나 저사람들 쏠뻔 했어요."
"..."
"..."
"총은 쏘라고 만든겁니다. 괜찮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세요."
태일은 피가 흐르는 자신의 손과 총을 번갈아 바라보면 차갑게 한쪽 입꼬리를 올려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