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조용한 교정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아니 저는 그냥 학교 냄새가 그리웠던 것 같다. 퀘퀘한 먼지와 간간히 섞인 책 냄새, 여선생들의 진한 향수 냄새, 어쩌면 내가 근원이었을 담배 냄새, 남자 고등학교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땀 냄새. 당시엔 꽤나 불순하다고 생각했던 냄새들도, 이제 오니 학교 냄새는 학교 냄새더라. 십 대의 본격적인 시작이, 이십 대의 준비 과정이라는 근사한 핑계로 그 꽃다운 나이에 모두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었던 성숙함. 어떤 이들에겐 기회, 또 어떤 이들에겐 위기였던 십 대의 끝자락은 나에게 엉킨 실타래만을 던져준 채 모른 척 흘러가 버렸다. 지금 나는 내 불순했던 십 대를 사무치게 후회한다. 그러나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다르게 살리라는 다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때의 내가, 그리고 네가 보고 싶었던 이유에서였을 것이리라. 폭우가 쏟아졌다가도, 벚꽃이 만개하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몰려오다가도, 산뜻한 해가 비추던. 놀라울 만치 널 닮은 그 해의 봄이었다. "4월 15일이지? 15번 누구야? 일어나." "..." "왜 안 일어나? 전출생이야? 15번," "15번 전정국인데요," "..." "아파서 보건실 갔어요." 그 아이는 나와 말도 하나 섞지 않는 부류의 애였다. 모범생 중에서도 개 썅 모범생, 나나 걔나 교무실에 많이 불려간 건 같다. 이유는 좀 다르지만 그랬다. 그런 애가 왜 저런 말을 해 줬는진 몰라도, 참 좆도 안 고마웠다. 저 미친 개가 내가 보건실 갔다고 하면 믿겠냐고. 하필 학주 새끼 시간이라 노가리 까기엔 후환이 귀찮고, 원체 자는 것엔 뭐라고 하지 않으니 그냥 퍼질러 잔 거다. 자고 있었으니 당연히 15번 어쩌고 할 때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사실 깨 있었어도 대답은 안 했을 거다. 난 내가 15번인 줄도 몰랐기에. 근데 그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엎드렸던 자세에서 퍼뜩 눈만 떠졌다. 나랑 같은 1분단이다. 범생인거 티라도 내는 것 마냥 맨 앞에 앉은 애, 뭐야 쟤? "전정국이가 보건실에 갔다고?" "네." "태형이 네가 어떻게 알아." "아까 저한테 와서 말해 달라고 했어요. 열도 나고 안색 엄청 안 좋던데요." "그래, 그럼 25번 일어나." 어, 이게 아닌데? 저 차별 좀 보게. 예상치 못한 미친 개의 수긍에 안도와 동시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여간 샌님들한텐 미친 개도 어련하시겠어. 김태형이었나, 반장도 아닌 거 같은데 웬 오지랖질이야, 그래도 꽤 다행이었다. 다시 긴장을 풀고 본래의 자세로, 책상을 파고 들어갈 듯 엎드렸다. 양 팔로 미친 개의 소리를 차단했다. 다음 시간은 뭐였지, 어차피 미친 개 제외하곤 다 만만한 선생들이니까 종만 치면 교직원 주차장이나 내려가서 노가리 까야겠다. 담배는 있나, 아까 애들 보니까 한두 까치씩밖에 안 남았던데.. 귀찮게 또 어디서 뚫어. 잡 생각으로 머리를 채워가던 중, 나이스 타이밍. 종이 울렸다. 긴장감이 돌 정도로 조용했던 반 아이들이 한 번에 부산스러워지는 광경을 눈 대중으로 훑고 빠른 속도로 뒷문을 빠져나가려는 찰나였다. "야," "..." "나, 안 고마워?" 갑자기 부르길래, 얘기해보라는 눈치를 주었더니 뜬금없이 눈웃음을 살살 치며 저가 고맙지 않냐 묻는다. 본래 감정을 숨기는 데엔 도가 튼 저인데도 별안간 얼굴이, 불에 닿은 듯 화끈거리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만큼 황당한 질문이었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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