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남자는 퇴원을 했다.
물론 애초에 발진이란것은 없었고 다치지도 않았으니.
지훈은 뻔한 수법에 남자의 퇴원날짜를 알아보고 일부러 그날 태일과 헤어진것이었다.
"저새끼는 어떻게 밟아줄까?"
지훈이 신이난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큭큭 웃었다.
"그래도 그냥 눈깔만 뽑고 보내주는게 좋겠지?"
유권은 말없이 지훈의 얘기를 들으며 운전을 했고
곧 큰 컨테이너 박스 옆에 차를 세웠다.
잇따라 다른 차 두대가 도착했고 그 중 하나는 남자를 태우고 있던 차였다.
남자는 이미 여러차례 폭행을 당한듯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지훈의 부하들이 남자를 질질 끌고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휘익-
남자는 희미하게 들리는 휘파람 소리에 움찔, 움직였다.
휘익-
다시 들리는 휘파람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휘익-
그리고 세번째로 들리는 휘파람 소리에 엄청난 고통이 뺨을 강타했다.
"내가 휘파람 열번 불때까지 안일어나면 때린다고 했는데도 안일어나네."
지훈이 묶여있는 남자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남자가 눈을 겨우겨우 떴을때 보이는것은 지훈의 매서운 눈빛이었다.
눈을 감고있을때 들렸던 음성은 익살맞은 지훈의 목소리였지만 지훈의 표정은 그러하지 못했다.
"요즘 비즈니스를 장난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사.. 살려..."
"걱정마 죽이진 않을거야, 어쨌든 같이 사업하는 사이잖아?"
"..."
"그냥 너는 이번 프로젝트에 해야될것만 하면 돼.
그리고 내가 오늘 뭘 하든 입놀리는 순간 넌 그냥 강 건너는거고. Understand?"
겁에 질린 남자가 젖먹던 힘까지 내어 고개를 끄덕이자
지훈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뽑아."
지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신을 감싸는 공포에 몸을 있는힘껏 움직였다.
하지만 지훈의 사람들에게 여러번 더 발길질을 당하고 얼굴을 붙잡힌뒤
반항은 커녕 그저 엄청난 공포에 떨수밖에 없었다.
지훈과 태일은 며칠사이 조금더 가까워졌다.
태일도 더이상 지훈을 첫만남때의 무서운 남자로 기억하지 않았고
그저 또라이, 미친 또라이로밖에 보지 않았다.
지훈은 아무렇지 않게 남자의 눈알을 뽑아놓은뒤
태일에게 전화를 걸어 남자를 잘 설득했다고 말했고
태일은 그 소식에 너무 좋아했다.
신난게 다 보이는 태일의 목소리에 지훈은 그저 혼자 웃음을 삼켜야했다.
"태형씨 사업 처음이지?"
"알면서 왜 물어요."
태일이 동그란 일명 해리포터 안경을 착용하고 서류를 들여다 보며 대답했다.
"그럴것 같았어요."
"그게 뭐예요."
태일이 고개를 들고 찌푸린 미간을 보여주었다.
"나 지금 무시하나."
태일의 투덜거림에 지훈이 소파에 다리를 쭈욱 펴고 누워 앉아있는 태일을 밀어냈다.
"아닙니다."
"일 안하세요?"
"합니다 해."
태일의 동그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지훈보다 많았지만 저런 체구를 보니 걱정이 되는건 사실이었다.
"아 그리고 오늘 회의 있는거 잊지 말고."
지훈이 자신때문에 소파에 걸터앉아있는 태일의 등을 톡톡 쳤다.
태일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누워있는 지훈을 내려다보았다.
"근데요 지훈씨."
"네?"
"너 왜 자꾸 나한테 반말쓰세요?"
나 진짜 반말 상관안쓰는데, 태형씨도 말 놓던가요-
회의실에서 나오며 지훈이 계속 깐죽댔다.
사실상 태일이 지훈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태형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태일은 그저 화를 삭힐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아는 지훈은 속으로 웃을수밖에 없었다.
"아 맞다, 나 깜빡한게 있는데 먼저 들어가요."
지훈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태일에게 말했다.
"기다릴게요, 어차피 지훈씨네로 갈건데 굳이 먼저 가서 뭐해요."
"권이가 데려다 줄거예요. 좀 시간 걸릴것 같으니까 먼저 들어가요."
"아니 괜찮.."
"그럼 좀 이따 봐요 태형씨. 빨리 갈게."
지훈이 한쪽눈을 찡긋 감으며 돌아섰고 태일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네 지호씨, 아니예요 유권씨가 데려다주고 있어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애초에 지호씨랑 같이 안왔는데 나때문에 나오라고 할순 없죠."
태일이 핸드폰을 들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네 이따봐요- 라며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나저나 지훈씨 진짜 제멋대로예요."
태일이 피식 웃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유권씨는 지훈씨랑 일하는거 안불편해요?"
"안불편합니다."
유권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태일은 다시한번 웃었다.
"이런질문 하면 당연히 그런 대답 나올텐데 왜 물어봤는지 모르겠네요."
태일이 창밖을 내다보는 도중 창밖 배경이 점차 빨리 지나가는것을 느꼈다.
타고 있는 차의 엔진소리도 더 커졌고 자신의 등이 더 시트로 붙는것 같았다.
"유권씨 속도.."
"숙이세요."
"예?"
"고개 숙이세요!"
태일은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얼떨떨한 기분에 살짝 뒤를 돌아보자 유리에 살짝 금이 가있었다.
"방탄유리도 오래 버티진 못할겁니다.
운전 할줄 아세요?"
"예.. 예?"
뒷자석에 앉아있는 태일에게 운전을 할줄 아냐고 묻는 유권의 질문에 태일은 살짝 당황했다.
"할줄은 아는데 왜.."
"앞으로 넘어와서 운전대좀 잡아주세요."
유권은 한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한손으론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소총을 꺼내들었다.
태일은 다시 한번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재빨리 조수석으로 넘어와 운전대를 잡았다.
"앞만 봐주세요."
유권은 창문을 내리고 몸을 반쯤 뒤튼뒤 뒷쪽 차에 총을 겨눴다.
태일은 속으로 몇번이고 깜짝깜짝 놀라며 핸들을 돌렸고 다시한번 탕 하는 소리에 핸들을 꺾었다.
유리가 결국 깨지고 유리 조각들이 앞으로 날아왔다.
태일의 뺨을 스친 유리조각들을 생각할 시간도 없이 태일은 백미러를 향해 뒤를 쫓아오고 있는 차를 보았다.
두대.
오른쪽은 두명, 왼쪽은 세명이었다.
탕-
다시한번 총소리가 들리고 차가 흔들렸다.
태일은 운전에 집중하며 백미러를 힐끔힐끔 돌아보았고
오른쪽 뒷자석에 타있는 남자에게 이상함을 느꼈다.
눈을 가리고있다..?
탕-
"윽."
총소리와 함께 유권이 짧게 신음소리를 내었고
태일이 당황한 나머지 유권의 옷을 잡고 차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유권은 멀쩡한 팔로 다시 핸들을 잡았고 태일은 자신의 권총을 들었다.
"뭐하시려고요?"
유권이 살짝 당황한듯 태일의 손목을 잡았다.
"저 사람쏘는건 못하는데요.."
태일이 말끝을 흐리며 창문 위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몸을 창문밖으로 반쯤 내놓은뒤 탕- 하고 한발 쏘았다.
총알은 정확히 오른쪽 차 바퀴에 박혔고 차는 비틀거리다 옆으로 쭈욱 미끄러졌다.
"그래도 조준 하나는 확실하게 하거든요."
유권이 백미러로 상황을 확인하고 믿기지 않는다는듯 눈을 몇번 깜빡였다.
"태형씨, 이런일은 제가 해야하지만... 그래도 다른 차도 저렇게 해주실수 있겠습니까?"
유권이 부탁하자 태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힐끔 뒤를 돌아봤다.
없다.
차가 없다.
"유권씨, 차가 없...!"
그 순간 옆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듯한 차가 태일과 유권이 타고있는 차를 박았고
둘이 타고 있던 차는 정확히 두바퀴를 구른뒤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