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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엘성] 제목은 독자님들이 지어주세요 #1 | 인스티즈





진열_



_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그렇게도 미안한지 버스 안에서 자리를 먼저 잡다가도 미안, 내가 쏘겠다며 데리고 간 레스토랑 안에서도 연신 포크를 움켰다 놓았다 하며 미안, 자신이 사겠다며 데리고 간 카페가 문을 닫자 그것마저도 한 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미안하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두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옆 카페에 앉아 그가 주문해온 영수증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내가 아무 말 앉고 앉아있자 미안하다고, 우현아.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모든게. 너한테 밥을 얻어먹은 것도, 하필이면 오늘 그 카페가 문을 닫은 것도, 네가 좋아하는 창가자리에 내가 앉은 것도. 모든 것이 다 미안할 따름이라고. 나는.


_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자리에서 소란스럽게 의자를 끌며 일어서선 그를 노려보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그게 뭐게?


"바람피우는 사람."

"……."

"그리고 자꾸 나한테 아무 이유없이 사과하려고 하는 사람."

"우현아, 내가.."

"또 미안하다는 소리 하려고? 오늘따라 넌 뭐가 그렇게 항상 미안해?"


진동벨이 울렸다. 사람이 우리밖에 없는 적막한 카페 안은 금세 그 진동소리로 꽉꽉 채워졌다. 그가 한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더니 이내 진동벨을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러자 이번엔 그의 주머니 속이 부르르 부르르 자꾸만 움찔거리며 떨리는게 보였다. 그래서 잠시 말을 멈추곤 커피를 가져오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래도 그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내 말을 굳이 다 끝까지 듣고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어차피 내가 애초에 하고싶었던 건 소리를 꽥꽥 지르며 화를 내는 거였으니까.


"……화내서 미안."


그래도 그냥 미안하다고 그랬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자꾸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인데 이번엔 내가 그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작게 웃음을 지으려는게 느껴졌다. 황급히 몸을 돌려 주문한 음료를 받으러 간 사이, 뒤에선 또 다른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_

"걔는?"


대답 대신 안전벨트를 둘렀다. 그건 무언의 긍정이고, 따지고 보면 오늘은 기분이 별로 안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명수가 혀를 쯧, 차더니 이내 핸들을 세게 옆으로 돌렸다. 사이드미러로 살짝 명수를 보니 명수의 표정은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차마 오늘만큼은 애교를 떨며 그의 기분을 풀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고개를 푹 숙여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데체 널 얼마나 더 이해해줘야되는거야?"


신호가 지연되고 슬슬 짜증이 밀고 올라올 무렵 줄곧 입을 닫고있던 명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게 그리 달가운 내용이 아니라 약간의 시간을 끌고선 대답했다. 뭐가.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한 말투 그 자체였지만 명수는 그것마저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지금의 명수는 내가 뽀뽀를 마구 퍼부어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화가 났으니까. 김명수 이 삐쟁이.


"또 왜 그렇게 심술이 났어?"

"…내가 모를 줄 알아? 넌 나만나면서도 계속 걔 생각만 하고 있었잖아. 아까부터, 지금 내 차에 타고 있는 지금까지. 쭈욱."

"그럼 어떡해? 애초에 그런 거 다 감수하겠단 건 너잖아?"

"김성규!"


어울리지 않게 호통을 치고 난리다. 오늘따라, 뭐가 이리도 사람을 미안하게 한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비스듬히 명수를 보러 위로 틀었다. 명수의 잘생긴 얼굴이 분노에 자꾸만 붉어졌다. 그게 귀여워 명수의 머리를 매만졌다. 명수야.


"너 화내는거 오랜만이다. 그렇지 않아?"

"내가 화내는게 좋냐? 그걸 영영 안보는게 좋은거지."

"가끔씩 보면 귀여운데 왜."

"걔도 화내면 나처럼 귀엽다고 말하고다녀?"


아니. 명수의 말에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걘 무서워.

명수가 짧게 웃음을 터뜨리곤 다시 한 손으로 핸들을 돌렸다. 나머지 한 손이 좀 추워보이길래 그걸 잡아 내 양손으로 꼭 붙잡았다. 명수는 손이 차갑다.

우현이는 손이 나보다 더 따뜻한데. 불현듯 아까 낮에 우현이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뭐냐묻던 그목소리가 떠올랐다. 바람 피우는 사람. 자꾸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 

갑자기 우현이가 너무 보고싶었다.



_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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