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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Easy]    



    



    

   

    

    

예술가들    

    

02   

    

w. 댄프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표정은 무섭게 느껴질 만큼이나 무신경했다. 남자는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니, 어느새 남자도 흠뻑 젖어있었다. 우산을 내 머리 위로 향하게 들고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뚝뚝 빗방울을 흘리며.



" 시키는 건 뭐든 할게요.. 제발..먹을 것 좀 주세요.. "



남자가 우산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내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게 틀어쥐고 자신을 바라보도록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감정이 없는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자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관찰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도 왜 우는 지 알 수 없었다. 생존이 간절했다. 한참을 나를 바라보던 남자는 금새 흥미가 떨어졌는지, 틀어쥐고 있던 머리카락을 손에서 놓았다. 그와 동시에 내 고개도 아래로 툭 떨어졌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 들어오세요. "



그리고는 먼저 별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뒤늦게 그를 쫓아갔다. 대문만큼이나 거대하고 새하얀 문을 열자 별장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안에 있던 하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흠뻑 젖은 남자에게 다가와 서둘러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뒤에 쥐새끼 마냥 웅크리고 서 있던 나를 바라보고 저들끼리 소근거렸다. 남자가 귀찮아죽겠다는 표정을 했다. 눈치를 보던 하녀- 어느새 하녀라고 정의내려버렸다. - 들 중 몇 명이 내게 다가와 몸을 닦아주었다. 남자는 하녀들에게 욕조에 물을 받아놓으라고 시켰다. 나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욕실로 향하는 복도는 굉장히 길고, 또 화려했다. 곳곳에 놓인 조각상들은 저마다의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고, 벽에 걸린 그림들은 색감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많이 피곤해진 상태라 계속 감탄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몸을 하녀들이 몇 번이나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욕실에 도달하자 하녀들은 내 옷을 벗겨주고 나를 곧장 더운 물에 밀어넣었다. 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몰아치는 배고픔이 더 컸기에 빠르게 몸을 씻은 후 내어주는 옷을 챙겨입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하녀들의 안내를 받으며 흰 대리석의 복도를 걸으니 커다란 식탁이 한 가운데에 놓여진 식당이 보였다. 안 쪽 넓은 주방에서는 요리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제법 향긋하게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진수성찬을 기대했건만, 내 앞에 차려진 것은 거의 물과 비슷한 형태의 미음이었다. 사실 조금 실망하긴 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는 없었다. 이 주 가량을 굶었기에 미음을 넘기는 것도 조금 힘겨웠으니까. 배가 아파오긴 했지만 허기를 지워버리고자 열심히 그릇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게걸스럽게 퍼먹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앞 쪽에서 의자 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남자가 와서 앉은 것이다. 남자가 의자에 착석하자, 금새 눈 앞에는 화려한 색감과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를 가지고 있는 음식들이 놓여졌다. 문득 남자의 표정이 궁금해져 남자를 쳐다보니 남자는 그저 자신 몫의 스테이크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식탁의 길이가 굉장히 길어서 같이 앉아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어색한 공기 속에서도 식사는 계속됐다. 남자는 나이프로 얌전히 고기를 썰었고, 그 모습을 보고 침을 삼키던 내가 다른 음식에 손을 대려고 하자, 주방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아직은 드시면 안 돼요, 하고 말했다.



남자는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자기 몫의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서 내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구김없는 흰 색 셔츠가 단정하기만 하다. 어느정도 배가 차 조금 나아진 상태였던 나는 아까 남자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대놓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선이 느껴질 법도 한데 쳐다보지도 않는다. 괜히 민망해져 다시 시선을 돌리려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 지낼 곳은 있어요? "



문장 자체만 보면 굉장히 다정해 보일 지 모르겠다. 그러나 말투에서부터 풍겨오는 분위기가 냉랭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자 허리께에서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정심이 섞여있지 않은 눈동자에 나도 모르게 간장하기도 했고. 그리고 잇달아 들려오는 말에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 그럼 여기서 지내보시겠어요? "



장난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말은 정말이지,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선뜻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식사를 마친 그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멍청히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는 애초부터 내 대답을 들을 의도는 아니었는지 그냥 자기 할 말을 이어서 했다.



" 대신 조건이 있어요. "



남자가 건 조건은 이러했다. 나를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하는 대신, 내 모습을 그리게 해달라는 것. 즉, 나를 자신의 그림의 모델로 삼고싶어 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그의 국적은 한국인 ( 사실 이 부분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며 미술관장이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그게 또 성공적이었다. 남자의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다 했더니, 알고보니 그는 그 여자가 평소에 존경한다고 했던 화가였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 난 후 부터는 별로 좋게 보이진 않는다. 아무튼 남자의 이름은 센드로이다. 한국 이름은 김성규 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센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무료로 의식주를 제공해주겠다는데 이것저것 가릴 게 있을까. 센드로가 알겠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센드로의 별장에서 지내게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딱히 특별한 일 없이 평탄하게 흘러갔다. 센드로는 내게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뭔가 미안한 마음이 생겨 청소라도 하게 해달라고 하면 딱 잘라 거절했다. 그래서 하루의 대부분은 노닥거리는 가정부들과 수다를 떨거나, 별장 내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었다. 아직까지 센드로는 나를 부르지도 않았다.



잠자리는 편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부드럽고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 좋았다. 얼마 전 까지의 딱딱한 매트리스와 차가운 바닥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 꿈에 빌이 나온다. 빌은 얄쌍한 내 허벅지 사이를 잡아 누르며 속삭인다. 사랑해, 제이든. 그러면 나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잠에 들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 밤도 그렇게 깨어버렸다. 등 뒤가 축축하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긴 복도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발코니에 인영이 보였다. 괜히 겁이 나서 발소리를 낮추려 노력하면서 천천히 그 쪽으로 다가갔다. 거리가 점점 좁혀질 때마다 그 대상이 또렷이 드러났다. 센드로였다.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팔을 입은 채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발코니에 기댄 몸이 늘씬했다. 센드로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변동없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작게 웃어보였다. 내가 센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담배를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 저 담배 못 피워요. "



담배 연기 맡으면 뭔가 숨이 답답해져서.. 굳이 묻지도 않은 걸 설명으로 덧붙였다. 센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 그 날.. 왜 저를 데리고 들어가신 거예요? "



딱히 대답을 듣고자 질문한 건 아니었다. 그 날의 나는 누가봐도 불쌍한 모양새였을테니. 그러나 센드로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우스워서요. 진짜로 그렇게 말했다. 장난치는건가 싶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 센드로가 입을 열었다.



" 똑같아요. "



여기 돌아다니는 여자들이랑, 당신이랑.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센드로에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있었다.



" 그 여자들도 당신처럼 개같이 살다가 우리 집으로 찾아와 빌었어요. "

" ... "

" 제발 나를 구원해주세요, 하면서. "



내가 할 수 있는건 없어요. 난 애초에 동정심 따위는 주지 않으니까요. 주는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하죠.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조건을 걸었잖아요. 내 그림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 ... "

" 왜 데려왔냐고 물었죠? "



우스운 것도 있고, 사실은 받고 싶은게 있어서 데려왔어요. 센드로가 그 말을 끝으로 나를 지나쳐 복도를 유유히 걸어갔다. 그리고 자취를 감췄다. 나는 그가 태우다 만 담배가 담긴 재떨이를 바라보았다. 미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아서 확실히 비벼서 껐다. 그래도 냄새는 진했다.





계속 발코니에 앉아있다가 바람이 좀 쌀쌀해서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틀어놓은 라디오를 껐다. 적막이 감도는 듯 했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미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내 고막을 찔러댔기 때문이다. 그 것은 어린 여자애의 배고픈 울음 같기도 했고, 고통에 심취된 지도 모르고 쾌락만을 쫓는 문란한 여자의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솔직히 무슨 소린지 알고 있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은 소리. 외로운 그 여자가 밤마다 울부짖는 소리. 사랑이 두려운 내가 강간 당하는 소리. 그래, 한 여자의 신음소리였다.



호기심이 생겨 방문을 열고 소리가 흘러나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 방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욕실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철벅거리는 물 소리도 들렸다. 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문 틈 사이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했다. 욕조 안으로 하얗고 넓은 등이 보이고, 그 어깨위로 올려진 마른 다리가 달랑거렸다. 무릎 색이 분홍빛이었다.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그 다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하녀들 중에 유난히 앳된 아이가 있었다. 나이를 물으니 이제 겨우 열다섯이라고 했다. 어린 나이인데 지낼 곳이 없어 센드로가 거두어주었다고 했다. 그 애의 말을 들어보면 그 애가 센드로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굉장히 큰 것 같았다. 센드로는 그 애의 이름 조차 잘 모르는 것 같던데. 아무튼 그 어린 아이가 센드로에게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센드로는 뒷모습 밖에 볼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 순간 아까 센드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여자들은 똑같아. 너랑.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아, 제발. 제발. 제발. 그 애의 얼굴에 내가 겹쳐보였다. 그 애는 센드로를 사랑한다고 했다. 풋내기의 첫사랑이었다. 나도 첫사랑이 있었다. 사랑했다. 그러니까 누구를? 이불을 뒤집어썼다. 생각이 다시 나를 살라먹기 시작했다. 내 목을 옥죄는 커다란 압박. 나는 그를 떠올렸다. 나를 강간한 그 새끼를. 빌을. 빌은 내 첫사랑이다. 씨발.





어떻게 그 밤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니까 아침이었다. 잠을 자긴 했나보네. 그래도 깊게 잠들진 못했던 모양인지 온 몸이 뻐근했다. 대충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별장 안의 하녀들은 모두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모두 일을 한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나는 그 모습을 차례로 바라보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센드로가 먼저 앉아있었다. 센드로가 말한 두 번째 조건이 있다. 식사는 무조건 함께 하기. 센드로가 내게 잘 잤냐며 짧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어제의 일이 생각나 눈 마주치기도 힘겨운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가 음식이 나왔고, 또 다시 말 없는 식사만 계속됐다.



오늘은 수프가 유난히 맛있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나 조차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무언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센드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요즘들어 센드로는 식사 도중에 자꾸만 나를 눈으로 훑는다. 그게 불편해서 센드로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답을 해주지도 않는다. 뭔갈 먹을 때마다 이러니 미칠 지경이었다.



.





또 이 주가 흘렀다. 동갑이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흑인 여자애가 오늘 날 붙잡고 울었다. 정확히는 한 손으로는 내 팔뚝을, 한 손으로는 아직 판판한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임신했다고 한다. 나는 뱃 속 아이의 아빠를 알고있다. 일주일 전 쯤인가, 센드로의 방에서 섹스하던 여자애를 보았다. 둘의 대화도 의도치 않게 엿들었는데, 전에도 몇 번 몸을 섞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여자애는 거의 실성 직전이었다. 나는 그 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아비게일. 너무 걱정하지 마. 아이는 지우면 그만이야. 어차피 사랑하는 사람과 가진 아이도 아니잖아? 힘들겠지만.. 그래도.. "



" 넌 어떻게 그 이와 똑같은 말을 하니? 그래. 나도 지우려고, 지워보려고 노력해봤어. 그래도 그게 안 되는 걸 어떡해. 이 아이 내 아이야. 제이든, 난 도저히 못 지우겠어. "



그리고 아비게일은 정말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 부른 배로 청소를 하는 모습이 처량해보여 센드로의 눈을 피해 몇 번 대신 해준 적도 있다. 아비게일은 아이를 사랑한다고 했다. 센드로는 알아? 하고 물으니, 아마 모를걸. 하고 답한다. 나는 그 애를 꼭 안아주었다.





.







곳곳에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그 근원지로 달려나갔다. 발코니 아래를 내려다보니 관절이 꺾인채로 죽어있는 아비게일이 보였다. 어젯 밤 아이가 유산 됐다며 하루종일을 울어댔던 단단한 엄마가, 오늘 무너지고 말았다. 아이의 죽음이 그녀를 무너뜨린 것이다. 나는 아비게일이 대단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아비게일의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피에 젖은 잔디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무릎을 꿇고, 뭉개진 아비게일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불룩 솟아오른 그녀의 배도 매만져보았다. 아이처럼 눈물이 터져나왔다.





.





아비게일의 장례식은 조촐했다. 조문객은 몇몇 하녀들과 나 뿐이었다. 나는 죽은 아기의 몫까지 울어주기로 다짐하며 진심으로 그녀와 그녀의 아기의 죽음을 애도했다. 진심으로 애도하는 이는 나 뿐만이 아니었다. 열다섯 살의 어린 하녀도 굉장히 안타까워 하는 눈치였다. 괜히 씁쓸해지는 감정이다. 그리고 장례식 마지막 날, 뜻밖의 인물이 눈 앞에 나타났다. 아니, 뜻 밖이라고 할 수도 없지. 그는 아이 아빠잖아. 검은 정장을 입고 국화꽃을 손에 든 센드로가 내 앞을 지나쳤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 왜 이제 오시는 거에요? "

" 바빴어요. "

" 당신 아이가 죽었어요. "

" 알아요. "



그 표정과 말투가 너무도 담담해서 나는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센드로는 아비게일의 사진 앞에서 짧게 목례를 했다. 말도 안 돼. 그 모습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센드로가 그런 나를 웃기다는 듯이 바라봤다. 나는 그에게 따지듯 말했다. 얘기 좀 해요. 우리는 장례식장 옆에 있는 조그만 카페로 들어갔다. 음악도 없고, 사람도 별로 없어 굉장히 조용한 곳이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유일하게 표출할 수 있는 아비게일을 향한 미안함이었다.



" 당신은 잔인해요. "

"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



분노감에 휩싸여 씩씩거리는 나와 달리, 센드로는 지나치게 펑온했다. 센드로가 우아한 손짓으로 커피를 마셨다. 나는 그 긴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아비게일이 불쌍하지도 않아요? "



센드로는 말 없이 내 눈을 주시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 당신 때문에 아비게일이 죽었어요. "

"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



그는 좀체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문하기까지 했다.



" 당신의 씨가 아비게일의 뱃 속에 있었잖아요. 아비게일은 그 아기의 엄마가 돼주고자 했어요. 적어도 당신은 그녀의 유산 소식을 듣고 같이 슬퍼하는 시늉이라도 했었어야 한다고요. "



" 엄마라는 존재가 특별하게 생각되나 보죠? "



센드로는 또 내게 되물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 나는 그녀 이름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섹스하는 사이면 이름을 묻지 않거든. 난 그녀에게 알아서 피임하라고 미리 경고해두었어요. 임신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을 거고요. 도대체 내 잘못이 어디 있다는 거지? "



그는 지나치게 이성적이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감정이 실려있지 않아 마치 가면을 쓴 광대같았다. 나는 그 광대의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겨내고 싶어졌다.



" 일 시켜줘요. "



내 말에 센드로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 아비게일이 했던 일 모두 내가 할 거에요. 당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영원히 그녀를 잊지 말아야 해요. "



센드로가 손 끝으로 내 손을 툭툭 쳤다. 그 행동은 마치 더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 당신은 그녀와 그녀의 아기를, 꼭 잊으면 안 돼요. 그녀를 생각해서 다른 하녀들과 섹스하는 짓도 그만 둬야 해요. 솔직히 역겨워요. "



센드로가 작게 인상을 쓰더니 금새 표정을 풀고 내게 물었다.



" 조건은? "

" 그 쪽이 원하는 것으로요. "



아, 나는 당신을 그리는 것만 해도 충분해요. 센드로가 마지막으로 미소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 내가 섹스하는 게 역겨워요? "

" 네. 그건 역겨워요. 도저히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요. 섹스는 더러운 행위에요. "

" 왜요? "

"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걸로 돈을 벌었거든요. 그 기억은 가끔씩 내 정신을 갉아먹기도 해요. "



난 강간도 당했거든요. 덤덤하게 말한다고는 했는데 자꾸만 눈시울이 화끈거렸다. 그럼에도 말한 이유는 이렇게라도 쐐기를 박아야 그가 지금까지의 행위를 그만 둘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내가 본 그의 얼굴은 그 어떠한 변화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정심은 물론 더럽다, 이러한 감정까지 담기지 않은 얼굴이 이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게 왜? 어째서?



그의 얼굴에 가면은 씌워진 것이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붙어있는 것이었다.



.





아비게일은 평소에 서재와 계단을 청소했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그 곳들을 쓸고 닦았다. 부른 배로 고된 일을 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괜히 가슴 한 쪽이 아파왔다.



센드로에게 다른 하녀들과 섹스하지 말라고 한 뒤부터 나는 그가 관계 갖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아마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깊은 새벽, 더 이상 그의 방과 욕실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두운 욕실과 센드로의 침실을 바라보며 아비게일과 열 다섯의 소녀를 떠올린다. 그녀들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 틈 사이로 헐떡이며... 그 순간, 센드로의 작업실로 눈이 돌아갔다.



닫힌 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 나는 계단을 올랐고, 성큼성큼 작업실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서였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죽은 아비게일에게 더 없이 미안해질 것 같아서. 홀린 듯이 문을 열어 제꼈다. 이전과 달리 거침없는 손길이었다. 다행히 센드로는 없었고, 풍겨오는 페인트 냄새만이 코를 강하게 찔렀다.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 서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작업실 내부를 마주하게 된 순간, 나는 너무도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넓은 벽면에 붙어있는 수 많은 그림들. 모두 살색의 향연이었다. 정확히는 섹스하는 하녀들의 얼굴과 나체. 그리고 천장을 올려다 보고 나서는, 경악에 사로잡혀 덜덜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천장에 걸려 있는 그림은 내가 죽은 아비게일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울고있는 모습이었다. 굉장히 사실적이게 묘사해서 그려진 시체가 징그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빨리 이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른 탓인지, 일어서면서 작업대 위에 올려져 있던 물품들을 팔꿈치로 세게 쳐버렸고, 그것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굴러떨어진 건 모두 약이었다. 뚜껑이 열려 쏟아진 알약에서 싸한 냄새가 났다. 재빨리 약을 다시 약통으로 쓸어담으려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망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역시 무표정의 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움에 뭐라 변명도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그의 뱀 같은 눈동자가 나를 핥는다. 지독한 시선이다.



--   

    

[인피니트/성우] 예술가들 02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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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윽....대박...작가니뮤ㅠㅠㅠㅠ사랑해여ㅠㅠㅠㅠ미자성우러에게희망을주셔서감사하빈다ㅠㅠㅠ
9년 전
독자2
와 신알신 울리자마자 달려왔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와 진짜 분위기 대박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성규 너무 무서워ㅠㅠㅠㅠㅠㅠ이거 스릴러인가요..??ㅜㅜㅜㅜㅜ
9년 전
비회원24.10
사스가 댄프님; 쓰차 먹은 저를 위해 이렇게 회전까지 풀어주시고 ㅜㅜㅜㅜㅜㅜㅠ ㅎㅏ 댄프님아 저 기다리느라 목 빠질 뻔 했음; 아 겁나 ㅡㅜㅜㅜ 그래서 뒷 내용은 어딨다고여? 맞춤법 그런 거 안 지켜도 ㄱㅊㄱㅊㄱㅊ 님 소설 겁나 좋아여 싸랑해여·~~~~~·♥♥
9년 전
댄프
수정하고 싶어 미치겠다; 내가 더 거슬려
9년 전
비회원24.1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사 띄어쓰기 ㄴㄴ
9년 전
댄프
실수야! 실수라고!
9년 전
독자3
아 작가님ㅠㅠㅠㅠ사랑해요 메마른 성우러에게 단비를ㅠㅠㅠㅠ
9년 전
독자4
와..진심..역대급....이거 저와 같이 영화화 추진 해보실까요... 댄프님..?
9년 전
독자5
ㅇ...와.........대박이라는 말밖에 안나와여......와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6
와 대박......분위기 장난없어요 진짜!!!성규 섹시해요......
9년 전
독자7
이런 명작을 왜 한달 후에서야 발견한거야 나란 몽총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대박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8
와...취저 쩌시네염... 잘 보고가요ㅡ!!!
9년 전
독자9
와...작가님 제발 ㅜㅜㅜ 더 써주세여 ㅜㅜㅜㅜ 이런 명작을 여기서 끝낼 순 없어!!
9년 전
독자10
더 써주세요 작가님 ㅠㅠㅠ 제발요...와...대박이야...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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