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연애중 10 말없이 걸어가는 김태형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 걷고 있을 때에 나와 김태형 사이에는 왠지 모를 어색함이 흘렀다. 평소에 조잘대던 김태형이 조용하니 우리의 말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정적이 찾아오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정적 속에서 나도 모르게 괜시리 눈치가 보여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 " ...우리 어디로 가? 뭐 먹으러 가? " " ... " " 응? 어디가냐고- " " 너 남자친구한테도 그랬어? " 앞뒤 다 자르고 다짜고짜 물어오는 그 말에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태형을 쳐다보았다. " 그 분, 아니 동갑이랬지. 민윤기인가 윤민기인가 그 사람 있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씻고 그랬어? " " ... " "하긴, 나한테도 이러는데 몇 년을 알고 지낸 그 사람한테도 당연히 그랬겠지." " ... " " 와, 그 자식 보기보다 보살이네. 안 그렇게 봤는데. " " 뭐? " " 언제 술 한번 마시자고 전해줘. 친해지고 싶다고. " " 뭐래, 너가 왜 친해져. " " 왜. 사나이들끼리 우정 좀 쌓겠다는데. " " 됐고, 우리 어디가냐고! " 김태형이 툭하고 내뱉은 말에 나는 몸서리치며 격하게 반응했다. 물론 거부의 의미로. 민윤기와 김태형의 조합이라... 당사자가 원할지라도 그 둘의 조합은 아무래도 나한테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뭐 이건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한 여자를 두고 싸우는 전남친과 현남친 정도의 느낌?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런 느낌이었다. 내게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은 김태형이 무작정 날 이끌고 도착한 곳은 동네 근처의 대형마트였다. 우린 밥을 해먹으려는게 아니라 사먹는거라며, 여긴 식당이 없는데 밥 먹자면서 여긴 왜 온거냐며 따지는 나를 보며 김태형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 말했잖아. 너랑 마트 꼭 오고 싶다고. " " ... " " 너랑 선남선녀 커플소리, 내가 꼭 듣고 만다. " " 밥 먹자며! " " 나랑 손 잡고 여기 시식코너 다 돌면 내가 진짜진짜 엄청 맛있는거 사줄게. " 결국 너무도 쉽게 그 말 한마디에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저 먹을거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내가 조금 원망스러워졌다. 김태형은 정말 성실하고 꾸준하게도 무기력해하는 나를 끌고 마트의 모든 시식코너를 다 돌고 있었다. 계속 되는 돌아다님에 지쳐가던 내가 이제 그만하자며 투덜거려도 아직 여기에 시식코너가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발끈했다. 김태형의 막무가내적인 태도를 이길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아서 잘 알고 있었던 나이기에 나중엔 반포기상태로 체념한 채 김태형이 이끄는대로 끌려다녔다. " ...이제 하나 남았어. " " 거봐, 그런 소리는 드라마에서나 듣는 거라니까. 누가 현실에서 그런 소리를 하냐고. " " ... " " 그니까 이제 가자. 나 진짜 배고파. " " 한번, 저기 한번만 더. 응? " 시무룩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부탁을 하는 그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떨구듯 내려진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김태형은 나를 이끌고 마지막 시식코너로 향했고 그곳에 계시는 분께 넉살좋게 말을 붙였다. " 이모- 이거 뭐예요? " " 고등어인데 오늘 올라온거라 아주 싱싱해. 구워먹으면 아주 맛나! " " 우와! 나 고등어 완전 좋아하는데. 너 고등어 구울줄 알아? 나 아침에 생선 구워먹는거 되게 좋아해! " " 나? 나야 못 하지. " " 무슨 다 큰 애가 그런 것도 못해? " " 뭐! 좋아하면 네가 직접 구워서 먹어. " " 에이 색시, 아침에 서방 밥상에 따뜻한 생선 한 마리 착- 있으면 일하러 나가는 남편이 얼마나 힘이 나는데! " " ...네? " " 헐, 이모. 지금 서방이라 하셨죠? 남편이라 하셨죠? " " 그래그래. 여기 색시도 예쁘장하고 남편도 인물이 훤칠한게 참 잘 어울려, 둘이. " " 아니에요. 저희 그냥 친구예요. " " 이모! 정말 감사합니다! 그죠. 저희 참 잘 어울리죠? " " 야! " " 예쁘게 살게요- 감사합니다. " 김태형은 발끈하여 뭐라 변명하려는 내 입을 서둘러 틀어막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단숨에 마트를 빠져나왔다. 마트를 나오고나서야 내 입을 막고있던 손을 떼는 김태형의 등짝에 강한 스매싱을 날려주었다. " 아! 아파! " " 죽고 싶냐? 뭔 남편이야! 뭘 예쁘게 살아! " " 이모님이 그렇게 보시는걸 어떡해. " " 이게 진짜. " 애써 태연스러운척 말하면서도 김태형은 입가에 가득한 미소를 숨길수 없었다. 목적을 이루었다는 듯 한껏 뿌듯해하는 그 모습이 괜히 얄미워 눈을 가늘게 뜨고 김태형을 힘껏 노려보았다. "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응? 가자. 내가 이번에는 진짜 맛있는거 사줄게. " 김태형은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내 등을 떠밀어 앞으로 나아갔다. 날 앞으로 미는 김태형의 손길에 나도 버티는 척하다가 결국엔 못 이기는척 하며 걸음을 떼었다. 그제서야 김태형은 내 옆으로 와서 다시 헤헤-웃으며 날 쳐다보다가 갑자기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 근데 너 남자친구한테는 좀 미안하네. " " 어? " " 그 사람은 남친인데 나는 너 남편이니까. " 물론 그 내용은 김태형의 표정과 다르게 엉뚱하기 그지 없었지만. 민윤기에 관한 그 말을 듣고 잠시 망설였다. 민윤기와 헤어진걸 말해야할까. 헤어졌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것 뿐이지만 김태형에게 괜한 기대를 주는거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앞섰다. " 김태형. " " 응. " " 나 헤어졌어. " " 어? " "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 "...뭐? " " 그냥, 너도 알고는 있어야 할거 같아서. " 내 말이 이어진 후 김태형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끈질기게 내게 닿아오는 그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두 눈만 꿈뻑였다. " 지금... 헤어졌다고 했어? " " 응. " " 그... 그거 지금 너 남자친구 없다는 소리지? 이제 커플 아니라는거지? 너도 나처럼 솔로라는 거지? 너 옆에 이제 아무도 없다는거지? " " 참 다양하게도 물어본다. 응. 맞아. 다 맞아. " 내게 갑작스럽게 전해 들은 빅뉴스에 한대 맞은 것처럼 어벙벙하던 김태형의 얼굴에는 이윽고 한가득 웃음꽃이 만개했다. 신남을 주체할수 없다는 듯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아이처럼 방방 뛰며 좋아하던 김태형은 갑자기 나를 제 품에 와락 안았다. " 내가, 내가 기다리면 될 줄 알았어. 이런 날 올 줄 알았어. " " 야! " " 완전 좋다. 대박 좋아. " 날 안은 그 손길을 밀어내려는 내 시도에도 불구하고 김태형은 전혀 끄떡하지 않았고 오히려 날 안은 팔에 더욱 힘을 꽉 주었다. 난 민윤기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전했을 뿐이었다. 김태형에게 결코 이제 네가 좋아졌다고, 사귀자는 그런 뉘앙스의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는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는데도 김태형은 순수하게 매우 기뻐했다. 단지 아무도 없는 내 옆에 자신이 조금 더 다가갈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김태형은 순수하지만 진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늘 다양한 방법으로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 " 이제 집에 가라니까? " " 집 앞까지만. 아니, 너 들어가는 것만 보고 갈게. " " 내가 애야? 진짜 거의 다 왔잖아. " " 걱정돼서 그래. 야,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친구로. " " ... " " 빨리 가자. " 얼마나 귀를 꽁꽁 틀어막은건지 내가 하는 말은 전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어둡지도 않은 길이고 그냥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되기에 집에 보내려고 했던건데 어느샌가 나보다 앞서 길을 걷고 있다. 결국 걸음을 옮겨 그 뒤를 따라 걷는다. " 오늘, 별 하나도 안 보여. " " 별?" " 너 데려다 주고 돌아갈 때 봤었는데 가끔은 별이 보였거든? 많은 건 아니지만 그냥 조금. " " 응. " " 간간히 있는게 예뻤는데 오늘은 하나도 안 보이네." 그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정말 별이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이 뿜는 인공적인 빛으로 주위는 환했지만 하늘은 깜깜함 그 자체였다. 지난번 민윤기에게 업혀서 본 하늘과 사뭇 다른 느낌의 하늘에 왠지 아쉽고 씁쓸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며 걷고 있는데 김태형이 갑작스럽게 뒤를 돌았다. " 다 왔어. " " 어? 아, 고마워. " " 내가 맨날 데려다주면 안돼? 너랑 밤데이트하는거 같아서 좋은데. " " 안돼, 오늘만이야. 빨리 가. 늦었잖아. " " 누가 단호박 아니랄까봐. 알았다알았어. " 아쉽다는 듯 서운한 표정을 짓는 김태형에게 잘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역시 내게 손을 흔들고 돌아서던 김태형은 얼마 걸어가지 않아서 다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흘끗 바라보더니 다시 몸을 돌려 내 쪽으로 걸어왔다. 김태형은 약간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 너 남자친구, 저기 있어. " " 어? " " 왜 왔지? 설마 너 만나러 온건가? " " ... " " 너 불편하지? 내가 가라고 할까? " 벽 같은 것이 있었기에 까치발을 들어 민윤기가 있다는 그 쪽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민윤기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민윤기가 서있는 곳은 우리 집 쪽이 아닌 민윤기의 집 앞이었다. " 나 찾아온거 아니야. " " ...에? 그럼? " " 우리 빌라 옆에 살아. 지금 서 있는 저기 빌라. " " 뭐? 진짜? " 동네가 떠나갈듯 데시벨을 높여 반응하는 김태형 때문에 민윤기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큰 목소리에 당황하며 주위를 살피다가 민윤기와 어색하게 시선이 마주쳤다. " 왜 이래, 진짜! " " 대박이다, 진짜. 지난번엔 그냥 너 찾아온줄 알았지. " " 야, 빨리 가. 빨리! " " 그럼 그 때도 우연히 만난거였어? 대박. "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놀랍고 신기한건지 연신 대박을 외쳐대는 김태형의 등을 떠밀었다. 김태형은 뭔가 깨달은 사람처럼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김태형은 민윤기가 서있는곳을 지나갔다. 신기해하는 듯한 시선으로 가볍게 목례를 하는 김태형에 당황스러운건 오히려 민윤기 쪽이였다. 나는 황당한듯이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민윤기에게 다가갔다. 걸어오는 나를 바라보는 민윤기의 표정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 미안해. 놀랐지? " " 아니야. 근데 왜 저래? " 민윤기의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낮고 희미하게 나오는 목소리가 위태로웠다. 원래도 목소리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낮은 목소리를 들어본 것이 낯설었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너 목소리 왜 그래? 왜 이렇게 잠겼어? " " 어? 아- 감기 걸렸나봐. " " 감기? 이 날씨에 무슨... " " 그러게.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개만도 못한 놈인가보지. 뭐, 금방 낫겠지. "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민윤기의 상태는 결코 금방 나을것같지 않았다. 그제서야 민윤기가 손에 들고 있던 약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약 먹는거 죽어라하고 싫어하던 민윤기인데... 약까지 사온거보면 아프긴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아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본 민윤기의 얼굴은 많이 헬쑥해보였다.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창백했고 입술에는 생기가 없었다. 마른 체구의 몸이 오늘따라 한없이 작아 보였다. " 많이 아프면 병원 가야하는거 아냐? 병원은 가 봤어? " " 이 나이 먹고 여름 감기에 무슨 병원이야, 쪽팔리게. 약 먹고 자면 다 낫겠지. " " 그래도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창피한게 대수냐. " " 알았어. 약 먹고 잤는데도 안 나으면 내일 갈게. 됐지? " " 진짜 꼭 가. " " 그래. 지금까지 저 사람이랑 있던거야? " " ...응. " " 그렇구나. " " ... " " 앞으로는 일찍 다녀. 내가 챙겨주기 좀 그렇잖아. " 내게 머뭇거리며 마지막 말을 하고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 발걸음은 왜인지 무거워보였다. 쿨한척. 그래, 내가 그런 민윤기의 모습에서 받은 느낌은 그랬다. 지딴에는 노력했겠지만 민윤기는 얼굴에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파서 그런지 민윤기는 오늘따라 감정을 숨기는데에 능하지 못했고 그 모습은 마치 시무룩한 어린아이 같았다. 아픈데도 아프다고 하지 않고 꾹꾹 참아내는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몸도, 마음도 아플 민윤기 걱정에 난 민윤기의 집 앞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켜졌던 방의 불이 꺼질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내일은 꿀 같은 주말이져~~ 주말에 아무래도 못 오지 싶어 서둘러 지금이라도 올리네요!! 오늘 자기전 재밌게 읽어주시거나 꿀잠 주무시고 내일 기분 좋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부족한 실력으로 어설프게 적던 글이 벌써 10화까지 왔네요 그동안 함께 해주신 분들 참 감사합니다~ 완결까지도 함께 씽씽 달려요♡ 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 꾸탱 / 슙슙 / 넠넠 / 반딥 / 두둥 슈나무 / 윤여 / 깜냥 / 단미 암호닉 신청은 이번화까지만 받습니다!